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여론이 갈대처럼 흔들림 (1)
이만해의 물음에 부길드장 김동진이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임마, 너랑 우리가 같아? 우리는 실수고! 너는 고의고!”
“저도 만취였으니까 실수죠!”
“필름 끊겼어, 안 끊겼어?”
“…안 끊겼어요.”
“그럼 고의지, 킥킥킥킥!”
김동진의 말에 이만해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 임마! 우리는 기억이 안 나! 우리가 한 게 아니라 술이 한 거거든! 근데 너는 기억이 나니까 네가 한 거지! 안 그러냐, 애들아!”
“푸하하하하! 맞습니다!”
그들이 일부러 그런 일들을 벌이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헌터라도 아예 막무가내로 행동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이런 실수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한다는 것이며, 그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다음부턴 조심해라. 뭐 별일이야 있겠냐만 요즘은 그래도 조금은 사려야 해.”
킬킬 웃던 이만해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 특임반장인지 뭔지…….”
김동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비워냈다.
“크으… 그 흰가면 놈 때문에 지금 헌터들 은근히 몸 사리고 있잖냐. 그 왜, 4대 길드에서 퇴출된 헌터들 감옥까지 집어넣었잖아.”
김동진의 말에 이성호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요. 근데 참 신기해요. 헌터가 최초로 감옥에 들어갔는데, 소문 하나 돌지 않는다는 게… 헌터들 사이에만 돌았지, 일반인들은 뭐 그런 이야기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이만해가 김동진의 술잔에 술을 채워주며 말했다.
“야, 우리나라 검열이 얼마나 빡센지 아냐? 대한민국은 무슨, 대한중국이야 중국. 윗선에서 헌터들 이미지 챙겨 줄라고 얼마나 노력하는데. 아마 최소 헌터 관련해선 중국 공안보다 빡셀 거다.”
“다 지들 이익이 되니까 그런 거겠죠?”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간부 강춘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지. 헌터들 등에 업고 그놈들이 해먹은 돈이 다 얼만데? 씹X끼들… 그만큼 해 먹었으면 우리도 좀 나눠주면 좀 좋아?”
“그래도 덕분에 우린 범죄 저지르고도 처벌 안 받잖아. 너는 인마 솔직히 사형당해도 할 말 없었어.”
김동진의 말에 강춘석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긴 그렇죠? 아 진짜 헌터 안 됐으면 억울해서 못 살 뻔!”
강춘석.
몇 년 전, 그는 충청도에 놀러 온 청년 넷을 감염시켜 그중 셋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세 명이나 죽인 걸 은근히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강춘석.
그가 바로 구천 길드 최고의 악질이었던 것이다.
“하튼 성호야, 진정한 헌터가 된 걸 축하한다. 뭔가 네가 막차 탄 것 같은데? 킥킥킥! 뭔가 더 일으키면 다 X될 것 같단 말이지.”
강춘석이 이성호에게 술을 따라주며 킥킥대는 그때,
콰아아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만찬장 한쪽이 무너져내렸다.
저벅 ― 저벅 ―
“이미 X된 것 같다고는 생각 못 하냐?”
만찬장의 두꺼운 벽을 뚫고 들어오는 두 남자.
“너, 너희들 뭐야?”
“뭐긴 뭐야.”
턱 ―
쇠몽둥이를 든 두 남자가 어깨에 몽둥이를 비스듬히 올렸다.
“아미산 청소부다, 씹X끼들아.”
검은 티에 검은 청바지를 입은 두 남자가 시퍼런 안광을 번뜩였다.
* * *
갑작스러운 소란.
구천 길드의 마스터 이만해는 재빨리 마력으로 술기운을 몰아내며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하지만,
‘둘 다 모르는 얼굴인데?’
둘 다 명백히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두 사람은,
우웅 ―
고유 능력 ‘신기루’로 외모를 왜곡시킨 태운과 베타조장이었으니까.
베타조장 안창훈의 고유 능력 ‘신기루’.
모습을 왜곡시키거나 환상을 보여주는 등이 가능한 그의 능력은 그야말로 변장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물론 고유 능력이다 보니 마력을 사용해야 해서 던전 밖에선 거의 사용하지 못하지만,
“고맙게도 알아서 이런 첩첩산중에서 술을 자셔들 주고 계셨네?”
