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달토끼가 조금 강함 (1)
철썩!
어두웠다.
던전 안은 어두컴컴했다.
마치 암실에 들어온 것마냥 새까만 던전 내부.
아무리 강한 태운이더라도 이런 류의 던전은 처음 접해보는 것이었기에 조금이지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아.”
태운의 두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조금씩 던전 내부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잉 ―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철썩!
연이어 들려오는 커다란 물소리.
태운은 지금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어느 해변에 서 있었다.
스윽 ―
위를 올려다보니 휘황찬란한 보름달 하나가 떡 하니 떠 있었다.
지구에서 보았던 그 어느 달보다도 더 크고 밝았지만,
사아아아아 ―
던전 전체를 덮은 어둠을 몰아내기엔 조금 역부족인 듯했다.
그래도 그나마 그 달빛 덕분에 태운의 눈은 금방 새까만 어둠 속에서도 시야를 회복할 수 있었다.
사박 ― 사박 ―
태운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자글자글한 모래사장을 걷기 시작했다.
철썩!
사박 ― 사박 ―
파도가 닿지 않은 모래사장의 윗부분의 모래를 밟을 때마다 사박사박 기분 좋은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해안선을 따라 한참을 걷던 태운은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왜 아무것도 없어?’
분명 측정 불능으로 판명될 만큼 어마어마한 마력 수치를 자랑하는 던전이었다.
하물며 F급 던전도 들어서면 거의 곧바로 몬스터를 마주하는 마당에, 이 던전은 한참을 깊게 들어가 봐도 몬스터 한 마리조차 없었으니 크게 당황할 만도 했다.
휘이이이잉 ―
스윽 ―
문득 불어온 바닷바람에 조금 추위를 느낀 태운이 왼쪽을 바라보았다.
철썩!
어둠이 내려앉아 까맣게 변해버린 바다가 연신 태운의 옆에서 모래사장을 적시고 있었다.
‘…응?’
잠시 검은 바다를 바라보던 태운은 뭔가 느껴진 위화감에 이번엔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해안선을 따라 걷는 태운을 기준으로 왼쪽은 파도가 치는 바다였다.
그리고 오른쪽은,
“……!”
역시 바다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파도가 치고 있지 않았다.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 거대한 바다.
하지만 분명 얼음은 아니었다.
‘뭐야, 이 던전…….’
길게 이어진 모래사장 주위를 온통 새까만 바다가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모래사장마저 앞으로 쭉 이어진 일자 형태.
뒤쪽은 게이트였으니 사실상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는 외길 형태의 던전이었다.
오싹!
문득 느껴지는 오한에 태운은 마른침을 삼키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던전이 어떤 형태든, 몬스터와 만나지 못하든 간에 일단 최소한 1차적인 조사는 마쳐야 했으니까.
사박 ― 사박 ―
그렇게 한참을 또 걸어가다 보니,
“음?”
길게 이어진 모래사장 저쪽 끝에 무언가 있었다.
기잉 ―
눈을 강화하여 뭔지 모를 형태를 확인하는 태운.
마력으로 대폭 강화된 시력이 어둠 속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무언가의 형태를 정확히 파악해냈다.
“…여자?”
그리고 태운이 그 형태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
파도가 치던 왼쪽 바다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 * *
거대했다.
그냥 거대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쿠우우우우 ―
별안간 솟아오른 무언가가 거대한 몸뚱이만큼이나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며 태운을 노리고 있었다.
솨아아아아 ―
몸집이 어찌나 큰지 놈이 솟아오르며 같이 올라갔던 바닷물이 아직까지도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캬아아아아아아!”
대기를 찢어발기는 울음소리가 일대를 뒤흔들었다.
드드드드드 ―
울음소리만으로 모래사장 전체를 떨리게 만드는 놈의 위용에 태운의 눈빛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대왕 아나콘다는 비교도 안 되겠네, 이거.”
태운은 목을 거의 뒤로 꺾다시피 하며 높게 솟아오른 몬스터를 올려다보았다.
