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발버둥 치지만 소용없음 (2)
기어코 일이 터지고 말았다.
{갑자기 수십 명의 괴한이……!}
우루루루루 ―
갑작스레 들이닥친 수십 명의 괴한.
놀랍게도 한 명 한 명이 기성에게 필적할 정도로 강했기에, 임인범을 지키고 있던 기성과 감마조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어어억… 어어억……!
순식간에 가벽과 유치장 창살을 뚫고 들어가 임인범의 코를 막고 입과 기도에 두꺼운 종이 뭉치를 쑤셔 넣는 괴한들.
임인범은 제마액을 먹었던 상태였기에 이렇다 할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너희 대체 누구야……!
괴한 모두가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기에 기성을 비롯한 감마조원들은 괴한들의 정체를 특정할 수 없었다.
복면이라도 벗겨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콰아앙!
―크헉!
그들은 오로지 신체 강화만을 사용해 고유 능력도 드러내지 않은 괴한들조차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들 중 가장 강한 기성마저 홀로 괴한 4명을 상대하다 제압당했으니,
우루루루루 ―
순식간에 들이닥쳤다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괴한들을 쫓을 수도 없었던 협회 직원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5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사이에,
―이… 제기라아아아알!!!
임인범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 * *
[속보, 협회에 의해 공식 기소된 피고 임인범 사망… 사인은 질식사.]
[유치장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임인범 헌터, 형사 재판 전격 중단.]
[타살? 자살? 임인범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들]
[타살을 주장하는 철인… 하지만 CCTV 오작동으로 인한 증거 부재.]
“기어코 일을 저질렀군.”
“…저렇게 할 정도로 어떻게든 현재의 자리를 유지하고 싶다는 거네.”
협회 본부 10층.
협회장실에서 쏟아져나오는 속보를 확인한 동석과 현주가 각자 입술을 깨물었다.
“…….”
“…자네, 괜찮은가?”
동석은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태운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항상 그 누구보다도 노력했고 이번 결과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기대하고 있던 태운이었기에 실망이 크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된 것이다.
하지만,
“…뭐 사실 조금 늦었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빨리 예상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는데… 아쉽네요.”
태운은 생각보다 그리 풀이 죽어있지 않았다.
“…정말 괜찮은 거야? 사형까지도 내려질 수 있는 사건이었어. 굉장한 선례를 만들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현주가 더욱 아쉽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태운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 협회 직원들은 모두 상당한 기대를 품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태운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오히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선례까지 만들었다면 베스트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당했다고 하기엔 결과가 상당히 괜찮은걸요?”
실제로 목표한 바를 대부분 이룬 건 사실이었다.
첫 번째, 헌터 범죄에 대한 수사권 등 모든 권한을 협회로 도로 가져와 ‘헌터 경찰’로서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수사나 기소에 있어서 경찰의 협조를 구하지 않고 곧바로 검찰과 일을 도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검찰 내에도 협회의 든든한 아군이 생겼으니 적어도 헌터 범죄에 관해서는 경찰이나 정계를 신경 쓸 일이 훨씬 적어지게 되었다.
두 번째, 결과야 어찌 되었든 죽어 마땅한 임인범이 죽었다. 그것도 자살이 아닌 타인에 의해.
죗값에 비하면 죽음조차 사치겠지만, 적어도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며 꾸역꾸역 살려둔 채 국민의 세금과 지구의 자원을 소비하기보다는 하루빨리 거름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결과일 것이라는 게 태운의 생각이었다.
물론 법에 의해 공식적으로 사형을 당했다면 조금 더 상징성과 선례 등 얻는 것이 많았겠지만, 애초에 사형을 구형할 예정이었던 태운과 검찰이었기에 임인범이 죽었다는 결과 자체는 크게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사형을 구형하더라도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으로 감형될 가능성도 0이 아니었던 터라 임인범의 타살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라고 봐도 괜찮을 정도였다.
세 번째, 대중들의 민심을 완전히 협회 쪽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기소장을 제출하러 가는 검사를 막은 길드 헌터들, 그리고 그런 검사를 지켰던 태운을 비롯한 협회 직원들.
누가 봐도 악역은 길드 헌터 쪽이었으니까.
무려 100여 명의 여인들을 겁탈한 범인을 옹호하는 쪽이 좋게 보일 리가 있겠는가?
