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유해동물을 퇴치함 (5)
“허억… 허억… 허억……!”
고속도로를 몇 시간이나 달렸을까.
마침내 정원준은 평양에 도달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쿨럭! 쿠웨에엑!”
정원준의 거의 S급에 준하던 마력이 바닥을 치자 현기증이 일어나며 그의 목 뒤에서는 구토가 울컥울컥 차오르고 있었다.
비틀 ―
심하게 지친 모습의 정원준.
그러나 그의 눈빛은 희망에 잔뜩 부푼 모습이었다.
“노아신이시여……!”
바닥을 짚고 헛구역질을 하던 정원준은 고개를 들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평양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개성보다 더 큰 도시임에도 그 흔했던 몬스터의 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고 있는 평양.
사람들이 많이 살던 도시일수록 몬스터가 많은 북한 땅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북한 최대 도시인 평양에는 사람은 물론이고 단 한 마리의 몬스터의 기척조차도 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엄하고 거대한 적막은 오히려 정원준에게 노아신의 위대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노아신이시여! 불민한 신의 자식이 흉수를 피해 아버지를 찾아왔나이다!”
나이다………!
나이다……!
나이다…!
마치 사이비 종교를 믿는 신도처럼 울부짖는 정원준의 목소리가 적막만이 가득한 도시에 메아리처럼 가득 울려퍼졌다.
그러나,
“…….”
도시 전체에는 몇 번의 메아리만 울릴 뿐, 정원준의 대답에 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차라리 몬스터 몇 마리라도 반응하여 나타나 주었다면 차라리 덜 민망했을 터.
주륵 ―
순간, 노아신이 지금 평양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정원준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 그래. 평양은 큰 도시잖아…. 아마 도시 한가운데에 있어서 못 들으신 거겠지. 여기는 도시 외곽 쪽이니… 하하핫! 역시 난 머리가 나쁘다니까…….”
스윽 ―
저벅 저벅 ―
잠깐 바닥에 엎드려 휴식을 취한 것만으로도 헌터의 초인적인 회복력으로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정원준은 바닥에서 일어나 천천히 평양시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쯤 왔으면 놈도 못 따라… 아니, 애초에 찾지도 못할 거다. 누군가 따라오는 기척은 없었으니까… 막말로 노아신이 없어도 한동안 여기서 지내면 돼! 먹을 거는… 어떻게든 구하면 되지 뭐.’
정원준은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천천히 평양시 안으로 들어갔다.
저벅저벅 ―
적막만이 가득한 도시 안에는 정원준이 걸음을 옮기는 소리만이 이따금씩 그 적막을 깨뜨리고 있었다.
저벅저벅 ―
너무 조용해서일까.
정원준은 문득 자신의 걸음 소리가 너무 크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저벅 ― 저벅…….
사박사박…….
살금살금…….
점차 걸음 소리를 낮추는 정원준.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정원준의 자세는 조용한 집 안에 물건을 훔치러 들어온 도둑 같은 자세가 되어 걷고 있었다.
하늘 위에서 그런 정원준의 어이없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태운은,
‘…저 새끼 뭐 하는 거야 대체.’
간신히 억눌렀던 살심이 다시금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 * *
얼마나 더 들어갔을까.
어느새 평양 한가운데에 들어온 정원준은 얼굴이 살짝 하얗게 질린 채 주위를 연신 계속 두리번거렸다.
“노, 노아신이시여… 안 계십니까……?”
한참이나 아무도 없는 유령도시를 걷는 기분을 느껴야 했던 정원준은 신경이 잔뜩 곤두서있었다.
뒤에선 언제 코드 제로라는 괴물이 쫓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에 노아신은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분명 노아신이 평양에 있다고……!’
물론 평양은 세계 곳곳에 위치한 은거지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특임반장, 그러니까 지금의 코드 제로 때문에 거의 항상 평양에 머물고 있다는 도명조와 이화연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었기에,
“계셔야 합니다…! 노아신이시여……!”
당연히 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정원준의 안색은 점차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이이익!”
파아아앙 ― !
