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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73화 (73/300)

73화. 남매 사이가 나쁘지 않음 (3)

“…으아니, 이 미친X아! 갑자기 생각하니까 또 화나네? 어쩌자고 거기다 손을 집어넣어!”

빠악!

문득 작년에 벌어졌던 그녀의 돌발행동이 생각나 갑자기 화가 치밀어오른 기성은 냅다 유린의 머리를 후려쳤다.

엄청난 미녀가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얻어맞는 장면은 참으로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갑작스레 뒤통수를 얻어맞았으니 화가 날 법도 했지만,

“…….”

유린은 아무런 반항도,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아파…….”

“죽는 것보단 낫지 않냐, 동생아? 응?”

“미안…….”

작년 일만 생각하면 가족들 앞에 대역죄인이 되는 유린이었다.

“크흠… 어쨌든 1년만 더 고생하고. 너도 협회에 들어올 거라고 했지?”

대뜸 유린의 머리를 때렸던 기성은 유린이 풀이 죽은 듯해보이자 괜히 미안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응… 그나저나 홍보설명회 때 말한 거 사실이야? 알파조도 주 3일이나 쉰다고?”

협회 직원들, 특히 알파조가 얼마나 바쁜지 잘 알고 있었던 유린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연 단위의 시간 동안 집조차 들어오지 못하던 오빠가 아니었던가?

유린은 지난 몇 년간 오빠인 기성이 얼마나 바빴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을 더욱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혼자 해도 될 만큼 일이 쉬워지고 양도 엄청나게 줄었거든. 그렇다고 항상 3일 쉬는 건 아니고. 보통 2일 정도 쉬는데, 인하랑 떨어지면 3일 쉬지. 뭐 일부러 인하랑 같이 있으려고 이틀 쉬는 걸 자처하고 있긴 한다만.”

“…용케 아직도 인하 언니랑 사귀고 있네.”

“…그게 무슨 의미지?”

홱 ―

가늘어진 기성의 눈매에 유린은 고개를 차창 밖으로 돌려버렸다.

“…….”

잠시 그런 유린의 뒤통수를 응시하는 기성.

피식 ―

오랜만에 보지만 여전히 불리하면 말을 아끼는 여동생의 친숙한 모습에 기성은 이 사이로 너답다는 헛웃음을 흘려냈다.

“너는 뭐 없지?”

“…응?”

기성의 질문에 유린이 천천히 고개를 다시 돌렸다.

“뭐 찝쩍대거나 하는 남자 없냐고.”

“없어. 애초에 관심도 없고.”

생기가 돌던 유린의 표정이 단숨에 차갑게 변했다.

그녀는 예전 학창 시절 때부터 그랬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장점만을 쏙쏙 빼 왔는지 어렸을 때부터 대단한 외모를 자랑했던 그녀.

―나, 나 너 좋아해!

―그래, 고마워.

―…응? 그럼 우리 이제 1일…….

―그건 아니고.

남학생들에게서 수없이 많은 고백을 받았지만, 그녀는 그들을 모조리 차버렸다.

언젠가 그녀에게 한 친구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유린아, 너는 왜 애들 고백 안 받아줘? 고백한 애들 중에 꽤 괜찮은 애들도 있지 않았어?

―괜찮다는 게 뭘 기준으로 괜찮은 건데?

―어……?

―내가 보기엔 그냥 애들이야. 나를 좋아하는 것도 전부 외모만 보고 좋아하는 거고. 나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고백하는 것에서부터 틀렸어.

―…방금 발언 좀 재수 없는데? 원래 사귀면서 알아가는 거 아닌가? 그럼 네 이상형은 뭔데?

―굳이 말하자면… 어른스럽고 생각이 깊은 사람. 내가 배울 점이 많은 사람.

―…너 나랑 같은 중학생 맞아?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을 모조리 밀어내던 그녀.

그래서일까.

“그렇게 다 쳐내니 고유 능력을 그런 걸로 각성하지.”

“뭐라고……?”

그녀의 고유 능력은 ‘척력(斥力)’이었다.

뭐든지 밀어내는 힘.

왠지 기성은 처음 그녀의 능력에 대해 들었을 때 곧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유 능력 이거 진짜 본인이랑 연관 있는 거 아니야?’

