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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132화 (132/300)

132화. 나비효과가 엄청남 (3)

“……?”

별 시답잖은 말을 하며 걸어오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는 왕펑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협회 직원? 협회 직원 따위가 뭘 할 수 있다고?”

협회 소속 헌터는 약하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변하지 않는 진리이자 명제였다.

전 세계의 모든 헌터 협회들은 길드들 밑에서 뒤치다꺼리나 하는 그런 위치나 다름없었으니까.

하물며 약소국인 한국의 헌터 협회?

‘견제할 가치도 없지.’

애초에 EX급은커녕 S급 헌터조차 10명도 안 되는 약해빠진 나라의 협회면 얼마나 쓸모가 없겠는가?

게다가 이미 협회가 헌터들을 정리했다는 이상한 뉴스는 허위 정보라는 걸 확인한 뒤였기에,

“좋은 말로 할 때 꺼져라.”

왕펑은 협회 직원을 자처하며 이상한 가면을 뒤집어쓴 채 걸어 나온 남자에게 마지막 자비를 베풀었다.

아무리 막 나가는 왕펑이라고 해서 외국까지 나와 쓸데없이 살생을 늘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저벅 ―

왕펑의 경고에도 남자는 물러서지 않고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헌터 범죄에 관한 특별법 제 2조 1항.”

남자, 태운의 입에서 건조하지만 차갑고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

“던전 토벌 혹은 브레이크 진압 상황이 아닌 그 외적인 상황에서 마력을 사용하여 선량한 일반인이 휘말렸을 경우, 피해자가 마력감염증으로 인해 사망할 시 최소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뭔 개……!”

“헌터 범죄에 관한 특별법 제 2조 2항.”

저벅 ―

“고의적으로 선량한 일반인을 마력에 휘말리게 했을 경우, 무조건 사형에 처한다.”

척 ―

어느새 왕펑의 지척까지 다가온 태운.

그의 차가운 안광이 왕펑을 가만히 주시했다.

“……!”

오싹!

그 차가운 눈빛과 두 눈을 마주친 왕펑은 순간 뼛속까지 시려오는 오한을 느낄 수 있었다.

“일부러 그랬나?”

“뭐, 뭐? 뭔 개소리야! 헌터 호텔에 일반인이 어디 있다고!”

순간 느껴진 그 오한에 당황한 왕펑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살짝 더듬었다.

‘내, 내가 헌터 직원을 상대로 긴장을 한 건가?’

말을 더듬은 자신의 행동을 믿을 수 없었던 듯 지진을 일으키는 왕펑의 동공.

그러나 정작 태운의 목소리의 높낮이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호텔 앞을 지나가던 행인 하나가 너의 기파에 휘말렸다. 어째서 마력을 퍼뜨렸지?”

“뭐? 젠장… 어쩌라고! 누가 휘말리든 말든 내 알 바냐! 벌금 내면 그만 아니냐고!”

“…고의는 아니었군.”

스윽 ―

태운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휴대용 소형 녹음기였다.

“고의가 아니더라도 방금 병원으로 옮겨진 피해자가 사망하면 너는 최소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좀 더 자세한 조사를 위해 협회로 함께 가줘야겠어.”

이미 불이 켜진 채 녹음되고 있는 소형 녹음기.

그 녹음기를 보고 기분이 더 더러워진 왕펑은,

“이 개X끼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하고 있어! 저리 안 꺼져?”

후욱 ― !

호텔 직원을 베려던 모래 낫을 태운을 향해 휘둘렀다.

슈칵 ― !

순식간에 태운의 목덜미까지 도달한 왕펑의 모래 낫.

그러나,

퍽 ―

솨아아아아 ―

“…어?”

그 기세가 무색하게도 왕펑의 모래 낫은 너무나도 손쉽게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있었다.

태운의 맨주먹에 닿았을 뿐인데 마치 믹서기에 갈려 분쇄라도 된 것처럼 원래 모래보다도 더 고운 모래로 변해 바닥에 쏟아진 것이다.

태운이 가진 네 번째 힘이 살짝 그 위력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반항하는 건가?”

사아아아아 ―

태운의 눈빛이 좀 전보다 더욱더 차갑게 내려앉았다.

“무… 무슨……!”

“헌터 범죄에 관한 특별법 제 3조.”

치직!

순간 태운의 손에서 붉은 번개, 적뢰가 튀어 올랐다.

“기타 정당한 사유로 인해 헌터를 제압해야 할 경우, 대헌터진압 특수부대의 소속인 자는 헌터의 생명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제압할 수 있다.”

