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폭풍 직전은 평화로운 법임 (3)
“임명장, 한유린. 위 헌터를 헌터 협회 전투부서 소속 델타조의 일원으로 임명합니다. 2097년 4월 1일, 헌터 협회장 한동석.”
짝짝짝짝짝짝짝!
헌터 협회 예비조의 들어간 지 겨우 한 달.
그 짧은 시간에 유린은 예비조에서 D급으로 승급하며 당당히 델타조로 올라설 수 있었다.
예비조로 들어왔던 협회 신입들 중 역대 최단기록 승급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인하의 헌신적인 노력과,
―유린이가 빨리 델타조로 올라가면 나도 이렇게 시간 안 빼도 될 텐데… 그럼 데이트도 더 많이 할 수 있을 텐데…….
―……!
인하와의 데이트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한 기성의 악이 받친 서포트가 있었다.
“허허허! 축하한다, 우리 딸! 겨우 한 달 만에! 너무 대단하잖아?”
“…열심히는 했나 보네.”
동석과 현주는 그 과정이야 어찌 됐든 단시간만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어낸 유린이 자랑스러운지 기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기념 식사라도 해야겠는데? 유린아,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아빠가 쏠…….”
“유린이가 살 거야.”
기분이 좋아 비싼 음식을 사준다는 동석의 말을 끊으며 마찬가지로 표면상(?) 축하를 위해 찾아온 기성이 유린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지?”
쿠구구구 ―
기성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무형의 기세가 유린의 전신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오빠인 기성에게 큰 신세를 진 유린은,
“…내, 내가 살게. 아무거나 다 말해. 그동안 속 많이 썩였으니까…….”
마른 침을 삼키며 오늘 전 재산을 털 각오를 하고 있었다.
예비 새언니(?) 인하에게서 마석 하나, 오빠 기성에게서 마석 하나까지 총 2개의 마석을 받은 유린이었다.
물론 나중에 마석에 대한 금액은 갚을 예정이지만, 그들 같은 고급 인력들의 시간을 빼앗은 대가만큼은 출장 뷔페 수십 번을 불러도 모자랄 정도였으니,
―가족
외식 네가 쏴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그럼 내 빚은 그걸로 퉁 쳐줄게.
그중 절반인 기성에 대한 빚을 이번 가족
외식 한 번으로 끝낼 수 있음에 감사하는 유린이었다.
그렇게 기성이 고른 예약 손님만 받는 고급 한정식 코스 요리 집에 들어간 네 가족.
“……!”
콰드득 ― !
메뉴판을 본 순간 유린의 전신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A코스부터 D코스까지 있는 한정식 집.
‘무, 무슨 한정식이 이렇게 비싸?’
화학조미료 하나 없이 갖가지 귀한 재료들과 비싼 약재가 모조리 들어가서 그런지, 제일 싼 A코스마저 1인당 200,000원이나 되는 고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델타로 올라갔으니까 D코스 시켜야지. 그치?”
씨익 ―
기성이 비릿하고도 얄미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덜덜덜……!
메뉴판을 든 유린의 손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D코스.
이 한식집에서 가장 비싼 코스였다.
1인당 500,000원.
“오, 여기 버전도 고를 수 있네. 프리미엄 버전이랑 노블레스 버전? 로열 버전도 있네? 대박인데?”
하지만 기성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술 더 뜨고 있었다.
“그, 그런 게 있다고?”
당황한 유린이 재빨리 기성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기재된 가격은 오리지널 가격입니다.
*프리미엄(Premium) = 오리지널 x 1.5
*노블레스(Noblesse) = 오리지널 x 2
*로열(Royal) = 오리지널 x 3
‘미, 미쳤어!’
유린의 동공이 엄청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린의 뇌가 재빨리 그녀의 잔고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유, 유린아, 괜찮니?”
안색이 창백해진 그녀를 보며 동석이 걱정스레 물었다.
아무래도 딸의 지갑 사정이 아직은 변변치 못함을 알고 있는 그였으니까.
협회에 입사한 지는 이제 겨우 한 달이 되었을 뿐이다.
지금껏 모은 돈에 협회 직원 한 달 월급 더해봤자 얼마나 되겠는가?
동석은 유린의 눈치를 살피며 손가락으로 A코스를 고르려고 했다.
하지만,
터업 ―
현주가 A코스로 향하는 동석의 손을 붙잡았다.
“여보, 딸내미가 사줄 땐 그냥 마음껏 즐기는 거야. 그렇게 눈치 보면 사주는 사람 성의가 뭐가 되겠어? 그치, 유린아?”
