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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76화 (76/300)

76화. 막 나가기 시작함 (3)

“또 주작길드입니까……?”

협회 옥상에서 가면을 벗고 쉬고 있다 전화를 받은 태운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큰까마귀 쪽에서는 발뺌하고 있습니다. 단독 행동이라고… 하지만 큰까마귀가 주작 산하 길드인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주작길드가 손을 쓴 것이 분명합니다.}

“최소한 국내에서 여당 야당에 상관없이 정계 인사들의 뒤를 적극적으로 봐주는 길드가 주작길드라는 사실은 명백해졌군요.”

그룹콜을 통해 정호백과 태운의 대화를 듣던 김천용이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적어도 청룡과 백호는 그쪽과 직접적으로 손을 잡은 적은 없으니까요. 물론… 부끄럽지만, 윗선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인 헌터로서의 특권 비슷한 걸 말없이 누리긴 했지만요.}

{…묵인도 죄는 죄니까…….}

정호백의 목소리가 덩달아 시무룩해졌다.

주작길드의 만행을 직접 적나라하게 알고 나니 지금껏 비슷한 이미지로 비쳐졌을 자신들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었다.

“묵인도 나쁜 죄이지요.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렇다고 적극적인 악행을 일삼는 자와 악행에 대한 방관자는 같은 선상에 둘 순 없습니다. 전자가 명백히 훨씬 더 악질이니까.”

태운은 확실히 청룡과 백호가 그동안 해온 묵인에 대해 지적하면서 동시에 주작과의 선을 그었다.

집 마당에 떨어진 돈을 주워 사용하는 것과 직접 은행을 터는 것은 명백히 다른 문제였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최근 힘을 가진 자로서의 책임을 더욱더 통감하고 있던 김천용과 정호백은 어떻게든 그동안의 과오를 만회하고 태운을 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주작에 대한 견제는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특임반장님께서는 협회 일과 특별법 제정 건으로 인해 바쁘시지 않습니까.}

“바쁘신 건 두 분도 마찬가지이신 게…….”

{사실 길드장들은 대부분 할 일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저희는 S급이라 S급이 아니면 던전 레이드도 별 의미가 없고 문서 일은 대부분 실장들이 처리해주니까요. 결제야 뭐 그때만 잠깐 하면 되는 거고.}

두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태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일부러 안 했다.

‘…이런 씨…….’

입을 열면 금방이라도 험한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으니까.

하는 일도 별로 없는 주제에 국내에서도 쟁쟁한 대기업 재벌들 사이에 재산 순위에 이름을 올린 4대 길드장들이었다.

물론 지금 저 자리에 가기까지 해온 노력과 고생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아무리 돈을 좇지 않는 태운이더라도 배가 조금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인생…….’

태운은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다시 정신을 차렸다.

중요한 건 일단 그게 아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주작 쪽에 대한 견제는 두 분께 맡기겠습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뚝 ―

전화를 끊은 태운.

“…….”

머리가 복잡해진 태운은 잠시 난간에 기대어 도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부우웅 ―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음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쿵 ― 쿵 ― 쿵 ―

태운의 심장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주작길드…….’

태운의 원수, 정원준이 있는 길드.

놈의 강함은 진작에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특별법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살려주마.’

지금 건드렸다간 어이없는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게 될 터였다.

그렇다고 냅다 쳐들어가서 패 죽일 수도 없는 노릇.

‘베타조장님 힘을 다시 빌려볼까?’

잠시 나쁜 생각이 태운의 머릿속에 들었다가 사라졌다.

‘아니야. 적어도 그놈만큼은 제대로 확실하게 하고 싶으니까.’

사적 제재라는 일말의 죄책감조차 들지 않고 그 어떤 아쉬움도 남지 않는 깔끔하고 완벽한 복수를 하고 싶다는 게 태운의 마음이었다.

놈에게 복수하는 데에 있어서 명분과 행위의 법적 정당성 등 그 어떠한 작은 흠조차 없는 완벽한 복수.

죽어 마땅한 이를 충분한 명분과 확실한 법적 정당성, 그리고 그 어떤 도덕적 논란 하나 없는 상태에서 죽인다.

그것이 바로 태운이 바라는 완벽한 복수였다.

일단 힘과 명분은 챙긴 상태.

‘특별법만… 특별법만 통과되면…….’

이제 특별법만 통과되면 법적 정당성과 도덕적 논란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

쿵 ― 쿵 ― 쿵… 쿵…….

잠시 흥분했던 태운의 심장이 다시 제 리듬을 되찾기 시작했다.

우웅 ― 우웅 ―

때마침 울리는 태운의 업무용 핸드폰.

핸드폰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태운이 전화를 받았다.