인적 하나 없는 이런 산자락에 상대가 죄다 헌터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선배님, 어디까지 해도 됩니까?”
쓰레기들을 코앞에 둔 안창훈이 눈빛을 이글이글 불태우며 태운에게 물었다.
상대를 짐작조차 할 수 없도록 호칭까지 정해온 두 사람이었다.
모습도 숨겼고 이름도 숨겼다.
일부러 목소리도 약간 다르게 내고 있었고.
신기루 능력이야 잘 알려지지도 않은 데다가 안창훈이 쓰러지지 않는 이상 들킬 리가 없었고, 태운은 능력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압도적인 강자였으므로,
“헌터잖아? 죽이지만 않으면 다 괜찮아. 마음껏 날뛰어봐, 후배님.”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거리낄 게 없었다.
파앗 ― !
B급 중에서도 최상위 실력을 지닌 안창훈의 신형이 만찬장 한가운데로 주욱 나아갔다.
“이 미친!”
“조져!”
그래도 헌터라고 그새 술기운을 모두 날려버린 구천 길드원들이 만찬장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창훈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혼자 가능하지?”
“당연하죠!”
안창훈.
협회장인 한동석과 알파조 3인을 제외하면 협회에서 가장 강력한 자만이 맡을 수 있는 자리인 베타조장을 맡은 남자였다.
태운을 제외하면 협회 TOP 5에 드는 안창훈의 실력이 거리낌 없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키잉 ―
“히익!”
홱!
안창훈에게 달려들던 구천 길드원들이 갑자기 무언가에 놀란 듯 몸을 비틀었다.
창훈의 고유 능력 ‘신기루’가 그들의 눈앞으로 탁자 위에 있던 포크가 날아드는 듯한 환상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슈악 ― !
단번에 달려드는 길드원들의 방해를 뿌리친 안창훈의 신형이 곧장 어버버하고 있는 이성호에게 달려들었다.
“좀 처맞자!”
부아아앙!
“크윽!”
이성호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있다가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쇠몽둥이를 가까스로 피해냈다.
이성호는 일반형 능력자임에도 어쩐지 반응이 느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반형 능력자 이성호.
일반형 능력자는 몇몇 특정 동물형 능력자를 제외하면 가장 빠른 반응 속도를 자랑했는데, 그건 바로 일반형 능력자의 2차 각성 내용이 모든 감각 능력이 2배로 증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마력으로 강화를 해도 남들의 스펙에 2배인 상태에서 강화가 되는 것이었으니, 일반형 능력자의 반응 속도는 굉장한 장점.
그러나 C급 헌터인 그는 2차 각성을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
부우우우우웅!
뻐억!
“크아아악!”
자신보다 마력이 많은 창훈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X끼가!”
구천 길드의 유일한 A급 헌터, 이만해가 대놓고 앞에서 날뛰는 창훈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나,
“넌 나랑 놀자.”
텁 ―
이만해는 어느새 다가온 태운의 손아귀에 붙잡히고 말았다.
“힘 좀 써야겠다, 후배님. B급도 몇 명 있는 것 같은데?”
“적어도 동급이랑 붙어서 져본 역사는 없습니…다!”
슈슈슉!
등 뒤에서 달려든 강춘석이 창훈이 있던 자리를 검으로 찔렀다.
“너희들 대체 누구야!”
강춘석이 시퍼런 안광을 번뜩였다.
그러나,
“…너는 마지막이니까 기다려.”
곧 휘몰아치는 환상에 그의 눈빛은 이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부우우우웅 ― !
어디선가 나타난 커다란 장수말벌이 강춘석의 얼굴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으이이익!”
자꾸만 얼굴을 향해 달려드는 장수말벌 떼에 놀란 강춘석이 놀라 검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웅 ― !
묘하게 맞는 듯 맞지 않는 그의 공격.
서걱 ― !
그의 검이 애꿎은 자신의 길드원들을 베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춘석이 형님! 왜…….”
“떨어져! 떨어져!”
강춘석은 패닉 상태에 물든 채 검을 이리저리 난잡하게 휘둘렀다.
신기루가 만들어낸 장수말벌 떼에 난동을 피우는 강춘석이 다른 길드원들을 상대하기 시작하자,
“……!”
어느새 만찬장 한구석에는 오로지 창훈과 이성호만이 남아있었다.
뻐억!
