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욕심 부리다 배가 터짐 (2)
콰직! 콰지직!
강원도 태백산 옆에 위치한 육백산 어딘가.
피잇!
그곳에 위치한 청룡길드의 훈련장 안에서 누군가가 싸우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피비빅!
바닥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대지의 가시가 청장발의 남자를 노리고 마구 솟아올랐다.
“……!”
예상을 한참이나 상회하는 공격 수준에 깜짝 놀란 남자가 눈을 크게 뜨며 재빨리 그 공격들을 피해냈다.
지직…….
바닥을 밟은 그의 발이 이리저리 움직이나 싶더니,
샤샤샥!
바닥을 가득 메우며 튀어나오는 대지의 가시를 현란한 보법으로 피해내기 시작했다.
역시 S급 헌터 중 최강, 김천용다운 현란한 몸놀림이었다.
아니, 사실 이젠 전 최강이었지만.
“하앗!”
날다람쥐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김천용을 잡기 위해 대지의 가시를 일으킨 여인, 최서아가 양손과 미간을 모으며 집중했다.
퓨뷰뷰븃 ― !
서아의 몸 근처에서 생성된 물방울들이 빠른 속도로 김천용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거의 총탄과도 다를 바 없는 굉장한 속도.
쐐애액 ― !
수탄이 만들어낸 점들이 어느새 면이 되어 김천용이 있는 공간 전체를 뒤덮으며 날아들었다.
파아앗 ― !
보법으로는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김천용의 신형이 오른쪽으로 빠르게 튀어 나갔다.
“…안 놓쳐요!”
이를 꽉 문 서아가 독벌새보다도 몇 배는 더 날렵한 김천용의 신형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김천용의 푸른 잔상을 좇았다.
피잇 ― !
콰과과과과과과 ― !
김천용의 신형이 지나간 길 위로 어마어마한 수의 돌가시가 그 뒤를 따라 솟아오르며 그가 남긴 잔상을 꿰뚫었다.
마치 거인의 발바닥을 노리고 솟아오른 듯한 돌가시밭길은 보는 이로 하여금 보는 것만으로도 몸 전체가 금방이라도 꿰뚫릴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아주 좋아!”
피비빗 ― !
뒤따라오는 돌가시를 이리저리 피해내는 김천용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흐뭇한 미소가 걸쳐졌다.
* * *
한 차례 대련이 끝나고,
“허억… 허억……!”
마력이 거의 완전히 소진된 서아가 대련장 바닥에 주저앉았다.
“…너무 많이 늘었잖아?”
훈련장 한쪽에서 대련을 참관하던 이 실장, 이혜지가 안경을 고쳐 쓰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겨우 두 달 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사관학교가 원래 이렇게 잘 가르쳤나? 아, 아니 실전반이라서 그런 건가?”
사관학교에서 실전반에 들지 못하고 심화반으로 졸업했던 이혜지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마구 띄워댔다.
그녀의 의문은 타당한 것이었다.
청룡길드에 입사하여 몇 년 동안이나 감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가능성만 무궁무진했던 초대기만성형 인재 최서아가,
“허억… 허억… 저 많이 늘었죠?”
불과 몇 달 만에 거의 다른 사람이 되어서 돌아왔으니까.
게다가 얼굴까지 묘하게… 아니, 배는 더 밝아져서 돌아온 것이 무슨 심리 치료까지도 받은 듯했다.
“역시 이철민 교관님이라니까.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그분이 역시 최고인 듯하군.”
“…네? 아닌데…….”
김천용의 말에 이철민에게서 딱히 뭔가를 배운 적이 없었던 서아가 작게 반박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일취월장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99%가 강천 덕분이었으니까.
몸소 능력의 여러 가지 활용법이나 마력의 다양한 운용법을 가르쳐준 것이 바로 강천이었던 데다가,
발그레 ―
무엇보다 진심으로 자신의 아픔에 공감해주어 무의식 속에서 그녀의 전신을 짓누르고 있던 마음의 짐을 덜어준 것도 그였으니까 말이다.
사실 마력적인 활용에 대한 가르침보다도 심리적인 부분이 개선된 것이 그녀가 급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큰 발판이었다.
‘또 만나기로 했으니까……!’
서아는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빨리 성장해버린 강천이 조기졸업을 하는 바람에 실전반 수업 중 둘만의 던전 데이트(?)가 끝나버렸으니까.
