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똥파리가 돼지를 불러들임 (3)
한편, 막 왕펑과의 전화를 마치고 한숨을 돌린 진재훈.
“사, 살았어……!”
풀썩 ―
하루 종일 돈을 인출하기 위해 목포 곳곳을 전전하며 돌아다니던 진재훈은 어느 골목 한구석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하하… 하하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밀항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돈 50억을 구하지 못해 이대로 끝나는 줄로만 알았던 그였다.
그의 현재 전 재산은 26억.
그 외에 집과 자동차가 있었지만, 급매로 내놓아도 하루 안에 팔릴 리가 없었으니까.
애초에 자동차는 팔아봤자 몇천이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지만 결국 인출하는 데에 성공한 현금도 9억뿐.
남은 41억을 메우기 위해 어차피 한국 뜰 거 사채를 써야 하나 싶었던 진재훈이었다.
그렇게 막 대부업체로 들어가려는 순간에 왕펑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역시… 사람이 꼭 죽으라는 법은 없다니까……?”
진재훈은 작게 킥킥대며 다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상하이 항구에서 목포국제여객터미널까지는 아무리 길어도 수 시간이었다.
즉, 적어도 내일이면 왕펑을 만나 중국을 뜰 수 있다는 소리.
이렇게 마음 졸이며 도망 다니는 생활도 이젠 안녕이었다.
‘중국으로 건너가서 길드 아무 데나 들어가면 돈이야 금방 벌 테니까… 중국말은 모르지만, 어차피 각성자끼리는 소통이 될 테니 마력면역자 아무나 한 명 고용하면 생활에도 문제 없을 거고……! 완벽하다!’
진재훈의 입가에 귀까지 찢어질 듯한 커다란 미소가 그려졌다.
“코스모스, 븅신들……! 난 간다! 어디 한번 잘 찾아보라지! 킥킥킥!”
“응, 찾았다.”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한 남자의 목소리.
“……!”
깜짝 놀란 진재훈이 뒤를 돌아보려는 그 순간,
퍼억 ― !
그의 시야가 까맣게 암전되었다.
* * *
“잡았다고? 생각보다 빨리 찾았네.”
{놈의 통장에서 계속 돈이 빠져나가더라고. 현금이 인출된 ATM 조회를 해보니까 전부 목포로 떠서 왔는데 어느 골목에서 킥킥대고 있더라. 그래서 바로 잡았지.}
“그래, 축하한다. 역시 코드 원이라니까.”
{…놀리지 마.}
강천의 전화를 받은 태운은 동생이 원수를 잡았다는 소식에 진심으로 기뻐해 주며 살짝 놀려주었다.
“그래, 이왕이면 사람 없는 곳에서 하고.”
{근데… 진짜 그래도 되는 거야?}
강천이 던진 질문의 의미.
그건 정말로 재판에 의한 처벌이 아니라 자신이 처단해도 되냐는 뜻이었다.
“…코드 원.”
강천의 망설임에 태운의 어투는 순식간에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해졌다.
{…예.}
그 진지한 어투에 강천은 자신의 상급자인 코드 제로로서 태운을 대하며 말을 높였다.
그리고 태운은 목소리를 차갑게 낮추며 정작 원수를 잡아놓고도 복수를 망설이는 강천에게 일침을 가했다.
“놈이 범행을 저지른 자가 아닐 가능성이 단 0.1%라도 있나?”
{없습니다.}
“증거가 부족한가?”
{아닙니다.}
“헌터법 제 2조 3항을 읊어봐.”
{…2항에 관한 사안에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된 자가 재판이나 법률 집행을 거부 및 도주할 경우, 헌터 협회 소속 대헌터진압 특수부대의 장 혹은 그 대리자가 즉결처분할 수 있다.}
피식 ―
강천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헌터법의 내용을 읊자, 태운은 작게 웃음을 흘리며 목소리에서 힘을 뺐다.
“그래서 지금 네 신분이 뭔데.”
{코스모스의 코드 제로의 유일한 대리자, 코드 원입니다.}
“놈의 신분은?”
{제 2조 2항에 대한 피의자입니다.}
“그럼 문제 있냐?”
{…없네.}
태운은 입가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럼 됐지?”
{알았어. 미안해.}
“뭘 미안해. 복수 달성 미리 축하한다. 잘하고 와.”
{…끝나면 연락할게.}
뚝 ―
태운이 핸드폰을 내리자,
“…참 살벌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군.”
좌식 식탁을 사이에 두고 태운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한 중년인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중년인을 바라보며 태운은 가면을 벗은 채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너무하긴 무슨… 그런 놈들은 공개적으로 찢어 죽여도 모자라.”
