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유해동물을 퇴치함 (2)
{누, 누님… 아니, 부길드장님! 길드장님께서는 아직 소식이 없는 겁니까?}
“…갑자기 웬 재촉이야. 미쳤어?”
다급한 정원준의 전화에 다른 길드원들과 마찬가지로 자택에서 대기 중이던 이화연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 잠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재촉 전화를 한 정원준이 한심하게 느껴졌으니까.
실력은 있지만, 실력 이상으로 사고를 쳐대는 정원준은 주작길드 입장에서 그야말로 계륵이었다.
가지고 있자니 피곤하지만 그렇다고 놔버리기엔 또 아까운 인재.
그게 바로 정원준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
어린애도 아니고 아직 이화연이 말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멀었느냐며 독촉 전화나 하고 있는 이 꼬라지를 보라.
그것도 감히 부길드장에게 말이다.
“정원준…! 얌전히 좀 있어라. 때 되면 어련히 오빠가 연락을 줬겠지! 똥 마려운 개새끼마냥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화연은 정원준의 행동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마치 이번 기회에 지금까지 쌓였던 정원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토해내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빨리 뭐라도 연락을 주셔야 합니다! 저 더 이상은 못 기다립니다! 저 죽는다고요!}
정원준은 똥 마려운 개새끼가 맞았다.
아니, 차라리 똥 마려운 개새끼였다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 처지를 넘어 무서운 사냥꾼에게 쫓기는 토끼 신세가 되어버린 상황이었으니까.
“…대체 무슨 일이야?”
그 어느 때보다도 정말 정원준의 심각한 목소리에,
사아아아 ―
전화를 받던 이화연의 표정이 차갑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 * *
―잠시만 기다려봐. 오빠한테 바로 연락해볼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일단 길드 안에 얌전히 있어. 굳이 경고했다는 건 지금 당장 한다는 건 아닐 테니까.
달달달달달……!
신사옥에 홀로 앉아있는 정원준의 팔다리가 엄동설한에 발가벗겨져 내쫓긴 빚쟁이처럼 초라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 모든 건 아까 전 누군가 창문에 붙이고 간 종이의 적힌 내용 때문이었다.
힐끔 ―
정원준의 눈동자가 그의 옆에 놓여있는 종이를 곁눈질로 살짝 다시 쳐다보았다.
[헌터법 제 2조 2항 ― 고의적으로 선량한 일반인을 마력에 휘말리게 했을 경우, 무조건 사형에 처한다.]
[증거 준비는 완료했다. 넌 이제 끝났어.]
헌터법의 내용이야 정원준도 알고 있었다.
입법 예고를 확인했으니까.
하지만 여러 조항이 있는 헌터법 중에서 하필 저 문장을 골라 자신에게 전달했다는 것은,
‘정말로 남아있는 증거를 찾은 거야!’
자신이 벌려놓은 짓 중 어딘가에 남아있는 증거를 찾은 것이 분명했다.
너무 많이 저질러놔서 어떤 범죄가 걸렸는지 특정할 수조차 없는 상황.
하지만 무엇보다도 분명한 것은,
‘하필 마력을 썼던 증거를 찾은 게 분명해……!’
이대로면 자신의 사형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 메시지를 남긴 이유는 어차피 해외 도피길도 막힌 마당에 꼼짝없이 사형당하기 전까지 공포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라는 의도일 터.
꽈아악 ― !
정원준은 떨리는 팔다리를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까득! 까득!
초조했는지 손톱까지 물어뜯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일본? 중국? 아니면 저 멀리 미국? 유럽? 아니면 아무도 찾지 못하게 남미? 아프리카? 아니 출국이 막혔는데? 무, 무인도라도 가야 하나?”
헌터가 된 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죽음의 공포.
상대가 김천용이나 구정태, 류하오일 때에도 느끼지 못한 차원이 다른 공포가 정원준의 전신을 옭아맸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잡으러 오는 자가 전 특임반장이자 이제는 대헌터진압 뭐시기라는 무시무시한 명칭까지 달게 된 그 하얀 가면의 남자가 아니던가?
그 류하오마저 그를 잡으러 갔다 현재 생사조차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자신은 절대로 당해낼 수 없는 상대.
‘나, 난 아직 죽을 수 없다고!’