뱀처럼 길다란 형태에 온통 검은 비늘로 뒤덮인 몸뚱이.
그리고 뱀답지 않게 잔뜩 돋아난 아가리 속 날카로운 이빨들과 입가에 난 수염까지.
그야말로 전설 속에 나오는 이무기의 모습과 똑 닮아있었다.
슬쩍 ―
태운은 갑자기 나타난 검은 이무기를 올려다보다 잠시 옆쪽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확인한 형태의 정체인 여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미동조차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일단은 이놈부터 처리해볼까.’
치지직!
“자 그럼… 전투력 측정 시간이다.”
오랜만에 태운의 전신에서 푸른 번개가 튀어 올랐다.
[청뢰침(靑雷針)]
피잇!
푸른 번개로 만들어진 작은 침이 빌딩보다도 더 큰 거대한 이무기에게로 쏘아졌다.
틱 ―
그야말로 사람 몸에 먼지 하나가 붙은 수준으로 크기 차이가 났지만,
치지직!
역시나 청뢰는 크기 따위가 무슨 상관이냐는 듯 곧바로 일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잠식 범위를 넓히기 시작하는 청뢰.
그러나,
푸쉬이이익 ― !
이무기가 폭풍 같은 콧바람을 내뿜는 동시에,
티이잉!
이무기의 몸에 퍼지던 청뢰가 허공으로 튕겨져 흩어졌다.
‘…지금 저놈, 코웃음 친 거지……?’
빠직.
졸지에 이무기에게 무시를 당한 태운의 이마에 핏줄 하나가 솟아올랐다.
“그래… S급은 가뿐히 되는 것 같네. 청뢰를 코웃음 치며 튕겨낸다라…….”
꾸드득 ―
태운의 두 주먹이 절로 말려들어 갔다.
하지만,
슈악 ― !
이무기는 태운의 다음 공격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앙 ― !
순식간에 바닷속에서 튀어나온 이무기의 꼬리가 태운이 서 있던 모래사장을 덮쳤다.
푸확 ― !
모래사장의 모래가 높이 치솟으며 작은 섬을 이루고 있던 모래사장의 일부가 날아가 버렸다.
타닷!
“휘유~ 대단한데?”
어느새 중력을 조절해 바다 위를 달리고 있던 태운이 한순간에 지워져 버린 모래사장을 돌아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파앙!
수면 위를 박차고 뛰어오른 태운의 신형이 순식간에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은 거대한 이무기의 머리까지 치솟았다.
“……!”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태운의 모습에 이무기의 동공이 막 흔들리려는 찰나,
“그럼 이제 내 차례지?”
키이이이잉 ― !
태운의 전신에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뇌신화(雷身化) ― 청뢰 ver]
[중력투법(重力鬪法)]
치지직!
핏 ― !
태운의 주먹이 섬전처럼 뻗어졌다.
당황한 이무기의 눈동자가 단 한 차례 흔들리기도 전에,
툭 ―
태운의 주먹이 이무기의 코에 닿았다.
“잘 가라.”
치직!
[뇌신권(雷神拳)]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천지를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굉음이 바다 전체로 울려 퍼졌다.
드드드드드드드드!
이무기의 포효로 인한 떨림보다 몇 배는 더 심한 떨림이 온 모래사장을 집어삼켰다.
최속의 속도로 최중의 공격을 날리는 태운의 합성 신기술, 뇌신권.
그야말로 신의 공격이라고 칭할만한 위력이었다.
후두두두둑 ―
풍덩! 풍덩!
한낱 고기 육편 조각이 되어버린 이무기의 커다란 머리가 몸통 밑으로 떨어져 바닷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쿠우우우우 ―
이윽고 뒤따라 바닷속으로 쓰러지는 거대한 이무기의 몸통.
퍼어어어어엉 ― !
거대한 이무기의 몸통이 바다 위로 쓰러지자, 바다는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커다란 해일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아 ― !
거대하게 일어난 해일이 모래사장을 덮쳤다.
순식간에 모래사장 전체가 거의 사라져버렸다.