“크악!”
부길드장 김동진은 어느새 이만해와 같이 태운에게 끌려가 처맞고 있었으니까.
“무고한 시민 인생 조져놓고 술이나 마시고 앉아있어? 감히? 너 따위가?”
쾅! 쾅! 콰아앙! 빠각!
무자비한 그의 쇠몽둥이가 폭우처럼 이성호의 몸뚱이 위로 쏟아져 내렸다.
“크아아아아악!”
전신을 뭉개지는 고통에 이성호가 몸부림을 쳤다.
“이… 개X끼가!”
터어어엉!
일반형 능력자의 1차 각성 능력인 마력 유형화가 발현되며 이성호의 마력이 방패 모양을 형성했다.
마력 유형화의 장점.
유형화된 마력은 어떤 형태든 간에 상대하는 물체의 경도와 강도에 상관없이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 막아? 그럼 이것도 막아봐!”
우우우우웅 ― !
창훈은 마력을 쇠몽둥이에 집중시키며 부여강화를 하기 시작했다.
슈욱 ― !
그리고 이어지는 마력 유형화의 장점이자 단점.
상대하는 대상이 마력이 깃든 물체라면,
콰아아아앙!
마력의 양에 따라 철저한 상위관계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크핡!”
B급 최상위인 창훈이 부여강화한 쇠몽둥이가 단번에 C급인 이성호의 마력방패를 산산조각 냈다.
거기에 곧바로 이어지는 마력 유형화의 두 번째 단점.
마력으로 유형화시킨 형상이 데미지를 입으면,
“우웨에에엑!”
시전자도 내상을 입는다는 것이었다.
푸확 ― !
마력 회로가 뒤집힌 이성호가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해냈다.
빠악!
머뭇거리지 않고 단번에 이성호의 머리를 내리치는 창훈.
털썩 ―
이성호는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피부가 터져나간데다가 마력 회로까지 뒤틀린 상태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헌터가 이 정도로 죽지는 않겠지만, 이 상처를 회복하려면 꽤 많은 마력 수치를 희생해야 할 것이었다.
특히 C급에 불과한 이성호가 이만한 상처를 치료하려면 아마 등급 강등도 면치 못할 가능성도 컸다.
“허억… 허억… 쓰레기 같은 X끼…….”
이성호를 피떡으로 만들어버린 창훈이 경멸 어린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스윽 ―
쉬시식 ― !
“떨어지란 말이다!”
“으아아악!”
그리고 여전히 길드원들 사이에서 장수말벌 떼의 환상을 보며 난리를 치는 강춘석을 돌아보았다.
“…너는 반드시 F급 밑바닥까지 떨어뜨려 주마.”
강제로 자가 회복을 시켜 마력 수치를 밑바닥까지 떨어뜨리려 작정한 창훈이 두 눈에서 붉은 혈광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런 방법이? 천잰데?’
빠각!
“크악!”
태운은 구천 길드의 두 수장을 패다 뜻밖에 새로운 응징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 * *
타다닥 ― 타다닥 ―
사각 ― 사각 ―
어두운 방 안.
책상 스탠드 불빛 밑에 앉은 한 남자가 연신 타자 소리와 무언가를 쓰는 소리로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끼익 ―
“여보, 안 자요?”
그의 아내가 밤늦게까지 무언가를 계속 준비하는 남편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타다닥 ― 탁!
사가각 ―
“다 됐어!”
부인이 방 안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무언가를 작성하던 것을 끝마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내일부터…….”
아내가 기대와 걱정이 반반 섞인 듯한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당 대회도 개최해야 하고 창당 집회도 해야 해서 바로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인 거지.”
남자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과 모니터를 바라보며 두 눈을 빛냈다.
“…괜찮겠죠?”
“어차피 이미 두 번이나 죽었던 목숨이야. 이왕 정치판에 뛰어들었으니, 뭔가 이루기 위해 도전해봐야 하지 않겠어?”
서민우 의원이 아내를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열심히 할 테니까 믿어줘.”
“참 내, 언제 내가 당신 안 믿은 적 있었나?”
“하하하하, 그렇네!”
카페에서 태운의 목표를 들었던 서민우 의원.
그를 필두로 한 1,0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에 의해,
“같이 큰일 한번 내보자고.”
대한민국에는 지금까지의 정당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정당이 들어서려 하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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