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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69화 (69/300)

69화. 여론이 갈대처럼 흔들림 (3)

상해치사죄.

이성호에 대한 판결 죄목이었다.

“피고 이성호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다.”

본래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내리게 되어있는 상해치사죄였다.

유죄가 인정되었더라도 원래라면 최소 형량인 3년을 선고했을 터.

하지만 재판부는 여론을 의식했는지 초범과 만취 상태라는 심신 미약 사유, 그리고 이성호의 20장이 넘는 반성문에도 최소 형량에서 6개월을 추가로 때렸다.

“…….”

그리고 이성호는 항소를 포기했다.

―예? 그게 무슨…….

―닥치고 그냥 받아들여! 다 같이 뒤지고 싶지 않으면!

뿌득 ―

이만해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중소 길드의 헌터 이모 씨, 징역 확정]

[헌터가 징역?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

[사상 최초 아니다… 한 달 전 최초로 감옥에 들어간 8인의 헌터.]

ㄴ 살다 살다 헌터가 징역 사는 건 처음 보네ㄴ 최초 아님?

ㄴ 최초 아니라잖아. 한 달 전에 뭐 있었다는데? 근데 왜 아무도 모르지

ㄴ 어이어이 믿었던 헌터 너마저…

언론을 틀어막고 대규모 댓글부대를 투입했던 윗선에서도 이런 기사들이 나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이미 이 사건에 대해 대중들이 다 알게 된 데다가 JBS 측에서 배 째라는 식으로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5대 언론사인 JBS 측에서 그렇게 나오니 중소규모의 언론사들도 신이나 덩달아 기사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가만히 방관만 하고 있을 기득권들이 아니었다.

[헌터 이모 씨, 헌터가 되기 전에도 행실 불량했다]

[헌터학 교수진 曰, “이번 일로 헌터들이 매도당해서는 안 돼… 사건의 핵심 파악해야.”]

[모 대학 로스쿨 교수 曰, “만취 상태의 범죄, 책임은 물어야겠지만 순수하게 비난하기 어려워… 당시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 이번 일이야말로 완전한 심신미약 사례.”]

5대 언론사 중 나머지 4개의 대형 언론사들을 대동해 이번 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열기를 중화시키는 기사들을 연신 쏟아낸 것이었다.

무려 4개의 대형 언론사였다.

기사의 숫자로는,

촤라라라락 ―

JBS와 중소규모 언론사들이 압도적으로 밀리게 되고 말았다.

그 덕에 다시 흔들리는 여론.

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ㄴ 얘는 뭔 개소리임? 사람이 죽었는데ㄴ 솔까 만취면 쟤가 한 게 아니고 술이 한 거지 기억도 안 날 텐데 억울할 듯ㄴ 애초에 저놈은 양아치 출신이었음 걍 얘는 쓰레기 맞음ㄴ ㅇㅇ 근데 이 새끼 하나 때문에 헌터 전체를 욕하는 건 좀 에바인 듯

ㄴ 2222

ㄴ 어휴 개돼지 X끼들. 갈대마냥 이리저리 ㅈㄴ 흔들리네

결국 태운의 예상과는 달리, 그리고 서민우 의원의 예상과 비슷하게 헌터 범죄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크게 변화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헌터들이 마냥 깨끗하다고 훌륭하다는 견고한 콘크리트 같던 인식에는,

쩌저적!

확실한 균열이 생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타이밍에 서민우 의원과 헌터 피해자들을 주축으로 한 신생 정당,

“의로운 자가 정당하게 대우받고 해로운 자는 확실히 처벌할 수 있는 상식적인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촤좌좌좌좌좌좍 ―!

의인당이 창당되었다.

* * *

지잉 ―

영화관 스크린보다 조금 작은 거대한 모니터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6개로 나뉜 화면.

그리고 각 화면 속에는 각각 한 사람씩 앉아있었다.

{도명조 길드장.}

“예, 의원님.”

마찬가지로 노트북 카메라 앞에 앉아있던 도명조가 화면 속 한 남자의 말에 대답했다.

