66화. 지원군이 나타남 (3)
“…….”
태운은 눈을 감았다.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복수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산을 직접 오르기 전에는 그 산이 얼마나 높은지 제대로 알 수 없는 법.
지금껏 막연하게 복수라는 저 산을 오르겠다고 다짐했던 태운이었다.
그 산에 오르기 위해 그 산을 향해 열심히 걸었던 지난날.
그리고 마침내 방금 전 서민우 의원의 제안을 받고서야,
‘도달했다.’
태운은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그 산의 입구에 도착했음을.
“일어나세요. 무릎 다치십니다.”
태운은 복잡한 감정이 밀려오며 먹먹해진 가슴을 애써 누르면서 서민우 의원을 일으켰다.
“하지만…….”
태운이 거절하는 것이라 생각한 서민우 의원이 주춤거렸다.
태운은 그런 서민우 의원의 생각을 짐작했는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여러분들이 주신다는 도움 받아야지요. 협회의 힘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확실히 있으니까요.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아……!”
태운의 말에 마음의 짐을 던 서민우 의원이 안심한 듯 안색을 밝혔다.
홀짝.
태운은 아이스초코로 입과 목을 적시며 어딘가 살짝 흥분한 듯한 머리와 가슴을 식혀주었다.
홀짝.
마찬가지로 아이스티를 홀짝이는 서민우 의원은 이제 긴장한 표정으로 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자 하실까.’
어느 날 갑자기 어디선가 혜성처럼 나타난 대한민국의 거인이자 영웅, 특임반장.
그를 돕겠다고는 했으나, 구체적으로 그가 최종적으로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는 몰랐다.
‘저만한 실력을 가지고도 부와 명예를 포기한 채 협회 직원이 될만한 무언가…….’
꿀꺽 ―
태운의 입술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서민우 의원은 연신 아이스티를 목 뒤로 넘겼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마침내 태운의 입술이 달싹이기 시작했다.
* * *
“저는 깨부수고 싶습니다.”
“…예? 깨부수다니, 무엇을…….”
“헌터라는 존재를 완전무결한 존재로 여기며 포장하는 비뚤어진 이 시대,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비애의 굴레들을 말입니다.”
“……!”
“그러기 위해선 우선 헌터가 제대로 취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말하신 대로… 헌터는 이미 충분히 잘 대우받고 있는 것이 아닌지……?”
태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우와 취급은 다르지요. 제가 언제 헌터에 대한 대우가 더 나아져야 한다고 했습니까?”
“그, 그럼…….”
“헌터가 완전무결한 존재라는 인식 자체를 깨부수는 겁니다. 오히려 남들에 비해 더 큰 위험성을 지닌 이들로 보는 것이죠.”
“……!”
“그렇게 하기 위해선 헌터라는 시한폭탄이자 맹수들만을 위한 별도의 더 튼튼하고 질긴 목줄이 필요합니다.”
“목줄이라 하심은…….”
생각보다 더 큰 스케일에 서민우 의원의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그러나 그런 서민우 의원을 바라보는 태운의 눈은 한치의 미동조차 없었다.
“예, 헌터를 대상으로 한 특별법. 그 특별법 제정에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
“가능하시겠습니까?”
말을 내뱉는 가면 뒤 태운의 눈빛은 진지하다 못해 결연한 기색마저 엿보이고 있었다.
* * *
구천 길드 헌터 사건에 관한 회의가 끝나고 얼마 뒤,
“특임반장.”
동석은 따로 태운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협회장실 안에는 동석과 현주, 그리고 베타조장 안창훈이 앉아있었다.
“…베타조장님도 계셨군요.”
태운이 그에게 고개를 숙이자, 안창훈은 벌떡 일어나 90도로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특임반장님.”
“예,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신지?”
태운의 물음에 현주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우리가 불렀어요. 그래도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베타조장이 신경 쓰일 텐데, 빼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서.”
안창훈이 있어서 그런지 태운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현주.
어쨌든 태운은 현주의 말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마음고생이 많으십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특임반장님 덕에 살만해졌는걸요. 덕분에 요즘 던전 토벌도 뛰고 수입도 많이 올랐습니다.”
태운 덕에 일을 덜게 된 전투부서 직원들은 최근 쉬는 때면 조별로 던전 하나를 공동으로 토벌하며 수익 증진을 꾀하고 있었다.
겸업 금지? 수익 창출?
헌터가 던전을 토벌한다는데, 무슨 겸업이고 수익 창출을 따질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는 시간이 없어 바빠서 못했을 뿐, 이젠 한 달에 던전 하나 정도라도 토벌을 할 수 있게 된 전투부서 직원들은 성장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한 던전의 수익을 조원들과 나눠야 했기에 그리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지난번에 자네가 언급했던 지원군 말인데.”
동석이 두 사람의 대화를 비집고 들어와 본론을 던졌다.
“아, 예.”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건지 설명 가능하겠나? 얼마 전 서민우 국회의원을 만났다는 소식까진 들었다네.”
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석의 말에 대답했다.
“창당을 하기로 했습니다.”
“……!”
협회장실 안에 있던 세 사람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차, 창당이라니? 특임반장, 지금 정치판에 뛰어들려고 하는 거예요?”
현주가 놀라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정치판은 위험했다.
각종 권모술수가 남발하는 곳이니까.
더군다나 정치판에 개입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범국민적인 지지는 포기해야 한다고 봐야 했다.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정치색과 이념을 지니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럴 리가요.”
하지만 다행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창당은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서민우 의원님 쪽에서 하실 겁니다. 무소속이셨던 분이라.”