어머니, 현주는 그동안 유린에게 쌓인 것이 꽤 많았는지 창백해진 유린의 안색을 보고도 살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으, 응. 그렇지. 아, 아빠. 걱정 안 해도 돼. 나 돈 꽤… 모았어.”
“그, 그러니?”
이도 저도 못 한 채 두 모녀의 눈치를 살피는 동석.
“모, 모르겠다 나는… 당신이 골라줘. 당신이랑 똑같은 거 먹을게.”
결국 백기를 든 동석은 현주에게 선택을 이양했다.
“그래? 그럼 나는 D코스 프리미엄.”
“……!”
현주의 선택에 유린의 두 눈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500,000 x 1.5 x 2 = 1,500,000… 벌써 150만 원……!’
잔뜩 울상이 된 유린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오빠 쪽을 바라보았다.
“오, 오빠는……?”
피식 ―
그런 유린을 보며 기성은 재밌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D코스 로열.”
쿠궁 ― !
유린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총 300만 원.
아직 본인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온 금액이었다.
후덜덜덜……!
진짜로 전 재산이 거덜나게 생긴 유린은 미친 듯이 떨리는 손으로 메뉴판을 닫으며 제일 싼 코스를 선택했다.
“그, 그럼 나는 A…….”
아니, 하려 했다.
“A는 무슨 A야? 델타조로 올라갔으니 D코스 먹어야 한다니까? 그건 나중에 알파조 올라갈 때 먹고.”
“…아, 알았어.”
어째 뭔가 거꾸로 된 기분이지만 기성의 압박에 유린은 피눈물을 삼키며 D코스 오리지널을 선택했다.
총가격 350만 원.
한 끼 식사치곤 터무니없이 큰 금액이었다.
‘내 죄가 크구나…….’
여태껏 가족들을 걱정시키고 협회에 와서도 오빠와 새언니를 고생시킨 대가치곤 거저먹는 것과 다름없는 싼 금액이지만,
파르르 ―
그렇다 해도 사회초년생인 유린에게는 좀 많이 무거운 대가였다.
띡 ― 띠딕 ―
전자 주문판에다가 주문을 넣는 기성.
그런데,
“…어?”
뭔가 좀 이상했다.
“오, 오빠 뭐해? 왜 D코스 로열을 2개나 시켜?”
D코스 오리지널 하나, 프리미엄 둘, 그리고 로열 하나.
총 4명이었으니 이게 다였을 터.
그런데 지금 기성은 오리지널 하나, 프리미엄 둘에다 로열을 두 개나 주문하고 있었다.
“어? 엄마가 말 안 했어? 한 명 더 올 거야.”
“…누가 온다고?”
금시초문이라는 듯한 유린의 멍한 표정에,
씨익 ―
어머니, 현주가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때,
똑똑 ―
한씨 일가가 자리한 한정식집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현주의 허락에,
드르륵 ―
미닫이문이 열리며 훤칠한 사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초대 감사합…….”
문이 열리자마자 동석과 현주를 바라보며 인사를 올리던 남자는,
“…어?”
한쪽에 자리한 유린을 보는 순간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치 유린이 있을 줄 몰랐다는 듯이.
그리고 그건 유린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왜 저 사람이 여기에……?’
그녀의 머릿속은 남자가 쓰고 있는 가면처럼 새하얗게 변해버리고 있었다.
* * *
―유린이 승급 기념 외식 자리에 코드 제로를 초대할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해?
유린의 승급식 몇 시간 전, 현주는 동석과 기성을 불러놓고 긴급 가족회의 자리를 가졌다.
―뭔… 우리 가족
이벤트에 서로 어색하게 코드 제로를 왜 끌어들여? 그것도 바쁜 사람을.
동석은 그때까지도 현주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는지, 그저 서로에게 불편한 식사 자리가 될까 걱정하고 있었다.
―엄마, 난 찬성.
하지만 진작에 현주로부터 들어 어머니의 생각을 알고 있던 기성은 현주의 생각에 적극 찬성했다.
―솔직히 코드 제로 님이 훨씬 아깝긴 한데… 그래도 잘만 되면 세계 최강 최고의 처남이 생기는 거니까……!
기성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레이드 부스터 프로그램’ 때의 코드 제로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 무지막지하게 강한 사람이 자신의 가족이다?
그보다 든든할 수가 없었다.
