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막 나가기 시작함 (2)
“…그게 언제 있었던 일입니까?”
“그저께였습니다. 뭐… 괜찮습니다! 빗맞아서 그런지 팔을 움직이는 데에 그닥 지장은 없어요. 다행히 뼈도 안 상했고.”
소문광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는 듯 다친 팔을 돌려 보였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평검사 고지훈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때, 사장님과 통화했던 고위 의원이 누굽니까? 거의 100퍼센트 확률로 모든 일을 그 의원이 사주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
“휴우… 정황상으로는 그렇지만 딱히 증거가 없어서… 그래도 일단 여러분들도 조심하시란 의미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문광은 마음이 무거운지 푹 한숨을 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재 여당에서 대통령을 제외한 권력 순위 1위.”
““……!””
소문광의 서두에 네 사람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차기 대통령 선거 여당 후보, 강동국 최고위원입니다.”
“그 가식적인 작자가……!”
서민우 의원이 크게 분노를 표했다.
평소에도 앞뒤가 다른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었으니까.
물론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앞뒤가 다른 면을 지니고 있었겠지만, 강동국은 그 차이가 극심했다.
대외적인 이미지로는 그야말로 대천사.
그만한 천사표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철저한 이미지 메이킹이 되어 있었다.
매주 봉사를 하고 한 달에 한 번 기부를 하는 건 기본이었다.
기자들의 인터뷰 같은 것도 끝까지 성실히 해주는 것으로 유명해, 대중들에겐 보기 드문 친절한 정치인으로 보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가까운 사람들을 전부 알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탐욕스럽고 가식적인 사람인지 말이다.
“경찰엔 이야기해보셨습니까.”
백진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소문광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에 신고는 했지만… 결국 손을 떼더군요. 증거도 없고… 게다가 퍽치기범이나 건물을 테러한 이들의 신원도 확인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CCTV가 있지 않습니까? 추적하면 될 텐데요?”
스윽 ―
소문광은 고개를 돌려 태운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은 조금 전과는 다르게 어느새 잔뜩 지쳐 보였다.
“이건 제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길드가 개입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경찰에서도 손을 떼려고 하는 것 같고요.”
““……!””
쩌적……!
태운이 쥔 맥주잔에 살짝 금이 갔다.
태운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이었다.
“또… 헌터입니까…. 참 답답하고 어지럽네요.”
역시 경찰은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윗선의 눈치를 많이 살피는 데다가 애초에 헌터를 감당하기엔 그들은 일반인에 불과했으니까.
“역시 헌터 문제에 관해서는 얼른 협회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여야겠습니다.”
“그렇지요. 애초에 그걸 위한 특별법 제정 아닙니까.”
자리에 모든 이들이 특별법이라는 말에 두 눈을 빛냈다.
“이렇게 쓸데없이 창당 축하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군요. 얼른 법안 내용을 완성시켜 입법 절차를 밟아야겠습니다. 입법이라는 게 오늘 당장 절차를 밟아도 길면 1년까지도 걸리는 것이라…….”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애초에 입법안 통과가 가능하겠습니까? 여당과 제1야당이 의석을 80% 가까이 가져가고 있는데…….”
“마침 내년이 국회의원 선거 아닙니까? 그때까지 최대한 여론을 흔들어 국민들이 여당과 야당에 대한 신뢰를 잃도록 만들어야지요. 그들의 구린 구석은 끝이 없으니까요.”
서민우, 백진우, 고지훈, 그리고 소문광 네 사람은 눈빛을 빛내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태운은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그래도 일단은 급한 불은 꺼야겠지요?”
틱, 틱, 티딕 ―
어딘가로 메시지를 보내는 태운.
그런 태운의 모습에 소문광이 궁금한 눈빛으로 물었다.
“뭘… 하신 겁니까?”
씨익 ―
소문광의 질문에 태운은 웃으며 살짝 갈라진 맥주잔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인력 지원 요청…이라고나 할까요?”
맥주잔을 든 태운이 네 사람과 모두 눈을 마주쳤다.
“급한 불은 잘 꺼질 테니 우린 특별법에 대해서나 더 이야기해보시죠.”
