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94화 (94/300)

94화. 구렁이들만 버려짐 (1)

아직 해조차 뜨지 않은 어두운 새벽.

부우우웅 ― !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빠르게 서울에서 빠르게 전라도 방향으로 남하하고 있었다.

“…하아…….”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던 남자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의 정체는 바로,

“…마지막 발버둥인가.”

주작길드의 마스터, 도명조였다.

특임반장 처리에 실패한 도명조는 급한 불이라도 꺼보고자 직접 전라도에 위치한 한 길드로 가고 있었다.

대한민국 4대 길드 중 하나이자,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그리고 경상남도를 관할하여 관할 구역만큼은 대한민국 길드 중 가장 넓은 길드.

바로 현무길드를 향해서였다.

만지작…….

도명조는 운전을 하다 말고 한 손으로 자신의 품속에 있는 아공간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얼마 전 정부에게서 받아낸 귀한 물건이 도명조의 아공간 주머니에 담겨있었다.

‘A급 던전의 보스, 화검인간의 시체로 만든 무기.’

온몸이 불타오르는 검으로 이루어져 있던 인간형 몬스터, 화검인간.

마력을 불어넣으면 자연스레 불길이 일어나는 화검인간의 신체를 두고, 기술자들은 이를 발화철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그런 발화철을 대부분 사용하여 만들어진 이 무기는 현존하는 무기 중에서도 손꼽히는 보구가 되었으니,

‘초열염부(超熱炎斧).’

어마어마한 중량과 열기로 상대를 불태우고 짓이기는 무시무시한 대부가 탄생한 것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S급 헌터이자, 현무길드의 전 마스터인 이도천의 유품.

울릉도 던전 레이드 당시 국가에 귀속되었던 그 유물과 함께,

부우우우웅 ―

도명조는 한없이 남쪽으로 악셀을 밟았다.

이 더러운 판에 현무를 끌어들이기 위해.

* * *

“…누가 왔다고?”

“주작의 마스터입니다.”

끼익 ―

남자가 몸을 살짝 움직이자 의자가 곧바로 비명을 질렀다.

정호백보다도 더 커다란 몸집을 자랑하는 남자.

어디서 구했는지는 몰라도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부족한지 옷 위로 드러나고 있는 그의 근육은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도명조가 직접 찾아왔다라… 큭,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군.”

현무길드의 마스터이자 대한민국 7인의 S급 헌터 중 1인, 박대상이었다.

꿈틀꿈틀.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전신의 근육이 정장 위로 울룩불룩 솟아오르며 꿈틀댔다.

“그래, 뭐 먼 길 찾아왔는데 이대로 돌려보내는 것도 예의는 아니겠지. 들어오라 그래.”

“예, 알겠습니다.”

현무길드의 실장이 길드장실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똑똑 ―

“들어와.”

끼익 ―

이마를 시원하게 깐 한 흑발의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씨익 ―

깔끔하게 차려입은 사내, 도명조는 박대상을 보자마자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랜만입니다. 대상이 형님.”

“도명조… 얼굴이 많이 수척하네? 뭔가 일이 많았나 봐?”

대면하자마자 도명조에게 면박을 주는 박대상.

울컥 ―

대놓고 무시하는 박대상의 행동에 도명조는 순간 차오르는 화를 가까스로 다스리며 맑은 미소를 유지했다.

“하하하! 입담은 여전하십니다.”

“뭐 그래봐야 너만 하겠냐.”

그리 달갑지 않은 분위기의 박대상.

그러나 도명조는 지금 박대상을 설득해야 할 명백한 을의 입장이었기에 굽히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동생이 찾아왔는데 계속 이렇게 세워두실 겁니까?”

“…언제부터 우리가 형 동생 하는 사이였다고.”

끼이이이익 ―

박대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가 앉아있던 의자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살았다는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쿵 ― 쿵 ―

의자에서 일어나 길드장실에 마련된 응접 테이블로 향하는 박대상.

출렁 ― !

이번엔 박대상이 앉은 소파가 크게 요동쳤다.

움직임 하나하나만으로도 가구들의 수명을 단축시킬 정도의 어마어마한 거구를 지닌 박대상.