정계는 그놈의 ‘선례’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스스로 목을 죄이는 결단을 내리고 만 것이었다.
그 덕에 협회는 단단한 콘크리트 같던 헌터들의 완벽한 이미지를 완전히 부수는 것을 넘어, 헌터 협회가 정의 쪽에 더 가깝다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고 말이다.
앞으로 길드 헌터와 어떤 충돌이 일어나더라도 대중들은 우선 협회를 두둔하고 길드 헌터들을 좋지 않게 보게 될 것이었으니, 그 누구보다 든든한 아군을 얻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최상의 결과인 10중에 겨우 1이나 2를 달성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너무 그렇게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알짜배기는 전부 이루어냈는걸요.”
대중들에게 ‘헌터 범죄에 관한 특별법’의 필요성을 인지시킬 수 있었다.
틱틱 ―
태운은 휴대폰으로 몇몇 기사를 찾아 두 사람의 핸드폰으로 보내주었다.
[의인당 ‘헌터 범죄에 관한 특별법’ 발의, 정말 만들어지나?]
[상임위 통과 가능성 거의 없다… 모 대학 로스쿨 교수, “헌터에 대해서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자 인권 탄압일 수 있어.”]
[헌터 범죄 피해자 연합, 통칭 ‘헌피연’ 공식 성명문 발표, “큰 힘을 가진 자에게는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바… 특임반과 의인당의 행보를 적극 지지한다.”]
“특별법 발의? 벌써? 대체 언제……?”
현주는 크게 놀랐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운을 쳐다보았다.
“서민우 의원님과 만난 순간부터 준비했지요. 한 대 맞고 선례를 뺏겼으니 저희도 한 대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래 잽 한 대 맞았으면 그 이상의 훅으로 돌려줘야 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이 법안이 통과될 리가 없어. 의인당은 신생 정당이고 이미 국회 의석은 거의 여당과 제1 야당이 전부 차지하고 있으니까.”
현주의 말에 태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발의를 성공한 것부터가 기적이니까요. 소수당 의원들을 포섭해서 서명 좀 받느라 서 의원께서 고생 좀 하셨죠. 하지만 통과가 되든 되지 못하든 우리는 잃을 게 없습니다.”
“……?”
태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동석과 현주는 서로를 마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설명해줄 수 있겠나? 나이 때문인지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는군.”
“간단합니다. 통과되면 그야말로 베스트이지만, 통과가 되지 못해도 기득권 인사들의 목에 칼을 들이밀 수가 있으니까요. 완벽했던 이미지였던 만큼 이미 대중들은 헌터에게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외면당했던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주목을 받고 있지요. 이미 대한민국의 헌터계는 커다란 물살을 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태운은 조금 답답했는지 가면을 벗어 살짝 내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 어느 때보다도 특별법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이 시점에 상임위에서 특별히 정당한 이유도 없이 특별법을 거부한다?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겠지요. 이제 지지층 자체가 한없이 약해져 버린 정계 인사들입니다. 그럼 그들과 손을 잡았던 길드들은 모두 그들과 손절할 테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들을 거리낌 없이 공략할 수 있습니다. 고지훈 검사가 모아놓은 자료들을 보니 대부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겠더군요.”
“고지훈 검사는 평검사가 아니신가? 만약 윗선에서 막으면…….”
“아직 고 검사님의 동기분들조차 모르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현 검찰총장님이 고지훈 검사님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워낙 방관주의시라 그동안 아들을 특별히 보호해주시지도 않았지만, 그 반대로 생각해본다면 적어도 그만큼 방해하지도 않으실 겁니다.”
태운의 말에 동석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 부자 검사라… 대단하구만. 그럼 그 국회의원들을 모두 처벌하게 되면…….”
“예, 헌터 사회가 되기 전인 2040년대에 국회의원들의 특권이 상당수 폐지되면서 회기 중에도 범죄를 저지르거나 발각되면 현행범이 아니더라도 처벌과 함께 의원직을 박탈시킬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굳이 다음 국회의원 선거까지 기다리지 않더라도 보궐 선거를 통해 우리 편을 빠르게 늘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특별법은 통과될 수밖에 없습니다.”
태운이 두 눈빛을 반짝였다.
과거 제1야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 국민 정서를 이용해 폐지시켰던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
한 차례 정권을 잡은 뒤, 다시 그 특권을 부활시키려 했지만,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특권을 부활시키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었다.
