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113화 (113/300)

113화. 유해동물을 퇴치함 (1)

폭행치사 25회, 살인미수 1회, 단순폭행 12회, 기물파손 108회, 기타 경범죄 32회.

총 178회에 이르는 범죄 행각들.

이 모든 것이 정원준 단 한 사람이 저지른 일들이었다.

심지어 여기에 기재되지 않은 범죄들은 더욱더 많을 터.

사람 같지도 않은 미친 광인의 행적에 놀란 태운은 크게 확장된 두 눈으로 손까지 덜덜 떨며 박 경장을 쳐다보았다.

“이… 이게 정말 전부 사실이란 말입니까?”

박 경장은 어찌 보면 경찰을 대표해서 이곳에 온 것인 만큼 면목이 없는 듯 고개를 숙였다.

“…예. 그렇습니다. 경찰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부끄럽게 생각…….”

“…아니, 아닙니다. 헌터 범죄는 엄연히 협회의 일이었으니까요…. 이건 협회의 잘못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폭행치사가 25회에 살인미수까지 있는데도 버젓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너무나 커다란 충격을 받은 태운.

하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99명을 성폭행하고 10명 이상을 죽인 임인범도 버젓이 멀쩡하게 길드 마스터 노릇을 하고 있지 않았는가?

10번이 넘는 경찰 수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태운의 머릿속엔 이 순간 단 한 가지 생각만이 가득 차고 있었다.

차라리 자신에게 이런 힘이 주어져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이다.

자신이 헌터가 되지 않았다면 정원준이나 임인범 같은 녀석들이 앞으로도 계속 활개를 치고 다녔을 터.

태운은 이제라도 이런 녀석들을 처단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정원준이 한 일들에 대한 증거물들도 혹시 경찰에서 가지고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사건에 대해 기록만 해놓았을 뿐 증거는 수집하지 않았더라고요. 어차피 헌터라 별 처벌을 내리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예상했던 범위니까요. 어쩔… 수 없지요.”

벌떡!

태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어디 가시려고요?”

갑자기 일어나는 태운의 행동에 놀란 박 경장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증거 찾으러 갑니다. 전부 다 찾을 필요도 없어요. 폭행치사… 폭행치사 관련 증거 1건만 나와도 이 새끼 족칠 수 있으니까.”

화르륵 ― !

태운의 두 눈에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태운은 박 경장과 함께 정원준이 폭행치사 사건을 일으켰던 장소의 CCTV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자료 안에는 정원준이 사건을 벌인 장소나 시간 등은 기록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죄송합니다만 3년 전까지는…….”

“저거 모형이라서…….”

“2년 전 기록이요? 그게 아직까지 남아있으려나…….”

경찰이 가지고 있는 정원준의 폭행치사 기록은 대부분 2~3년 전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CCTV 기록이 없었다.

탁 ―

“어, 어떡하죠?”

당황한 박 경장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차 문을 닫고 태운의 눈치를 살폈다.

거의 하루종일 25회나 되는 폭행치사 사건 관련 장소를 전부 돌아다녔지만, 실마리라도 될 수 있는 CCTV 기록들을 하나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가만히 생각에 잠긴 듯 조수석에 앉아 말없이 앉아있는 태운.

그러나 가면을 쓴 채 가만히 있으니 박 경장은 태운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의 기분을 제대로 짐작할 수 없는 박 경장의 입장에선 태운의 그런 침묵은 심장을 옥죄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달달달.

잔뜩 긴장한 박 경장의 심신이 위태로워질 찰나,

“…박 경장님.”

몇 시간보다 훨씬 더 길었던 수 분의 침묵을 깨고 태운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정리한 자료가 조금이라도 있으니 수사기록도 남아있는 거겠죠?”

“아, 예! 자료들은 제가 간략하게 보시기 편하게 정리한 것들이고 수사기록이나 사건기록도 물론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아서 사실 제가 정리한 것들이 거의 전부이긴 합니다만…….”

박 경장의 우려에도 태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한번 볼 수 있겠죠?”

“무, 물론입니다!”

부웅 ―

태운을 태운 박 경장의 차가 부드럽게 박 경장의 근무지인 왕십리로 향하기 시작했다.