역시 대한민국 S급 중에서도 순수 피지컬 최강의 존재다운 모습이었다.

“그래. 뭐, 앉아.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 먼 곳까지 직접 찾아오셨는지 들어보자고.”

싱긋 ―

저벅저벅.

풀썩.

계속되는 냉대에도 도명조는 애써 화를 참아내며 미소를 유지한 채 박대상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전보다 몸집이랑 근육이 더 커지신 것 같습니다. 형님.”

“자꾸 말 돌리지 말고 바로 본론부터 말해. 나 바빠.”

뿌드드드 ―

박대상이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소파 가죽이 금방이라도 뜯어질 듯 재차 비명을 질렀다.

“후우…….”

피지컬만으로도 상대를 압도하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박대상을 마주한 도명조는 그의 차가운 태도에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이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요즘 뉴스는 좀 보셨습니까?”

“뭐 맨날 보지. 요즘 재밌던데?”

“그럼 지금 헌터계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잘 아시겠지요?”

“음, 잘 알지. 특임반장이랬나? 그 친구가 아주 그냥 뒤집어 엎어놨더군. 우리도 아주 곤란하던 참이야. 꽤 많은 녀석들이 의기소침해졌더라고.”

화악!

박대상의 말에 도명조는 무언가 희망을 확인한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

“맞습니다. 그 녀석이 헌터계의 물을 완전히 흐려놓고 있어요. 본인도 헌터인 주제에 말이죠. 그래서 말입니다, 형님. 저희와 손을 잡지 않으시겠습니까?”

“…손을 잡자고?”

도명조의 말에 박대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예, 지금 청룡과 백호가 협회와 손을 잡고 특임반장에게 동조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주작 혼자서는 감당하기가 조금 힘에 부치는 상황이죠. 하지만 현무만 도와준다면…….”

“…미안한데, 거절하지.”

“……!”

도명조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단호하게 거절하는 박대상.

하지만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서 있는 처지의 도명조는 겨우 그 정도 거절에 물러서지 않았다.

“형님이 정치인들을 싫어하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놈들과의 연락은 제가 하겠습니다. 현무는 주작에게 힘만 보태고 이득만 나눠 가지시면 됩니다.”

“너희와 손을 잡아서 우리와 무슨 이득이 있지? 이미 우리는 4대 길드로서 각종 면세 혜택과 각종 정책적인 이득을 보고 있는데.”

“이득이 있지요.”

도명조가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석 거래.”

“……!”

“현무는 마석을 얻으면 어떻게 처리하고 있습니까?”

“…그야 마석은 발견한 자의 소유이니 개인 처분에 맡기지. 아마 대부분 정부에 팔고 있겠지만.”

도명조는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정부에서 단위 무게 당 10억에 사들이고 있으니까요. 보너스도 이런 보너스가 없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도명조가 한 손을 좍 펼치며 손바닥을 내보였다.

그리고 그 뜻을 곧바로 알아들은 박대상의 눈이 조금 커졌다.

“설마……?”

“예, 맞습니다. 주작은 정부에게서 이 마석들을 5억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석을 싸게 얻을 수 있는 걸 넘어 직접 얻게 되면 도로 되찾으면서 단위 무게 당 꽁돈 5억까지 딸려오는 거지요.”

“……!”

박대상은 전보다 눈을 확연히 크게 뜨며 놀란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주작길드에 A급 헌터가 그렇게 많을 수 있었던 이유가…….”

도명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맞습니다. 주작은 A급 이하의 주작길드 헌터들에게 마석을 자주 지급하거든요.”

마석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단위 무게 1kg당 150에서 200 정도의 마력 수치를 올릴 수 있는 마석.

수량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 보니 정부에서도 판매 수량 자체를 제한하긴 하겠지만 그 수량을 대량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길드의 하위 헌터들에게는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인가? 그 정도면 솔직히 별거 없군. 확실한 메리트이긴 하지만 그리 큰 메리트도 아니야.”

고작 5억의 차이였다.