“네, 의원님.”

{아, 특임반장님. 서민우 의원입니다. 혹시 지금 바쁘십니까?}

“아직 괜찮습니다. 시간 됩니다.”

{아, 다행이네요. 바쁘지 않으시면 백진우 변호사님과 입법안 검토를 한 번 더 하려고…….}

“지금 가지요. 위치 찍어주십쇼.”

스팟 ― !

서민우 의원이 찍어준 장소로 몸을 날리는 태운.

휘이이잉 ―

바람에 날리는 그의 흑발이 그날따라 진하게 휘날리고 있었다.

* * *

한편 태운에게서 주작길드 일을 넘겨받은 김천용과 정호백은 서로 역할을 분배했다.

“주작길드는 내가 찾아가지. 안 그래도 애초에 도명조를 감시하고 있었거든.”

{알겠어. 그럼 JBS 쪽은 내가 계속 주시하고 있지. 혹시라도 힘이 필요하면 말하고.}

“알겠다.”

뚝 ―

티딕 ― 뚜르르르 ―

정호백과의 전화를 끊은 김천용은 곧바로 어딘가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예, 형.}

“아직 감시 중이지? 도명조 어딨어?”

다중 브레이크 이후에도 계속해서 도명조를 감시하고 있던 민호성.

김천용은 도명조를 감시 중인 민호성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형, 톡으로 하자.}

뚝 ―

민호성과의 전화가 끊겼다.

“……?”

갑자기 전화를 끊는 민호성의 행동에 김천용은 약간 당황했다.

‘무슨 일이지?’

곧바로 메시지를 확인하는 김천용.

[전화 끊어서 미안. 나 지금 목소리 내기가 힘든 상황이야.]

[무슨 상황인데 그래? 지금 어디야?]

[나 지금 북한이야.]

“……!”

메시지를 확인하고 놀란 김천용의 두 눈이 엄청나게 커졌다.

[북한이라니? 도명조가 북한에 갔어?]

[갑자기 DMZ를 막 넘어가더라고. 어디까지 가나 일단 따라갔는데 북한 땅까지 와버렸어.]

북한.

정식 명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6.25 전쟁 이후 100년이 훌쩍 넘게 김일성의 후손들이 지배했던 독재국가.

그러나 2070년대에 들어 던전이 생겨나면서 북한은 커다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김정은의 아들이자 4대 수령인 김은일이 갑자기 죽었기 때문이다.

사인은 마력 감염증.

후계도 없이 갑작스레 사망한 김은일에 의해 북한은 전례 없는 혼란을 겪어야 했다.

그 와중에 김은일 다음으로 권력이 강했던 수뇌부들이 너도나도 수령을 하겠다며 들고 일어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던 던전들이 죄다 브레이크가 나버렸다.

―키에에엑!

―끄아아악!

헌터들이 성장할 새도 없이 터져버린 브레이크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마력에 감염되었다.

그리고 마력 감염증으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은 면역자들끼리 집단을 이루기 시작했고, 이는 곧 북한식 길드인 전투생존공동체, 통칭 ‘전생체’를 만들어냈다.

현재 북한에 있다고 알려진 전생체의 개수는 총 250여 개.

브레이크로 인해 완전히 몬스터에게 막혀버린 북한 땅은 더 이상 일반인들은커녕 면역자들마저 전생체에 속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던전화된 땅으로 인해 산모가 유산할 확률이 무려 80%에 달할 정도.

그래도 일반인이 마력에 노출되는 것보다는 엄마의 뱃속에서 부모의 마력에 노출되는 것이 더 생존확률이 높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무정부 상태가 되어버린 북한은 현재 국제사회에서 나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죽음의 땅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남한은 북한 땅에서 넘어오는 마력을 막기 위해 이미 국경에 높다란 방마벽을 세웠고, 협회 직원들은 헬기를 타고 국경 근처의 마력의 양 자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주기적으로 몬스터의 뼛가루를 뿌리고 있는 실태.

그 땅 욕심 많은 중국마저 포기한 그 땅에,

‘도명조가 갈 일이 뭐가 있는 건데?’

도명조가 굳이 지뢰까지 피해 가며 갈 이유가 없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던 김천용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핸드폰을 인터넷을 뒤졌다.

“아니, 바로 오늘 아침에 주작길드에 있었는데 벌써 북한이라고?”

[주작길드 마스터 도명조의 아침 출근룩, “오늘도 힘찬 하루!”]

오늘 아침 주작길드 앞에서 사진에 찍힌 주작길드장 도명조의 모습이 연예면에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벌써 북한이라고?

지금은 아직 점심때조차 되지 않은 여전한 아침.

상식적으로 이동 속도가 말이 되질 않은 것이다.

