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똥파리가 돼지를 불러들임 (2)
왕펑.
중국 팔룡 길드의 천지인 길드와 오행 길드 중 오행 길드 소속인 목룡 길드의 2인자.
그는 과거 팔대흑사회인 ‘동렁(dōnglóng)’을 통해 주작 길드와 익명으로 거래하여 자연스럽게 인천 차이나타운을 집어삼키려 했던 적이 있었다.
아무리 중국 내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권력을 지닌 팔대길드의 수뇌부더라도, 타국의 지역을 함부로 먹으려 들다간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지위가 흔들릴 수 있었기에 스스로의 정체를 숨긴 채 동렁을 앞세워 거래한 것이었다.
동렁은 팔대길드 중 목룡 길드 직속 산하 단체였으니까.
하지만 작업을 치러 갔던 동렁 조직원들이 한국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어쩔 수 없이 발을 빼고 포기하려 했던 왕펑.
그러던 와중에 최근 우연히 목룡 길드의 라이벌인 수룡 길드의 3인자 류하오가 갑자기 한국으로 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뭔가 느낌이 별로인데? 진 비서.
―예, 다녀오겠습니다.
뭔가 쎄한 기분에 자신의 비서이자 최근 S급 헌터로 승급한 진타오에게 미행을 시키는 왕펑.
진타오는 그 길로 주작 길드로 향하는 류하오와 왕웨이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 * *
진타오.
그는 본래 B급 헌터 시절에 왕펑의 비서로 배정되었던 평범한 헌터였다.
하지만 왕펑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최근 S급 헌터로 오를 수 있었던 그는 S급이라는 위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왕펑의 비서를 계속하기를 자처한 의리 있는 남자이기도 했다.
그의 고유능력은 동물형 능력인 ‘박쥐’.
슈우우우 ―
박쥐로 변신한 진타오가 하늘을 날며 류하오와 왕웨이가 탄 택시를 뒤쫓기 시작했다.
지이잉 ―
가공할 정도로 높은 청력을 지닌 박쥐의 감각이 택시 안에 있는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왕 비서. 혹시 장사 한번 해볼 생각 없어?
―저는 류하오 님을 모셔야…….
―아니, 사람 쓰면 되잖아. 사람 몇 고용할 돈 정도는 있잖아?
―…고민해보겠습니다.
―하여간 무슨 농담을 못 한다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고, 혹시나 장사할 생각 있으면 나한테 말해. 인천 차이나타운에 가게 하나 내줄 테니까, 큭큭큭. 왕 비서한텐 고마운 게 많으니까 권리금도 안 받을게!
―…감사합니다.
―아우, 재미없어라.
상공에서 택시 안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정확히 엿들은 진타오는 류하오가 왕펑이 먹지 못했던 차이나타운을 대가로 무슨 일을 벌이려 한국으로 직접 향했음을 알게 되었다.
―‘감히 왕펑 님의 것에 손을 대다니……!’
혹시라도 놓치는 대화 내용이 있을까 싶어 두 사람이 탄 택시로 조금 가깝게 비행하려 했던 진타오는,
턱 ―
택시 뒷좌석 창문 가까이 눈을 바싹 붙인 왕웨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이런.’
파다닥!
그대로 자연스럽게 택시와 행로를 달리하는 진타오.
왕웨이의 감각에 들켰기에 더 이상 접근은 불가해 보였다.
―‘…그래도 두 사람의 목적은 정확히 알았으니까.’
혹시라도 꼬투리를 잡힐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진타오는 왕펑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그 길로 미행을 중지하고 중국으로 귀국했다.
―…그 새끼가 차이나타운을 노리고 간 거라고?
으드득……!
당연히 보고를 받고 열이 뻗친 왕펑.
대놓고 자신이 차이나타운을 노렸었다는 걸 티를 낼 수는 없었기에 왕펑은 그저 중국에서 류하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그였다.
어지간히도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핸드폰 게임에 한 번에 100만 위안(한화 약 2억 원)을 현질하더니 단번에 랭킹 1위에 등극하는 등, 기행 아닌 기행을 보이며 류하오를 기다리던 왕펑.
그러나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류하오는 한국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 * *
―…진 비서.
―네.
―류하오, 이 새끼가 한국 간 지 얼마나 됐지?
―3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얘 장기체류 신청했어?
―아닙니다. 그냥 갔습니다.
―거기서 바꿀 수도 있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수룡 길드에서도 난리가 났거든요. 류하오와 왕웨이가 실종되었다고. 말없이 사라져놓고 해외에서 장기체류를 신청할 리가 없습니다.
―…이 새끼 길드에도 말 안 하고 갔구나?
―네.