동석은 그제야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깜짝 놀랐군. 구태여 가시밭길로 들어가려는 줄 알았네.”
동석의 말에 태운이 씁쓸히 미소를 지었다.
“이미 충분히 가시밭길을 걷고 있어서 말입니다. 독까지 발린 가시밭길까지 들어가고 싶진 않습니다. 그럴 용기도 없고.”
피식 ―
태운의 말에 동석은 미소를 지으며 태운에게 재차 질문했다.
“창당해서 뭘 어쩌려는 거지? 아니, 애초에 기반이나 지지 세력도 없는 서민우 의원이 제대로 된 창당이 가능키나 하겠나?”
“이미 인원은 충분하다 못해 넘치고 있습니다.”
태운의 입가에 씩 미소가 그려졌다.
“최근 협회가 해낸 것들이 좀 대단해야 말이지요. 163빌딩 화재 사건, 왕십리 포장마차 난동 사건, 그리고 저번 다중 브레이크 사건까지.”
“모두 자네가 해결한 것들이군. 협회가 했다고 하기엔…….”
“제가 하는 일이 곧 협회가 하는 일이지요. 저도 협회 직원 아닙니까?”
태운의 말에 동석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군, 미안하네.”
“섭섭할 뻔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 현주와 안창훈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어쨌든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서 협회에 도움을 받은 이들 중 꽤 능력 있으신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 협회에 도움을 주시겠다며 서민우 의원을 중심을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
“곧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헌터 피해자 중 일부도 모일 겁니다. 그렇게 되면 창당 정도야 시간 문제지요.”
“창당이 되면… 그 후에는?”
현주의 물음에 태운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이후 일은 서민우 의원님께 맡겼습니다. 협회가 할 일은 그분들이 만든 신생 정당이 무얼 하든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것입니다. 정치적 색깔 자체를 드러내지 않는 겁니다. 어떤 색을 가지든 누군가는 반감을 가지게 될 테니까.”
“그럼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없는 건가? 그냥… 기다리는 것뿐?”
동석의 말에 태운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그분들이 준비하시는 동안 우리도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태운이 안창훈을 바라보았다.
“구천 길드 이성호 헌터.”
“……!”
“아무래도 이번까지는 어쩔 수 없이 솜방망이 처벌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럴 수가…….”
“그래서 말입니다만.”
씨익 ―
그러나 분통에 찬 표정을 짓는 안창훈과 달리 태운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베타조장님, 어떻게 저와 같이 깽판 한번 치러 가시겠습니까?”
“…예?”
“어차피 솜방망이로 처벌될 텐데 우리가 먼저 쇠몽둥이로 좀 다져놓자 이 말이지요.”
“그, 그래도 되는 겁니까?”
스윽 ―
당황한 안창훈이 동석과 현주의 눈치를 살폈다.
덜덜덜.
하지만 동석과 현주의 동공도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도 처음 듣는 소리인 듯했다.
그러나,
“안 될 게 뭐가 있습니까?”
태운은 뭔가 광기에 찬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리도 헌터잖아요. 그놈들은 되고, 우리는 안 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
세 사람의 당황한 표정을 구경하는 태운의 입가엔 재밌다는 듯 악동 같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겸사겸사 외국으로 도망간 쥐새끼 8마리도 잡아야 하거든요.”
태운이 고개를 돌려 협회장실 바깥을 바라보았다.
“법이 바뀌기 전에 마지막으로 우리도 울분 좀 풀어보죠.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뭔지 보여주자 이 말입니다.”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
저 멀리 떨어진 산등성이 너머에서,
쿠르릉 ―
새까만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 * *
충남 당진.
그곳에 충청도 4대 길드인 구천 길드가 있었다.
전국 4대 길드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무주공산인 충청도였다.
그런 충청도에서 충청도 4대 길드인 구천 길드의 영향력은,
“크아아아아!”
전국에서 4대 길드가 갖는 영향력과 필적할만한 수준이었다.
탁!
구천 길드의 수장, 이만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이성호! 욕봤다! 새X야, 나는 너 그렇게 맨날 술 처먹을 때부터 알아봤어!”
탁!
이만해의 말에 옆자리에 앉아있던 이성호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술잔을 비웠다.
“아니, 개X끼가 집 가고 있는데 눈으로 야리잖아요. X밥X끼가 뒤질라고…….”
“푸하하하하! 이미 뒤지게 만들어놓고 뒤질라고라고 말하는 게 앞뒤가 맞는 거냐?”
이성호의 앞자리에 앉아있던 구천 길드의 간부, 강춘석이 폭소를 터뜨렸다.
“…아, 그런가?”
“푸하하하하하!”
사방에서 재밌다는 듯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드드드 ―
길드원들이 거칠게 뿜어낸 마력에 건물이 살짝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충청남도 당진의 아미산.
아미산 일대를 통째로 삼킨 구천 길드는 그곳에 훈련장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여러 편의시설을 지어놓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만찬장.
방마벽으로 시공하기도 했지만, 산 한가운데에 지어놓은 덕분에 그들은 술자리를 가지면서도 마음껏 마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마음껏 마력을 사용하면서 술을 먹다 보니, 아미산 바깥에서도 가끔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이지만.
그리고 구천 길드는 이미 길드 수뇌부를 비롯해 이런 마력 감염 사고를 이번 일을 포함해 4번이나 일으킨 바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솔직히 여기서 저한테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사람 몇 있지 않아요?”
“야, 이 X끼야. 술 먹고 실수할 수도 있지. 우리가 뭐 일부러 그랬냐? 안 그러냐, 동진아?”
그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 중에 길드장과 부길드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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