벅 ― 벅 ―
정원준의 손이 본능적으로 사타구니를 긁어대기 시작했다.
바지 속 정원준의 그곳에는,
스슥 ― 슥 ―
커다란 배 형태의 문양이 정원준의 손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노아즈 아크에 들어온 지 어언 3년.
그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실적을 인정받아 방주의 자리에 올라 권능을 하사받는다는 목표.
그래서 오히려 더 활개를 치고 다녔던 것도 있었다.
어차피 자신은 실적을 쌓아야 하고 자신이 일을 벌여봤자 결국은 길드가 해결해줄 것을 알았으니까.
하지만 최근에는 방주 중 하나인 도명조가 부자연스러움에 대해 경고했기에 자중했을 뿐이었다.
‘아직… 아직 많이 못 죽였는데……!’
그는 여전히 타인의 생명을 경시하고 헌터 선민사상에 취한 광인이었다.
* * *
―마력에 적응을 못 해? 그럼 죽어야지 별 수 있나?
과거 그가 밥 먹듯이 내뱉고 다녔던 발언이었다.
노아즈 아크의 선민사상과 우월인자 선별이라는 목적에 동의는 했지만, 굳이 자연스러운 선별을 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못했던 정원준.
언젠가 방주이자 길드장인 도명조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차피 선별하며 사람들이 죽는 건 피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굳이 사람들이 눈치챌 수 없게 사고로 위장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력만 펑펑 뿜어대면 솔직히 단 일주일이면 선별이 끝날 겁니다. 그러면 대중들의 저항을 걱정하지 않아도…….
―우리가 걱정하는 게 대중들의 저항인 것 같나? 그렇게 간단한 일을 우리가 생각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일주일? 큭… 그분의 힘이면 단 한 시간만에라도 이 행성 전체를 선별하실 수 있어.
―그렇다면 왜…….
―그야 간단하지. 헌터들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으니까.
―…예? 그게 무슨 말…….
―네가 입는 옷, 네가 먹는 음식, 네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을 누가 만든다고 생각하나?
―……!
도명조는 이런 간단한 것도 설명해줘야 하냐는 한심한 눈빛으로 정원준을 쳐다보았다.
―헌터가 되어 능력을 얻은 우리가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옷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너는 지금이라도 공장에 들어가 일할 수 있나?
차갑게 내려앉은 도명조의 눈빛이 정원준의 폐부를 찔러댔다.
―인간은 힘을 얻게 되면 그 힘을 휘두르고 싶어 한다. 그게 인간의 본능이자 헌터의 본능이야. 우리가 던전에 들어가 겨우 쌈박질이나 하면서도 이렇게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토대가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 줄을 알아야지.
―헌터들만의 사회를 만들고 나서 역할을 나누면…….
―그 수많은 역할을? 고작 헌터들만으로? 생존확률이 고작 5%야. 70억 지구 인구의 5%면 3억 5,000만 명이라고. 아무리 헌터들이 초인이라지만 이 세계가 4억도 되지 않는 소수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래, 작은 국가 여럿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 대신 그 외에 다른 땅들과 그 자원들은 포기해야겠지만 말이야.
도명조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정원준을 바라보며 혀를 쯧 찼다.
―전 세계가 헌터들 뿐인 세상이 되면? 인류는? 그건 알고 있나? 부모 둘 중 누구 하나라도 헌터인 경우에는 유산 확률이 80%나 된다는 걸 말이야. 그럼 둘 다 헌터인 경우는? 유산은커녕 수정 확률조차 10%가 채 되지 않아.
―……!
―무엇보다 헌터의 수명도 무한하진 않지. 물론 적당히 자가 회춘을 사용하며 D, E, F급을 횡보하면서 살겠다면 이론상 불로불사도 가능하긴 하겠지만 말이야. 물론 어마어마한 마석이 필요하겠지만… 뭐 그건 개인의 자유니까. 그마저도 불사를 영위하겠다는 이들이 늘면 마석 수량이 감당하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도명조는 한 차례 숨을 고르며 말을 이어나갔다.
―요지는 우리가 이러한 풍족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일반인들이 필요하다는 말이야. 헌터들만으로는 이런 삶은 꿈꿀 수 없으니까.
―그러면 굳이 우리가 나서서 마력에 감염시킬 필요도 없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던전에 휘말리거나 간혹 터지는 브레이크로 헌터들은 계속 나오고 있으니까요.