―그럼 그 새끼가 한국 간 걸 알고 있는 건 진 비서랑 나뿐이네?
―아마 그럴 겁니다.
―역시 진 비서. 박쥐 능력 대단하다니까? 못 듣는 게 없어. 그걸 또 어떻게 들은 거래?
―우연히 지나치다가… 운이 좋았습니다.
―음… 그래, 어쨌든 한국에서 무슨 일이 난 모양인데… 한국에 동렁 애들 아직 몇 남아있지? 걔네 시켜서 수소문 좀 해보라 그래.
―알겠습니다.
그렇게 진 비서는 한국 음지에서 활동하는 동렁의 조직원들에게 연락을 취해놓았다.
―{류하오와 관련된 정보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루트를 알아내면 보고해라. 왕펑 님께서 값은 톡톡히 치러주실 테니까.}
그 이후 쏟아지는 정보들.
동렁 조직원들은 하나 같이 류하오가 협회를 찾아간 뒤 실종되었다는 말만 늘어놓고 있었다.
―아니 기껏해야 협회 직원한테 당한 건 아닐 테고… 잠적한 건가? 진 비서, 한국 헌터 협회에 물어보는 방법은 없나?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누가 봐도 좋은 일로 찾아간 건 아닐텐데… 괜히 직접 접촉했다가 왕펑 님께서 전에 하셨던 일까지 들춰지면 꽤 피곤해지지 않겠습니까? 동렁 녀석들도 마찬가지이고요.
―아씨, 그럼 여기서 끝내야 돼? 이 새끼 아무리 봐도 누군가한테 당한 것 같은데… 아니, 그렇다고 하기엔 협회에 그럴만한 인물이 없는데? 애초에 전 세계 헌터 협회 중에 S급 헌터를 가진 협회는 하나도 없지 않냐? 아무리 떼거지로 달려들었더라도 류하오가 A급한테 당했을 리는 없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조금만 더 알아봐봐.
―예, 알겠습니다.
그러고 며칠 뒤에 온 연락이 바로,
“…한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밀항 브로커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 * *
“흐음… 한국의 모든 헌터들에게 출국 금지가 내려졌다. 그래서 범죄 전력이 있는 이 한국 헌터가 출국을 시도하다 밀항까지 알아본 거다?”
“그런 것 같습니다.”
“쩝쩝쩝. 아니, 대체 무슨 일까지 저질렀기에 헌터 씩이나 되어서 쫓기는 신세가 된 거야? 몇 명 담가도 별문제 없는 세상에서 말이야.”
왕펑의 자택.
근처 인스턴트 햄버거 집에서 햄버거를 잔뜩 포장해 가지고 온 왕펑이 자신의 집 식탁에 앉아 게걸스럽게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그게 말이 좀 이상합니다. 자꾸 경찰 협회에게 쫓기고 있다는 말을 하는데…….”
“쩝쩝쩝. 경찰 협회? 경찰이면 경찰이고 협회면 협회지 경찰 협회는 뭐야?”
“모르겠습니다. 뭔가 소통이 잘 안 되는 느낌이라…….”
“쩝쩝쩝. 그 브로커 번호 뭐야? 한번 찍어봐.”
꾹꾹꾹 ―
왕펑은 진 비서가 찍어준 번호로 냅다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
{…크흠! 네, 여보세요.}
졸다 받은 듯 약간 나른한 목소리가 왕펑의 전화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어 브로커냐? 진타오한테 연락한 동렁 애 맞지? 나 왕펑인데.”
왕펑이란 말에 전화 너머에서 무언가 가구 몇 개가 쓰러진 듯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 헉! 왕펑 님! 안녕하십니까! 예 맞습니다! 저는 동렁 소속…….}
“아, 네 이름은 별로 안 궁금하고.”
왕펑은 자기소개를 하려는 브로커의 말을 끊어먹었다.
“거 밀항하려고 하는 애 있다며? 걔 번호 좀 줘봐라. 직접 좀 통화해 볼라니까.”
{아, 네넵!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불러드리겠습니다! 010…}
브로커에게서 진재훈의 번호를 알아낸 왕펑은 곧바로 전화를 끊고 다시 진재훈의 번호로 연락했다.
뚜르르 ―
{누, 누구십니까?}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중국으로 밀항을 하고 싶으시다고? 중국 헌터 왕펑이라고 합니다.”
가슴을 졸이며 돈을 구할 방도를 찾고 있었던 진재훈은 밀항을 시켜줄 당사자인 헌터에게서 전화가 오자, 곧바로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제, 제발!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50억은 반드시 준비해드릴 테니……!}
“…50억?”
왕펑은 진재훈의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곧바로 알아들었다.