흠칫!

멍한 표정으로 가루가 되어버린 자신의 모래 낫과 태운을 번갈아 보던 왕펑은 태운의 말에 흠칫 놀랐다.

“대헌터진압……? 뭐, 뭐야 그건! 그딴 건 들어본 적 없어!”

“네가 알든 말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외국인이라 친절히 읊어주고 있는 거다. 그래서, 순순히 따라오겠나?”

꿀꺽 ―

태운의 살벌한 기세에 눌린 왕펑의 목 뒤로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대로 가면 최소 10년이라고……?’

마력감염증에 걸린 행인이 살아날 확률은 5%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95%의 확률로 자신은 최소 10년형에 처해질 터.

물론 중국 정부가 더 빨리 빼줄 가능성이 더 크긴 했다.

아무리 외국에서 죄를 지었더라도 자신은 중국의 고위 헌터가 아니던가?

중국의 국제적 권위를 위해서라도 한국 정부를 압박하여 빼줄 가능성이 거의 10할에 수렴했다.

하지만,

지잉 ― 지잉 ―

지금 왕펑의 뇌리에선 계속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이대로 끌려 들어간다면,

‘조기 석방은 불가능해!’

꼼짝없이 형기를 끝까지 채워야 한다고.

“야, 약소국 협회 직원 따위가아아아!”

전신을 잔뜩 경직시킨 긴장을 풀기 위해 왕펑이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 모습이 마치 겁에 질려 마구 짖어대는 하룻강아지 같았지만,

콰아아아아아 ― !

그의 전신에서 솟구치는 모래의 위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쿠구궁 ― !

어느새 왕펑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모래 거인.

“와우.”

그런 모래 거인을 올려다보는 코드 원, 강천의 입에서 작게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찌릿 ―

태성은 그런 강천을 얄밉다는 듯 째려보았다.

쿠구구구구 ― !

로비에 있는 모두가 웬만한 건물 3층 높이에 달하는 로비 천장에 닿을 정도로 크게 만들어진 모래 거인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때,

“헌터 범죄에 관한 특별법 제 3조, 단서.”

태운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로비 안에 울려 퍼졌다.

“뒈져라!”

더 이상 들어주지 않겠다는 듯 냅다 주먹을 휘두르는 왕펑.

콰아아아아아!

거대한 모래 거인의 주먹이 태운을 통째로 덮쳤다.

“단, 정당방위나 사고로 인한 사망은 책임을 묻지 않는다.”

파직!

모래 더미에 파묻히기 직전, 결국 끝까지 법 조항을 고지한 태운의 전신에서 푸른 번개가 튀어 올랐다.

콰아아아아앙!

태운이 있던 자리를 통째로 짓이기는 모래 거인의 주먹.

후두두두 ―

헌터들의 다툼에 대비해 호텔 바닥의 방마재까지 섞은 강화 대리석이 평범한 대리석마냥 산산조각이 났다.

과연 S급 헌터다운 파괴력이었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이태성의 고개가 휙휙 돌아가며 상황을 살폈다.

거대한 모래 거인이 로비 전체를 가린 탓에 태운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

씨익 ―

하지만 강천은 상황이 다 보이고 있는 듯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혼자 알지만 말고 말 좀 해줄래?”

그런 강천이 재수 없다는 듯 태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뭐긴 뭐겠어요.”

피식 ―

강천은 참았던 웃음을 흘려내며 대답했다.

“정당방위… 아니, 사고에 가까우려나? 그걸 때리긴 왜 때려? 뭔 줄 알고?”

강천의 말이 끝나는 순간,

치직!

태운을 덮친 모래더미에서 푸른 번개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어?”

치지지직!

순식간에 모래 거인의 팔을 타고 올라오는 푸른 번개, 청뢰.

“으, 으아아아악!”

순식간에 전신을 청뢰에 잠식당한 왕펑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후두둑 ― 후두둑 ―

청뢰에 잠식당한 모래 거인의 몸은 빠르게 부서져 그냥 보통의 모래로 변하고 있었다.

마력을 통째로 잃고 있는 것이었다.

후두두둑 ―

모래 거인의 주먹이 덮쳤던 모래 더미가 쓰러지며 그 안에 파묻혔던 태운의 전신이 다시 드러나기 시작했다.

치지직!

[청뢰갑(靑雷鉀)]

전신에 푸른 번개의 결계를 두른 채 모래 하나 묻지 않고 멀쩡한 태운.

