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폭풍이 세계를 뒤흔듦 (1)
“왕펑이 죽었대……!”
“뭐? 누구한테?”
“한국의 헌터 협회 직원한테 죽었다는데?”
“뭔 개소리야! 헌터 협회 직원이 어떻게 S급 헌터, 그것도 왕펑을……!”
“진짜라니까! 리융이 목룡 길드 단체방에 올렸다잖아! 그 왕펑의 비서로 있던 S급 헌터 진타오가 보낸 문자 내용까지 캡처해서!”
“…진짜라고? 진타오가? 그, 그럼 왕펑이 죽었으면 진타오는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는데?”
“…진타오도 행방불명이래. 그 문자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나 봐.”
“……!”
진타오가 보낸 문자를 리융이 목룡 길드 단체방에 올리고 불과 며칠.
그 단시간 만에 퍼진 이 소식은 중국 헌터계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헌터계 전체가 들썩인다면 일반 시민들에게도 결국 소식은 전해지기 마련.
결국 15억이 넘는 중국 인구의 대부분이 중국 고위 헌터, 왕펑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헌터계는 크게 분노한 반면 시민들은 그닥 왕펑의 죽음에 대해 분노하지 않았는데, 그동안 왕펑이 해온 민폐 짓을 목격한 사람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었다.
워낙 헌터들의 권력이 강한 나라이다 보니 시민들이 대놓고 불만을 표하지 못했을 뿐, 대놓고 헌터들에게 권력을 내어준 중국은 전 세계에서도 헌터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은 거의 유일한 나라였다.
어쨌든 왕펑이 한국 헌터 협회 직원에게 죽었다는 소식에 한국과 중국 사이의 헌터 협회에 관한 정보 교류량은 불과 며칠 만에 수천 배로 불어나게 되었다.
안 그래도 노아신 없이 권능체만으로 간당간당하게 견디고 있는 그 와중에 갑자기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났으니.
쩌적……!
권능체가 그 과부하를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북한 금강산에 위치한 어느 한 깊숙한 동굴 안.
그 안에 위치한 작은 방주 모양의 석상 하나가,
쩌적……!
쿠르르르르 ― !
금이 가다 못해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사아아아아아 ―
한반도 전체를 덮고 있던 투명한 무언가가 소멸했다.
* * *
[전 세계 난리났다… 마침내 퍼져나간 한국의 헌터계 소식.]
[왜 이제야? 이상하리만큼 늦은 해외 반응… 어쨌든 한국 헌터 범죄 소식에 해외 SNS 온통 마비.]
[너튜브, 인별, 얼굴북 등 한국 헌터 범죄와 협회 소식으로 도배… 해외 반응, “충격 그 자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 마르코 교황 曰 “나에게 헌터의 범죄 소식은 교인의 범죄 소식보다 더 큰 충격.”]
“…소름이 다 돋는군.”
협회장실에서 뉴스를 보던 동석은 진짜 소름이 돋았는지 팔을 마구 쓸어내렸다.
“미리 말씀 드린 내용 아닙니까?”
함께 있던 태운은 이제 와서 새삼스레 뭘 그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아즈 아크의 정보 왜곡망을 깬다고 미리 말해둔 뒤였으니까.
“…자네가 미리 말했으니까 더 소름이 돋는 거네. 아니 고유 능력에 미래 예지라도 있는 거 아닌가? 어떻게 이렇게 잘 맞추나?”
“맞춘 게 아니라 일부러 만들어낸 전체적인 흐름의 일부일 뿐입니다.”
종합격투기 세계 최강자나 다름없는 자리를 차지했었던 태운.
링 위나 케이지 안으로 들어가면 언제나 눈앞의 상대에 집중하는 것에 더해 수와 흐름을 읽는 데에도 집중했었던 태운이었다.
움찔.
상대방 근육의 작은 움직임, 그리고 그로부터 나오는 앞으로의 모션을 읽어내고,
―허억… 허억……!
상대방의 호흡과 그 특유의 습관 등을 읽어 어떤 상태에서는 언제 어떻게 나오는지 예측하고 전체적인 싸움의 흐름을 이끌어 주도하며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
참된 무패신화의 주역인 태운이 반평생을 해오던 일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자네가 원하는 대로 되었으니… 다음 흐름도 예상해둔 거겠지?”
“아니요.”
“…어?”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아니라고 대답하는 태운의 반응에 동석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걸 모르면 어떻게 하나?”
“예? 그걸 제가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일단 당한 게 많으니 놈들한테 갚아준 것뿐인데.”
음지에서 암암리에 헌터들을 구원한다는 핑계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온 노아즈 아크.
전 세계에 숨어있는 그들을 처단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도록 자극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들이 활동하기 편하도록 헌터계와 전 세계 언론을 장악하여 헌터가 거의 완전무결한 초인이라는 인식을 심어둔 노아즈 아크다.
그런데 그렇게 심어둔 인식을 한국에서 뿌리째 뽑아버린 것이 바로 태운이라는 존재.
그런 그의 존재와 그동안 해온 활동에 대한 소식이 전 세계로 퍼진다면?
‘전 세계는 혼란으로 물들고… 아마 놈들은 앞으로 활동하는 데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
한국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억압되어 있었던 ‘헌피연’이 있었던 것처럼 다른 나라에도 수많은 헌터 범죄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이 있을 터였다.