물론 큰 돈이긴 했지만 4대 길드 정도 되는 단체에게는 작은 돈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아이스크림이 500원이든 1,000원이든, 부유층에게는 그다지 차이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그게 다가 아니지요. 정계에 힘을 빌려주면 건마다 어마어마한 돈이 쏟아집니다. 기득권들이 각자 벌이고 있는 사업체가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부동산은 또 어떻고요? 아무리 헌터의 세상이 왔다고는 하지만, 세상은 그보다 훨씬 더 넓고 돈이 나올 곳은 그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4대 길드의 연수익? 야당 의원 대여섯 명이 가지고 있는 사업체와 부동산 수익만 해도 4대 길드의 연수익을 모두 합친 것만큼 나올 겁니다.”

정계 기득권들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더 자세히 알고 있는 도명조.

실제로 그들에게서 가장 많이 돈을 받았던 도명조였기에 잘 알 수 있었다.

그 덕에 도명조의 은닉재산은 웬만한 재벌가 이상이었고.

지금 은퇴한다고 하더라도 도명조의 재산은 3대를 넘어 5대가 평생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이었다.

그러나,

“역시 거절하겠다.”

박대상의 입장은 확고했다.

“겨우 돈 좀 더 벌자고 흐름에 역행하고 싶지는 않아. 그리고 특임반장의 힘은 나도 영상으로 본 바 있다. 굳이 그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더군.”

“…….”

돈에 흔들리지 않는 박대상의 확고한 자세.

“후우…….”

결국 도명조는 한숨을 쉬며 품속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굳이 이것까지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 드는 도명조의 행동에 박대상은 눈을 가늘게 뜨며 도명조를 노려보았다.

“무슨 속셈이지?”

“속셈이라니요. 저는 언제나 정당한 거래를 원할 뿐입니다.”

쑤욱 ―

도명조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거대한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읏차! 어이구, 무거워라.”

쿠웅 ― !

콰직!

도명조가 꺼내든 물건이 허공에 잠시 들려있다 길드장실 바닥에 떨어지며 박혔다.

그리고,

“…너……!”

박대상의 동공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청룡길드.

“호성아!”

청룡길드 내부가 한차례 소란스러워졌다.

도명조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청룡의 부길드장, 민호성이 무사히 돌아왔으니까.

와락 ― !

좀처럼 길드원들 앞에서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김천용은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민호성을 껴안았다.

“너… 너… 대체 어떻게 된……!”

울컥 ―

김천용은 목이 메었는지 말을 잇다가 말고 입을 다물었다.

“하하하… 형, 나 이제 이런 거 시키지 마. 오케?”

“그래… 안 시키마. 무사히… 무사히 잘 돌아왔어.”

훌쩍!

청룡의 건재함을 유지하기 위해 비밀리에 민호성의 장례를 준비하던 길드원들이 모두 눈시울을 붉힌 채 훌쩍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흐윽……!”

민호성의 짝사랑, 이혜지도 껴있었다.

안경까지 벗은 채 눈물을 닦고 있는 그녀.

“…아니다. 한 번 더 해야 하나?”

이혜지가 자신을 위해 울어주고 있는 모습을 본 민호성이 팔불출처럼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래야 내가 아는 민호성이지.”

찰싹!

걱정했던 사람들의 속도 모르고 철없는 소리를 해대는 민호성의 말에 순식간에 이성을 되찾은 김천용은 민호성의 등짝을 때리며 그의 귀를 붙잡고 길드장실로 이끌었다.

“얼른 따라와. 잘 돌아온 건 잘 돌아온 거고, 보고는 해야지?”

“아야야야야! 아파! 형! 아프다고! 아니 죽다 살아난 사람 이렇게 대해도 돼?”

“어, 살았으면 다 돼.”

“아야야야! 아파! 아프다고! 야 이 피도 눈물도 없는 파충류 길드장아!”

피식 ―

평소처럼 가벼운 분위기의 민호성의 행동에 두 사람을 바라보던 청룡길드원들은 방금까지 눈시울이 붉히던 일이 무색하게 하나같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길드장실에 들어가 민호성의 보고를 받은 김천용은,

“…뭐?”

곧바로 웃음을 잃고 말았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