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방주의 방주가 바뀜 (1)
박기성, 이한천을 비롯한 제1야당 주요 인물 5인에 대한 판결이 선고되었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검찰과 경찰을 압박하여 헌터들의 범죄를 적극적으로 은닉하고, 여러 차례에 걸친 살인 등의 범행 교사를 저질렀기에 죄질이 심히 무겁다. 하여 본 재판부는 형법 제 31조 등에 따라 피고 박기성을 비롯한 5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땅! 땅! 땅!
주요 5인에게 무사히 사형이 선고되자,
“와아아아아아!”
“아직 정의는 살아있다!”
“당장 죽여버려! 저 개X끼들!”
전국 곳곳에서 재판 중계방송을 시청하던 시민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나머지 39인의 정치인들과 그 외에 타락한 검경찰 공무원들에 대한 심판도 적절히 이루어졌다.
가장 형량이 낮은 이가 받은 형량이 징역 9년.
평균 형량이 징역 10년에서 20년 사이에서 선고되자 방송을 시청하던 협회 직원들은 그제야 조금이나마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휴, 더러운 놈들! 이제야 속이 좀 후련하네!”
“이제 제1야당 깠으니까… 이제 여당이랑 헌터 범죄자들만 남았네?”
“3분의 1 처리하는 데에 대체 얼마나 걸린 거야? 내가 협회에서 일한 지가 벌써 6년이 넘었으니까… 어휴, 징하다 징해!”
“내가 어떻게든 은퇴 전에 나머지 두 집단들도 나락 가는 거 보고야 만다.”
기득권의 한 축이 무너지는 걸 마침내 두 눈으로 목격한 협회 직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기와 열정이 충만해져 있었다.
이제 피부로 몸소 느낄 수 있었으니까.
자신들이 해온 일들이 결코 헛된 일들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언젠가 다가올 이 날을 기다리며 묵묵히 버텨왔던 그동안의 시간.
물론 대체적으로 특임반장이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일들이었지만, 결국 그것 또한 자신들이 버텨냈기에 이룰 수 있었던 일이라는 걸 그들은 모르지 않았다.
협회 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오른 만큼 또 하나 크게 오른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ㄴ 협회 진짜 ㅈㄴ 고생 많았다.
협회에 대한 평판이었다.
그동안에도 협회의 평판이 크게 오르긴 했었지만, 대부분 특임반장 한 사람에 치중되어 있었던 찬사가 협회 자체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동안 협회를 상대로 갖가지 협박을 통한 압박을 넣었던 야당 정치인들의 행적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ㄴ 슈밤 길드 헌터들을 등에 업고 협박하는 데 별 수 있나ㄴ 개치사하게 돈 갖고 협박했네. 같은 월급쟁이로서 개공감한다. 나도 연봉협상 털렸다.
ㄴ A급이 겨우 3명인데… 웬만한 상위 길드 하나도 감당 못해ㅠㅠㄴ 협회장까지 4명 아님?
ㄴ 3명이나 4명이나 거기서 거기지.
ㄴ 10대 길드 말석만 들어도 A급 일고여덟 명은 될 텐데 협회 전체에 A급이 4명이면 엄청 적은 거지.
ㄴ ㅅㅂ… 까라면 까야지 예산 다 줄인다고 협박하는데……. 하청업자들 손 들어라 ㅠㅠㄴ 하청업자 받고 까라면 까는 그냥 회사원들 손 들어라 ㅠㅠ
ㄴ 회사원 받고 알바도… ㅠㅠ
동시에 대다수 헌터들이 속한 길드에 대한 평판이 크게 떨어졌다.
특히 10대 길드가 크게 욕을 먹기 시작했다.
ㄴ 진짜 대기업의 횡포다
ㄴ 정확하게 드러난 애들이 아직 없어서 일단 중립 기어 박는데, 그래도 일단 실망은 할란다.
ㄴ 돈만 많이 벌면 다냐? 결국 정치인들 사냥개 노릇이나 하고 있었네 ㅉㅉ
ㄴ 얘네도 전수 조사해야 됨 ㄹㅇ
ㄴ ㅇㅈ 정치인들이 살인 교사를 했다는 건 결국 헌터들 중 살인자들이 아직도 있다는 거임.
ㄴ 임인범은 시작이었누…… ㄷㄷㄷ
ㄴ 베놈부터 털자! 아니 대붕도 털자!
ㄴ 대붕이면 주작길드 산하 길드 아니냐? 주작도 털어야 할 듯?
ㄴ 에이 설마 아무리 그대로 4대 길드가 정치인 개 노릇이나 했으려고.
ㄴ 설마가 사람 잡는 법임
자신들에게까지 튄 불똥에 모든 길드 헌터들이 위축되었다.