중년인의 말에 태운은 큭큭 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와… 교관님이 더 살벌하신데요.”
“흥, 내가 그놈을 찾았으면 그 자리에서 진짜로 사지를 절단 내버렸을 거다.”
중년인의 말에 태운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따님의 원수 중 하나가 그놈들인 줄 알았으면 그렇게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뭐라는 거냐. 너한테 감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야지.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해. 어차피 던전에 갇혔으면 결국 살아도 산 게 아닐 테니까. 애초에 던전 내부 전체가 부서지는데 살아있을 리도 없고.”
중국 던전에서 구천 길드와 함께 사라지는 던전 안에 갇혀버린 왕십리 포장마차 8인 중 백호 길드 출신이었던 이들 중 하나가 중년인의 딸의 원수였던 것이다.
“그리고 주작 길드 쪽 원수는 네가 직접 죽여줬잖냐. 난 그걸로 됐다. 딸애는 아마… 워낙 순수한 애라 싫어하려나? 크하하핫!”
알고 보니 중년인의 딸을 해친 원흉 중 하나가 정원준이었던 것.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태운은 마음 한켠이 한동안 무거웠었다.
“…제가 앞으로도 자주 거하게 사겠습니다. 교관님.”
쪼르륵 ―
태운은 중년인의 컵에 사이다를 따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겨우 사이다 따르면서 무슨 술 따르듯이 말하냐? 그리고 교관님이라 부르지 말라니까. 이제 내가 하급자잖아.”
“저한텐 영원히 교관님이신걸요. 적어도 단둘이 있을 땐 봐주시죠.”
“하여간… 한 마디를 안 지지.”
“저번에 진 거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신 거 아니죠?”
“이 새끼야, 그거 내가 봐준 거야.”
“하하하하! 예, 당연히 알고 있죠!”
“아니, 진짜라니까? 어어? 그 표정 뭐야? 아오, 이젠 다시 붙을 수도 없고!”
이젠 교관에서 알파조로 돌아온 협회의 1세대 레전드, 철민이 태운에게 사이다를 받으며 연신 씩씩거렸다.
그러나,
“하하핫! 사이다 드시고 속 좀 식히세요.”
끝까지 한마디를 지지 않는 태운이었다.
* * *
한편 시야가 암전되었던 진재훈.
“끄으응…….”
정신을 잃고 한참 뒤에서야 깨어난 그가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긴…….”
쏴아아아아 ―
사방에서 들리는 바다 소리.
철썩 ―
거의 해변가 가까이에 쓰러져 있어서인지 파도 소리가 그의 귓가에 선명하게 꽂히고 있었다.
“…섬?”
진재훈이 자신이 있는 장소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그때,
“까치섬이다. 무인도지.”
시야가 암전되기 전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던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또다시 들려왔다.
화들짝!
경기를 일으키듯 펄쩍 뛰어오른 진재훈이 재빨리 뒤를 돌며 자세를 잡았다.
“뭐, 뭐야! 당신 누구……!”
뒤를 돌자 그의 시야에 들어온 한 남자.
정장을 입었을 뿐, 남자의 행색은 다소 평범했다.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면, 보라색으로 1이 커다랗게 적힌 하얀 가면을 착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코, 코스모스의 코드 원……!”
“오, 활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들 알아보네?”
코드 원이라 불린 남자가 가면 뒤에서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 으아아……!”
철퍽!
파바바박!
진재훈은 바닷물에 젖은 해변에 털썩 주저앉은 채 뒤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철썩 ― !
얼마나 깊게 들어갔는지 순식간에 어깨까지 바닷물이 차오를 정도.
“히익!”
자신도 모르게 바닷속으로 너무 깊게 들어갔던 진재훈은 코드 원에게 등을 보이지 않는 자세를 유지한 채 재빨리 바다에서 빠져나왔다.
“왜…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최후의 발악인 것마냥 억울하다는 듯 소리치는 진재훈.
그리고 그런 그의 뻔뻔한 발악은 코드 원의 꼭지를 돌게 하기에 충분했다.
“…알아서 일말의 망설임까지 없애주는구나. 그래, 너 같은 쓰레기는 재활용이 아니라 폐기 처분하는 게 맞겠지.”
철컥 ―
어느새 소음기가 달린 커다란 산탄총으로 변한 코드 원의 팔이 진재훈의 발을 노렸다.
피육 ― !
“끄… 끄아아아아악!”
근거리에서 흩어진 탄환이 모두 명중하면서 진재훈의 발이 순식간에 걸레짝으로 변해버렸다.
치이이이이익 ― !
모든 헌터가 그렇듯 견디기 힘든 고통이 찾아오자 본능적으로 자가 회복을 전개하는 진재훈.
