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욕심 부리다 배가 터짐 (3)
“류하오가 온대!”
“류하오? 그 중국의 S급 헌터? 걔가 여길 왜 와!”
“시X! 이거 정부 짓이야! 류하오 그 새끼랑 여당이랑 연줄이 있잖아!”
“미, 미친! 그럼 우리 조지려고 오는 거야?”
“어, 어떻게 하지? 길드장이랑 부길드장, 다 없는데!”
“원준아! 어떡하냐!”
안 그래도 난장판이던 주작길드 내부가 더욱더 소란스러워졌다.
으드득!
로비 의자에 앉아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있던 정원준.
‘길드장님과 부길드장님이 우릴 버렸을 리가 없어. 뭔가 사정이 있을 거다.’
둘 다 자존심 하나만큼은 세계 제일이라고 봐도 무방한 사람들이었다.
그 자존심 때문이라도 자신들이 일군 이 길드를 이렇게 어이없게 버리지는 않을 터.
애초에 전 제1야당이 날아가기 직전, 주작길드와 손을 잡았다는 증거나 기록들을 전부 말소시켰기에 이번 사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주작길드였다.
물론 가장 탄탄한 연줄이었던 제1야당이 날아간 탓에 주작의 입지가 휘청이긴 했지만, 다행히 얼마 전 도명조가 직접 김천용과 정호백을 압도적으로 이긴 덕에 약점이 생긴 청룡과 백호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런 상황에 도명조와 이화연이 주작을 버릴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게 정원준의 생각이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다! 나는 내가 맡은 일만 잘하면 돼!’
언젠가 도명조가 자신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원준아. 성질만 좀 죽여라, 제발. 그래야 내가 없을 때 널 믿고 뭔가를 맡길 수 있지 않겠냐?
―마스터, 저는 싸우는 것 외에는 딱히 자신 있는 게 없습니다. 전투 외의 일을 제게 맡기려고 하지 마십쇼. 그리고 마스터가 자리를 비우면 부마스터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나랑 화연이가 없을 경우가 생길 수도 있잖아. 그럼 그땐 3인자인 네가 주작을 이끌어줘야 해. 헌터 사회는 강한 사람의 말이 곧 법이니까. 그리고 우리 애들이 자기들보다 약한 놈 말을 듣겠냐?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킥킥킥!
―…나 진지해, 이 새끼야! 제발 정신 좀 차려!
―크억! 마, 마스터! 말로 합시다! 말로!
정원준은 가만히 그때를 회상해보았다.
‘분명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예상하신 거다.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신 거고.’
정원준의 눈빛이 점차 결연해지기 시작했다.
―기억해라 정원준. 나와 화연이가 자리를 비울 경우… 이끄는 게 힘들다면 버티기라도 해. 두 사람 중 하나가 돌아올 때까지.
―…어디 여행 가십니까?
―야 이 개X끼야! 좀 진지하게 들어!
―아아아아악!
스윽 ―
바닥을 향해 숙이고 있던 정원준의 고개가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이마 밑으로 한쪽만 내려온 그의 적갈색 머리카락이 그의 반쪽 시야를 살짝 가렸다.
‘그래, 버틴다. 길드를 이끌 생각하지 마라. 어차피 난 그럴 능력도 안 되니까. 버티는 거에만 집중하는 거야.’
결심을 내린 정원준이 고개를 쳐들고 크게 외쳤다.
“다들 잘 들어!”
“……!”
3인자이자 임시 리더인 정원준의 외침에 소란스러웠던 주작길드 내부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솔직히 그다지 미덥지는 못하지만, 무력 하나만큼은 3인자를 자처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정원준.
거대한 단체나 무리를 이끌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는 부족하더라도,
“우리는 어차피 두 사람이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갔는지 둘 다 모르잖아!”
그는 적어도 골목대장 수준 정도의 카리스마는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거대한 주작길드라고는 하지만,
“류하오가 오면 우리는 일단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리고 최대한 부딪히지 말고 피해! 알아들었냐 짜식들아!”
잠시뿐이라면 지탱이 가능할 수도 있으리라.
“알았다!”
“짜식! 이제야 임시 리더같은 말을 하는구나!”
정원준이 그나마 정신을 차리자 혼란의 도가니였던 주작길드 내부는 조금이나마 분위기가 정리되었다.
띠리리리 ―
띠리리리 ―
하지만 연신 계속 울리고 있는 전화들.
“전화선 다 뽑아! 이제 전화는 받지 않는다!”
전화벨 소리에 정신이 사나워진 정원준의 지시에,
툭 ― 투둑 ―
주작길드원들은 곧바로 전화선이란 전화선은 전부 다 뽑아버렸다.
“…….”
“…….”
그제야 조금 차분해진 주작길드.
“후우…….”