‘브로커가 50억을 불렀나 보구만.’
돈을 굉장히 좋아하는 왕펑이긴 했지만,
“아아, 뭐 좋아요. 그쪽이 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냐에 따라 더 기다려줄 수도 있긴 한데……?”
지금은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말씀만 하십쇼!}
“당신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겁니까? 알다시피 헌터가 쫓기는 신세가 되기 쉽지 않잖아요? 사람 몇 명 담그다 들켜도 벌금 좀 내면 끝나는 세상인데 말이죠. 한국이라고 여기랑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저도 억울합니다! 심지어 저는 직접 해한 것도 아니고 마력으로 조금 장난 좀 쳤을 뿐이란 말입니다…….}
피해자들이 들었다면 눈이 뒤집히고 열불 천불이 날 발언을 서슴지 않는 진재훈.
그는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왕펑은 그런 진재훈의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그거 좀 했다고 쫓긴다라… 그래서? 누구한테 쫓기고 있습니까?”
{헌터 협회의 코스모스라는 조직입니다! 대헌터진압 특수부대라고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지직…….
어김없이 변형되고 왜곡되는 정보.
진재훈의 말을 들은 왕펑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경찰 협회의 해바라기라는 환경시민단체? 환경오염방지 방범대? 이게 무슨 개소리야?’
진재훈이 제대로 말을 이상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 왕펑은 목소리를 낮추며 약간의 노기를 띤 목소리로 재차 질문했다.
“어이, 아저씨. 밀항하기 싫어요? 뭔 개소리를 읊어대는 거야? 똑바로 말 안 해?”
그러나 제대로 말을 전한 진재훈은 그저 억울할 뿐이었다.
{정말입니다! 헌터 협회의 코스모스가 저를 쫓고 있단 말입니다!}
지직…….
또다시 이상하게 변형된 정보로 알아들은 왕펑.
‘아까는 경찰 협회의 해바라기라더니 이번엔 감찰 부서의 유니버스……?’
왕펑은 직감적으로 부자연스러운 무언가에 의해 정보 교환이 방해받고 있음을 눈치챘다.
“…지금 당신 어디 있습니까?”
{모, 목포에 있습니다.}
“아저씨, 나 중국 사람이야. 정확히 말해줘야 알아먹지. 데리러 갈 테니까 정확히 말해.”
{한국 전라남도에 위치한 목포항이라는 곳입니다! 바로 옆에 목포항국제여객터미널이 있으니 거기로 오시면 됩니다! 그, 근데 그럼 돈은…….}
“…지금 얼마 있는데?”
{지금 드릴 수 있는 건 9억 정도…….}
왕펑은 잠시 핸드폰을 내리고 진 비서에게 물었다.
“진 비서, 한국 돈 9억이면 위안으로 얼마냐?”
“아마 500만 위안… 아니, 450만 위안이 조금 넘을 겁니다.”
왕펑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좋아, 사정이 딱해 보이니까 특별히 그걸로 해드릴게. 대신 정보 좀 많이 달라고. 그래도 한국 헌터니까 헌터 업계에 관해서는 빠삭할 거 아니야?”
{네, 네! 그렇습니다! 이래 봬도 저 한국 4대 길드 출신입니다.}
“오, 좋네. 그런 엘리트가 이렇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으니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겠어. 내가 도와드려야지.”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좋아요. 이 번호로 연락할 테니까 내 번호 저장은 하지 말고, 기억만 해. 도착해서 연락하면 곧바로 튀어나오시고. 오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잘 숨어있으셔~”
뚝 ―
“쯧.”
전화를 끊은 왕펑은 귀찮다는 듯 핸드폰을 식탁 위로 툭 내던지며 혀를 찼다.
“…한국으로 직접 가시는 겁니까?”
진 비서의 물음에 왕펑은 크게 기지개를 켜며 쩌억 하품을 해댔다.
“흐아아아암~ 뭐 그래야지… 아니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 먹겠는데 어떻게 하겠냐. 음… 뭔가 가로막혀있는 느낌이란 말이지…….”
“…가로막혔다라…….”
왕펑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기는 진타오.
그런 진타오를 한번 쳐다보며 왕펑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생각해봤자 뭐 안 나와. 직접 가보면 다 알게 될 텐데 뭐. 출국 준비해. 배로 간다.”
“…알겠습니다. 길드에는… 연락합니까?”
멈칫 ―
자리에서 일어나던 왕펑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음…….”
잠시 고민에 빠진 듯한 왕펑.
그러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뭐 그래봐야 잠깐 다녀오는 건데 뭣 하러 말하냐. 그냥 갔다 오자.”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왕펑의 한국행이 결정되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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