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반은 지고 반은 이김 (1)
뚜르르르 ―
뚜르르르 ―
까득! 까드득!
TV를 보던 이한천 의원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연신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뚜르르르 ―
계속 연결음만이 울리는 핸드폰.
상대방은 전화를 계속해서 받지 않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콰앙!
이한천 의원은 엎어진 책상을 발로 걷어찼다.
붉게 달아올랐다 하얘졌다를 반복하는 이한천 의원의 얼굴.
어지간히도 흥분한 듯했다.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이 개X끼가아아아!”
콰앙! 콰앙! 콰아앙! 콰아아앙!
분이 풀리질 않는지 연거푸 책상을 걷어차는 이한천 의원.
신발 속 그의 발은 어느새 벌게져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크게 흥분한 이한천 의원은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던 그때,
뚜르르르 ―
툭 ―
{예.}
마침내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이한천 의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핸드폰에 대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왜 전화를 안 받아! 지금 어디야! 지금 검찰청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 알아?!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너!”
크게 흥분한 이한천 의원.
그러나 전화를 받은 상대방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분했다.
아니, 차분하다기보단 목소리 자체가 작다고 봐야 했다.
{…죄송하지만 여기도 상황이 심각합니다.}
“…뭐?”
전화 너머 상대방의 말에 이한천 의원의 눈썹이 쌍심지처럼 치켜 올라갔다.
“그게 대체 무슨…….”
{청룡과 백호가 길을 막고 있습니다.}
“……!”
남자의 말을 들은 이한천 의원의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뚫을 수 있겠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만.}
으득 ―
상대방의 말에 이한천 의원은 이를 거세게 갈았다.
“상관없어! 다 필요 없고 기소장만 전달되지 못 하게 하면 되니까! 누구라도 길을 뚫는 즉시 특임반장을 막아야 해!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럼.}
툭 ―
상대방이 전화를 끊고,
콰아아앙!
이한천 의원의 발이 다시 한번 엎어진 책상을 발로 걷어찼다.
“김천용… 정호백…….”
손발을 부들부들 떨며 이를 악무는 이한천 의원.
스윽 ―
그리고 이한천 의원의 고개가 TV 쪽을 향했다.
“특임반자아앙……!”
TV 속 하얀 가면을 쓴 남자를 바라보는 이한천 의원의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고 있었다.
* * *
“…전화는 다 끝났냐?”
전화를 내린 도명조를 향해 누군가 비아냥거렸다.
“어지간히도 똥줄이 탈 거야. 응? 이번만큼은 법정에 들어가는 순간 곱게 끝나지는 않을 테니까. 이런 분위기에선 웬만한 판사들도 손절할 테지.”
백발의 거한, 정호백이 실실거렸다.
희번뜩!
도명조가 매서운 눈빛으로 비아냥거리는 정호백을 쏘아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 길 비켜……!”
“응 X까~”
주작길드 신사옥.
신사옥에서 밖으로 나가는 입구를 세 명의 남자가 틀어막고 있었다.
“기소장이 무사히 전달될 때까지 너희는 여기 얌전히 머물러 있어 줘야겠다.”
푸른 장발의 남자, 김천용이 1층에 모인 모든 주작길드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꿀꺽 ―
지난번 김천용이 가진 힘의 편린을 느낀 적이 있었던 주작길드원들의 표정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산하 길드들을 막은 것도 너희였나?”
“밑에 놈들을 시켜 아주 재미를 보던데 말이야. 우리가 언제까지 그 꼴을 두고 볼 거라고 생각했지? 앞으로 너희는 모두 우리 관리하에 놓인다. 대붕을 제외하고 큰까마귀길드를 비롯한 6개의 길드를 통폐합할 거야.”
“……!”
김천용의 말에 모든 주작길드원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의 말은 곧, 청룡과 백호가 주작에게 전쟁을 선포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너희들 미쳤구나? 죽고 싶어 환장했지? 우리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
주작길드의 부길드장, 이화연이 두 눈을 부릅뜨며 세 사람을 노려보았다.
“뭐래, 잡초 같은 년이.”
다소 험한 말로 정호백이 대꾸하자,
“이런 덩치만 큰 고양이 새끼가……!”
이화연은 이성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이를 빠득빠득 갈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마력을 터뜨릴 것 같은 이화연의 모습에 도명조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상황의 중재를 시도했다.