어지간히도 똥줄이 탄 듯 정원준은 냅다 전신의 마력을 도시 전역으로 방출했다.
노아신에게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뭔가에 집중하느라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셨을 수도 있지 않은가?
파아아아앙 ― !
파아아아앙 ― !
연거푸 세 번씩이나 도시 전체로 마력을 방출하는 정원준.
그리고 한참을 기다려보았지만,
“……!”
돌아오는 반응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 안 돼……!”
그제서야 노아신이 평양에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고 크게 당황한 정원준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키는 그때,
“…발악은 전부 다 했냐?”
우르르릉 ― !
한 남자의 목소리가 도시 전체에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화들짝!
갑자기 울려 퍼진 어마어마한 목소리에 놀란 정원준은 목소리의 정체를 찾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리고 곧,
“허억……!”
목소리의 주인을 보고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슈우우우우 ―
마치 그가 찾던 신처럼 하늘에서 천천히 땅으로 내려앉고 있는 한 남자.
그러나 그 남자는 숫자 0이 적힌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이 버러지 새끼야.”
바로 코드 제로였다.
* * *
“흐아아아악!”
쿠당!
코드 제로를 본 정원준이 기겁을 하며 뒤로 넘어졌다.
덜덜덜……!
어지간히도 두려웠는지 전신을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하는 정원준.
태운은 그런 정원준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무서워만 하면 재미없다, 원준아. 좀 덤비고 반항을 해야 재밌지.”
“오, 오지 마! 이 괴물 새끼야!”
일어나지도 못하고 주저앉은 채 뒤로 바닥을 기는 정원준.
어느새 그의 두 눈에는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져 있었다.
“내, 내가 순순히 사형당할 것 같아?! 노아신님만 오시면 너는……!”
텁 ―
순간 정원준은 노아신의 존재를 외부인에게 노출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상대는 노아즈 아크의 존재를 모르는 외인임과 동시에 노아즈 아크의 가장 큰 적.
절대 알려서는 안 될 존재에게 노아신의 존재를 알린 정원준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채 크게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노아신이라…….”
하지만 이미 토끼의 방주를 처단하며 노아즈 아크의 존재를 인식하고, 정원준을 미행하며 대충 추측을 끝마친 태운은 새삼 정원준의 발언에 놀랄 이유가 없었다.
“너희 조직인 노아즈 아크의 수장인가 보지? 그렇게 노아신님~ 노아신님~ 하면서 찾는 걸 보니 말이야.”
“……!”
태운의 말을 들은 정원준의 동공이 다시금 세차게 흔들렸다.
“너, 너… 우리를 알고 있는 건가?”
“모를 수가 있나? 대놓고 죽이려고 찾아오기까지 하는데.”
“……!”
태운의 말에 정원준의 턱이 잘게 흔들렸다.
‘죽이려고 했어……?’
코드 제로는 최소 S급 최상위, 혹은 세계급일 수도 있는 초강자.
그를 죽이려고 했다면 평범한 조직원으로는 힘들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움직인 사람이 최소 방주라는 것인데…….
‘방주를 상대하고도 살았다고?’
덜덜덜……!
정원준의 몸의 떨림이 심해졌다.
“너, 너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누구였지?”
“토끼의 방주.”
“으헙!”
진짜였다.
십이방주 중 일인을 상대하고도 살아남은 것이었다.
그 말은 즉, 코드 제로가 토끼의 방주를 이겼다는 뜻.
정원준의 안색이 완전히 사색으로 변해버렸다.
사고가 마비된 것이다.
정원준은 코드 제로가 아무리 강해봤자 방주들 중에서도 약한 편인 도명조보다도 못한 수준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의 기대가 무색하게도 코드 제로는 십이방주들 중에서도 수위권을 다투는 토끼의 방주를 이겨버렸으니,
“어어어……!”
자신을 사냥하려는 사냥꾼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이성이 이 충격을 버텨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기, 길드장보다 강하……!”
“길드장? 주작길드장 도명조?”
“흐어어업!”
연거푸 말실수해대는 정원준의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전부 불어버렸으니까.