몇 초 뒤 진재훈은 멀쩡해진 발을 붙잡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 미친 색……!”
“너 같은 놈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은데?”
[산탄총(散彈銃) ― USAS 12 + 소음기 ver]
피육 ― !
이번엔 어깨.
푸확 ― !
단 일발에 진재훈의 오른팔이 사라졌다.
후두둑 ―
“흐아아아아아아악!”
진재훈은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진 팔을 붙잡고 고통에 울부짖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이이익!
재차 순식간에 제 모습을 회복하는 진재훈.
그러나 강천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고통스러워?”
피육 ― !
치이이이이이이익!
“너는 나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을 그보다 아프게 했어.”
피육 ― !
치이이이이이이익!
“왜 그랬어?”
피육 ― !
치이이이이이이익!
“어? 왜 그랬냐고?”
피육 ― !
치이이이이이이익!
“그 알량한 힘 하나 있다고 그래도 되는 거야?”
피육 ― !
치이이이이이이익!
“네가 뭔데? 어?”
피육 ― !
치이이이이이이익!
“대체 네가 뭔데에에에에!!!”
피육 ― ! 피육 ― ! 피육 ― ! 피육 ― ! 피육 ― !
치명상을 피해 계속해서 팔다리만을 걸레짝으로 만드는 강천의 두 눈엔 어느새 사나운 독기가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쿠웨에에에에에엑!”
무시무시한 산탄총에 의해 심장과 머리를 제외하고 모조리 날아가 버린 진재훈의 사지.
고통을 견디다 못한 진재훈은 헛구역질을 하다못해 몸통과 머리만 남은 채로 해변가에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이…….
이번에도 무서운 기세로 회복하던 진재훈의 팔다리는 끝내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팔다리의 절반만 회복한 채 자가 회복이 멈추고 말았다.
고작 C급에 불과했던 진재훈이었다.
벌써 자가 회복에 사용할 수 있는 마력 수치가 전부 사라진 것이었다.
“허억… 허억… 커헑…! 사, 살려주세……!”
손발도 없이 팔다리마저 반쪽만 남은 진재훈이 해변에 드러누운 채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입엔 피를 잔뜩 머금은 채로 강천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철썩 ― !
때맞춰 덮쳐온 작은 파도가 그의 얼굴을 덮쳤다.
“으그그그그그륵……!”
짧아진 팔다리에 적응하지 못한 진재훈이 얕은 바다에 잠겨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파도가 곧 물러나고,
“쿠헥! 쿨럭! 쿨럭! 크흐흐흐흐흐흑……!”
피와 함께 잔뜩 삼켜버린 바닷물을 한가득 토해내며 진재훈은 웃음과 울음이 반반 섞인 듯한 이상한 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도 웃음이 나오나?”
“크흐흑… 시X, 내가 어쩌다 이렇게…! 어차피 죽일 거잖아? 이 살인마 새끼야! 네놈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헌터들이 피해를……!”
“개소리.”
푹 ― !
강천은 개소리를 내뱉은 진재훈의 입에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역시 너는… 그냥 평범하게 죽을 자격조차 없어.”
키이이이잉 ― !
강천은 진재훈의 목구멍에 자신의 팔을 변형시킨 무언가를 틀어박은 후 마력을 불어넣었다.
“악마와 함께 지옥에나 떨어져라. 이 똥파리 같은 X끼야.”
[백린탄(白燐彈) ― 소형 ver]
‘죽음의 천사’이자 ‘악마의 무기’라고 불리는 백린탄.
그 백린탄의 폭발과 함께,
콰과과과과광 ― !
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 !
진재훈의 전신은 순식간에 불타오르다 못해 녹아 사라졌다.
S급이 되며 얻은 강천의 3차 각성 능력, ‘포탄&폭탄류’의 힘이었다.
철썩!
“…….”
화르르르륵 ― !
치이이이이익!
악마의 무기라는 별칭답게 파도에 뒤덮인 채로도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고 있는 백린탄.
백린탄은 끝끝내 진재훈의 신체의 조각 하나까지도 불살라버리려는 듯 끝까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하고도 새하얀 불꽃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제 다들 편히 쉬세요.”
강천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스윽 ―
쓸데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강천의 눈빛이 초점 없이 공허해져 있었다.
‘이건 무슨 기분일까…….’
시원한 듯 허무하면서도 통쾌하다 못해 허탈한 마음.
“…….”
하늘 위에 떠 있는 조각구름을 바라보는 강천의 동공이 초점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2097년 3월 21일.
마침내 두 괴물의 복수가 끝이 났다.
* * *
그리고 그 다음 날.
“…이 새끼, 왜 전화를 안 받아?”
왕펑이 한국에 도착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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