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반은 지고 반은 이김 (3)
“쿨럭! 크웨에엑!”
책이나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신수이자 동방의 수호신인 청룡.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가장 큰 힘이었던 그 청룡이,
콰아아아앙!
“커헉!”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어, 어이 김천용 장난하지 말라고…….”
가까스로 이화연을 제압하고 잠시 숨을 돌리던 정호백은 김천용의 모습을 보고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관학교 시절부터 동고동락했던 녀석이다.
사람들은 김천용과 자신을 쌍으로 묶어서 함께 칭찬해주었지만, 사실 그는 알고 있었다.
김천용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라는 걸.
무력이면 무력, 지력이면 지력.
자신이 김천용보다 뛰어난 것이라고는 오로지 커다란 몸집 하나뿐.
잠시나마 그를 질투해본 적도 있긴 했지만, 그것도 한때였다.
정호백에게 마음속 깊이 인정한 사람이라고는 김천용이 유일했기에,
콰아아아아앙!
자신의 라이벌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던 김천용이 당하는 모습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쿠오오오오오 ―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일으킨 청룡의 몸이 다시 한번 새하얀 번개로 뒤덮였다.
파지지지직!
그러나,
화르르륵! 치이이이이 ― !
양팔에 검붉은 화염을 두른 도명조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이제 기소를 막기에는 너무 늦은 듯하군. 이렇게 된 거 서열이나 확실히 해보자 김천용.”
“너…!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딱히 숨긴 적은 없는데? 막말로 우리가 제대로 붙어본 적은 있었냐? 그동안 대한민국 최강이라고 사람들이 떠받들어 주니까 좋았지?”
피빗 ― !
샤샥 ― !
콰과과과과과광!
말을 마침과 동시에 사라진 두 존재가 허공 어디선가 연거푸 충돌하기 시작했다.
번쩍! 번쩍!
두 존재가 부딪힐 때마다 터져 나오는 하얗고도 검붉은 빛.
핏 ― !
순간 두 사람의 충돌로 인해 튄 하얀 번개 하나가 정호백의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콰직! 치지직……!
바닥에 시커먼 상처를 남긴 채 사라지는 백뢰.
볼에 난 상처도 인식하지 못한 채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는 정호백의 동공은 연신 잘게 떨리고 있었다.
‘…도명조가 저렇게 강했다고?’
기껏해야 자신보다 조금 더 강했던 정도가 아니었단 말인가?
강함은 둘째치더라도 저 기분 나쁜 검붉은 화염의 정체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슈슉 ― !
두 사람이 부딪히며 물러나는 과정에서 잠시 드러난 도명조의 얼굴이 정호백의 두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양팔뿐만이 아니라 두 눈마저도 검붉은 화염에 휩싸인 도명조의 모습.
거기다 그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화염의 형태에 정호백은 순간 어떤 상상 속 존재를 떠올렸다.
‘…악마?’
* * *
악마, 그래 악마였다.
검붉은 화염을 다루는 악마.
두 팔과 두 눈, 그리고 등 뒤에 나타난 날개 형상의 검붉은 화염은 불을 다루는 악마를 연상케 하고 있었다.
‘고유 능력이 단순한 불이 아니었단 말인가?’
콰아아아아아앙!
치이이이이 ― !
“크으윽!”
수 초 뒤, 커다란 굉음과 함께 한쪽으로 나가떨어지는 김천용.
새하얀 번개로 덮여 있던 그의 몸뚱이는 어느새 시뻘겋게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화르르르륵 ― !
어느새 선명한 검붉은 날개를 형성한 도명조가 천천히 쓰러진 김천용의 앞에 내려앉았다.
“크윽!”
푸확!
자가 회복을 하며 재빠르게 도명조에게 물대포를 쏟아 부어보는 김천용.
그러나,
치이이이이이이익 ― !
어마어마한 수증기만을 일으켰을 뿐, 그의 물대포는 도명조의 털끝에도 닿을 수조차 없었다.
“흐읍!”
재차 능력을 전개하는 김천용.
이번엔 공기였다.
“……!”
휘청.
순간적으로 사라진 산소로 인해 도명조의 신형이 살짝 비틀거렸다.
하지만,
화르르륵 ― !
그의 몸에서 타오르고 있는 검붉은 화염의 기세는 여전했다.
산소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활활 잘만 타오르는 검붉은 화염.
“…미안한데 그 수법 나한텐 안 통해. 이건 그냥 불이 아니거든.”
콰직!
그 괴이한 검붉은 화염을 두른 도명조의 발이 바닥에 내려앉은 청룡의 복부를 짓밟았다.