시민들의 무분별한 욕설로 인해 웬만큼 알려진 헌터들은 얼굴을 들고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조차 없을 지경.
심지어 헌터들의 SNS를 찾아와 각종 욕설을 써대는 악성 댓글러들이 창궐하면서 대부분의 헌터들은 SNS 계정을 비활성하고 잠수를 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계와 헌터계 전체가 눈치를 대중들의 눈치를 살피며 숨죽이는 틈을 타고,
“명단 확정되었습니다!”
의인당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제1야당이 공중분해 되면서 공석이 되어버린 국회의원 의석들.
제1야당의 권력만큼이나 많았던 그 어마어마한 수의 의석을 비운 채로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었기에, 국회의원 보궐 선거 일정은 곧바로 코앞으로 잡혔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노리기 위해 가장 먼저 움직인 당이 바로,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의인당이었다.
진보, 보수 등의 성향을 따지지 않고 사안마다 가장 중용적인 의견을 표명하며 출범했던 의인당.
정치색이 뚜렷한 여러 지역 민심을 붙잡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결국은 협회 코인을 타고 연신 고공행진을 거듭해온 의인당은 현재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가장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다.
민심을 한껏 힘입은 신생당인 의인당이 제1야당이 가지고 있던 지역구 253석 중 103석, 정당득표율에 따른 비례대표석 47석 중 15석을 본격적으로 노리기 시작하자,
“안녕하십니까?”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여당은 재빨리 그동안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던 소수당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들을 흡수해 어떻게든 세를 불리려는 의인당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지역구 112석, 비례대표석 18석을 가지고 있던 여당.
모든 의석수를 합쳐도 130석으로, 총 300석인 50%에 미치지 못했으므로 여당에게 적대적인 의인당이 제1야당의 빈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그들로서도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소수당은 바보가 아니었다.
여론의 대세가 협회를 강력하게 지지하며 출범한 의인당에게 있음을 알고 여당보다도 먼저 의인당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심지어 몇몇 소수당들은 먼저 합당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된 국회의원 선거.
결국 의인당은 총 103석의 지역구 의석 중 99석, 비례대표 15석 중 14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정치색이 불분명한 신생당에서 단숨에 명실상부한 제1야당으로 급부상한 의인당.
“…좋아.”
마침내 협회에게도 든든한 정치적 지원군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 * *
{토끼의 방주가 죽었다.}
{……!}
{……!}
12개로 분할된 화면 속에서 커다란 동요가 느껴졌다.
{…외람되지만, 한 번만 더 여쭙겠습니다. 누가 죽었다고 하셨습니까?}
범의 탈을 쓴 한 남자가 악귀탈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토끼의 방주, 네팔의 쿠마리가 죽었다.}
{…대체 무슨 일이… 아니 그보다 대체 누가……!}
그와 함께 아시아를 담당하는 3명의 방주 중 하나인 토끼의 방주가 죽었다는 말에 범의 방주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토끼의 방주를 죽인 이는… 한국의 특임반장이라는 사내다.}
{……!}
{…아니, 한국의 특임반장이 어떻게 네팔의 쿠마리를……?}
방주들이 다시 한번 크게 동요했다.
특임반장은 한국에서만 활동하던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소의 방주의 부탁을 받고 특임반장을 처리하러 갔다가 죽었다는군.}
악귀탈의 말에 모든 방주들이 소의 탈을 쓰고 있는 도명조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소! 노아신님의 말씀이 사실이더냐! 왜 네 놈의 구역 일을 다른 방주에게 시킨……!}
{그만.}
{……!}
흥분한 방주들이 도명조를 몰아세우려 하자 악귀탈은 단 한 마디로 그들을 제지시켰다.
{토끼의 방주는 그만한 대가를 약속받았다. 그러니 패배는 토끼의 방주의 책임이 가장 크다. 또한 나도 솔직히 토끼가 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바, 내 책임도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
{…….}
몇몇 방주들은 할 말이 많은 것 같았지만, 악귀탈의 단호한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우선 다음 토끼의 방주를 뽑아야겠지. 소, 추천하는 이가 있다고 했지?}
도명조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입을 열었다.
“예, 전 토끼의 방주를 A급 헌터로 만들어낸 그녀의 하인, 푸르바 라는 남자입니다.”
{…토끼를 죽게 만들어놓고 네가 추천을 한다고?}
이 모든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범의 방주가 으르렁거렸다.
{…범, 마지막으로 말하지. 그만둬라.}
{죄, 죄송합니다.}
악귀탈의 목소리에서 짜증을 느낀 범의 방주는 얼른 고개를 조아리며 입을 다물었다.
