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구렁이들만 버려짐 (2)
몇 주 전, 김천용의 명령을 받은 민호성은 도명조를 미행 및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부우웅 ―
도명조는 갑자기 자택을 나와 택시를 타고 돌연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설마 또?’
지난번 김천용과 함께 봉산에 방문하여 다중 브레이크가 도명조가 일으킨 짓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민호성은 재빨리 도명조의 뒤를 밟았다.
슈아아아악!
지난번 얻은 무음 오토바이를 타고.
한참을 도명조의 뒤를 따라가던 민호성.
‘뭐지?’
뭔가 이상했다.
도명조가 가는 방향이 한없이 북쪽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곧 군사 분계선인데?’
동두천을 넘어 연천군까지 도달한 도명조가 탄 택시.
임진강 근처에 사람이 없는 곳에 갑자기 내리더니,
타다닥!
택시를 보내고 갑자기 임진강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슈우우욱!
택시보다도 빠른 속도로 달리는 도명조.
그나마 근처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피잇 ― !
도명조는 지금 거의 전력으로 신체강화를 하고 달리고 있었다.
자신마저 마력을 사용해 달릴 수는 없었기에 무음 오토바이를 타고 최대한 따라붙는 민호성.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오토바이로도 쉽게 따라잡기 힘들 정도였다.
‘이이익!’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군사분계선 근처에 도달하여 그 분계선을 지키고 있는 군부대가 보이기 시작하자,
키이이이잉 ― !
도명조는 부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발에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저 미친!’
거리를 두고 무음 오토바이로 겨우 따라붙은 민호성이 도명조의 모습을 시야에 담은 그때,
퍼어어어엉 ― !
쉬이이이이익 ― !
도명조의 신형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군부대는 물론이고 군사분계선에 설치된 방마벽까지 넘어 날아갔다.
“아이씨… 이제 나도 모르겠다!”
키이이이이잉 ― !
마찬가지로 두 발에 마력을 모으는 민호성.
퍼어어어엉 ― !
쉬이이이이이익 ― !
민호성의 신형이 순식간에 북한으로 날아간 도명조와 같은 방식으로 방마벽 너머로 사라졌다.
“…음?”
선 자세 그대로 졸고 있던 초소병들이 어딘가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폭음에 거의 감기다시피 한 눈을 살짝 떴다.
졸음 가득한 눈으로 경계근무를 서던 병사 몇몇이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땐,
휘이이이잉!
텅빈 하늘에 바람만이 불고 있을 뿐이었다.
* * *
“그래서 그렇게 따라 들어갔는데… 계속 북진하던 녀석이 갑자기 너를 공격했다고?”
“응.”
김천용에게 당시의 일을 말해주는 민호성의 표정이 상당히 심각했다.
민호성이 찍은 바디캠의 영상을 확인하며 그의 설명을 듣는 김천용도 진지한 표정으로 영상을 분석하고 있었다.
“봐봐! 이제 나올 거야!”
DMZ를 벗어나 북한의 영역으로 진입한 도명조.
북한은 이미 무정부 상태인 데다가 수많은 전생체로 곳곳에 나뉘어진 상태였기에, 딱히 군사적 저항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몬스터들이 만연한 북한 땅을 활보하던 도명조.
홰액!
돌연 고개를 돌리고 멀리서 따라오던 민호성을 향해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진짜 도명조 얼굴인데?”
“놀라는 건 지금부터야.”
파팡!
여러 번의 공방을 주고받는 도명조와 민호성.
둘 다 신체강화를 했을 뿐, 고유 능력은 꺼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키에에엑!}
곧 두 사람이 만들어낸 소음에 몬스터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칫!}
빠르게 사태를 마무리하고 싶었던 민호성이 먼저 능력을 사용했다.
파바바바밧!
민호성이 지면을 건드리자 지면을 뚫고 자라나는 어마어마한 양의 무언가.
그의 고유능력 ‘대나무’가 발현된 것이었다.
쉬시시시식!
흔히들 밈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날카로운 ‘죽창(竹槍)’ 수십 개가 순식간에 땅에서 솟아오르며 도명조의 전신을 금방이라도 꿰뚫을 듯이 치솟았다.
과연 죽창군주라는 이명다운 위용이었다.
파앗!
지면의 죽창들을 피해 높게 뛰어오르는 도명조.
하지만 죽창은 끝도 없이 자라나 금세 공중으로 뛰어오른 도명조를 따라잡았다.