하지만 시기를 뒤로 밀었을 뿐,
“히히.”
사실상 거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 사이는 이미 썸 이상 연인 미만의 그 어디쯤 되는 사이였다.
서아가 뭔가 바보같이 웃고 있자,
스윽 ―
그녀의 표정을 빤히 바라보던 이혜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표정이 지나치게 좋은데?”
“…네, 네?”
서아는 뭔가 들키면 안 될 것을 들킨 것 같은 느낌에 크게 당황했다.
“뭐야, 사관학교에서 애인이라도 만들어온 거야?”
“무, 무슨! 아, 아니에요!”
서아가 이마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려대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흐음…….”
이혜지는 이미 뭔가 알아챘다는 듯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사실 이런 거에 또 눈치가 빠르거든. 그래 뭐, 모른 척 해줄게!”
“어, 언니! 정말 아니라고요!”
“그래그래~ 호호홋! 서아 다 컸네?”
서아가 17살일 때부터 그녀를 봐왔던 이혜지는 뭔가 어린 막냇동생을 키운 듯한 느낌에 상당히 뿌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쪽으로 눈치가 빠르다고? 아닌 것 같은데…….’
옆에서 가만히 두 여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천용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이혜지를 바라보았다.
부길드장, 민호성이 벌써 수년째 좋아하는 티를 팍팍 내며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걸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으니까.
‘전형적으로 다른 사람 일에만 눈치가 빠른 케이스인가.’
그의 고개가 미세하게 절레절레 흔들렸다.
“서아야. 언니한테 상담할 거 있으면 상담해! 언니가 그런 거 또 잘하거든!”
“어, 언니! 아니라구요!”
‘힘내라, 호성아.’
새삼 여러모로 민호성이 불쌍하게 느껴진 김천용이었다.
* * *
한편, 주작길드.
주작길드는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 속에 빠져있었다.
“마스터는 아직도 연락 안 돼?”
“안 됩니다!”
“부길드장님은?!”
“역시 안 됩니다!”
띠리리리리 ―
띠리리리리 ―
주작길드 건물 전체에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다.
모두 여당 정치인들과 산하 길드 측에서 걸려 오는 전화였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어디 계신 지 잘…….”
“아니, 정말 모른다니까요? 예? 아, 아니 소리를 지른 게 아니라…….”
“아, 대붕길드장님? 그쪽도 안 됩니까? 예… 저희도 지금 연락이 안 되어가지고…….”
아비규환, 아수라장, 난장판.
난잡하다는 뜻이 담긴 단어라면 그 어떤 단어를 가져다 붙여도 잘 어울릴만한 풍경이 주작길드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뭐라고요? 야 이 새끼야! 너네가 주작 없이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애?”
콰아앙!
정원준이 로비 바닥을 발로 크게 구르며 벌떡 일어섰다.
현재 주작길드의 임시 리더를 맡고 있는 정원준.
도명조와 이화연이 자리를 비우자, 그다음 가는 강자인 정원준이 자연스레 일시적으로 리더 자리를 꿰찬 것이었다.
물론,
“… 아니지! 혼자 살기는 무슨! 그 전에 너희는 내 손에 뒤질 줄 알아! 알았어?!”
그럴만한 능력은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주작길드 전체가 혼란에 물들어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그때,
“워, 원준아!”
타다닥!
주작길드의 또 다른 A급 헌터가 다급하게 정원준을 향해 뛰어왔다.
“…끊어! 목 닦고 기다려, 이 배신자 새끼야!”
뚝 ―
성질을 있는 대로 쏟아내며 거칠게 전화를 끊은 정원준.
그의 시선이 방금 전 그를 부른 헌터에게로 향했다.
“…무슨 일이야?”
이래저래 능력도 안 되는데 주작길드나 되는 대형길드의 리더를 맡아버린 정원준은 묘하게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끼며 인상을 썼다.
“큰일이다! 진짜로 큰일이야!”
뭔가 나쁜 소식을 가지고 온 듯한 주작의 A급 헌터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두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뭐, 뭐야? 뭔데 그래?”
그런 그의 반응에 급 불안해진 정원준이 말을 살짝 더듬었다.
A급 헌터가 벌벌 떨 만한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
적어도 S급 헌터나 세계급 헌터가 냅다 쳐들어오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중국의 류하오가 주작길드로 오고 있대!”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생겼다.