징 ― 징 ―
태운의 주머니 속에서 그의 핸드폰이 두 차례 진동을 일으켰다.
그의 휴대폰 상단에 뜬 메시지 미리보기 내용에는,
[알겠습니다.]
[맡겨주세요.]
누군가 무언가를 승낙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 * *
다음 날.
“…저기…….”
“…네?”
“저 화장실 갈 건데…….”
“아, 편히 일 보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은데…….’
JBS 직원들은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나타난 수상한 사람들이 대뜸 자신들을 경호하겠다며 나섰기 때문이었다.
사장인 소문광에게 물어봐도,
―확실한 저희 편이니 안심하세요.
그냥 안심하라는 말뿐이었다.
물론 최근에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기에 경호 인력이 붙는다니 마음이 놓이기야 하겠지만,
‘좀… 많이 부담스럽단 말이지.’
누군가 자신을 계속 대놓고 졸졸졸 따라다니는 경험을 누가 해봤겠는가?
“후우…….”
최 기자는 뭔가 사생활이 사라진 듯한 기분에 한숨을 쉬며 천천히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역시나,
저벅저벅 ―
경호 인력이 따라 들어오려 했다.
“저기… 여기 여자 화장실인데요.”
“죄송합니다. 저희 길드에 여성 헌터 인력이 그리 많지가 않아서… 세면대 앞에만 서 있을 테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볼일 볼 때 소리 날 텐데…….’
누구나 그렇겠지만 적어도 낯선 남자한테는 그렇고 그런 소리를 더더욱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은 여자로서의 본능이었다.
하지만,
“아… 음… 네…….”
어쩔 수 없었다.
이 사람들, 헌터라고 했으니까.
그냥 뭔가 맹견 앞에 서 있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기본 패시브적으로 들었기에 최 기자는 그의 정중한 태도에도 제대로 반박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최대한 조용하게 처리하자…….’
끼익 ―
잔뜩 걱정스런 얼굴로 화장실로 들어간 최 기자.
그렇게 변기칸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그 순간,
핑 ― !
안쪽에서 변기칸 문과 연결되어 있던 고무줄이 당겨지며 그 안에서 바늘이 날아들었다.
곧바로 최 기자의 미간을 향해 날아드는 바늘.
파밧!
팅!
경호를 위해 따라 들어왔던 경호 헌터가 재빨리 몸을 날려 검으로 바늘을 쳐냈다.
“허억……!”
너무 놀라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최 기자의 신형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아니, 허물어질 뻔했다.
터업 ―
다행히 어느새 다가온 경호 헌터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녀가 쓰러지지 않게 부축해주었다.
쿵 ― 쿵 ― 쿵 ―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죄송합니다. 미리 확인했어야 했는데.”
로보트 같은 사람이 나오는 드라마 같은 대사지만, 그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경호 헌터의 목소리.
쿵 ― 쿵 ― 쿵 ―
푸쉬이이이이 ― !
흔들다리 효과인지 뭔지는 몰라도 얼굴이 새빨개진 최 기자의 눈이 빙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어… 어… 가, 감사… 어… 으어억…….”
놀람, 두려움, 피곤함, 민망함, 창피함, 뭔가 멋있어 보임, 두근거림, 듣기 좋은 목소리 등등.
느닷없이 휘몰아치는 온갖 감정의 범람으로 인해 최 기자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대뜸 기절하고 말았다.
“…어? 기자님?”
당황한 경호 헌터의 굵은 목소리가 여자 화장실 안에 외로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최 기자를 포함한 그 날 모든 JBS 사람들은,
“으아아악!”
“어……?”
“으앗!”
경호 헌터와 갖가지 일을 겪어야 했다.
* * *
척 ―
백호길드 마스터 정호백의 부탁을 받고 경호에 나선 헌터들이 JBS 건물 근처를 지키고 있었다.
JBS 경호에 나선 헌터들은 바로,
“누구든 이상한 짓만 해봐라…….”
“걸리면 곱게는 못 돌아가지, 음.”
백호길드 산하의 청호길드와 적호길드원들이었다.
그중 청호길드는 다중 브레이크 사건 때 백호길드를 도와 한강 이남을 정리한 적이 있는 길드였다.
길드장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동원된 두 길드.
