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두 번째 괴물이 들어옴 (1)
“형!”
씨익 ―
저 멀리서 달려오는 한 남자를 본 태운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와, 내가 그 가면을 이렇게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되게 멋있다!”
“이 자식아, 형이 인사했잖아!”
“으악! 폭력 반대!”
은발의 남자, 강천에게 냅다 헤드록을 걸어버리는 태운.
만나자마자 헤드록을 걸렸지만, 강천의 얼굴엔 그저 밝은 미소만 가득할 뿐이었다.
“…진짜 다른 사람인 줄 알겠다, 야. 왜 이렇게 밝아졌어?”
태운이 사관학교를 조기 졸업한 이후 거의 반년 만에 보는 두 사람이었다.
그동안 강천의 분위기는 어찌나 밝아졌는지, 태운은 순간 다른 사람을 보는 줄로만 알았다.
“형 없다고 침울해져 있을 줄 알았더니, 살만했나 보네?”
“아니 뭐 내가 애도 아니고 형 나갔다고 침울해져? 날 그동안 어떻게 본 거야?”
“…툭하면 센치해지는 사춘기 고딩?”
“윽, 그때는… 후우… 할 말 없네.”
사실상 알고 지낸 기간만 따져보면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은 두 사람은 친형제만큼이나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2차 각성까지 했다고?”
“어, 이미 B급 솔로 토벌도 해봤어!”
역시 태운 다음 가는 재능충 다웠다.
B급에 이제 막 오른 주제에 B급 던전을 혼자 토벌했다니.
이미 최소 동급인 B급 헌터 10명분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역시… 나 다음은 너밖에 없다니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는 강천을 바라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태운.
그 의미를 모르는 강천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다음은 나라고? 그게 무슨 말이래?”
씨익 ―
태운은 하얀 가면 뒤에서 미소를 지으며 강천의 머리를 한차례 헝클었다.
“몰라도 돼, 임마. 하튼 조기졸업 축하한다.”
“…고맙긴 한데, 졸업 선물 준다면서 왜 이런 이상한 데로 불러낸 건데? 심지어 던전까지 있는 곳으로.”
지금 두 사람이 있는 곳은 파주에 위치한 명학산.
태운이 강천에게 졸업 선물을 주겠답시고 불러낸 곳이었다.
“말해 뭐하냐. 일단 들어가자.”
“…어? 어딜? 여기를? 나, 나 장비 안 가지고 왔는데?”
“온몸이 무기면서 장비가 왜 필요해? 들어가!”
“어, 어? 아니 형! 나 갑옷은 못 만들……!”
슈욱 ―
왁자지껄했던 두 남자의 신형이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정말 오랜만에 활기찬 사람의 목소리가 났던 명학산.
오랜만에 찾아왔던 손님들이 다시 게이트 안으로 모습을 감추자,
솨아아아 ―
명학산은 다시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나뭇잎 소리만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 * *
탕! 탕!
명학산 던전 내부.
그 안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대 총화기가 잘 통하지 않는 몬스터에게 총을 쓰는 사람은 오로지 일반형 능력자들뿐.
몬스터의 시체를 가공해서 만든 무기는 일반형 능력자들이 형태를 변환시킨 마력탄의 마력을 버티고 잘 발사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시체를 가공해서 만든 것.
상대적으로 일반 광물로 만들어진 현대식 무기에 비하면 내구성이 약하다는 것이 커다란 단점이었다.
그래서 특히 총기류를 사용하는 일반형 능력자들은 정기적으로 무기를 교체해주거나 수리해야 했다.
단순한 마력 유형화로는 총기 같은 복잡한 물건은 만들 수 없었기에 그들은 언제나 일정 수준 이상의 지출을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반형 능력자들이 보면 밸런스 폭망이라며 절규할 존재가 나타났으니,
타다다다당!
바로 강천이었다.
“와우.”
강천의 전투 장면을 지켜보던 태운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강천의 전투 스타일이 워낙 화려했으니까.
카가각!
상대가 가까이 붙으면 변환시킨 근접 무기로 자상을 만들어내고,
타다당!
상대가 떨어지면 변환시킨 권총으로 총상을 남긴다.
강천의 1차 각성 능력 냉병기와 2차 각성 능력 총화기가 어우러진 결과였던 것이다.