“옛말에 선승구전이라 했지요. 즉, 우리는 이미 이기고 들어가는 싸움만을 남겨놓고 있다는 겁니다.”
태운은 한없이 깊으면서도 조금은 설레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 * *
태운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서민우 의원을 필두로 낸 ‘헌터 범죄에 관한 특별법’이 상임위에서 결국 통과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불발되자 태운의 예상대로 민심은 들끓다 못해 폭발하기 시작했다.
ㄴ 헌터 범죄 피해자가 한두 명도 아니고 수만 명인데 이걸 깐다고?
ㄴ 개소름 돋는다… 피해자가 이렇게 많은데 그동안 왜 안 알려진 거임?
ㄴ 언론이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찌라시가 참말이었누…….
ㄴ 내 귀에 도청 장치가 있다! 내 귀에 도청 장치가 있다! 내 귀에 도청 장치가 있다! 내 귀에 도청 장치가 있다! 내 귀에 도청 장치가 있다! 내 귀에 도청 장치가 있다!
ㄴ 미쳤다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이게 나라냐?
ㄴ 정치인들 싹 다 전수조사 해야 한다. 이 새끼들 분명히 헌터들이랑 결탁해서 뭔가 얻어먹고 있는 거임.
ㄴ 헌터들 목에 목줄 걸리면 자기들도 피해 보니까 까는 거임 백퍼.
ㄴ 대통령 탄핵해라 ㅅㅂ 국민 수만 명이 죽어 나갔는데 방관한 거잖아.
ㄴ 김정원 탄핵해라! 김정원 탄핵해라! 김정원 탄핵해라! 김정원 탄핵해라! 김정원 탄핵해라!
ㄴ 이름부터 마음에 안 들었음. 북한 수괴랑 이름 비슷하잖아.
ㄴ 이름 가지고 억까는 좀 ㅋㅋㅋㅋㅋㅋ
결국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 상황.
생각보다 여론의 반응이 더욱 심상치 않자, 여당의원들의 발등에는 그야말로 불이 떨어졌다.
헌터와 관련된 기득권 인사들이 긴급히 비밀리에 회동하여 한 자리에 모였다.
대부분이 여당과 제1야당 의원들이 참석한 긴급 회동 자리.
그리고 놀랍게도 그 자리에는,
“이 일을 대체 어떻게 할 겁니까! 내가 이 의원만 믿고 있었건만!”
대한민국의 대통령, 김정원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정원 대통령의 큰 소리에 이한천 의원이 고개를 자라처럼 움츠렸다.
“그게… 주작길드장이…….”
“변명하지 마시고!”
흠칫!
이한천 의원의 목이 거의 달팽이처럼 어깨를 파고들었다.
그러자 제1야당 최고 권력자인 박기성이 중재하고자 나섰다.
“너무 이 의원님께만 그러지 마시지요. 주작길드 측에서 늑장을 부린 탓이 큰 것도 사실이니…….”
하지만 김정원 대통령의 분노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시끄럽습니다! 주작길드가 늑장을 부렸다면 다른 방법이라도 강구해볼 생각을 했어야지, 그렇게 손 놓고 있는 게 말이 됩니까? 길드가 주작만 있는 것도 아니고!”
씨익 ― 씨익 ―
얼굴이 새빨개진 김정원 대통령.
회동 자리에 모인 기득권 인사들은 혹시나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모두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자신들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손 놓고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너무 오랫동안 평안하고 안정적으로 권력을 누려왔던 것의 폐해였다.
모두가 고개를 살짝 숙인 가운데,
스윽 ―
여당에서 대통령 다음가는 권력자, 강동국이 홀로 고개를 들고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경각심을 가지는 게 좋을 겁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위기인 상황이 되었어요. 어느새 협회가 손을 제대로 쓸 수조차 없게 커져 버렸으니까…. 최후의 상황엔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지 다들 아실 겁니다.”
강동국 의원의 말에 회동 자리에 모인, 특히 야당 의원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꼬리 자르기……!’
‘이 개X끼들이 우릴 버리겠다는 건가? 자기들만 살고?’
그런 야당 의원들의 표정에 담긴 감정을 뻔히 알면서도 강동국 의원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들에게 경고했다.
“그러니 살고 싶으면 지금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시란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강동국 의원의 서슬퍼런 눈빛이 야당 의원들의 면면을 차갑게 찌르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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