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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90화 (90/300)

90화. 달토끼가 조금 강함 (2)

철썩!

분지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위치한 섬, 주문도.

주문도의 위치한 한 작은 해수욕장에,

“…….”

한 남자가 멍하니 앉아있었다.

철썩!

밀려오는 파도를 그저 온몸으로 맞으며 멍하니 분지도 쪽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어머, 외국인이네?”

“외국인들도 이런 데까지 놀러 오는구나…. 한국인도 잘 모르는 곳인데 신기하네.”

주문도를 방문한 몇몇 관광객들이 멍하니 앉아있는 남자를 보고 한마디씩 수군거렸다.

“근데 왜 저러고 있지?”

“그러게. 꼭 실연당한 사람처럼.”

“…그거 좀 이상한데? 외국인이 실연당하고 한국 주문도로 여행을 온다고?”

“정처 없이 떠돌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너 되게 편견 없는 애구나.”

그 외국인 남자는 주위에서 뭐라고 수군거리든지 간에 일말의 신경조차 쓰지 않고 하염없이 분지도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철썩!

한 차례 다시 덮쳐온 파도가 남자의 가슴께까지 올라오며 그의 온몸을 적셨다.

주륵 ―

남자의 양 볼 위로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뚝 ― 뚝 ―

온몸을 적신 바닷물보다 더 짠 소금기를 머금은 눈물이 해변 위로 뚝뚝 떨어졌다.

“…니마.”

대한민국 서해 바다에 소금기를 더하며 분지도를 바라보던 남자의 입술이 작게 달싹였다.

남자는 아련한 눈빛으로 누군가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는 듯했다.

그때,

휘이이이잉 ― !

분지도 쪽에서 불어온 한줄기 바닷바람이 남자, 푸르바의 볼 위로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주었다.

마치 울지 말라는 듯.

“…….”

푸르바는 여인의 손길처럼 부드럽고도 차가운 그 바닷바람을 맞으며,

움찔움찔.

한참 동안이나 어깨를 들썩이며 속으로 울음을 삼켜냈다.

* * *

쿠우우우우우우우우 ― !

움직이지 않는 바다, 부동해를 뒤엎은 존재가 그 거대한 전신을 드러내며 하늘의 절반을 가렸다.

“…용?”

이무기와 상당히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른 존재.

마치 김천용이 변신한 청룡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래. 비교하자면 마치,

“…펜릴.”

천지를 뒤덮었던 거대한 늑대 괴수, 펜릴 만큼이나 컸다.

아니, 몸을 웅크린 상태로도 펜릴과 맞먹을 정도였으니 저 기다란 몸을 편다면 펜릴의 몇 배는 될 것이었다.

쿠우우우우…….

그 거대한 용이 모습을 드러내자 안 그래도 어두웠던 던전 내부가 더욱 어두워졌다.

검은 이무기들보다도 더 칠흑 같은 어두운 비늘로 뒤덮인 용이 하늘의 절반을 가린 탓이었다.

그야말로 암흑룡 그 자체였다.

철썩!

암흑룡이 빠져나온 오른쪽 바다가 그제서야 왼쪽의 바다처럼 움직이며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사라라락 ―

양쪽에서 치는 파도에 의해 거의 남지 않은 모래사장의 모래가 순식간에 바다 밑으로 잠기고 말았다.

“…그럼 그렇지. 보스는 따로 있었어.”

태운은 살면서 본 생명체 중에 가장 거대한 암흑룡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몬스터들을 길들일 줄이야.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만하긴 해.”

스윽 ―

태운의 시선이 어느새 그 용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여인을 향했다.

“그런데 뭔가 되게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파직!

태운의 몸에서 푸른 번개가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치지지지직!

순식간에 푸른 번개로 뒤덮이는 태운의 전신.

[청뢰갑(靑雷鉀)]

“그동안 보여줬던 능력이 내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파직!

태운이 있던 자리에 푸른 빛이 한 차례 번쩍임과 동시에,

스팟 ― !

태운의 신형이 암흑룡과 이무기들 사이로 움직였다.

파직! 파지직! 파지지지지직!

쿠르르르릉 ― !

불과 수십 분의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힘을 모은 태운이 푸른 안광을 번뜩이며 힘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청뢰우(靑雷雨)]

콰르르르르릉 ― !

굳이 자기장을 펼치지 않고도 전신에서 푸른 번개 줄기를 수백 수천 다발을 뿜어내는 태운.