“…뭐…? 아, 아니, 그놈이 왜!!!”
그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정원준의 두 눈에 커다란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흐으으음~ 한국 공기는 훨씬 더 맑네.”
인천 공항에서 나온 올백머리의 한 남자가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스으으으읍… 후우우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는 남자.
씨익 ―
만족한 듯 미소를 짓는 남자의 얼굴은 어딘가 묘하게 섬뜩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가자.”
“예.”
드르르륵 ―
올백머리 남자의 뒤에 서 있던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커다란 캐리어 가방 2개를 끌고 올백머리 남자의 뒤를 따라나섰다.
“음… 근데 어디로 가야 하지?”
“…도명조에게서 답장은 왔습니까?”
“아니.”
“…그럼 주작길드 본사로 바로 가시지요. 거기를 뒤집으면 뭐라도 좀 나오지 않겠습니까?”
“오오.”
정장 남자의 말에 올백머리 남자가 입을 오므리며 오오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난 이래서 왕 비서가 좋다니까? 알아서 플랜이 딱딱 있잖아.”
“과찬이십니다.”
“…이런 딱딱한 건 좀 별로지만 말이야.”
“죄송합니다.”
“아우~ 뭔 농담도 못 해.”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택시 정류장에 도착한 두 남자.
“어디로 가셔~? 혹시 외국분이신가? 웨얼 알 유 고우잉~?”
선두에서 대기하고 있던 택시기사 한 분이 살짝 어색한 영어로 두 남자를 맞이해주었다.
“Jujak guild… or Phoenix guild?(주작길드… 아니면 봉황 길드?)”
왕 비서는 택시 트렁크에 짐을 넣으며 택시기사에게 대답했다.
“주작길드 아니면 피닉스 길드? 둘 다 같은 말 아닌감? 뭐 어쨌든 주작길드로 가달라는 거 맞습니까?”
“Jujak… yes. Jujak please.(주작… 맞아요. 주작으로 가주세요.)”
“커허허헛! 주작 플리즈라고 하니까 뭔가 웃기네. 주작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커허허헛!”
탁!
두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실없는 농담을 계속 혼자 중얼거리며 웃음을 터뜨리던 택시 기사가 앞자리에 타고,
탁! 탁!
올백머리 남자와 왕 비서도 택시 뒷자리에 탑승했다.
“…How long?(…얼마나 걸려요?)”
올백머리 남자의 물음에.
“음… 어바웃 언 아워?”
택시 기사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며 대답해주었다.
한 시간 정도 걸린다는 택시 기사의 말에,
“왕 비서, 나 눈 좀 붙일 테니 도착하면 깨워줘.”
“알겠습니다. 주무십시오.”
올배머리 남자는 품에서 수면 안대 하나를 꺼내더니 택시 좌석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쿠우…….”
수면 안대를 쓰기가 무섭게 잠에 빠져드는 올백머리 남자.
그 모습을 본 택시 기사는 여러 의미로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허어… 엄청 빨리 잠드시는구만. 그나저나 중국 분들이신가 보네? 관광 오셨나 보네? 포 투어? 웰컴 투 코리……!”
넉살 좋은 택시 기사가 계속해서 말을 붙여보려 했지만,
“…Be quiet. Let’s go.(…조용히 하세요. 얼른 갑시다.)”
왕 비서는 그런 택시 기사의 말을 끊어내며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어… 오, 오케이.”
상당히 차갑고도 단호한 정장 남자의 대응에 머쓱해진 택시 기사는 입을 꾹 닫고 차를 몰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 !
빠르게 출발하는 택시 기사.
그러나,
“Hey, drive softly. ok? You understand? Softly and smoothly.(이봐, 부드럽게 운전해. 알았어? 이해했지? 부드럽고 매끄럽게.)”
“오, 오케이…….”
곧바로 태클을 거는 정장 남자의 굵은 목소리에 택시 기사는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부드럽게 운전하기 시작했다.
씨익 ―
왕 비서의 칼 같은 주문에 금방 잠이 들었던 올백머리의 남자는 그 주문을 들었는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중국 8대 길드의 일각이자 S급 헌터인 류하오와 그의 비서이자 A급 헌터인 왕웨이가,
부우우웅 ―
한국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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