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나비효과가 엄청남 (4)
헌터 호텔 앞.
간이로 마련된 장소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방금 전 어떤 상황이었는지 말씀 좀 해주십시오!”
수많은 기자들을 비롯하여 그 이상으로 길거리를 가득 메운 일반 시민들.
그 수가 어찌나 많았는지, 다른 협회 직원들이 인근 경찰서에 협조를 구하여 차들이 우회할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부탁해야 할 정도였다.
“…….”
한편, 간이로 마련된 단상에 앉아있는 두 남자.
둘 다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새하얀 바탕에 눈코입조차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마치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나왔던 펜싱 호구 같은 가면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가면엔 보라색으로 각각 숫자 0과 1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기자들의 질문이 계속해서 빗발치자,
툭 ―
1이 그려져 있는 가면을 쓴 남자, 코드 원이 먼저 대표로 마이크를 잡았다.
“중국 국적의 왕펑 헌터가 헌터 호텔 로비에서 흡연하려 했고, 이를 저지하려던 호텔 직원분을 폭행하는 과정에서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이상입니다.”
“…고작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했다고 이 난리를 피웠다는 말씀이십니까?”
기자의 질문에 코드 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 인한 피해 상황은 어떻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코드 원은 지체 없이 대답해주었다.
“왕펑이 뿜어낸 마력 파동에 의해 호텔 앞을 지나가던 행인 한 분이 마력에 감염되어 구급차로 호송되셨습니다. 호텔 내부는 로비 전체의 가구들이 상했고, 바닥은 일부 파괴된 상태입니다. 천장과 벽도 크게 충격을 받아 점검과 수리가 필요합니다.”
막힘없이 술술 나오는 대답.
그러나 기자들의 질문도 거침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까 흰 천에 덮인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자가 왕펑입니까? 왕펑은 죽은 겁니까?”
“…….”
잠시 대답을 멈추는 코드 원.
코드 원은 고개를 돌려 가면에 0이 그려진 남자, 코드 제로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대답할까요 ― 라고 묻는 듯한 눈빛.
꿀꺽 ―
코드 제로의 대답을 기다리는 기자들과 사람들의 목 뒤로 마른침이 연신 넘어가고 있었다.
툭 ―
마침내 코드 원에게서 마이크를 넘겨받는 코드 제로.
코드 제로는 의외로 아무 망설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바로 답변을 내놓았다.
“예, 죽었습니다.”
“……!”
웅성웅성.
거리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왕펑은 중국 헌터, 그것도 S급 헌터였다.
그를 누가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기자들은 당황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왕펑은 중국의 S급 헌터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S급 헌터들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조차 왕펑과의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왕펑을 상대한 겁니까?”
“제가 상대했습니다.”
코드 제로는 아무렇지 않게 뭐가 문제냐는 듯 대답했다.
“……!”
다시 한번 술렁이는 사람들.
다들 혼란에 빠진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몸에는 이렇다 할 상처나 먼지 한 올조차 묻어있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는 말은 눈앞의 코드 제로가 왕펑을 압도했다는 말인데…….
‘그가 강한 건 예상은 했었지만…….’
‘단순한 S급 최상위가 아니라는 소리잖아 그럼!’
‘지, 진짜로 세계급 아니야?’
여태껏 코드 제로가 대중에게 보여주었던 가장 강력한 모습은 다중 브레이크를 정리할 때였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붉은 벼락을 쏟아내던 특임반장의 모습.
사람들은 그 사건 이후 특임반장이 최소 S급 최상위, 몇몇 사람들은 특임반장이 세계급이 아니냐는 말을 꺼내기도 했었다.
―특임반장, 세계급이라니까?
―뭔 개소리야. 그럼 우리나라도 벌써 P7 가입 절차 밟고 있겠지!
―맞아. 특임반장이 세계급이었다면 P8이 되었어야지.
하지만 세계급을 지닌 나라의 증표이자 세계 최강국 중 하나임을 인증된 P7(Power of 7) 가입 절차를 정부가 진행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압도적인 특임반장의 위용에도 그가 그저 김천용보다 조금 더 세계급에 가까운 S급 최상위 헌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S급 최상위 헌터 왕펑을 상처 하나 없이 죽였다니?
아니, 상처는 자가 회복이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먼지 하나 묻히지 않고 처리했다는 게 더욱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는 어찌 보면 코드 제로가 세계급임을 증명하는 명백한 증거.
꿀꺽 ―
그러니 아무도 차마 이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있는 저 두 남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체 모를 기세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력이 아닌 인간 본연의 기운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하는 두 거인.