{내가 분명 저번에 이야기하지 않았나? 그자,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말이야.}

“그러셨지요.”

{콰아아앙!}

화면 속 남자가 테이블을 거세게 치며 분노를 표했다.

국회의원 이한천이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설치게 내버려 두는 건가! 지난번에 알았다면서! 주작길드가 단체로 해외여행 다녀온 지가 언제인가! 다중 브레이크 때 자리 비운 것도 눈감아줬으면 밥값을 하란 말이야! 이번에 언론 틀어막느라 돈을 얼마나 쓴 줄 알기나 해?! 완벽히 틀어막은 것도 아니야! 지금 네놈의 늑장 때문에 신뢰 콘크리트가 깨졌단 말이다!!!}

흥분한 이한천이 얼굴이 새빨개진 채 씩씩 콧김을 내뿜었다.

“…….”

도명조가 침묵했다.

열이 받은 것이다.

‘이 노친네가… 나를 무슨 사냥개로 여기나 본데… 이 개X끼가…….’

도명조가 침묵하자,

{도명조 길드장.}

이한천이 아닌 다른 이가 입을 열었다.

“…예, 의원님.”

그는 바로 제1야당의 최고 권력자, 박기성이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이 필요하네. 나도 분명 이한천 의원에게 도 길드장이 이번 일을 맡았다고 들었거든.}

{후룩 ―}

박기성은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홀짝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나 가만히 숨죽이고 있던 서민우 의원이 직접 움직였어. 그리고 서민우 의원은 163빌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하나지. 이번 사건, 특임반장이 전면에 나선 사건은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그가 연루되어있음을 알 수 있네. 아니, 애초에 이성호를 잡은 것도 특임반장이었군 그래.}

“…….”

도명조는 가만히 박기성의 말을 경청했다.

이한천과는 달리 박기성은 대한민국 기득권의 수좌를 다투는 인물 중 하나였으니까.

사실상 대한민국의 헌터들을 주무르는 수장급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었다.

{혹시 이한천 의원이 치른 값이 부족했나?}

박기성의 질문.

그는 지금 도명조라는 사냥개를 시험하고 있었다.

눈앞의 사냥감을 죽이라 말했는데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가.

우리가 주는 먹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냐?

…라고 말이다.

그리고 도명조는,

“예, 부족합니다.”

{……!}

그 시험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너… 지금 그게 무슨……!}

박기성의 말을 듣고 있던 이한천이 놀라 말을 더듬었다.

{…무슨 의미지?}

그에 반해 박기성은 살짝 눈을 크게 떴을 뿐, 이렇다 할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제1야당의 최고 권력자다운 침착함이었다.

“특임반장, 그는 강한 인물입니다.”

{그건 알고 있네. 정호백보다 강하다는 이매탈이 바로 그 아닌가? 하지만 정호백보다 강한 건 자네도 마찬가지인…….}

“…세계급.”

{…뭐?}

도명조는 화면을 바라보며 두 눈을 진하게 치켜떴다.

“저는 특임반장의 강함이 세계급 헌터와 맞먹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

아무리 박기성이라도 이번엔 놀랐는지 그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자네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겠나? 세계급이라니…….}

가만히 듣던 다른 기득권 인사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세계급이 무슨 장난인가?}

{협회가 세계급 인사를 가지고 있을 리가…….}

특히 이한천이 크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박 의원님! 이 자식 지금 돈을 더 떼먹으려고 수를 쓰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 개X끼야! 어디 등쳐먹을 사람이 없어서 우리를 등쳐먹으려고……!}

“다들 영상 보셨지 않습니까?”

도명조가 이한천의 말을 단번에 끊어내며 박기성을 바라보았다.

“다중 브레이크 토벌 당시의 특임반장의 무용, 다들 보셨을 겁니다. 서울시 하늘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홀로 천재지변을 일으키며 수많은 벼락을 떨궈 도시 전체의 몬스터를 단숨에 토벌했습니다. 단순한 S급 헌터에게 그런 퍼포먼스가 가능할 것 같습니까?”