물론 다른 이들을 그러지 않고 유린의 경우에만 맞아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우연의 일치였지만, 그래도 기성은 계속 참 신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네 이상형을 어디 가서 찾겠냐…. 너 그러다 평생 모쏠로 살아.”

“오빠처럼 얼렁뚱땅 사귀는 것보단 나아.”

“뭐? 이…….”

벌컥 ― !

유린은 기성의 화를 피해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

“나 가볼게. 슬슬 훈련해야 하거든.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어.”

차에서 내려 살짝 손바닥을 들어 보이는 유린.

그리고 무언가 뒤늦게 생각났는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특임반장, 그 사람한테 협회를 살려줘서 고맙다고 전해줘.”

유린은 진심으로 태운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덕분에 가족들이 속한 협회의 평판과 이미지가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었으니까.

언젠가 막연히 열심히 해서 이루고자 했던 꿈속의 협회를 먼저 만들어준 그가 진심으로 고마웠던 유린이었다.

하지만,

“뭐래, 나중에 너가 직접 말씀드려.”

“응? 내가 어떻게…….”

“그거 아냐? 엄마가 특임반장님 간 보고 있는 거.”

“…간을 본다니?”

“특임반장님을 사윗감 유력 후보로 점찍어두셨다 이 말이야.”

“……!”

“큭큭. 좋겠다, 한유린. 이상형 만나게 생겼네?”

“무, 무, 무, 무, 무슨!”

“잘 지내라~”

끼익 ― ! 부우우웅 ―

고마움으로부터 비롯된 호감이 이성적 호기심으로 변하는 건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

갑작스레 떠나버린 오빠의 차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유린.

화악 ― !

그녀의 양 볼엔 어느새 빨갛게 홍조가 올라와 있었다.

* * *

한편,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사윗감 후보가 되어버린 태운.

그는 오늘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영등포에 위치한 한 식당.

그곳은 꽤나 고풍스런 분위기에 방마다 미닫이 형식의 벽으로 나뉘어 있고 좌식 형태로 앉을 수 있는 한식집이었다.

스르륵 ―

“어서 오시지요.”

“안녕하십니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태운이 식당 한쪽 구석에 위치한 방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정장 차림의 4명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태운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빠르게 일 처리를 하고 온다는 것이…….”

약속 시간에 5분 정도 늦은 태운이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건넸다.

방금 막 A급 던전을 하나 조사하고 온 태운.

생각보다 던전 지형이 불규칙하고 복잡해 조사에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아닙니다. 특임반장님 바쁘신 건 저희 다 알고 있는데요.”

“하지만 저뿐만이 아니라 여기 계신 분들 전부 바쁘신 분들인데…….”

“괜찮습니다. 저희도 방금 왔거든요. 어서 앉으시죠!”

국회의원, 서민우가 태운을 가장 상석으로 안내했다.

별 생각하지 않고 앉으려던 태운은 자신의 자리가 가장 상석임을 뒤늦게 눈치채고 다시 다리를 폈다.

“나이도 제일 어린 제가 어떻게 상석에 앉겠습니까? 다른 분께서 여기 앉으시는 것이…….”

“하하하하! 그러다 꼰대들끼리 서열 싸움 납니다. 그냥 특임반장님이 깔끔하게 앉아주세요.”

염색을 하지 않아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한 중년인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희끼리는 서열이 애매하거든요.”

“굳이 따지자면 국회의원님……?”

태운을 제외하면 가장 젊어 보이는 남자가 슬쩍 서민우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기겁하며 손사래를 치는 서민우.

“어휴! 국회의원이 벼슬도 아니고! 저는 그냥 돈 조금 많이 받는 계약직에 불과합니다.”

“하하하하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요. 4년 계약직이니까. 그래도 계약직 중에 최고봉 아닙니까……?”

“계약직 최고봉은 대통령이죠.”

“하하하하하! 그렇네요!”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남자들.

태운은 상석 자리에 약간 어색하게 서서 그런 남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구, 내 정신 좀 봐. 어서 앉으시죠! 자자! 반장님도 신경 쓰지 마시고!”