사방이 적이라 번개가 그 어떤 곳을 뻗어나가더라도 상관없었기에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파지지지직!

검은 융단처럼 시커멓던 바다가 순식간에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던 이무기들이 단체로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직!

해수면을 타고 끝없이 흘러들어오는 푸른 번개.

티이잉! 티이잉!

이무기들이 마력을 방출하여 자꾸만 몸을 타고 오르며 전신을 잠식하려는 청뢰를 튕겨내려 했지만,

파지직! 치지직!

새까만 바다를 파랗게 가득 물들인 청뢰는 쉬지 않고 이무기들의 몸을 잠식해나갔다.

“내 능력이 번개인 줄 알았으면 바다를 무대로 고르지 말았어야지.”

““캬아아아아아아아아!””

드드드드드드드드 ― !

수십 마리의 이무기들이 고통스럽게 포효하자 던전 전체의 대기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뒤흔들렸다.

일반인… 아니, 그 강력하다는 S급 헌터마저도 귀를 막고 쓰러질 정도의 막대한 음파가 던전 내의 모든 생명체의 고막을 뒤흔들었지만,

“…….”

“…….”

암흑룡을 비롯해 태운과 쿠마리의 표정엔 그 어떤 변화조차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퍼어어어엉! 퍼어어어어어엉!

용이 되지 못해 공중으로 날 수 없는 이무기들이 전신을 비틀며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하자,

퍼어어어엉!

해수면 곳곳이 터져나가며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건가?’

미동조차 없던 태운의 눈썹이 살짝 씰룩였다.

공중에 떠 있는 암흑룡과 쿠마리는 해수면을 파랗게 잠식한 청뢰로부터 자유로웠지만, 아군인 이무기들이 저렇게 당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했던 것이다.

‘무슨 생각인 거지?’

태운은 암흑룡의 머리 위에 앉아 가만히 고통스러워하는 이무기들을 바라보는 쿠마리를 주시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때,

“캬아아아…….”

수십 마리의 이무기 중 하나가 마침내 청뢰에 완전히 잠식되어 마력을 모두 잃고 통구이가 되고 말았다.

쿠우우우우 ―

퍼어어어어어어엉 ― !

거대한 이무기의 몸뚱이가 쓰러지며 바다가 또 한 번 크게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

홱 ― !

쓰러진 이무기를 바라보던 태운의 고개가 급히 돌아갔다.

무언가 불길한 감각을 느낀 것이다.

슈오오오오 ― !

무형의 기운이 쿠마리의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 * *

일렁 ―

마치 아지랑이처럼 조금씩 그녀 주위의 공간이 비틀리고 있었다.

‘뭐야……?’

쿠마리를 보고 당황한 태운의 두 동공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슈오오오오 ― !

쿠웅 ― ! 쿠웅 ― ! 쿠웅 ― !

그녀의 힘이 강해지고 있었다.

퍼어어어어엉 ― ! 퍼어어어엉 ― !

태운의 뒤쪽에서 이무기들이 쓰러질 때마다,

쿠웅 ― ! 쿠웅 ― ! 쿠웅 ― !

쿠마리는 커다란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기운을 흡수하며 강해지고 있었다.

“쳇!”

그 일련의 과정을 단번에 눈치챈 태운이 재빨리 바다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이무기들을 끝없이 잠식해나가고 있는 청뢰를 회수하기 위함이었다.

치지지직!

던전 내 바다 전체에 퍼졌던 푸른 거미줄이 태운의 손안으로 빨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한없이 넓게 퍼졌던 번개가 회수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불과 수 초.

그러나,

퍼어어어어엉 ― ! 퍼어어어엉 ― !

이미 이무기들은 모조리 마력을 잃고 시커멓게 통구이로 변해 버린 지 오래였다.

푸른 번개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내리며 만들어진 청뢰지옥에서는 최소 S급 최상위는 될 법한 이무기들조차 그리 오랜 시간을 버텨낼 수 없었던 것이다.

쿠우우우우우 ― !

거대한 암흑룡 머리 위에 앉아있던 쿠마리의 전신으로 막대한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미치겠구만 진짜!”

슈악 ― !

태운은 재빨리 쿠마리가 힘을 갈무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몸을 날렸다.

처음 마주했던 순간에도 최소 김천용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었던 쿠마리였다.

거기에 이젠 수십 마리의 이무기들의 기운까지 한데 흡수한 그녀.