치이이이이 ― !
가공할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른 그의 발에 짓밟히자 조금씩 짓뭉개져 가는 청룡의 비늘.
“끄아아아아아악!”
뜨겁게 달군 인두로 고문을 당하는 것마냥 청룡의 입에서 거대한 비명 같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우우우우웅 ― !
쩌적! 쨍그랑! 쨍그랑!
그 막대한 음파에 주작길드의 창문들이 모조리 깨져버렸다.
슈우우우우 ―
한편 고통으로 인해 김천용의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다시 돌아오는 산소.
“후우…….”
도명조는 돌아온 산소를 깊게 들이쉬었다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치이이이이 ― !
여전히 청룡의 비늘을 지지고 있는 도명조의 발.
다만, 김천용도 있는 힘껏 자가 회복을 전개했는지 더 이상 도명조의 발은 비늘을 파고들지 못하고 있었다.
씨익 ―
순간, 그 사실을 알아챈 도명조의 입가에 기분 나쁜 미소가 피어올랐다.
“뭐, 좋아. 이대로 네놈을 S급에서 강등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러면 꽤나 한동안 못 까불지 않겠어?”
“……!”
도명조의 말을 들은 정호백의 두 눈썹이 쌍심지처럼 치켜 올라갔다.
“그렇게 내버려 둘 것 같으냐!”
슈욱 ― !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백호가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후웅!
기세가 무색하게도 허무하게 빗나가는 그의 공격.
하지만 그래도 김천용에게서 도명조의 발을 떼어놓는 것은 성공했다.
“허억… 허억… 괜찮냐?”
상처는 이미 다 회복했지만, 피로가 상당히 누적된 듯한 정호백이 숨을 몰아쉬며 김천용을 곁눈질로 힐끔거렸다.
그그그그 ―
전신에 작은 미동을 일으키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청룡.
언제나 당당한 자세로 만물을 지배할 듯이 내려다보던 그의 금빛 용안은 크게 당황했는지 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정신 차려!”
“…정호백.”
흠칫!
심상치 않은 그의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본 정호백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청룡의 커다란 두 눈엔 어느새 습기가 차 있었으니까.
“무, 무슨 일이야? 설마 아파서 우는 거냐?”
“호, 호성이가… 호성이가 당한 것 같아.”
김천용의 입을 통해 들은 갑작스런 소식에,
“……!”
정호백의 동공도 크게 지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 * *
청룡의 부길드장이자 두 번째 S급 헌터, 민호성.
분명 최근 도명조의 감시를 맡았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녀석이……?’
―어? 호백이 형 오셨네요?
―오늘도 뺀질거리고 있냐?
―…아니, 형은 오랜만에 보자마자 동생한테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요?
―아니란 말은 안 하네?
―무슨 소리세요. 저 운동 중이라고요.
―무슨 운동?
―숨쉬기 운동이요.
―…갑자기 정태가 너무 고맙네.
―…형 방금 되게 실례되는 말한 거 아시죠?
항상 뺀질거리고 게으르다는 커다란 단점이 있었지만, 그런 단점을 모조리 커버하는 순박하고 서글서글한 성격을 지닌 녀석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딱딱한 김천용과는 정반대인 성격이라 청룡길드의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했던 민호성.
가끔 청룡길드에서 만나면 모두가 대하기 꺼려 하는 정호백에게도 먼저 웃으며 장난까지도 치던 착한 동생이었다.
그랬던 그가,
‘…당했다고?’
도명조에게 당했다고 한다.
홱 ― !
고개를 돌려 도명조를 바라본 정호백의 두 눈이 금방이라도 하얗게 뒤집어질 듯이 요동쳤다.
“누가 감시하래?”
도명조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 미친 새끼가!”
커허어어어엉 ― !
순식간에 백호로 변신한 정호백이 바람처럼 도명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고 보니 너 우리 화연이 목 깨물었지?”
화륵!
정면에서 달려드는 백호를 바라보며 도명조가 오른쪽 주먹에 검붉은 화염을 집중시켰다.
“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
정호백의 거대한 아가리가 도명조의 코앞에 도달했을 즈음,
후욱 ―
[흑염권(黑炎拳)]
검붉은 화염을 가득 담은 도명조의 주먹이 앞으로 뻗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
거대한 지옥염이 그의 전방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정호백!”
콰아아아아아아아 ― !
정호백과 같은 선상에 있던 김천용은 재빨리 있는 대로 마력을 끌어모아 거대한 물대포를 쏘아냈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익 ― !
어마무시한 양의 수증기가 순식간에 퍼져나가며 주작길드 건물 전체를 가득 채웠다.