그렇게 수십 개의 죽창이 도명조에게 닿으려는 그 순간,
“……!”
영상을 보던 김천용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이게 뭐야?”
“…나도 엄청 놀랐다고.”
민호성은 그 당시 상황이 떠올랐는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꿀렁 ―
갑자기 둘로 분열되는 도명조의 몸통.
파악!
둘로 분열된 두 명의 도명조가 서로의 발을 디딤돌 삼아 양옆으로 갈라져 날아갔다.
{뭐야!}
화면 속 민호성도 크게 당황한 듯 자신도 모르게 육성으로 목소리를 냈다.
{킥… 키킥…….}
그리고 이상한 웃음소리를 흘리기 시작하는 두 도명조.
뭔가 이상했다.
평소에 도명조가 아닌 느낌.
파밧!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흘리던 도명조들이 양쪽에서 민호성을 에워싸고 달려들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스팟!
기다란 죽창 하나를 만들어낸 민호성이 몸을 낮추며 자세를 잡았다.
{쉽게 당해주겠냐!}
콰아아아앙!
퍽 ―
둘로 늘어난 도명조와 죽창을 든 민호성이 격돌하며 터진 충격파로 인해 바디캠 영상이 끊어졌다.
“…….”
시커멓게 변해버린 화면.
“…….”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뒤,
“…둘 다 도명조였지만… 둘 다 도명조가 아니었어.”
먼저 정적을 깨뜨린 건 민호성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두 사람은 강했지만… 이상했어. 도명조는 분명 불을 사용하잖아? 하지만 둘 다 내 손에 죽는 마지막까지 불을 사용하지 않았거든. 아니, 어떻게 보면 사용하지 못했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
민호성의 말을 들은 김천용은 얼마 전의 일을 상기했다.
도명조가 다루는 화염은 강했다.
그러나 그 화염조차 한낱 불씨로 여겨지게 할 만큼 어마어마했던 그 검붉은 화염은 더욱 무시무시했다.
너무 이상했다.
마치 모두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힘이 들쭉날쭉했으니까.
심지어 사용하는 능력의 종류도 여러 개였다.
짙은 적색의 화염에 검붉은 흑염까지 사용하더니 이제는 몸이 분열하기까지…….
‘도명조… 대체 뭘 얼마나 숨기고 있는 거냐?’
도명조의 힘이 가늠이 안 되기 시작한 김천용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려는 그때,
“그리고 무엇보다 형… 나 이제 잠시 부길드장 자리 좀 내려놓을게.”
민호성이 돌연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김천용의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당황하자,
피식 ―
민호성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A급으로 떨어졌어.”
“……!”
정체 모를 두 명의 도명조와 싸웠던 민호성.
완전하지 않은 도명조였기에 승리를 거둘 수는 있었다지만, 장기전으로 이어진 그 전투에서 커다란 부상을 여러 번 입고 말았다.
그 결과 수천에 달하는 마력 수치를 잃으며 A급으로 강등당하고 만 것이다.
“도명조오오오……!”
아끼는 동생에게 커다란 부상을 입힌 도명조.
그를 향한 김천용의 분노가,
뿌드드드드득 ― !
그 어느 때보다도 커져 가고 있었다.
파지직!
한 차례 패배로 인해 꺾였던 청룡의 사기가 분노를 밑거름 삼아 다시금 비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 *
한편, 청룡과 백호를 꺾고 죽창군주마저 등급을 강등시킨 그 대단한 도명조는,
“씨X!”
정작 현무를 끌어들이지 못하고 아무런 소득 없이 서울로 돌아와 있었다.
전 현무길드의 마스터 이도천의 유품, 초열염부를 꺼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돌아가.
―형님? 이건 그 이도천 헌터의 유품…….
―알고 있으니까 가라고!
―…알면서도 응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알았으니까 하는 말이다. 오히려 고맙군. 잠시 잊고 있었던 스승님의 유언이 떠올랐어. 오늘부터 현무는 중립을 깨고 청룡, 백호와 뜻을 같이 할 거다.
―대상 형님!!!
―그만 돌아가라 도명조. 스승님의 유언을 상기시켜준 은혜는 오늘 이 자리에서 너를 공격하지 않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괜히 현무를 들쑤셨다가 4대 길드 중 3개의 길드가 협회의 편으로 돌아서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곧 박대상도 협회와 연락을 취해 특임반장에게 연락해 협력하는 노선을 타게 될 테니까.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모두가 암묵적으로 누리고 있던 헌터로서의 특권.