“아니… 이것들 방어력, 미쳤네!”
마력으로 강화한 검과 권총에도 상처 하나 남지 않는 몬스터를 보며 강천이 씩씩거렸다.
철컥 ― !
어느새 두 손을 모아 커다란 대구경 저격소총을 만들어낸 강천이 이를 꽉 물었다.
“좀 죽어라!”
콰앙 ― !
“구어어어어!”
커다란 총성과 함께 일반 총탄과 칼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던 강철 골렘의 신체에 구멍이 시원하게 뻥 하고 뚫렸다.
마력으로 강화된 대구경 저격소총의 위력이 실로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과연 장갑차의 장갑마저 뚫어버리는 대단한 위력의 무기.
거기에 마력 강화까지 더해진 데다가 근거리에서 맞췄으니, 일반 강철보다도 훨씬 단단한 강철 골렘의 몸통에 바람구멍을 내주는 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처컥 ― !
자동으로 장전되는 저격소총.
강천의 몸과 마찬가지인 저격소총은 굳이 손으로 장전하지 않아도 강천의 의지만으로 자동 장전되고 있었다.
콰앙 ― !
두 번째 발사된 저격총탄이 강철 골렘의 머리를 뚫었다.
“구어어어…….”
쿵!
3m가 넘는 거체가 쓰러지며 던전의 지면이 크게 울렸다.
“허억… 허억…….”
조금 당황한 나머지 강철 골렘과 조우한 초반에 꽤나 난전을 벌였던 강천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아니, 형! 이거 뭐야? 아니, 한 마리 잡았는데 마력이 1,100이나 올랐어! 여기 B급 아니지?!”
살짝 불만 섞인 강천의 물음에,
“응, 여기 A급 던전인데?”
태운은 오랜만에 가면을 벗은 채 뭐가 문제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씨익 ―
태운의 입가에 살짝 걸린 악동 같은 미소에,
“설마…….”
강천의 두 눈이 살짝 떨려왔다.
“이게 졸업 선물이야?”
끄덕 ―
강천의 물음에 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 협회 들어올 거잖아? 어차피 들어올 거 알파조로 들어와야지. 베타조로 들어가서 가끔 B급 레이드나 돌면서 언제 A급 될래?”
“…….”
강천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 형, 지금 진심이었으니까.
“아니, 그래도… 이제 막 B급 오른 사람을 A급 던전에 집어넣는…….”
“그래서 이 바쁜 형님이 직접 와줬잖아. 오늘 하루 너한텐 투자할 테니까 잔말 말고 오늘 안에 A급까지 오를 생각이나 해. 그리고 B급 주제에 A급 몬스터까지 잡아놓고 우는 소리하지 마라.”
“…어? 형 나 방금 한 마리 잡고 마력 3분의 1 남았어…….”
“…무슨 총 몇 발 쐈다고 벌써 마력이 3분의 1밖에 안 남냐?”
태운의 말에 강천은 뭔가 살짝 열이 받은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거 2차 각성 능력이 마력을 얼마나 잡아먹는지 알기나 해? 총탄 한발마다 마력이 쑥쑥 빠진다고! 게다가 방금 같은 저격총에다가 강화까지 하면……!”
“어? 저기 애들 온다.”
자연스레 화제를 돌리는 태운의 말에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는 강천.
쿵! 쿵! 쿵!
저 멀리 강천과 태운이 있는 곳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오고 있는 2마리의 강철 골렘들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아씨……!”
“어차피 한 마리 잡을 때마다 마력 오르잖아? 그치? 그리고 벌써 마력 수치 6,000 넘겼을 거 아니야? 자~ 딱 4마리만 더 잡으면 된다! 혼자 잡으니까 마력 수치 올리는 거참 쉽다, 그치?”
“아, 아니……!”
강천은 얼른 말하려고 했다.
그거 올라서 3분의 1 남은 거라고…….
이걸로는 저놈들 못 이긴다고…….
하지만 강천이 뭐라고 말을 내뱉기도 전에,
“구어어어어어!”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두 마리의 강철 골렘들이 강천의 신형을 덮쳤다.
“…이게 무슨 졸업 선물이야!!!”
콰아앙! 콰아아앙! 꽈아아아아앙!