씨익 ―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왕펑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그의 입가엔 어느새 비릿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난 네 공격 막은 것뿐이다?”

“이이익!”

그러나 왕펑 또한 S급 헌터.

청뢰에 잠식당한 순간, 청뢰가 어떤 식으로 마력을 갉아먹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키이이이잉 ― !

전신의 마력을 방출하여 청뢰를 튕겨내기 위해 왕펑이 한 차례 마력을 모으는 그때,

“도심에서 마력 방출하지 말라고, 이 새끼야.”

치직!

어느새 거의 맨몸이 된 왕펑의 등 뒤로 태운이 푸른 안광을 번뜩이며 나타났다.

“자라.”

퍽 ―

태운의 손날이 왕펑의 목덜미를 후려쳤다.

“끄으으윽……!”

털썩 ―

결국 왕펑은 청뢰를 떨쳐내지 못한 채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왕펑은 호텔 바닥에 엎어진 채 청뢰에게 마력을 갉아 먹히며 서서히 정신을 잃기 시작했다.

스윽 ―

그런 왕펑의 귓가에 태운은 한쪽 무릎을 꿇고 가만히 속삭여주었다.

“류하오 찾으러 왔지?”

“……!”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놀랐는지 왕펑의 고개가 미세하게 바닥에서 띄워졌다.

그러나 이어지는 태운의 말을 끝으로,

“자고 일어나면 곧 만나게 될 테니까 걱정 말라고.”

“이… 개 같은……!”

툭 ―

왕펑은 그렇게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 * *

“나온다!”

“어디 어디!”

번쩍! 번쩍! 번쩍!

촤좌좌좌좌좍!

어느새 몰려온 기자들이 터뜨리는 후레쉬와 셔터 소리가 사방을 가득 메웠다.

“좀 지나갈게요!”

“지나갑니다!”

헌터 호텔에서 나온 협회 직원들이 2인 1조로 무언가 들것을 들고 실어 나르고 있었다.

“으윽…….”

들 것에 실려 먼저 모습을 드러낸 피투성이의 호텔 직원.

그리고,

촤좌좌좌좍!

흰 천에 덮인 누군가가 뒤이어 들 것에 실려 나왔다.

흰 천에 덮인 누군가가 들 것에 실려 나오자 사망자가 발생했음을 눈치챈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굽니까! 사망자 누굽니까!”

“사망자가 누군지 얼굴만 좀 확인합시다!”

몇몇 기자들이 선을 넘으려 했다.

빠직 ―

몇몇 기자들의 선 넘는 행동에 기자들을 헤치며 들것을 든 협회 직원들을 인솔하던 태성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후읍……!”

태성의 가슴이 잔뜩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그마아아아안!”

쩌렁 ― 쩌렁 ―

마력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순식간에 도심 전체를 울리는 어마어마한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

그 어마어마한 소리에 놀라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이는 호텔 앞.

한순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기자들을 둘러보며 태성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사상자들을 이송하는 대로 이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테니 잠시만 협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꿀꺽 ―

차마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기자들의 목 뒤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과연 이태성…….’

‘대한민국 헌터 협회 전투부서의 최강자!’

‘역시… 그들이 있기 전엔 이태성이 있었다더니!’

이태성의 어마어마한 기세에 위압된 사람들이 순순히 길을 비키기 시작하자,

삐용 ― 삐용 ―

사상자들을 태운 구급차는 순조롭게 현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자, 그럼…….”

상황을 정리한 태성이 이제 기자 회견을 가지겠다며 말하려는 그때,

저벅 ― 저벅 ―

문이 부서져 버린 호텔 안에서 훤칠하고 건장한 체격의 두 사내가 가면을 쓰고 모습을 드러냈다.

“코스모스 팀이다!”

“와아아아아!”

순식간에 기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헌터 호텔 앞으로 몰려갔다.

갑자기 몰려가는 수많은 인파에,

“자, 잠깐… 윽……!”

천하의 태성도 그 인파를 다 저지할 수는 없었다.

벌써 수년째 A급 최상위에 머물며 알파조장으로 있는 태성.

전보다 더 성장하여 S급까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지만,

‘…나도 어떻게든 코스모스로 올라가고 만다!’

오늘따라 더 조바심이 나는 그였다.

퍽 ― 퍽 ―

어마어마한 인파에 양어깨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태성의 가슴 속엔,

‘…서러워서 진짜.’

주르륵 ―

어느새 한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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