벌컥 ―

탁탁탁!

김천용은 재빨리 길드장실을 나섰다.

‘뭔가… 이상해…….’

주차장으로 향하는 김천용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 *

새롭게 옮긴 주작길드 신사옥.

깔끔하고 세련된 미관을 자랑하는 그 신사옥 1층이,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아니, 상도덕이 있지, 당신!”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갑자기 들이닥친 한 남자에 의해 정신없이 시끄러워졌다.

“됐고, 당장 비켜. 도명조 지금 길드장실에 있지?”

청장발의 남자, 김천용이 눈을 부릅뜨고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어어어~ 이러면 곤란하지, 김천용!”

김천용만큼이나 큰 체격을 지닌 한 적갈색 머리의 남자가 그를 막아섰다.

주작길드의 떠오르는 신성이자 주력 멤버, 정원준이었다.

“도명조를 만나러 왔을 뿐이라고 말했을 텐데?”

짜증이 난 김천용이 눈썹을 꿈틀대며 정원준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다른 길드라고는 하지만 김천용은 청룡의 길드 마스터.

게다가 김천용은 태운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가장 강한 인물이었다.

정원준이 함부로 반말하거나 길을 막아도 될만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길드장님이 아무나 막 만나려고 하면 만날 수 있는 그런 쉬운 사람인 줄 알아?”

천성부터가 천박하고 경솔한데다가 곧 S급을 눈앞에 두고 있는 정원준이 그런 걸 세세하게 따질 리가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청룡 꺼져라!”

“돌아가 주세요! 아무리 청룡길드장이라고는 하지만 약속도 없이 찾아오시다니요! 무례합니다!”

주작길드 분위기 자체가 정원준이랑 비슷했으니 망나니 정원준을 제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부추기면 더 부추겼지.

“자자, 돌아가라고. 파란 뱀 머리 씨.”

정원준이 킥킥대며 모욕적인 언사와 함께 김천용의 어깨를 잡고 돌리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가,

“너네… 대체 뭘 믿고 이러는 거지?”

파지지직!

완벽히 방마벽 시공이 된 장소라는 걸 말이다.

쿠르르릉 ―

눈 깜짝하는 사이에 작고 푸른 용으로 변신한 김천용의 전신에서 백색 번개 줄기가 마구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직!

“크아아악!”

실내임을 감안하여 작은 크기로 변신했음에도 순식간에 감전당해 나가떨어지는 주작길드원들.

“오! 좋아! 한 번쯤 붙어보고 싶었어!”

그러나 정원준은 준 S급이라는 타이틀답게 김천용의 백색 번개를 견뎌내며 마력을 피어 올렸다.

“한번 견뎌보라고!”

슈욱 ― !

공중으로 떠오른 김천용을 따라 공중으로 뛰어오른 정원준이 붉은 기운이 아른거리는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고유 능력 ‘폭발’.

그의 마력은 하나하나가 전부 폭탄 그 자체였다.

그런데,

치이이익 ― !

턱 ―

“…어?”

청룡으로 변한 김천용의 몸통을 가득 수놓은 비늘에 닿은 것은 어느새 맨주먹이 되어버린 정원준의 힘없는 펀치였다.

“…멍청하긴. 나한테 화염계 능력은 안 통해.”

김천용은 공기를 다루는 그의 능력으로 정원준의 주먹 근처의 산소를 없앤 것이었다.

폭발도 결국 화염의 한 형태.

불의 연료인 산소가 없어서야 힘을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김천용은 물까지 다루는 존재.

그야말로 정원준과 완전한 상극이자 천적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꺼져라.”

콰아아아아 ― !

허공에서 생성된 고압의 물줄기가 정원준의 전신을 뒤덮었다.

“크으으윽!”

부렸던 배짱과 자신감에 비해 볼품없이 나가떨어지는 정원준.

그리고 그러던 그때,

“정말로 불이 안 통해?”

화르르륵 ― !

치이이이이이이익 ― !

어마어마한 열기와 함께 한 남자가 나타나 정원준을 삼킨 물대포를 단숨에 증발시켜버렸다.

뿌옇게 올라가는 수증기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한 남자.

“갑자기 찾아와서 이런 행패를 부리다니… 밖에 지나가던 시민들이라도 휘말리면 어쩌려고 그런 거냐? 너도 양아치가 다 되었구나, 김천용.”

화르르륵 ― !

짙은 적색의 겁화를 온몸에 두른 남자가 김천용을 올려다보았다.

“도명조……!”

분명 지금 북한에 있다는 도명조가 정말로 이 자리에 등장하자,

“너… 정체가 뭐야?”

청룡으로 변한 그의 용안이 커다란 혼란으로 물들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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