스윽 ―

하얀 가면을 쓴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조수석 창문 밖을 바라보는 태운.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에는 일정 간격마다 서 있는 가로등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쉭 ― 쉭 ― 쉭 ―

차량이 가로등을 지나쳐 갈 때마다 태운의 가면 위로 비친 불빛이 스쳐 지나갔다.

“…….”

문득 피곤함을 느낀 태운은,

스륵 ―

가면 뒤에 얼굴을 숨긴 채 잠시 눈을 감고 피로를 풀어보았다.

* * *

끼익 ― !

왕십리역 근처에 위치한 한양지구대에 도착한 두 사람.

타다닥!

박 경장은 지구대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정원준에 대한 사건기록을 조회하기 시작했다.

“여기 있습니다.”

박 경장은 정원준이 벌인 폭행치사와 관련된 사건기록 화면을 켜둔 채 태운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드륵 ― 드륵 ―

박 경장의 자리에 앉아 마우스 휠을 돌리며 화면을 천천히 내리는 태운.

화면 속 정원준에 대한 사건기록을 읽는 태운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휙 ― 휘릭 ― !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한 태운의 두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화면 여기저기를 탐독했다.

그리고 잠시 후.

“…찾았다.”

“예? 뭘 찾으셨습니까?”

태운의 중얼거림을 들은 박 경장이 고개를 스윽 내밀었다.

“여기 보이십니까?”

태운이 화면에 나타나 있는 사건기록의 끝자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마력에 감염된 피해자는 XX대 병원으로 옮겨져… 아……!”

박 경장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자신의 손바닥을 탁 쳤다.

“다른 사건기록도 전부 띄워주실 수 있으십니까? 병원 리스트 좀 쫙 만들어보죠.”

씨익 ―

그제야 조금 답답함이 풀린 듯 가면 뒤 태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쳐졌다.

“그럼 이제 유족들의 진술만 더해지면 결정적인 증거가 되겠군요!”

끄덕 ―

“그렇지요. 유족분들과는 헌피연에 요청하면 금방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대부분의 피해자 유족분들이 헌피연에 가입되어 있으시니까요.”

태운은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태운의 속이 조금이나마 시원해졌음을 안 박 경장은 반색하며 말했다.

“제가 전부 찾아서 작성해드리겠습니다! 특… 아니, 죄송합니다. 이게 습관이 되어서……. 코드 제로 님은 조금 쉬시지요. 아까 보니 많이 피곤해 보이시던데…….”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딸깍 ―

스슥 ― 스스슥 ―

태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면지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리고는,

저벅 ― 저벅 ―

지구대 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응? 어디 가십니까? 조금 쉬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사건기록을 막 뒤지려던 박 경장은 갑자기 지구대 밖으로 나가려는 태운의 행동에 살짝 당황하여 급히 질문을 던졌다.

“아.”

빙글 ―

태운은 살짝 뒤를 돌아보며 박 경장의 물음에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혹시 유해동물을 잡으려면 뭐가 필요한지 아십니까?”

“예…? 유해동물이요…? 어… 덫?”

싱긋 ―

태운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유해동물이 사는 곳(증거)을 발견했고 유해동물을 잡을 덫(헌터법)이 준비되었다면, 이젠 놈을 유인해내야겠지요.”

박 경장에게 방금 전 무언가를 적은 이면지를 흔들어 보였다.

“미끼 좀 풀고 오겠습니다. 얼마 안 걸릴 테니 걱정 마세요.”

딸랑 ―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지구대를 나가버리는 태운.

그런 태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슨 말씀을 하신 건지 알아들으셨어요?”

“어… 아니요. 저도 잘…….”

박 경장은 지구대 내 다른 경찰들과 함께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주작길드 신사옥.

신사옥 내부는 그야말로 버려진 건물처럼 고요했다.

―한동안은 그냥 가만히 있어. 던전 토벌도 나가지 말고. 그냥 눈에 띄지 말란 말이야. 알았어? 좀만 버텨봐. 곧 명조 오빠가 지시를 내릴 거니까.

왕웨이를 죽여 증거까지 모두 인멸한 주작 길드원들은 이화연의 말에 따라 던전 레이드도 뛰지 않고 자택에만 머물고 있던 탓이었다.