고오오오오오 ― !

지금의 쿠마리는 단언컨대 여태껏 태운이 느껴보았던 그 어떤 존재보다도 강력했다.

심지어 하늘의 절반을 뒤덮은 암흑룡보다도.

<감히 누구에게 접근하느냐!>

우르릉 ― !

거대한 암흑룡의 목소리가 천지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스륵 ―

태운의 시야가 새까맣게 암전되었다.

암흑룡이 뿜어낸 어둠이 태운의 전신을 뒤덮은 것이다.

‘…몬스터가 말을 했다고?’

하지만 태운은 시야가 가려진 것보다 암흑룡이 말을 했다는 것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강력하던 펜릴조차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는 못했지 않았는가?

‘이놈, 정말로 펜릴 이상의 존재였어!’

태운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펜릴보다 강할 것으로 짐작되는 암흑룡, 그리고 그 암흑룡보다도 강한 힘을 모으고 있는 지금의 쿠마리.

살면서 만난 가장 강력했던 적보다 강한 존재를 동시에 둘이나 조우하게 된 것이었으니까.

“후우…….”

‘…어쩔 수 없지.’

태운은 뭔가 결심한 듯 심호흡을 하며 잔뜩 힘이 들어간 전신의 근육을 이완시켰다.

그리고 잠시 뒤 태운의 몸에서는,

파직!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색의 번개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 * *

스으윽 ―

한편, 암흑룡의 머리 위에서 힘을 갈무리하던 쿠마리는 천천히 눈을 떴다.

고오오오오 ―

조금 전보다 몇 배, 아니 수십 배는 더 강해진 쿠마리의 힘.

심지어 자신이 타고 있는 암흑룡보다도 거대해진 힘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주륵 ―

쿠마리의 안색은 그리 좋지 못한 상태였다.

‘…예상보다 힘의 손실이 훨씬 더 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지금보다도 두 배는 더 강해졌어야 했다.

이무기들의 혼과 마력을 모두 삼켰다면 말이다.

그러나 태운이 가진 청뢰의 성질을 미리 파악하지 못했던 쿠마리는 그중 절반인 이무기들의 마력을 청뢰에 의해 잃고 만 것이다.

‘큰일이야.’

이대로라면 이길 수 없다.

아무리 자신이 강해졌더라도 승률 7할이라는 계산은 이무기는 물론이고, 암흑룡까지도 흡수했을 때의 이야기.

하지만 이무기들의 힘은 절반만을 흡수한 데다가 암흑룡은 아직 흡수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권속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면 힘을 흡수할 수 없었기에 암흑룡을 죽일 수도 없는 상황.

그런데 방금 전 특임반장의 행동으로 미루어보아, 놈은 자신이 죽은 몬스터들의 힘을 흡수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듯했다.

으득 ― !

쿠마리의 입에서 이 가는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본래라면 이무기들과 정신없이 싸우느라 자신의 힘이 강해지는 사실조차 몰랐어야 했으니까.

그런데 단 한 번 시전된 기술로 이무기들을 여유롭게 전멸시킬 줄이야.

‘다중 브레이크 때랑 비교해도 너무 다르잖아!’

고유능력 ‘점술’은 만능이 아니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전반적인 사실과 어느 정도의 가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예지였으니까.

이 모든 것이 다중 브레이크 당시의 특임반장의 힘을 기준으로 미래를 점쳤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혹시 몰라 그 당시의 힘의 2배로 상정해서 점을 쳤었는데……!’

이제 보니 그 두 배는커녕 최소 10배는 넘는 듯했다.

암흑룡이 뿜어낸 검은 운무에 뒤덮인 특임반장을 바라보는 쿠마리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강자.

그녀는 자신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암흑룡의 던전 속에서 싸운다면 십이방주 중 가장 강하다는 용의 방주나 범의 방주를 제외한 모든 방주들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네놈이 그 두 존재급이란 말이지……?’

지금 그녀의 눈앞의 사내는 아무래도 용과 범의 방주 두 사람과 동격의 존재인 듯했다.

끼리릭……!

쿠마리는 재빨리 메고 있던 활을 다시 꺼내어 활시위를 당겨 검은 운무 속에 갇힌 태운을 겨냥했다.

스르르 ―

활시위를 당기자 저절로 생겨나는 은빛의 화살.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힘이 담긴 화살이 태운의 미간을 정확히 조준하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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