두 사람의 기운에 압도된 기자들이 저마다 마른침만 꿀꺽꿀꺽 삼켜가며 누군가 대신 질문을 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수 초간의 정적이 이어지고,
스윽 ―
한 신입 기자가 용기 있게 손을 들고 말을 꺼냈다.
“코드 원 씨와 코드 제로 씨, 그러니까 대헌터진압 특수부대 소속이신 두 분은 벌써 여러 건의 고위 헌터 범죄를 처리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이렇게 질문드리겠습니다. 두 분의 실력은 S급 헌터를 뛰어넘는… 아니.”
용기있게 손을 들고 질문하던 신입기자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S급이든 세계급이든 그건 이제 중요치 않아.’
살짝 떨리는 그의 눈동자.
‘대중들이 정말로 궁금해하는 건 단 하나!’
잔뜩 긴장된 표정의 신입 기자의 숨 고름이 끝난 뒤, 마침내 모두가 궁금했던 질문이 신입 기자의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두 사람에게 던져졌다.
“두 분은 대체 누구십니까?”
코드 네임만 공개된 채 모든 정보가 기밀 처리되어 그저 베일에 싸여있는 두 사람.
신입 기자는 눈앞의 등급에 얽매이지 않고 이렇게 직접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초특급 기회를 제대로 살려낸 것이었다.
‘그렇지!’
‘잘했다 신입!’
다른 선배 기자들이 눈빛으로 신입을 칭찬하며 다시금 두 사람의 입에 주목했다.
“…….”
흘깃 ―
서로를 마주보는 코드 제로와 코드 원.
씨익 ―
가면 속의 두 사람은 서로가 미소 짓고 있음을 알아챘다.
“저희는…….”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댄 채 천천히 말을 내뱉는 코드 제로.
두근 두근 ―
꿀꺽 ―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기자들과 사람들은 심장이 숨 막힐 듯 조여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 기다림의 대가는,
“…평범한 협회 직원들입니다.”
실로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협회 직원인 걸 누가 모르냐고!”
숨죽인 채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참다못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건물에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박쥐 한 마리가,
파다닥 ―
다급히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서울 상공을 날아가고 있는 박쥐 한 마리가 다급하게 날갯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박쥐의 정체는,
‘이런 미친……!’
엔화를 환전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던 진타오였다.
빠르게 날아 서울 인근에 있는 어느 인적이 드문 산자락에 도달한 진타오.
착!
무성하고 높다란 나뭇가지 위에 몸을 숨긴 채 완전 변신을 풀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일단 목룡 길드로 왕펑의 사망 소식을 전하기 위해 문자부터 보내려 한 것이다.
언제 누가 따라와 입을 막기 위해 자신마저 제거하려 들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다 문득,
―어제 전화 내용은 너도 들었을 테지.
그는 얼마 전 왕펑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통화 내용까지 왜곡이 된다면 문자 내용은 당연히 무조건 왜곡되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진타오는 빠르게 핸드폰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wángpéng](왕펑)
[sǐwáng](사망)
[xiōngshǒu](흉수)
[hánguó](한국)
[liè](헌)
[rén](터)
[xié](협)
[huì](회)
[zhí](직)
[yuán](원)
총 10개의 문자에 나누어 띄엄띄엄 문자를 보낸 진타오.
그는 혹시나 따로따로 보낸 문자를 누군가 왜곡 대상이 되는 정보로 인식해 바꿔버릴까 싶어 일부러 문자마다 수초 간 간격을 두고 보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진타오.
‘일단 됐어.’
일단 왕펑의 사망 소식을 성공적으로 목룡길드로 전달한 진타오는 입술을 꽉 깨물며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변신하여 중국으로 돌아가려 하는 그 순간,
“어딜 그리 급히 날아가시나요?”
한 여인의 목소리가 진타오의 귓가에 들려왔다.
“……!”
깜짝 놀란 진타오가 발밑을 내려다보니 나무 밑에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금발의 모습을 한 여인.
이목구비가 이국적인 것이 서양인인 듯했다.
“…넌 뭐야.”
진타오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당연히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비서로 일하고는 있지만, 진타오는 엄연한 S급 헌터.
그런 그가 하늘을 거의 전속력으로 날아왔는데도 그런 그를 따라잡았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대인 것이 당연했다.
“당신, 방금 죽은 왕펑의 부하죠?”
금발의 여인이 붉은 혀를 날름거렸다.
“그리고 이제 중국으로 돌아갈 계획이고요. 왕펑의 죽음을 알려야 하니까.”
“……!”
진타오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여인의 말을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문자를 보내는 건 못 본 것 같았으니까.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지?”
고오오오 ―
진타오의 몸에서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감히 내 뒤를 밟아놓고도 모습을 드러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다행히 지금 두 사람이 위치한 곳은 인적이 드문 산기슭.