“여기서 우리가 전부 싸우기 시작하면 저번처럼 길드 1층만으로는 안 끝난다. 그래도 괜찮은 거냐?”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하지 말지?”
정호백의 옆에 서 있던 구정태가 귀를 후비며 대답했다.
누가 같은 백호길드 아니랄까 봐 건들건들한 것이 정호백의 동생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 참고로 어차피 그럴 일도 있을까 싶어서 근처 시민들 전부 대피시켰거든? 혹시나 마력이 넓게 퍼질까 봐 주작길드 바깥에도 이미 바리케이트까지 쳐놨어. 너희들이 무슨 지랄발광을 떨어도 너희 건물 말고는 아~무런 피해 없을 테니까 걱정 말라고.”
세 사람은 이미 주작길드를 포위하기 수십 분 전부터 협회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인근 시민들을 모두 일정 거리 바깥으로 대피시킨 상태였다.
덕분에,
터엉 ―
주작길드 신사옥 근처는 마치 유령 도시처럼 시민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는 상태였다.
“…대피를 시켰다고?”
구정태의 말에 이화연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럼 날뛰어도 된다는 소리네?”
“화연아, 잠깐……!”
심상치 않음을 느낀 도명조가 채 말리기도 전,
콰아아아아아 ― !
그녀의 몸에서 거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키이이잉 ―
그녀의 전신이 마력으로 강화되며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하게 변하자,
쿠우우우우 ― !
대치하고 있던 주작길드원 전원도 기세를 발산하며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주륵 ―
도명조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런 그를 보며 이화연이 외쳤다.
“오빠! 어차피 이대로면 주작은 저놈들에게 먹힐 거야. 자기들 멋대로 길을 막질 않나, 산하 길드를 관리한다고 하질 않나…. 그리고 여기서 계속 시간 끌려봐야 그것도 저놈들이 원하는 거라고! 빨리 결정을 내려!”
꿈틀.
“후우…….”
이화연의 일침에 도명조는 크게 한숨을 쉬며 긴장을 풀어냈다.
‘그래, 너무 신중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법.’
어느새 순식간에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낸 도명조가 김천용을 죽일 듯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대체 뭘 믿고 셋이서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S급이라도 겨우 셋이서 우리 주작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퍼어어어어엉 ― !
화르르르륵 ― !
도명조의 전신에서 짙은 적색의 겁화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앙 ― !
청룡과 백호, 그리고 주작이 격돌하기 시작했다.
* * *
콰아아아앙 ― !
화르르르륵 ― !
파지지지직 ― !
퍼어어어엉 ― !
“크윽!”
주작길드 신사옥 주위를 포위하고 마력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던 청룡과 백호의 D급 헌터들이 침음성을 흘려댔다.
건물 내에서 터져 나오는 마력의 파동이 너무 거셌기 때문이다.
‘충돌의 여파가 이 정도 위력이라니!’
마력이 멀리 퍼지지 않도록 두 손을 뻗은 채 마력을 통제하는 헌터들.
여파가 강할 것을 대비해 일부러 반경 50m까지 거리를 벌린 채 대기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힘이 들 지경이었다.
‘역시 S급은 차원이 다르구나…! 이대로면 바리케이트가 뚫릴 것 같은데 어쩌지?’
대피시켰다고는 하지만 지금 전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 중엔 무려 S급만 5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투를 벌이는 것이니 전력을 다할 테고, 그렇게 되면 어마어마한 거리까지 마력이 퍼져나갈 터.
아무리 시민들을 대피시켰다고는 하지만, 주변 일대만 대피시켰을 뿐 브레이크 때처럼 시 외곽까지 내보낸 것이 아니었기에 마력 바리케이트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순간이었다.
쿠아아아아앙 ― !
쨍그랑!
“커헉!”
전투 중에 튕겨나온 한 주작길드원.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 입에서 핏물을 게워내고 있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 위태로워 보였다.
파밧 ― !
바리케이트를 형성하고 있던 한 헌터가 튀어나온 주작길드원에게 달려들었다.
퍼억 ―
자가 회복을 쓰기 전에 기절시켜버리는 청룡길드 소속 헌터.
그리고,
푹 ―
냅다 품속에서 주사기를 꺼내 그에게 주사했다.
바로 수면제였다.
“바로 옮깁니다!”