그중 각 길드의 부길드장인 이지호와 민석천은 JBS 정문에서 JBS 건물 앞과 근처 대로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살다 살다 경호 업무도 다 해보네.”
청호길드의 부길드장 이지호가 살짝 웃음을 흘렸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적호길드의 민석천이 두 눈을 번뜩이며 주변을 연신 살피고 있었다.
“은근 재밌습니다 이거? 뭔가 특수요원이 된 것 같은 기분.”
“저는 긴장 됩니다만… 브레이크가 터진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마력 없이 던전 밖에서 뭔가를 하려니…….”
“흠…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마력을 쓸 수 없다는 민석천의 말에 새삼 정신이 번쩍 든 이지호는 잡담을 그만두고 눈을 가늘게 좁히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면밀하게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때,
“예… 쫙 깔렸습니다.”
자연스레 건물 앞을 지나가던 한 행인이 전화 통화를 하며 작은 목소리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
찰나였지만 우연치 않게 행인의 통화 내용을 들은 두 사람이 서로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슬금슬금 다가가며 행인의 통화 내용을 조금 더 들어보는 두 사람.
“뭔가 수를 쓴 것 같은데… 헌터들인 것 같습니다. 몇 명은 아는 얼굴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백호 쪽에서 지원한 것 같습니다만.”
작은 목소리로 통화를 하는 행인.
그러나 어느새 등 뒤 가까이 붙은 두 사람은 행인의 통화 내용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또 보고드리겠습니다, 예.”
JBS를 음해하려는 세력의 일원임을 확신한 두 사람은 행인이 전화를 끊는 그 순간,
파악 ― !
재빨리 행인에게 달려들었다.
쿠당!
“크악!”
순식간에 제압된 행인이 얼굴부터 바닥으로 쓰러졌다.
“너… 누구야?”
이지호가 두 눈을 번뜩이며 행인의 머리를 잡고 들어올려 얼굴을 정면에서 확인했다.
“아는 얼굴입니까?”
“아니… 모르겠습니다. 상체 탈의시켜봐야죠.”
화악 ― !
다짜고짜 행인의 상체를 탈의시키는 두 사람.
“뭐, 뭐 하는 겁니까! 선량한 시민한테 이래도 되는… 읍!”
행인은 끝까지 일반인인 척 버둥대다 들어올려진 자신의 상의에 입이 막히고 말았다.
“어, 없는데요?”
민석천이 살짝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뭐지……?’
당황스럽긴 이지호도 마찬가지였다.
헌터들은 주로 몸 어딘가에 소속 길드의 문양을 문신으로 새겨넣는다.
길드를 함부로 배신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었고, 자신의 길드에 대한 자부심과 소속감을 느끼기 위한 것이기도 했기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웬만해서는 다 하는 편이었다.
“난 일반인이라니까!”
행인이 씩씩거리며 얼굴을 덮었던 상의를 내렸다.
“당신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실수한…….”
“바지.”
이지호가 눈을 가늘게 뜨며 행인을 노려보았다.
“바지도 벗겨보죠.”
콱!
이지호가 행인을 다시 제압하고 민석천이 바지춤을 끌러버렸다.
“으아아아악! 미친 놈들아! 살려주세요! 여기 변태들이 강간한… 으으으읍!”
슉 ―
순식간에 벗겨진 바지.
그리고,
““……!””
무언가를 발견한 두 사람의 눈빛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역시 허벅지였나.”
“막 날아오르려는 검은색 까마귀 문양… 너희, 큰까마귀 소속이구나?”
행인의 정체를 밝혀낸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틱 ―
뚜르르르 ―
곧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민석천.
{어, 석천아. 뭐 좀 알아냈냐.}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적호길드의 마스터였다.
“예, 형님. 알아냈습니다. 큰까마귀 놈들이더군요.”
{…큰까마귀라… 결국 예상이 맞았던 건가?}
적호길드장은 이미 대충 예상했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민석천도 눈을 빛냈다.
“맞습니다. 역시 흉수의 정체는…….”
민석천의 시선이 이지호에게 제압된 큰까마귀 길드원을 향했다.
“주작길드.”
{주작길드.}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흉수의 정체가 흘러나왔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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