단순히 쓰러지는 것만으로도 수백 마리의 A급 웨어울프를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해일을 일으키는 이무기의 위용에 태운은 공중에 떠오른 채로 입을 살짝 벌렸다.
“…두세 마리만 있어도 잘하면 그 괴물 늑대랑 비벼볼 수도 있었겠는데?”
그러다,
“아!”
문득 생각난 여자의 존재에 얼른 그녀가 있던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그 순간,
훅 ― !
어느새 태운의 코앞에는 날카로운 은색 화살 하나가 도달해있었다.
* * *
“……!”
휘리릭!
태운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그의 몸이 뒤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쐐애애애액!
태운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화살.
아직 뇌신화를 유지하는 중이었기에 다행히 태운의 반응은 번개처럼 빨랐다.
태운의 시선이 재빨리 화살이 날아온 곳을 향했다.
“…….”
바닷물이 뒤덮어버린 모래사장 위에 서 있는 한 여인.
그녀는 활과 화살을 들고 있었다.
“이……!”
갑작스런 기습에 살짝 열이 받은 태운이 그녀에게 접근하려 자세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때,
콰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
……
바닷속에서 수없이 많은 거대한 물기둥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
눈대중으로 봐도 거의 수십 개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물기둥들.
곧 바닷물이 떨어져 내리며 드러난 물기둥 속에는,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방금 전 상대했던 이무기와 똑같은 녀석들이 모조리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래, 보스가 처음부터 나왔을 리 없지. 너희가 잡몹이었냐.”
스윽 ―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낸 수십 마리의 이무기들을 바라보던 태운은 고개를 돌려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럼 네가 보스인 건가? 이상하군. 전설형 몬스터들이 잡몹이고 인간형 몬스터가 던전의 보스라…….”
본래 몬스터들은 곤충형, 짐승형, 인간형, 키메라형, 전설형 순으로 강해진다고 알려져 있었다.
개체마다 차이는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형태 간의 서열은 거의 변하지 않는 것이 학계의 정설.
하지만 인간형이 전설형보다 강한 것은 그 허용 범주를 너무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물론 형태에 따른 강한 순서가 진리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한걸?”
공중에 떠오른 채 여인을 내려다보는 가면 뒤 태운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너 몬스터 아니구나. 그렇지?”
“…….”
비록 멀리 떨어져 있긴 했지만, 두 사람은 거리적 한계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강자.
태운의 차가운 눈빛을 바로 코앞에서 마주한 것처럼 느낀 여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설치고 다니랬나?”
스윽 ―
뭐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린 여인이 고개를 조금 더 들어 태운과 똑바로 시선을 마주 보았다.
‘…외국어?’
한국말이 아닌 외국어였지만 태운은 그녀의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
헌터들은 마력 각성과 동시에 적어도 헌터 서로 간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그녀와 눈을 마주친 태운은, 잠깐이었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느껴야 했다.
검은 머리를 위로 질끈 동여맨 채 양 눈 옆으로 기다랗게 눈화장을 그린 여인의 얼굴.
그녀의 입술은 뭘 발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불꽃보다도 짙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이상했던 것은 붉게 칠해진 이마 한가운데에 그려진 ‘세 번째 눈’이었다.
‘…쿠마리?’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이라 불리는 쿠마리 문화.
태운은 곧 자신이 느낀 불쾌감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그녀의 모습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싱긋 ―
태운을 바라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안녕, 특임반장. 초면에 실례지만…….”
여인, 쿠마리가 말을 잇는 그 순간,
구우우우우우우우우웅 ― !
여태껏 수십 마리의 이무기들이 솟아올랐던 바다와 달리 이질적이게도 계속 잠잠하던 오른쪽 바다가 미친 듯이 커다랗게 울리기 시작했다.
“……!”
상상 이상의 커다란 진동에 놀란 태운의 시선이 잠잠하던 오른쪽으로 향하고,
“…여기서 죽어줄래?”
쿠마리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은 이무기보다도 몇 배는 더 큰 무언가가 바다 전체를 들어 올리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