강철 골렘의 주먹이 내리꽂힐 때마다 지축이 흔들리고 땅이 갈라지며 흙먼지가 높게 피어올랐다.
“으아아아아아악!”
그날, 태운은 기어코 강천을 A급으로 만들고 말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만 웃으며 강천을 구해주는 그의 모습은,
“진짜 이런 형이 어디 있냐?”
“…….”
그야말로 악마가 따로 없었다.
친형제만큼이나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의 사이였으나,
‘이 개……!’
마치 진짜 친형이라도 생겨버린 듯한 상당한 불쾌함이 섞인 오묘한 기분이 강천의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 * *
“진심으로 환영하네.”
“아, 안녕하십니까.”
협회 본부 10층, 협회장실.
협회장 동석과 만난 강천이 긴장한 기색으로 뻣뻣하게 허리를 숙였다.
“왜 이리 긴장했어?”
“가, 가만히 좀 있어 봐!”
굉장히 친근해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
그 모습에 동석은 눈빛을 빛내며 강천을 바라보았다.
“호오… 특임반장과 친한 사이였나?”
“네… 그, 그렇습니다.”
어지간히도 긴장했는지 말을 더듬는 강천.
안 그래도 낯을 가리는 성격인데다가 TV에 자주 등장했던 협회장을 만나는 자리였으니 강천이 긴장하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역시 자네한테도 과거는 있었군.”
“그게 무슨 의미십니까, 협회장님? 저도 사람입니다만.”
“허허허! 워낙 자네가 인외종이지 않은가? 이해하시게.”
동석의 말에 태운은 살짝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어쨌든 이 친구가 협회 입사를 희망해서요. 참고로 엄청난 인재이니 기대하셔도 될 겁니다.”
태운의 말에 동석은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허! 특임반장의 추천이라면 당연히 기대해야지! 물론 전투부서 쪽이겠지? 내가 델타조장에게 미리 말해놓겠네.”
“예? 왜 델타조장님께 말씀을 드립니까? 알파조장님께 연락을 드려야지요.”
“…뭐라고?”
동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한 차례 귀를 후비는 동석.
“무슨… 조장?”
“알파조장님이요. 이 친구 A급인데요?”
“뭣?!”
터텁 ―
동석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두 발 물러났다.
그냥 갑자기 태운이 추천할 친구가 있다기에 딱 그 정도로만 기대했던 동석이었으니까.
“아니, 분명 사관학교를 조금 일찍 졸업했다고…….”
“예, 조금 일찍 졸업했죠. 9개월 만에 졸업했으니까?”
“…9, 9개월? 그게 조금 일찍이야?”
‘…조금 일찍이긴 하지. 이 형 기준에서는…….’
강천은 어색한 표정으로 선 채 태운을 곁눈질로 흘끔거렸다.
한편, 동석은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사관학교를 이제 막 졸업했는데 A급이라고?”
“아, 어제 막 졸업했을 때는 B급이었습니다. 근데 어제 제가 A급으로 만들어줬죠.”
“…어젠 B급이었다고? 근데 하루 만에 A급으로 만들었다고?”
동석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대체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거지?’
처음 태운의 힘을 확인했을 때만큼이나 커다란 충격이 동석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태운이 무려 4개월 만에 조기 졸업한데다가 졸업한 지도 아직 반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는 동석이었기에,
덜덜덜.
그가 받은 충격은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아, 그리고 기자들 몰리기 전에 빨리 기밀 처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기억하시죠? 두 번째 유니크형 능력자.”
“…어? 유, 유니크형?”
태운은 무자비하게도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동석에게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다.
“네, 이 친구입니다. 세계 두 번째 유니크형 능력을 각성한 헌터.”
“……!”
동석의 표정이 경악으로 가득 물들었다.
“어, 어, 어… 어버버…….”
어느새 말을 더듬는 주체가 바뀌어버린 동석과 강천.
“아, 아하하하하…….”
강천은 뭔가 부끄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고,
“유, 유, 유니크형… 세계 두 번째……!”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은 동석의 몸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이기 시작했다.
2096년 12월 3일.
그렇게 협회 역사상 두 번째로 정보가 국가 기밀 처리된 직원이 입사했다.
그리고,
“잘해보자!”
“…뭔가 불안한데…….”
마침내 쌍룡이 한 둥지에 자리를 잡은 순간이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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