{……!}

“단언컨대 S급 최상위라 불리는 김천용조차 그런 일은 벌일 수 없습니다. 최소한 EX급, 그러니까 세계급 정도는 되어야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입니다.”

도명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

가만히 도명조의 이야기를 듣던 박기성.

잠시 뒤,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렇군. 특임반장이 그렇게까지 뒤가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어. 하긴 평범한 S급이었다면 그렇게까지 과감하게 행동할 순 없었겠지.}

박기성의 깊고 날카로운 눈이 도명조를 똑바로 응시했다.

{좋아. 돈은 필요한 만큼 주지. 그러면 특임반장을 처리할 방법은 있는 건가? 세계급이라면 자네의 힘으로는 무리인 것 아닌가? 자네도 S급 헌터이지 않나.}

“제가 나설 일은 없을 겁니다. 사람을 시켜야죠.”

{…다른 세계급이라도 고용하겠다는 건가?}

박기성의 의심 섞인 눈초리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도명조의 입가에 기분 나쁜 미소가 그려졌다.

“그보다 확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도명조의 노트북이 놓인 탁자 아래,

달그락 ―

도명조의 손이 소 형상의 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 * *

동남아시아 네팔.

그리고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네팔에는 국민 영웅이자 신으로 떠받쳐지는 한 여인이 있었다.

“오오, 여신이시여…….”

“부디 국가와 집안의 가호를…….”

그 여인이 머무는 한 거대한 사원 앞에 사람들의 어마어마한 행렬이 쭉 이어져 있었다.

줄이 어찌나 긴지, 사원을 가득 메운 것도 모자라 사원 문밖으로 빠져나간 줄이 지평선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톡 ―

톡 ―

여인의 손이 자신을 향해 엎드리는 사람들의 머리를 기다란 막대기로 살짝살짝 건드렸다.

“오오오……!”

여인의 막대기가 닿을 때마다 사람들이 몸을 부르르 떨며 감복한 듯 황홀해했다.

“여신불변(餘神不變), 여신불사! 쿠마리 여신께 영광을!”

“여신불변(餘神不變), 여신불사! 쿠마리 여신께 영광을!”

여인을 향해 줄을 선 신도들이 특정 구간에 도달할 때마다 이상한 구호를 외쳐댔다.

쿠마리 여신과 일정 거리만큼 가까워지면 미리 인사를 올리는 일종의 예법인 듯했다.

여인, 즉 쿠마리(Kumari)는 네팔에서 살아있는 여신으로 숭배되는 존재였다.

쿠마리는 2세에서 4세 사이의 여아 중에 간택되는데 몸에 그 어떤 흉도 없고, 체취가 없으며, 용모가 그 누구보다 단정해야 하고, 침착하며 겁이 없는 여아여야 했다.

고작 2세에서 4세 사이의 여아가 상식적으로 그럴 수 있겠는가?

하지만 오히려 그런 상식을 벗어난 조건들이었기에 진짜 ‘신’으로 대우받기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주로 그렇게 뽑힌 쿠마리는 사춘기에 시작하는 월경을 하게 되면 쿠마리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월경을 시작하면 피를 흘리고, 피를 흘리면 신성을 잃게 된다고 믿었으니까.

쿠마리는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깨끗한 존재여야 했기 때문에 일말의 흠조차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쿠마리인 여인은 벌써 서른이 다 되도록 쿠마리의 자리에 앉아있었다.

공식적으로는 30살이 되기까지 단 한 번도 피를 흘리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여인이라는 말이었다.

이젠 원래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버린 쿠마리.

그녀는 오늘도 사람들의 숭배를 받고 그들의 신앙이 되어주며 사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부스럭 ―

쿠마리 옆에 상시 대기하고 있던 한 남자가 잠시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종이에 무언가를 써서 쿠마리에게 살짝 건넸다.

사락 ―

종이를 잡을 때도 조심해야 했다.

손이라도 베이면 쿠마리의 자격을 박탈당하게 될 테니까.

스르륵 ―

천천히 종이를 펴본 쿠마리가 종이에 쓰인 글씨를 읽었다.

그리고,

“……!”

쿠마리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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