주작길드원들은 그렇게 잠깐이나마 차분해진 그 시간 동안 잔뜩 예민해진 신경을 가라앉히며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불과 몇 분 뒤,
콰아아앙!
“도명조 어딨니~?”
불청객이 등장했다.
* * *
“……!”
빠드득……!
사아아아아 ―
주작길드 신사옥 안에 스산하고 무거운 공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돌연 주작길드 안으로 쳐들어온 두 명의 남자와 대치한 주작길드원들은,
꿀꺽 ―
긴장했는지 저마다 연신 목 뒤로 마른침을 넘기고 있었다.
“응? 도명조 어딨냐고~?”
올백머리의 남자, 류하오가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류하오가 중국어로 말하긴 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마력을 각성한 헌터였기에 중국어를 모르는 이들도 그의 말을 알아듣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류하오 씨.”
임시 리더인 정원준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무리 거만하고 자존심 강한 정원준이라도 류하오 앞에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중국의 S급 헌터였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김천용과는 경우가 달랐다.
신사적인 성정으로 정평이 나 있는 김천용과는 다르게,
“어… 누구더라?”
눈앞의 이 중국인은 미친놈으로 소문이 나 있었으니까.
주변에 일반인 목격자만 없다면 언제 어디서든 살인을 저지르는 이가 바로 류하오였다.
이화연과 정호백을 넘어선 그의 광기는 중국 정부의 힘을 등에 업고 날개까지 달고 날아다닌 지 오래.
한국의 A급 헌터만큼이나 많은 중국의 S급 헌터 중에서도 가장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인물로 꼽히는 류하오였다.
그의 광기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마 헌터의 면죄 특권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이들을 꼽아보라면 류하오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터.
‘여기는 모두 헌터들뿐… 놈이 충분히 살인까지도 저지를 수 있는 상황이다.’
주륵 ―
정원준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절대로 못 이겨.’
백호길드의 구정태 하나도 감당하지 못해 전원이 패배했던 주작길드였다.
그만큼 S급과 A급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
아무리 정원준이 준 S급에 달하는 마력 수치를 쌓아 올렸다고는 해도 결국은 3차 각성을 이루지 못하는 이상 A급 나부랭이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그 한 단계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꼈던 정원준은 일단은 어색하게나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정원준이라고 합니다. 주작길드 서열 3위이지요.”
하지만 그 특유의 오만한 성정 때문에 살면서 누군가에게 제대로 숙여본 적이 없는 정원준이었다.
도명조와 이화연 앞에서도 딱 기본만 지켰을 뿐 종종 선을 넘다 맞기도 했던 그가,
“류하오 씨를 대하는 데에 부족함은 없을 것입니다. 길드 내 같은 서열 3위 아닙니까? 하하하.”
누군가의 비위를 제대로 맞출 수 있을 리 없었다.
“……!”
농담이랍시고 던진 정원준의 불필요한 발언에 놀란 주작길드원들의 표정에 저마다 경악이 깃들었다.
그리고,
“…뭐?”
류하오의 눈썹이 거칠게 꿈틀댔다.
서열 3위.
류하오가 굉장히 싫어하는 말 중 하나였으니까.
다른 나라였다면 적어도 대형 길드의 길드장, 나아가 나라를 대표하는 헌터가 될 수도 있을 정도의 강함을 손에 넣은 류하오였지만,
“이 새끼가……!”
세계 최대의 헌터 수를 자랑하고 S급에 이른 헌터들마저 웬만한 선진국의 A급 헌터들만큼이나 넘쳐나는 중국 소속인 탓에 길드 내 3인자의 자리에 그친 그였으니까.
류하오가 발끈하여 손을 들어 올리려는 그때,
짜악!
류하오의 한걸음 뒤에 서 있던 왕 비서, 왕웨이가 먼저 정원준의 뺨을 날렸다.
“……!”
진심으로 비위를 맞췄다고 생각했던 정원준은 두 눈을 크게 뜨며 갑자기 불에 데인 듯 얼얼해진 볼을 붙잡았다.
“네놈… 감히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왕 비서가 두 눈을 번뜩이며 정원준을 노려보았다.
왕 비서 딴에는 일을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 일부러 나선 것이었다.
류하오는 한번 일을 벌이면 그 끝을 모르고 계속 나아갔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빠드드드득 ― !
더러운 성질머리만큼은 정원준이 류하오를 가뿐히 뛰어넘는다는 것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눈치 빠른 주작길드 내 4인자, A급 헌터 박기훈이 정원준을 뒤로 물리며 허리를 급히 숙였다.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저 멍청한 놈 진짜! 누구 다 죽일 일 있냐!’
정원준의 분노 게이지가 지금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걸 말이다.
힘이 없으면 숙일 줄도 아는 것이 바로 이 시대의 생존 법칙.
