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협회가 출사표를 던짐 (1)
“누가 찾아왔단 말입니까?”
“네, 젊은 남성분인데, 꼭 특임반장님과 직접 만나서 말씀드려야겠다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어요.”
점심 식사를 위해 협회 식당에 들러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태운은 한 직원이 전한 소식에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 워낙 특임반장의 사건 처리 솜씨가 알려지다 보니 이렇게 종종 일반인들이 경찰이 아닌 태운을 찾는 일이 있었으니까.
“일반적인 사건은 기본적으로 경찰서를 찾아가셔야… 모든 분이 이렇게 다 찾아오시면 제가 다 만나드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씀드렸죠. 그런데 일반 사건이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고위 헌터가 연관되어 있다고… 그래서 일단은 기다려보시라고 했습니다.”
“……!”
태운은 고위 헌터가 연관되어 있다는 말에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서 기다리고 계시죠?”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셔서… 일단은 급한 대로 조사실로 모셨어요.”
“…시설관리팀에 상담실 하나만 설치해달라고 요청을 드려야겠군요.”
“그건 제가 말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태운은 지하 2층에 위치한 조사실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안에 계시는……?”
“네, 기다리고 계십니다. 자리 비켜드립니까?”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고 부탁하셨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조사실 안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을 내보내고, 태운은 마침내 한 남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특임반장입니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고…….”
“아,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불쑥 찾아와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조사실 안으로 들어서는 태운을 마주한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손가락 한 마디 넘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퉁퉁 부은 눈두덩이, 홀쭉하게 들어간 볼에 쩍쩍 갈라진 입술까지.
척 보기에도 엄청나게 수척해진 몰골은 그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태운은 그런 남자에게 안쓰러움을 느끼며 남자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일반 사건이라면 경찰분들에게 인계해드렸겠지만… 고위 헌터가 관련된 사건이라면 이곳으로 오실 수밖에 없겠지요.”
“예, 예…….”
“잘하셨습니다. 그래요, 한번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태운이 가면 뒤의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리고,
“며칠 전 일입니다.”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 *
그의 이름은 이도훈.
평범한 사회초년생이었다.
운이 좋게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한 그는 평범한 회사에 취직한 그는 그날도 열심히 야근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으흑… 흐윽… 끅!”
집 안에서 한 여자가 서글프게 우는 소리를 들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양육비를 받기 위해 양육권을 챙겼던 어머니가 도망간 뒤, 보육원에서 자랐던 이도훈.
그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4살 터울의 여동생뿐이었다.
똑똑 ―
“도희야?”
이도훈은 불안한 마음으로 가슴을 졸이며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올해 막 대학에 들어가 새내기가 되었던 여동생 이도희.
워낙에 밝은 아이였기에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은 이도훈은 더욱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훌쩍… 오빠 왔어? 나 안에 있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그래?”
“…무, 무슨 일이라니……? 나 아무 일도 없어.”
“거짓말하지 마! 방금 울었잖아! 나와봐. 나와서 이야기해.”
행여 오빠에게 짐이 될까 곧바로 아픔을 숨기는 여동생의 마음 씀씀이가 이도훈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잠시 뒤.
끼익 ―
이도희는 두 눈이 빨갛게 퉁퉁 부은 채로 화장실 안에서 나왔다.
“…무슨 일 있었지? 말해. 왜 그러는 거야?”
“오빠… 나 어떡해… 으흐흐흑!”
그리고 그녀는 방금 그친 울음을 다시 한번 서럽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 * *
변변치 못한 집안 사정 때문에 학교를 다니며 학비 충당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왔던 여동생.
그녀는 그날도 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밤 10시가 넘어 퇴근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사박사박 ―
저벅저벅 ―
사박사박 걷는 그녀의 걸음 소리와 계속해서 겹치는 어떤 발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뭔가 이상한 기분에 그녀가 슬쩍 뒤를 돌아보자,
저벅저벅 ―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한 남자가 그녀의 뒤에서 걷고 있었다.
‘……!’
겨우 네 걸음 남짓.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남자와의 거리에 놀란 이도희는 순간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지, 지나치는 사람이겠지. 먼저 앞으로 보내자.’
일반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걸음 보폭이 넓고 빠르다.
그래서 남성이 여성 뒤에서 걷다 보면 불가피하게 앞질러 가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오해가 생기기 마련.
이도희는 그런 일이 꽤 자주 있었기에 이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부러 걸음을 늦추었다.
등 뒤의 남자가 자신을 앞질러 가려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대로 계속 가는 건 아무래도 심적으로 불안했으니까.
사박 사박 사박… 사박…….
그녀가 걸음을 늦추었다.
저벅저벅 ―
순식간에 가까워진 남자의 발소리.
쿵 ― 쿵 ― 쿵 ―
긴장한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까지 울리고 있었다.
'제발… 얼른 지나가라……!'
마음속으로 남자가 얼른 지나쳐가기를 짧게 기도해보는 이도희.
그러나 그녀의 기도가 무색하게도,
터업 ― !
남성은 그녀를 지나쳐가지 않았다.
“……!!!”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뛰어가는 남성.
너무 놀란 그녀는 차마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얼떨결에 남자의 손에 붙잡힌 채 따라 달렸다.