―강함은 둘째치더라도 엄마 생각엔 사람이 너무 괜찮은 것 같아. 일하는 것도 착착 잘하고 어떻게 된 게 지혜롭기까지 하고 말이야. 그것뿐이야? 우리 직원들 챙기는 것 봐. 마음 씀씀이도 너무 착하고…….
―맞아. 외모 빼고 전부 허술한 걔한텐 좀 그렇게 철저하고 똑 부러지는 사람이 붙어야 해.
기성의 맞장구에 현주는 격하게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두 사람의 생각을 눈치챈 동석.
―…서, 설마?
어지간히도 충격을 받았는지 입까지 쩍 벌리고 서 있었다.
―아빤 어때요? 코드 제로가 사위 되면 너무 좋지 않겠어요?
기성이 실실 웃으며 동석에게 물었다.
―내, 내 딸을…? 코드 제로가… 으으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지간히도 딸 바보인 그였으니까.
애초에 딸을 시집보낼 생각조차 없었던 동석에게 이렇게 갑자기 사윗감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건 조금 과한 요구 사항이었던 것이다.
―유린이가… 내 딸 유린이가 남자랑……? 크으윽……!
생각만 해도 두통이 일어나는지 머리를 부여잡는 동석.
그나마 상대로 태운을 들이댔기에 망정이지, 다른 녀석이었다면 일단 눈앞의 책상부터 뒤집어엎었을 것이 뻔했다.
―…이 딸 바보는 냅두고 우리끼리 이야기해보자 기성아. 자, 그럼 일단 코드 제로를 우리 가족
식사 자리에 불렀어. 그럼 자리 위치는?
―당연히 맞은편이어야지. 옆자리는 서로 얼굴을 못 보잖아.
―옆자리가 더 가까운데?
―그건 연인일 때 이야기고, 처음 마주하는 건데 서로를 계속 의식하려면 맞은편이 최고야. 소개팅도 원래 마주 앉잖아?
―좋아, 그렇게 식사 자리가 끝났어. 그다음은?
―나는 바쁜 일이 있다고 식사 먼저 마치고 일어날게. 그리고 엄마 아빠는 계산 전에 두 사람 내버려 두고 화장실 간다면서 빠져나와. 절대 남자끼리 가거나 여자끼리 가는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같이 나와야 해. 아빠 혼자 남으면 아빠는 절대 안 나올 거야. 엄마가 책임지고 아빠 끌고 나와. 오케이?
―오케이.
―짐이나 겉옷은 애초에 그냥 차 안에 전부 두고 음식점에 들어가. 맨몸으로도 집 갈 수 있게. 괜히 짐 챙겨서 나가는 모습 보여서 티 나게 빠져나오지 말고.
―알았어, 그럼 끝인가?
―그 이상은 걔가 알아서 해야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아무 일 없으면 뭐… 서로 연이 아닌 거지.
―…불안한데. 그 기집애 성격에 딱히 들이댈 것 같지도 않고.
―남녀가 단둘이 있으면 어떻게든 일은 생기게 되어 있어! 걱정 마, 엄마! 그래도 걔가 외모 하나는 끝내주잖아?
―얼굴값을 못하니까 그렇지!
그 순간, 두 모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석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남녀… 단둘… 일이 생겨……?
빠드드드득 ― !
협회장실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로 커다란 이 가는 소리가 동석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이이가 미쳤나? 이빨 다 상해! 마력 수치 아깝다고 자가 회복도 안 쓰는 양반이 몸 아까운 줄 모르고!
찰싹!
현주의 팔뚝 스매싱에 잠시 정신이 돌아온 동석은 얼얼한 팔을 문지르며 울상을 했다.
―여보…! 우리 유린이를 남자랑 단둘이 두다니?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시끄러! 그만한 사윗감한테 들이댈 수 있는 기회라도 있는 게 어딘데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어?
―아빠, 죄송한 말이지만, 코드 제로 님이 훨씬 아깝거든요. 아빠가 그렇게 아까워할 처지가 아닌…….
―한기성! 너 여동생을 그렇게 찬밥 취급하는 거 아니야!
―이이가 왜 이래? 무슨 찬밥 취급이야? 찬밥을 지금 다이아몬드 밥솥에 넣어주려고 하고 있는데!
그렇게 다소 소란스러웠던 한씨 일가의 한유린 남친 만들기 프로젝트 회의가 끝이 났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깨작…….
고급 코스 요리 앞에 서로 마주 앉은 두 남녀가 어색한 기운을 잔뜩 풍겨대며 천천히 식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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