코드 제로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 뒤에 이어질 이야기는 뻔했다.
“도명조도 방주구나? 한국… 이런 미친… 그 새끼가 소의 방주였어?”
노아즈 아크 소속이라는 것을 넘어 소의 방주라는 사실까지 유추해내는 태운.
정원준은 지금 기절 일보 직전이었다.
“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왠지 다른 길드들에 비해 주작이랑 관련된 사고가 특히나 더 많더라니…. 한국의 노아즈 아크 조직원들, 전부 주작에 있구나? 그렇지?”
“아, 아니…….”
이미 물을 쏟고 엎다 못해 컵까지 깨져버린 상황이었다.
뒤늦게 부정해보았지만,
“아니긴 뭐가 아니야. 주작길드, 그리고 산하 길드까지 싹 다 노아즈 아크의 조직원들이었어…! 크크큭… 그나마 다행이네. 한 곳에 그렇게 바퀴벌레들마냥 모여 있어 줘서 말이야. 어쩐지 다중 브레이크 때, 주작은 물론이고 산하 길드들도 전부 보이지 않더라니.”
태운은 바보가 아니었다.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크게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에 태운은 뒷목을 잡으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이런 바퀴벌레 같은 것들이 이렇게 코앞에 모여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단순히 정치인들과 손을 잡고 한탕 벌어보려는 탐욕스럽고 질 나쁜 놈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말이다.
“하하하하하… 후우…. 고맙다, 정원준. 그래도 살면서 가치 있는 일 하나 정도는 하고 가줘서 말이야. 크하하핫!”
정원준을 바라보는 태운의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태운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원준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노아즈 아크의 수장이 나타날 만한 위치를 알려주고,
한국을 담당한 소의 방주의 정체를 알려주었으며,
한국의 노아즈 아크 조직원들을 모아둔 집단의 정체를 알려주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치지직!
정원준은 자신에게 그런 쓰레기들을 쓸어버릴 수 있는 이 힘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준 장본인이었으니까.
이보다 더한 은혜가 어디 있겠는가?
“좋아, 사람이 은혜는 갚고 살아야지. 특별히 고마우니까 나를 때린 것 정도는 용서해주지.”
“그게 무슨… 내가 너를 언제 때렸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정원준의 말에,
스윽 ―
태운은 쓰고 있던 하얀 가면을 천천히 내렸다.
이매탈을 뒤집어쓴 뒤, 동석과 현주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거의 처음으로 타인 앞에서 가면을 벗는 순간이었다.
가면을 내리고 태운의 맨얼굴이 드러나는 그 순간,
“…….”
잠시 멍하니 그의 맨얼굴을 바라보던 정원준의 표정은,
“……!”
점차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너, 너는 분명 그때 그 멱살……!”
“하하하하……!”
태운은 정원준이 자신을 알아본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다.
복수의 대상이 누가 죽이는 것인지도 모른 채 죽어버리면 그건 참된 복수가 될 수 없지 않은가?
“…그때 네놈이 나에게 마력을 썼던 것. 그건 용서하겠다.”
“그, 그럴 리 없어! 그건 겨우 작년의 일이었다고! 고작 1년 만에 이렇게 강해질 수는 없……!”
“하지만.”
척 ―
기겁하며 애써 현실을 부정하는 정원준을 향해 태운의 손가락이 정조준되었다.
“내 어머니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을 해친 것. 그 일들만큼은 절대 용서 못 하지……!”
치지직!
태운의 손가락에서 붉은 번개가 튀어 올랐다.
“……!”
태운의 손가락에서 튀어 오르는 붉은 번개를 보는 순간, 정원준의 머릿속에 장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쿠르르르르릉 ― !
붉게 물든 하늘에서 붉은 번개를 쏟아내는 특임반장의 모습이 말이다.
“아, 안……!”
“우리, 죽을 때까지 최대한 오래 놀아보자?”
치지지지직!
그의 손가락에서 붉은 번개가 붉은 꽃처럼 피어나는 순간,
씨익 ―
그와 동시에 태운의 입가에서는 섬뜩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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