호탕하고 밝은 성격의 중년인의 주도로 총 5명의 남자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누군가 본다면 평범한 회사원들의 회식 자리나 동창회 정도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분위기.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자리한 5인의 면면들은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다들 한식은 좋아하시죠?”

제일 먼저 국회의원 서민우.

무소속이긴 하지만 청렴하고 바른 이미지로 벌써 2번째 연임 중인 인물이었다.

정치적 성향이 불분명하여 콘크리트 지지층은 없었지만, 깨끗한 행실 덕에 많은 대중들을 라이트 팬으로 두고 있는 국회의원.

몇몇 전문가들은 그를 가장 이상적인 정치인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저는 한식 마니아입니다.”

두 번째, 대형 로펌장 백진우.

한국 4대 로펌 중 하나인 ‘한민’의 대표였다.

‘한민’은 전국 1위 로펌인 ‘장앤김’을 바짝 뒤쫓고 있는 사실상 2위 로펌으로, 한 차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그건 바로 흉악범들의 변호를 거부했기 때문.

변호사는 모든 사람들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기에, 의뢰인이 흉악범이라 하여 그 변호를 거부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만, 싫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변호사의 의무와 윤리를 지키지 않으시겠다는 겁니까?

―피해자분들과 고인 앞에 부끄럽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백진우는 로펌장으로서 기자들 앞에서까지 당당하게 소신적 입장을 밝혔다.

그 때문에 일부 상당한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정의를 수호하는 이미지 덕분인지 변호 의뢰 건수가 이전보다 무려 40%가 오른 바 있었다.

“한식이라… 오랜만에 먹는군요. 맨날 인스턴트로 떼웠던지라.”

세 번째, 평검사 고지훈.

그는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소속 검사로 검찰계의 망나니로 여겨지고 있었다.

워낙에 윗선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솔직하고 곧은 일 처리 방식 탓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고지훈.

그 때문일까, 그는 적응할 새도 없이 거진 1년도 되지 않아 소속을 옮겨야 했다.

인사 발령 자체가 그로 하여금 기반을 쌓지 못하게 하고 일부러 겉돌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 있는 서울서부지방검찰청도 아직 온 지 겨우 3개월 차.

언제 또 옮겨야 할지는 몰랐지만, 검사 동기들 사이에선 평이 좋아 전국의 검찰 내부 사정은 그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있었다.

“허어… 아직 젊어 보이시는데 잘 챙겨 드십시오. 검사님.”

네 번째, 대형 언론사 사장 소문광.

소문광이 사장으로 있는 JBS는 서민우의 성향과 비슷하게 보수와 진보를 따지지 않는 중도적 성향이 강했다.

특히 헌터 관련 문제가 아니라면 양 진영을 모두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는 JBS를 두고 타 언론사에선 JBS가 박쥐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문광의 신념은 언제나 하나였다.

―부풀려진 소문에서 거품을 걷어내고 진실만을 전하는 것이 진정한 언론의 가치이자 의무이다.

비록 헌터 문제에 있어선 윗선의 상상 이상의 압박과 제지를 받았기에 거짓 기사나 소문을 덮는 기사를 내느니 아예 기사 자체를 내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했던 JBS.

그러나 얼마 전 그 압박과 제지를 감수하면서도 기사를 쏟아내어 대중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데에 큰 역할을 했던 1등 공신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제일 좋아하는 게 한식입니다.”

혜성처럼 등장한 헌터 협회의 간판이자 벌써 수많은 사람의 인명을 구한 영웅, 특수임무전담반의 반장 태운까지.

듣기만 해도 온몸이 벌벌 떨릴 것 같은 쟁쟁한 면면을 지닌 이들이 오늘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의인당 창설,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서민우 의원이 만든 새로운 정당의 출범을 축하하기 위함이었다.

“감사합니다.”

사회적인 위치상 정당에 직접적인 참여는 하지 못했지만, 창당 과정에 큰 힘이 되어준 서민우 의원을 제외한 네 사람이었다.

그리고 의인당의 시작은 곧 태운이 바라는 특별법 제정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자리에 함께한 네 사람을 바라보며 술잔을 들어올리는 가면 뒤 태운의 두 눈은 어느 때보다도 더 깊고 진하게 빛나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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