다들 재산 하나만큼은 이미 대한민국 최상위층이었기에 돈이 부족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각자 집에서 오랜만에 얻게 된 뜻밖의 장기 휴가(?)를 즐기는 길드원들.

그러나 이화연에게서 특별 지시를 받은 정원준은 매일 길드 신사옥에 죽치고 앉아있었다.

―너는 맨날 여기 오면서 내부 청소 좀 하고 그래. 그 뭐냐… 그래, 경비 선다고 생각해. 9 to 6… 아니, 그냥 여기서 살아. 알았어?

―겨, 경비요? 여기서 살라고요? 아니 누님! 왜 저만……!

―너는 여유로워지면 맨날 사고만 치잖아! 원격 CCTV로 확인하고 있을 거니까 화장실 제외하고 잠시라도 안 보이면 죽여버린다, 진짜. 최소한 명조 오빠한테 말해서 진짜로 주작에서 제명시켜 버릴 거니까 알아서 잘 처신해. 알았어?!

―아니, 누님! 진짜 너무하신……!

―대답!

―하아… 알았다고요.

“씨X…….”

고요한 신사옥 내부, 길드 1층 로비에 홀로 드러누워 있는 정원준에 입에서 절로 욕설이 새어 나왔다.

“아니 떠오르는 신성에 다크호스인 나 같은 인재를 귀하게 대접해주지는 못할망정…….”

정원준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연신 계속해서 궁시렁거렸다.

하지만 정원준도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이 정도로 키워준 건 주작길드이며, 자신이 벌이는 갖가지 사고들을 커버해주는 것도 전부 주작길드였기에 가능했다는 걸 말이다.

아무리 헌터의 세상이라지만 정원준의 행적들은 다른 4대 길드들도 커버하지 못할 만큼 엄청나게 화려했으니까.

최소한 임인범은 그동안 현장이 발각된 경우는 없었지만, 정원준은 범행 현장이 발각된 적도 몇 번 있었으니 그 전적의 화려함은 이루 말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하아… 화려했던 옛날이여…….”

정원준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인터넷에는 무슨 헌터법이니 코스모스니 하는 것들이 생겨나며 헌터들이 조사를 받고 있다는 뉴스만이 가득 떠 있었다.

일단은 지금 법 앞에 떳떳한 헌터들이 자발적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기에 아직 실제로 뒤가 구린 헌터들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

사람의 그간의 행적을 파악한다는 것이 꽤나 오래 걸리는 일이었으므로 한동안은 지금 몰린 헌터들을 수사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테지만, 언젠가 결국 정원준처럼 뒤가 구린 이들의 차례도 다가올 것이었다.

‘이게 전부 다 이 특임반장이라는 놈 때문이잖아……!’

헌터들의 해외 출국금지까지 선포되어 하늘길과 바닷길이 전부 막혀 해외로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

정원준 말고도 주작길드원 전원은 거의 대여섯 가지씩 뒤가 구린 구석이 있었으므로 현재 해외 어딘가에 있는 주작길드장인 도명조가 해외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정원준으로서는 그저 손가락을 빨며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한 놈 때문에 몇 명이 피해를 보는 거야?”

정원준은 반성하는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이 궁시렁거리며 태운의 욕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S급 이상이라는 특임반장… 이제는 코드 제로가 된 그에게 덤빌 용기는 나지 않았기에 혼잣말로 욕하는 것이 전부.

“하아…….”

새삼 자신의 신세가 처량해졌다고 생각한 정원준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그때,

탕 ―

누군가 주작길드 신사옥 1층 창문을 손바닥으로 세게 치고 사라졌다.

“아니, 어떤 미친 새끼가 감히…….”

안 그래도 처량한 신세에 웬 놈까지 주작길드를 무시한다고 느낀 정원준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자리에서 일어나 누군가 두드린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응……?”

창문에 붙어있는 웬 종이 하나.

“아씨, 왜 전단지를 창문에다가…….”

누군가 전단지를 붙이고 갔다고 생각한 정원준은 그 전단지를 떼어내기 위해 길드 밖으로 나가 그 창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창문에 붙은 그 종이의 내용을 본 순간,

“……!”

그는 떨리는 자신의 두 동공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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