쩌적……!
가끔 선을 넘기도 했지만 아슬아슬한 선을 유지하며 각종 범죄까지도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었던 헌터들의 특권 탑이,
쿠르르르르 ―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한 존재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4대 길드 중 기득권과 가장 밀접하고 적극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가장 큰 이득을 보고 있었던 주작길드였다.
반면 나머지 3대 길드는 기본적인 특권만을 누려왔다.
기득권과의 마찰을 피하며 최대한 평화를 지향하고자 했던 온건파 청룡.
대놓고 적대감을 표시하며 기득권을 혐오하는 기색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던 강경파 백호.
그리고 가장 먼 곳에서 모든 상황에 대한 방관자의 위치를 고수했던 중립파 현무.
그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영원히 헌터들의 세상이 될 것이 뻔한데도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실제로 주작길드는 그 덕분에 다른 3대 길드에 비해서도 압도적인 재정과 정예 헌터들을 보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득권이라는 거대한 나무에 착 달라붙어 수액을 빨아먹으며 다른 3대 길드에 비해 압도적인 이득을 얻어왔던 주작길드는, 이제 썩은 동아줄을 잡은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저 반대편에 협회… 아니, 특임반장이라는 황금 동아줄이 내려왔으니까.
‘지금 한국의 기득권 세력은… 끝났다고 봐야겠지.’
하다못해 쿠마리가 특임반장이라도 죽였다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었을 터.
‘지금의 나는 특임반장을 이길 수 없다.’
사려야 했다.
조금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잡고 있는 썩은 동아줄을 어서 놔야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도명조는,
톡 토독 ―
재빨리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
{예.}
“어, 난데. 실력 좋은 해커 몇 명만 좀 섭외해. 보수? 상관없어. 건당 1억 제시해. 부족하다고 하면 더 주고. 어, 최대한 빠르게. 아, 그리고 잠입 잘하는 녀석들도 몇 명만 고용해봐. 전부 2시간 안에 완료해. 내일 아침 전까지는 일 전부 끝내야 하니까. 그래, 음.”
툭 ―
바닥으로 떨구듯이 핸드폰을 내리는 도명조.
스윽 ―
그는 두 눈으로 천천히 자신의 길드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아쉽구나, 정말 아쉬워.”
뭔가 아련하면서도 분노한 듯한 오묘한 그의 눈빛이 사무실 내부를 천천히 훑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보험을 들어놓길 잘했군.”
톡 토독 ―
도명조는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비행기 표를 예매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번엔 물러나지만… 언젠가 반드시 죽여주마……!”
분노에 찬 그의 머릿속은 오로지 단 한 명의 모습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특임반자아아앙……!!!”
퍼어어어어엉!
주작길드의 길드 사무실이 순식간에 짙은 화염에 휩싸였다.
* * *
다음날 아침.
도명조가 약속했던 3일이 지나고 4일째가 도래했다.
이한천 의원의 설레발에 이한천 자택 마당에 다 함께 모여 밤새 오매불망 특임반장이 죽었다는 도명조의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던 야당 의원들.
며칠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는 여론의 험악한 분위기에 발등에 불이 아니라 용암이 떨어진 야당 의원들이 직접 이한천 의원의 자택에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어떻게든 빨리 사태가 조금이라도 해결될 수 있는 소식을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는 야당 의원들.
다들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는지 잔뜩 수척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왜 이리 전화가 안 와?”
아침 9시가 넘어도 오지 않는 연락에 이한천 의원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참다못해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걸어주세요.}
연락이 되질 않았다.
“뭐, 뭐야? 왜 전화를 안 받아?”
계속 반복하여 시도해보는 이한천 의원.
그러나,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걸어주세요.}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걸어주세요.}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걸어주세요.}
……
계속 같은 메시지만 반복될 뿐 도명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우웅 ―
잔뜩 식은땀을 흘린 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이한천 의원의 핸드폰이 한 차례 울렸다.
[우린 빠진다. 연락하지 마.]
도명조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이게 뭔 개……!”
이한천 의원은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은 정신을 겨우겨우 부여잡으며 재빨리 답장하려고 키패드에 손가락을 올렸다.
하지만 뭔가를 쳐보기도 전에,
우우웅 ―
이한천 의원의 핸드폰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발신자는 바로,
“……!”
여당의 2인자, 강동국 의원이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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