그리고는 바리케이트 안쪽에 미리 대기시켜놓은 방마 트럭 컨테이너에 주작길드원을 던져넣었다.
쾅! 쾅!
퍼억 ― 퍼억 ―
전투를 벌이던 주작길드원들이 피투성이로 튀어나올 때마다 바리케이트를 형성하고 있던 청룡과 백호길드원들이 달려들어 기절시키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미리 말을 맞춘 작전이긴 했지만,
콰아아아아앙 ― !
“크윽!”
튀어나온 주작길드원들을 처리하느라 생겨버린 인력 공백으로, 바리케이트를 지키는 이들에게는 한층 더 부담이 가해지고 있었다.
“빠, 빨리 돌아와! 다 커버하는 건 무리라고!”
쾅! 쾅! 쾅!
하지만 연신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주작길드원들.
그들의 전선 복귀 혹은 신사옥 이탈을 막기 위해선 그들을 곧바로 기절시켜야 했기에,
파앗 ― !
바리케이트에는 계속해서 공백이 이어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강한 마력의 여파를 막아내느라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던 헌터들의 전신에서 땀이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휘청.
몇몇 헌터들은 휘청이기까지 할 정도.
그렇게 체력 부담으로 인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바리케이트가 휘청이는 그때,
“지원왔습니다!”
“……!”
그들을 도와줄 지원 인력이 도착했다.
“델타조! 마력 바리케이트를 보강한다!”
““예!””
바로 협회의 델타조였다.
* * *
다시 신사옥 내부.
전투는 세 파트로 나뉘어 있었다.
김천용 VS 도명조.
정호백 VS 이화연.
그리고 구정태 VS 나머지.
화르르르륵 ― !
퍼어어어엉 ― !
도명조의 겁화가 계속해서 푸른 청룡을 뒤덮으려 하고,
휘오오오오 ― !
파지지직 ― !
김천용의 돌풍이 겁화를 걷어내며 그 사이를 파고든 백뢰가 연신 도명조의 급소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화르르륵 ― !
파지지직 ― !
공격 하나하나가 고위 헌터마저 절명케 하기에 충분한 위력.
상대를 맞추지 못하고 사방으로 퍼져나간 불과 번개는 그 일부만으로도 다른 길드원들의 목숨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크악!”
화르륵 ― !
길드원 중 하나가 김천용의 돌풍에 밀려난 화염에 휩싸였다.
“…하, 길드원들의 안위는 생각도 안 하는 건가?”
길드원의 비명소리를 듣고도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자신을 노려보는 도명조의 모습에 김천용이 경멸 어린 비웃음을 흘렸다.
“그딴 개소리로 도발할 생각이라면 포기하는 게 좋아.”
도명조의 두 눈이 새빨갛게 빛났다.
“게다가 그건 네 놈이 할 말은 아니지. 길드원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는 건 네 놈도 마찬가지잖아?”
“…무슨 의미지?”
의미심장한 도명조의 말에 김천용의 거대한 눈썹이 꿈틀거렸다.
“킥킥, 민호성 말이다. 최근 연락이 안 되지 않아?”
“……!”
김천용의 안면 근육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너… 호성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우르르릉 ―
파지지직!
거대한 운무가 모여듦과 동시에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하는 김천용의 전신.
김천용의 비장의 수 중 하나이자 과거 태운의 뇌신화를 따라잡았던 뇌룡화가 시전되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본래 능력을 발현하는 순간 거대한 몸집으로 인해 육탄전보다는 원거리 학살을 주로 했었던 김천용이지만, 뇌룡화를 한순간만큼은 청룡의 거대한 몸은 그 자체로 무기가 되었다.
압도적인 스피드는 곧 압도적인 강함과 마찬가지.
상상해보라.
제트기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며 정어리처럼 빠른 방향 전환이 가능한 거대하고 튼튼한 괴물이 당신의 상대이다.
심지어 총이나 대포로 쏘거나 건물에 부딪혀도 잘 다치지도 않는 튼튼한 괴물이 말이다.
상상만 해도 아득하고 막막해지는 장면.
그러나 정작 그 상상을 현실로 마주한 도명조의 기세는,
“그러게 왜 감시를 붙였어? 주제를 알아야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의 몸에선,
“……!”
화르르르륵 ― !
짙은 적색을 넘어 검붉어진 지옥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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