범을 단번에 물러나게 만든 악귀탈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도명조를 쳐다보았다.
{푸르바라… 분명 방주 후보 중 하나였지. 하지만 우리 노아즈 아크의 성향과 완전히 맞지는 않아 일반 소속원으로 일단락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그를 방주로 추대하자고?}
도명조는 계속 고개를 숙인 채 진지한 목소리로 악귀탈을 설득했다.
“전과 달리 푸르바는 현재 전 토끼의 방주의 뜻을 잇고자 하는 의지가 강렬합니다. 또한 네팔의 유일한 S급 헌터인 그의 국가적 위치와 그의 무력을 생각한다면 전 토끼의 방주 이상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술술 흘러나오는 도명조의 말에 다른 방주들은 탈 뒤에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의 방주가…….’
‘저놈, 오늘 말을 왜 이리 잘해?’
매번 혼나기만 해서 말을 더듬던 소의 방주였기에 지금 그의 모습은 다른 방주들에게는 꽤나 낯선 모습이었다.
하지만 도명조는 한국 4대 길드 중 최강의 길드를 이끌었던 자.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언변이 허술할 리가 없었다.
{…확실히 놈의 무력은 쿠마리를 훨씬 상회하지. 흠, 좋아. 초대해라.}
띡 ―
도명조가 곧바로 푸르바에게 초대 코드를 전송하고,
치직 ―
12개로 분할되어 있던 화면이 하나가 늘어나며 13개로 분할되었다.
그리고 쿠마리가 쓰던 토끼 탈과 같은 탈을 쓰고 나타난 한 남자가 화면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푸르바라고 했나?}
악귀탈의 물음에,
{…예, 노아신이시여.}
토끼 탈을 쓴 푸르바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음, 이야기는 이미 소의 방주에게 전부 들은 거겠지?}
{예, 그렇습니다.}
스윽 ―
13개 중 한 화면 속에 있던 악귀탈이 카메라 앞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쑤욱!
그의 화면은 까맣게 암전되고 푸르바가 나오던 화면 속에서 악귀탈의 뒤통수가 드러났다.
매번 도명조를 힐책했던 것처럼 푸르바가 있는 곳의 화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푸르바, 너를 이 시간부로 노아즈 아크의 토끼의 방주로 임명한다. 그대는 세계의 선별과 평화를 위해 육신을 다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예, 되어있습니다.}
{그럼 그대에게 걸맞은 권능을 하사하겠다.}
쿠우우웅 ― !
치지지직!
커다란 진동과 함께 컴퓨터 화면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지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끼기기기긱……!
저 화면 너머에서 흉악스럽게 생긴 검은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열리는 검은 문을 본 방주들의 목 뒤로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다시 봐도 소름이 끼치는군…….’
‘아무리 고유능력이라 한들 인간이 저런 힘을 다룰 수 있을 리 없지…! 역시 노아신님은 선지자이자 진정한 신의 반열에 오르신 분!’
끼기기기긱……!
검은 문이 모두 열리자 그 안에서 시커먼 무저갱이 모습을 드러냈다.
{끼아아아아아아아 ― !}
촤르르르 ― 촤르르르 ―
그 속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름 끼치는 누군가의 비명 소리와 함께 쇠사슬 소리가 들려왔다.
{새로운 방주에게 힘을 빌려줄 타락신은 모습을 드러내라.}
악귀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후우우우우우웅 ― !
무저갱 속에서 거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치치직……!
치직……!
그 바람에 맞은 푸르바 쪽 화면 전체가 지직거리며 순간적으로 연결이 불안정해졌다.
치지직…….
곧이어 안정을 되찾는 화면.
그리고,
쿠웅 ― !
{크흐흐흐! 내 힘을 빌려주지!}
소름 끼치는 한 노인의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낫을 든 한 남자의 흐릿한 실루엣이 검은 문 앞에 드러났다.
그리고 그의 정체를 알아챈 방주들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고대신 크로노스……?’
‘최소 주신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 아닌가…! 푸르바란 사내… 자질이 상당했군.’
시간과 농경을 관장하는 고대신 크로노스.
어마무시한 그의 힘이,
스르르르 ―
푸르바의 몸에 깃들기 시작했다.
화아아아 ― !
순식간에 보라색 빛무리에 휩싸이는 푸르바의 전신.
몇 분 정도 흘렀을까.
번쩍!
감고 있던 푸르바의 눈이 떠지며 보랏빛 안광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씨익 ―
그런 푸르바를 바라보는 악귀탈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권능의 세계에 온 걸 진심으로 환영하지.}
훗날 전 세계를 공포로 물들이게 될 새로운 토끼의 방주,
{…감사합니다.}
사신 푸르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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