그러나 혈기왕성하고 제멋대로 살아온 정원준에게는 그런 능력이 심각할 정도로 결여되어 있었다.
아무리 신사적인 성격이라지만 대한민국 최강자라 불렸던 김천용에게도 겁 없이 도발하던 정원준이다.
아무리 중국의 헌터라지만 결국 똑같은 S급인 류하오에게도 똑같은 짓을 벌이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동안은 도명조가 그의 뒤를 봐주었다지만, 지금 그는 이 자리에 없었다.
호가호위할 수 없는 여우는 다른 산의 맹수에게 먹힐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시대의 현실이었다.
그런 멍청한 여우를 살리기 위해,
“저놈이 무식해서 그런 겁니다! 제 딴에는 류하오 님의 비위를 맞추려다 일어난 사고이니 드넓은 대륙의 헌터다운 넓은 아량으로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족제비는 주저없이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
류하오는 말없이 그런 박기훈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왕 비서는 그런 류하오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풀리신 것 같군.’
박기훈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바로 ‘대륙의 헌터’를 언급했으니까.
류하오는 중국의 헌터라 3인자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불만을 느끼는 동시에 중화사상으로 인해 중국인으로서 자부심도 대단했으니까.
“흐음~”
기분이 다시 좋아진 류하오가 턱을 쓰다듬었다.
“좋아. 용서하지. 난 대륙만큼이나 아량이 넓으니까 말이야. 대신!”
척 ―
턱을 쓰다듬던 류하오가 검지손가락으로 박기훈을 가리켰다.
“도명조를 데려와. 도명조를 데려오면 전부 용서해주지.”
“……!”
박기훈의 얼굴 전체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들어 갔다.
정말 몰랐으니까.
알았다면 그냥 바로 냅다 위치를 알려줬을 것이었다.
“저희도 마스터가 어디 있는지는 잘…….”
“아, 몰라?”
덥썩 ―
순식간에 짓쳐들어온 류하오의 왼손이 박기훈의 멱살을 쥐었다.
꾸구국 ―
“크윽!”
냅다 박기훈의 멱살을 쥐고 들어 올리는 류하오.
그리고 그의 오른손이 그의 어깨 뒤로 넘어갔다.
“그럼 알 때까지 맞아야지.”
짜악!
박기훈의 시야에 불이 번쩍하고 튀어 올랐다.
단순한 싸대기였지만,
짜악! 짜악! 짜악!
맞을 때마다 박기훈은 마치 눈앞에 섬광탄이라도 터지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띠이이이이이 ―
몇 대 맞지도 않았음에도 이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자식 은근히 마력으로 강화를 했어!’
자가 회복은 쓸 수 없었다.
누가 봐도 협박하여 굴복시키려는 분위기에서 자가 회복을 쓴다는 건 그에게 대항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꽉 ―
박기훈은 어쩔 수 없이 이를 꽉 깨문 채,
짜악! 짜악! 짜악!
순순히 류하오의 따귀 세례를 받아들였다.
“기훈이 형……!”
후욱 ― ! 후욱 ― !
다른 길드원들의 손에 의해 뒤로 물러났던 정원준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워, 원준아 참아! 참아야 한다!”
“임마, 성질 죽여! 미쳤어? 상대는 류하오라고!”
정원준보다는 약하지만, 나이는 많은 선배 헌터들이 필사적으로 그를 붙들었다.
정원준이 달려들어 류하오의 심기를 거스르는 순간, 주작길드는 몰살을 각오해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몰라? 아직도 몰라? 이래도 몰라?”
짜악! 짜악! 짜악!
후두둑 ― 투둑 ―
박기훈의 볼이 완전히 터져나갔다.
짜악! 짜악!
따귀를 맞을 때마다 튀어 오르는 붉은 피가 어느새 주작길드 신사옥의 바닥을 주작의 불꽃처럼 붉게 적시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도 나서지 못한 채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짜아악!
오로지 박기훈이 따귀 맞는 소리만이 주작길드 신사옥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선배 헌터들의 만류에 겨우겨우 분노를 참아내고 있던 정원준.
“이… 이… 이이이이……!”
하지만 그것도 한계였는지 그의 두 눈이 서서히 뒤집히고 있었다.
“워, 원준아! 진짜 안 돼!”
길드원들을 뿌리치려는 정원준의 몸부림에 그의 힘을 감당하지 못한 선배 헌터들이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파악!
어느새 길드원들로부터 자유의 몸이 된 정원준.
“이 짱개 새……!”
그렇게 정원준이 이성을 잃고 류하오에게 달려들려는 그때,
“그만하지?”
류하오가 부수고 들어온 주작길드 출입구 쪽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정체는 바로,
“부길드장님!”
주작길드의 부길드장, 이화연이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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