―…그건 너무 적어. 적고 느려.
―예……?
도명조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대답에 정원준의 표정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몇 번을 말해줘야 하지? 노아즈 아크의 목적은 우월인자의 선별이라고. 헌터의 자연 발생은 너무나도 느려. 최대한 사회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헌터들을 대량 발생시켜 헌터들이 강해질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헌터들이 강해지지 못하면 결국 이 행성은 끝장날 테니까.
―대, 대체 무슨 소리인지 저는 도통 이해가 잘…….
더욱 더 혼란스러워진 정원준이 도명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씨익 ―
도명조는 그런 정원준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부터는 방주들에게만 허락된 정보다. 그래도 너니까 여기까지 알려준 거야.
―…….
그래도 자신을 특별대우 해줬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의문이 풀리기는커녕 더 큰 의문만을 가지게 된 정원준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도명조는 한숨을 쉬며 손가락을 펴보였다.
―그냥 간단히 세 가지만 기억해라. 첫째, 귀족이 많고 노예가 적으면 그 나라는 살 수 없다. 둘째, 그 귀족들이 적고 약해도 그 나라는 살 수 없다. 그리고 셋째, 우린 이 2가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조직이다.
텁 ―
도명조의 손이 정원준의 어깨를 붙잡았다.
흠칫!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거력에 놀란 정원준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흠칫 떨었다.
―노아즈 아크, 즉 노아의 방주의 의미를 되새겨라. 우린 무분별한 파괴가 아니라… 구원을 위한 선별을 하고 있는 거라는 걸.
정원준의 어깨를 붙잡은 채 말을 내뱉는 도명조의 두 눈에서는,
번뜩!
어느새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광기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 * *
뚜르르르 ― 뚜르르르 ―
“이 미친 새끼가… 왜 전화는 또 안 받고 지랄이야!”
정원준에게 전화를 거는 이화연이 초조한 듯 손톱을 까득거리며 물어뜯었다.
방금 전 도명조에게서 연락을 받은 이화연이었다.
―아마 지금 수사받기를 자처한 헌터들에 대한 수사가 끝나면 곧바로 주작길드부터 강제 압수수사가 진행될 거야. 협회와 손을 잡은 청룡과 백호 녀석들은 물론이고 현무에서도 우리의 뒤가 구린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 지금 정원준은 벌써 조급해하고 있어. 아까는 무슨 사형을 기대하라는 쪽지까지 받았다고 난리 쳤다니까? 곧 있으면 진짜 사고칠 것 같단 말이야.
―원준이한테 쪽지를? 흠… 뭔가 알고 있는 건가. 최대한 덮는다고 전부 덮었는데…. 뭐, 됐어. 어차피 이제 한국 뜰 거니까. 화연아, 내일 애들한테 전부 연락해서 거제도로 오라 그래.
―거, 거제도?
―응. 의심받을 수 있으니 절대로 모여서 오지 말고 전원 따로따로 와. 내일 모레 아침에 거제도에서 대마도로 이동할 거니까.
―…배가 있는 거야? 대마도는 일본땅이라 일반 어선으로는 못 가지 않나…. 국제 여객선을 타야 하는데 우리는 출국 자체가 막혔다고.
―걱정 마. 푸르… 아니, 토끼의 방주가 도와줄 거니까.
―토끼…? 죽지 않았… 아!
―푸르바가 내일 모레 아침까지 거제도로 갈 거야. 잘 대기하고 있어.
해외로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해외로 도망치기만 하면 아무리 코드 제로라고 하더라도 쉽게 찾지 못할 터.
그러면 정원준 문제도 해결된 거나 다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미친놈이 진짜! 왜 안 받아!”
정원준은 벌써 10분째 이화연의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순간 불안감이 엄습한 이화연은 재빨리 핸드폰에 연걸된 길드 내 CCTV 영상을 확인했다.
“……!”
없다.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로비에서 생활하고 있던 정원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머저리 같은 새끼가아아아!”
타다닥!
정원준을 찾기 위해 자택을 나서는 이화연의 발걸음이 상당히 다급했다.
그리고 한편 그 시각,
“놈이 계속 북쪽으로……? 알겠습니다.”
정원준에게 미행을 붙인 태운이 시시각각 정원준의 이동 경로를 보고받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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