마음 놓고 싸워도 큰 문제가 없는 장소였다.
스팟 ― !
진타오의 신형이 나무 아래로 쇄도했다.
“캬악!”
징 ― 징 ― 징 ―
진타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초음파가 일대 전역에 퍼져나갔다.
‘이제 이 일대에서 내가 읽지 못하는 움직임은 없어!’
초음파를 이용해 사물을 분간하며 움직이는 박쥐의 능력.
물체에 튕겨져 나온 미세한 음파의 변화를 포착하여 움직이는 박쥐의 능력 특성상, 상대방의 움직임이 음속을 돌파하지 않는 이상 읽지 못하는 움직임이 없는 무적의 공간지각능력이 발현된 것이었다.
슈악 ― !
아래로 쇄도한 진타오의 발이 금발 여인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빠악!
가드를 올려 진타오의 발을 막는 여인.
꾸깃 ―
막긴 했지만 데미지가 없진 않은지 여인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감히…….”
열이 받은 여인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지더니,
푸쉬이이이이 ―
여인의 전신에서 수증기 비스무리한 것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일단 뒤로 거리를 벌리고 보는 진타오.
그러나,
슈우우우우 ― !
여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수증기는 그보다 빨리 일대를 잠식했다.
‘…안개?’
뿌옇고 짙은 안개 때문에 완전히 차단되어버린 시야.
그러나,
씨익 ―
진타오는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시야가 딱히 필요 없어서 말이야.”
그는 일단은 시야에서 사라진 여인을 찾기 위해 다시 한번 초음파를 내뱉었다.
“캬악!”
그런데,
징 ― 징 ―
“…어?”
초음파가 퍼져나가지 않았다.
아니, 퍼져나가긴 했지만, 그의 뇌리에 인식되는 공간이 무언가에 가려진 듯 흐릿하게 보였다.
‘…안개!’
그 이유를 단번에 깨달은 진타오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인이 내뿜은 안개의 물방울들이 초음파를 난반사하며 박쥐의 공간지각능력을 흐트러뜨리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크윽!”
이미 초음파를 사용해 공간을 지각하려던 진타오는 순간 거대한 스펀지에 갇힌 듯한 환각을 느꼈다.
자신의 능력에 스스로를 가둔 꼴이 된 것이다.
그렇게 그의 움직임이 잠시 굳은 사이,
슈슉 ― !
순식간에 그에게 접근한 여인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꽈악!
여인의 손이 진타오의 목을 붙잡았고,
기잉 ―
여인의 팔을 타고 흘러 들어간 붉은 기운이 진타오의 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끄으으으윽!”
순식간에 새빨갛게 충혈되는 진타오의 두 눈.
“크허억… 허억… 허억… 흐어억……!”
진타오가 순식간에 거칠어진 호흡을 빠르게 내뱉기 시작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움찔움찔!
어마어마한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여인에게 목을 붙잡힌 진타오의 전신이 전기에라도 감전된 듯 연신 움찔대기 시작했다.
“호호호. 그래도 행복한 죽음이죠? 운 좋은 줄 알아요. 나 같은 미녀가 마지막 가는 길에 이런 쾌락을 선사해주잖아.”
움찔움찔!
점차 진타오의 몸 떨림이 심해지고,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그의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곧,
“꺼어어억……!”
감당할 수 없는 욕정의 쾌락에 사로잡힌 진타오의 두 눈이 뒤집어졌다.
퍽 ― !
그와 동시에 그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풀썩 ―
힘없이 쓰러지는 진타오의 신형.
“에구. 그리 좋았을까.”
여인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과도한 쾌락에 먹혀 죽어버린 진타오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이런 행복한 죽음은 어디서도 못 받는다고? 악감정은 없지만… 잘가요. 박쥐 씨.”
여인, 올리비아는 쓰러진 진타오의 옆에 살짝 쪼그려 앉으며 두 눈을 벌겋게 뜬 채 죽은 진타오의 두 눈을 직접 감겨주었다.
“끄응… 오랜만에 싸웠더니 너무 힘드네. 이게 대체 무슨 고생이람.”
방금 전 진타오의 발차기를 막은 두 손을 살살 문지르며 투덜대는 올리비아.
빙글 ―
그렇게 그녀가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는 그때,
우우웅 ―
진타오의 주머니 속에서 한 차례 진동 소리가 새어 나왔다.
멈칫 ―
떠나려던 올리비아는 문득 느껴진 불안감에 걸음을 멈추었다.
“서, 설마……!”
파악!
다급히 진타오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드는 올리비아.
그리고 그의 핸드폰에 온 문자를 확인한 올리비아는,
“아, 안 돼애애애애애!”
마치 본인이 패배한 듯 절망스런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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