“뭐, 뭐야?”
마지막 주작길드원을 지금 막 마무리한 구정태는 갑작스레 터져 나온 어마어마한 수증기에 두 눈을 마력으로 강화한 채 주변을 살폈다.
그때,
콰아아앙!
뿌연 수증기 속에서 낯이 익은 두 사람이 건물 한쪽 구석에 날아가 처박혔다.
“쿨럭!”
“쿠웨에에엑!”
속에서 피를 게워내는 두 남자.
슈욱!
구정태가 재빨리 다가가 확인해보니,
“아, 아니 형님! 이게 어떻게 된… 헉! 청룡길드장?”
정호백과 김천용이 초라하게 벽면에 등을 기댄 채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마력마저 거의 다 사용했는지 변신까지 풀린 채로.
그리고,
저벅저벅 ―
“……!”
뿌연 수증기 너머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한 남자.
화악 ― !
화륵! 화르륵! 치이이익!
검붉은 지옥염을 두른 도명조가 수증기마저 태워버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도명조……!”
상대가 도명조임을 확인한 구정태가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구정태? 후우… 한 놈 쓰러뜨리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아주 바퀴벌레가 따로 없군.”
머리를 쓸어올리며 한숨을 내쉬는 도명조.
단번에 구정태마저 쓸어버리려던 그때,
화륵! 덜덜덜…….
지옥염을 두른 도명조의 전신이 미약한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
그 미세한 변화를 눈치챈 구정태가 마력을 뿜어내며 기세를 일으켰다.
“하긴 이 둘을 상대했는데 너라고 몸이 성치는 않겠지. 그 몸 상태로 나까지 상대할 수 있을까?”
화아아악 ― !
일반형 능력으로 S급에 올라선 구정태의 기세가 삽시간에 뿌연 수증기를 모조리 몰아냈다.
“…….”
그런 구정태를 가만히 바라보는 도명조.
그러더니,
피식 ―
갑자기 비웃음을 흘렸다.
“…뭐, 좋아. 여기까지 하지. 이번엔 너희들의 승리다. 결국 기소장은 정상적으로 제출되었을 테니까.”
빙글 ―
몸을 돌려 이화연이 쓰러진 곳으로 향하는 도명조.
스윽 ―
도명조는 기절해있는 그녀를 들어 품에 안으며 김천용과 정호백의 상태를 살피는 구정태를 향해 넌지시 한마디를 던졌다.
“오늘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비밀로 했으면 좋겠군. 난리야 이미 잔뜩 났으니… 그래, 서든 브레이크가 터졌다고 하면 되겠네. 어차피 사람들 대피시킬 때 대충 그렇게 둘러댔을 거 아닌가?”
그러자 구정태는 품에 있던 손수건으로 두 사람의 피를 닦아주다 눈을 부릅뜨며 도명조를 노려보았다.
“개소리하지 마라…! 누구 좋으라고?”
“서로에게 좋을걸?”
“…뭐?”
도명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희도 광고하고 싶진 않을 거 아니야? 청룡과 백호의 두 수장이 나 한 사람한테 개처럼 처발렸다는 사실을 말이야.”
“……!”
휙 ―
놀란 구정태가 순간적으로 주저앉아있는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
두 사람은 말없이 이를 갈고만 있었다.
자신들의 패배로 인해 주작길드의 어두운 면을 알릴 수 없게 되었으니까.
그냥 손해를 감수하고 알리자니, 그렇게 되면 청룡길드와 백호길드의 위상마저 바닥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강함을 가장 큰 미덕으로 삼는 헌터 사회였기에 주작길드는 잠깐 내려앉을 뿐, 김천용과 정호백을 단신으로 이긴 도명조의 위상을 힘입어 가장 높이 날아오르는 장면이 눈앞에 선명했다.
“뭐, 결정은 그 두 사람이 하겠지만 말이야.”
도명조는 다시 몸을 돌려 이화연을 품에 안은 채 걸음을 옮겼다.
“오늘 즐거웠다. 특히 김천용. 앞으로는 좀 나대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저벅저벅 ―
1층의 싸움으로 인해 망가진 엘리베이터를 대신해 비상계단 너머로 사라지는 도명조.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김천용은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합니다. 특임반장…….’
반쪽짜리 승리를 거둔 청룡과 백호가 고개를 떨구었다.
* * *
한편, 그 시각 법원.
촤좌좌좌좍 ― !
연신 터지는 플래쉬 세례 속에서,
스윽 ―
임인범 헌터에 대한 기소장이 정식으로 제출되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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