“어, 어, 어……?”
그녀는 남자의 손에 이끌려 어어 하는 사이에 가까이 있던 한 검은색 승합차 옆까지 순식간에 도달했다.
드르륵 ―
휙 ― !
“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녀의 몸이 승합차 안으로 내던져졌다.
아무리 그녀가 가볍다고는 해도 성인 여성을 가벼운 박스 마냥 던져넣는 남자의 힘은 그야말로 우악스럽기 그지없었다.
쿵! 쿵! 쿵! 쿵! 쿵!
순식간에 승합차 안에 타게 된 이도희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져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저 남자는 누구인지.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나는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건지.
사고가 마비되어버려 묶이지 않았음에도 손가락조차 까딱할 수 없게 된 그 순간,
드르륵 ― 탁!
남성이 승합차에 타며 승합차 문을 닫아버렸다.
깜깜한 차 안에 단둘이 있게 된 이도희와 남성.
그리고 곧,
“으으으읍!”
그녀의 고통 섞인 신음 소리가 차 안에만 가득히 울려 퍼졌다.
* * *
남성, 이도훈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태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범인이 고위 헌터라는 말입니까?”
“예… 그 X끼가 범행 후, 여동생의 신상정보와 주소를 캐낸 뒤에 보란 듯이 헌터증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얼굴도 일치했고요.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마력감염증에 걸리게 만들어버린다며 협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들부들……!
이도훈의 어깨가 세차게 떨리기 시작했다.
“놈이 했던 말… 충격적이지만, 제 여동생이 99번째라고 했습니다. 한 번만 더 하면 100명을 채운다고… 그런 더럽고 추악한 짓을 하면서 마치 무슨 게임하는 것처럼…….”
“……!”
이도훈의 말을 들은 태운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100명… 아니, 그 많은 사람 중에 그럼 한 명도 신고를 안 했다는…….”
“할 수 있을 리가 없지요! 심지어 잊을만하면 그놈이 피해자들의 집 앞에서 사진을 찍어 보낸다고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집 주소와 신상정보를 모두 알고 있는 고위 헌터가 가족들의 목숨까지 틀어쥐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 누가 신고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간신히 용기 내서 하면 뭐합니까! 뭘 해도 전부 증거 불충분이라며 흐지부지 끝나는데!”
“…놈이 피해자에게 사진을 보낸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말씀을 들어보면 여동생분은 피해자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으셨을 텐데요.”
태운의 말에 이도훈이 몸을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놈이 직접 여동생에게 98번째 피해자의 번호를 줬다고 합니다. 98번째 피해자분은 97번째 피해자와, 97번째 피해자는 96번째 피해자와… 마치 실로 줄줄이 엮어버리듯이 해놨어요.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더욱 공포에 질리도록 말입니다. 실제로 쥐도 새도 모르게 놈에게 당해 마력에 감염되어 죽은 피해자들이 벌써 10명이 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전부 경찰서를 찾아갔었다는군요. 놈도 실제로 10번 넘게 조사를 받았었고요. 결국 매번 풀려나 보복을 가했다는 거 아닙니까!”
주륵 ―
불안감이 극에 달했는지 이도훈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덥석 ―
이도훈이 태운의 손을 붙잡았다.
파르르 ―
그의 떨림이 손을 통해 태운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부탁드립니다, 특임반장님! 이제 믿을 수 있는 분은 특임반장님뿐입니다. 경찰은 저희를 지켜주지 않고 그자를 벌하려 하지도 않아요. 아니, 벌하려 해도 감당할 수가 없겠지요. 이미 십수 명이나 살해한 미친놈입니다! 막말로 그 미친놈이 경찰서에서 갑자기 마력을 방출하면 경찰서가 초토화 되는 것도 순식간 아닙니까! 혹시라도 제가 이곳에 찾아온 걸 알면 저와 여동생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제발… 제발……!”
울분에 가까운 그의 부탁을 듣는 가면 뒤 태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협회에 찾아왔을 이도훈.
여기까지 찾아온 것도 목숨을 걸고 찾아왔을 터였다.
무엇보다,
‘그래, 헌터는 경찰이 감당할 수 없다. 이게 다 협회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어서 생긴 일이야.’
태운이 해온 모든 일이 결국 이런 불행한 사건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 사건 특임반에서 맡겠습니다.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는… 협회 지하 벙커에서 지내시지요. 모든 생활도 가능하고, 완벽히 방마 처리도 되어있습니다. 직장은…….”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직장은 장기 휴가를 내야겠지요. 잘려도 상관없습니다. 목숨이 더 중요하니까!”
이도훈은 기쁨과 안도의 눈물에 콧물까지 흘리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순식간에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듯한 이도훈의 모습에 태운은 가면 뒤에서 씁쓸하고도 아픈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오늘 바로 여동생분도 모시고 협회로 오시지요. 직원분들에게 말해놓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해주셔야 할 게 있지 않습니까?”
“…어… 무엇이지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상당히 정신없어 보이는 이도훈.
정작 제일 중요한 것을 빼먹고도 생각이 나지 않는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범인의 정체.”
“……!”
“그 X끼, 누굽니까?”
이도훈을 바라보는 태운의 눈빛은 어느새 분노로 잔뜩 물들어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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