한국의 소식이 전해진다면 그들이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줄 좋은 신호탄이 되어줄 터.
또한 한국의 헌터 범죄에 대한 소식을 접한 다른 일반 시민들도 더 이상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하지만은 못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은… 태운으로서도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어떻게든 이 혼란을 수습하려 하겠지… 그 수습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태운의 가라앉은 두 눈이 협회장실에서 방송되고 있는 뉴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뉴스를 바라보던 태운.
그리고 곧 뉴스 화면 밑에 긴급속보를 알리는 빨간색 헤드라인이 뜨는 순간,
“…시작됐군.”
태운의 두 눈에 이채를 띠기 시작했다.
* * *
전 세계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전 세계적인 축제 때문에?
아니, 그런 건 헌터가 등장하고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럼 전 세계적인 기념일인 크리스마스라서?
지금은 4월이었다.
전 세계적인 기념일 같은 건 없었다.
그럼 대체 무엇 때문일까?
그건 바로,
“정부와 협회는 한국처럼 각성하라!”
““각성하라!””
“헌터 범죄자를 처벌하고 엄격히 단속하라!”
““단속하라!””
“한국의 헌터 협회를 본받아라!”
““본받아라!””
“지금껏 묻혔던 모든 헌터 범죄를 재수사하여 제대로 규명하라!”
“”규명하라!“”
전 세계에서 들고 일어난 헌터 범죄 피해자들의 가족들과 그 지인들 때문이었다.
그 시작은 미국이었다.
미국 헌터 피해자 연합의 수장, 앤더슨은 확성기에 대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외쳤다.
“내 아들과 딸이 헌터가 뿜어낸 마력에 죽은 지 벌써 9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부는 우리 아이들을 외면했고! 헌터들은 무슨 개소리를 하냐며 조롱했지! 사람들마저 내 절규를 외면했을 때의 심정을 당신들이 아는가!”
““아는가!””
이 사회와 정부를 규탄하고 재수사를 촉구하여 정의를 실현하라는 플래카드를 잔뜩 들고 백악관 앞으로 나온 미국의 헌피연 사람들.
그 앞에서 앤더슨은 절규하고 탄식을 토해냈고, 땅을 치며 목놓아 부르짖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저 먼 나라의 한국 헌터 협회가 만들어 준 이 작은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 사회의 눈과 귀, 코를 모두 가리더라도 저 하늘만큼은 가릴 수 없는 것처럼! 진실은 언젠가 어떻게든 밝혀지리라 믿으니까!”
““믿으니까!””
앤더슨의 마지막 말을 따라하는 헌피연 사람들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우리의 이웃을 위해! 우리의 친구들을 위해! 우리의 가족을 위해! 우리는 맞서 싸울 것이며 다시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이 사회를 바꿀 것이다!”
““바꿀 것이다!””
“전 세계의 피해자들이여! 용기를 내라!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당신들과 뜻을 함께하는 우리가 언제까지나 여기에 버티고 서있을 것이니!”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부르짖는 함성 소리에 백악관 일대가 커다랗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잉 ―
그 울림은 전파를 타고 세계로 뻗어나갔다.
* * *
“뉴스 봤냐?”
“어. 요즘 미쳤던데?”
꽤 많은 잡음이 있었지만 이미 한 차례 대규모 청소가 끝난 한국.
믿음직해진 협회와 노선을 확실히 정한 3대 길드 덕에 전체적으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한국은 연이어 터져 나오는 뉴스에 다시금 조금씩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바로 뒤늦게 일어난 헌터 범죄 피해자들의 전 세계적인 시위 때문이었다.
“그럼 그렇지. 우리나라만 그럴 리가 없지.”
“아니, 우리나라는 양반이더만. 우리는 그래도 피해자들이나 그 주변 사람들을 제외하면 일반 사람들은 잘 몰랐잖아? 근데 외국은 알고도 입을 닫고 있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대.”
전 세계 각국의 헌피연 사람들은 오랜 시간 조사만 해두었을 뿐, 차마 내놓지 못하고 있던 자료들을 속속들이 내놓기 시작하며 전 세계적으로 그 수치가 공개되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나온 그 자료들을 모두 받아 한 번에 통합시켜 보기 좋게 만드는 역할은 한국의 헌피연 회원들이 대신해주었다.
“맞아. 우리나라 한 해 마력감염증 환자의 절반이 헌터들에 의한 거라는 것도 엄청 깜짝 놀랐는데… 한국 제외하면 외국은 제일 비율이 낮은 국가가 64%라는데?”
“아니 미친… 그럼 제일 많은 국가는 어딘데?”
“중국.”
“어, 얼마길래?”
“93%래.”
“……!”
카페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여인의 말에 남자가 깜짝 놀라 마시던 물을 뿜을 뻔했다.
“아니 그건 좀 심하잖아! 근데 왜 안 들고 일어나?”
“중국은 말하려고 하면 그냥 다 마력감염증에 걸리게 만들어버린대. 헌터가 되어서 말하려고 하면 고위 헌터들이 던전에 끌고 들어가서 죽인다는데.”
“와… 괜히 전 세계적으로도 헌터 수가 압도적인 게 아니었네.”
인구수를 생각해보더라도 헌터 수가 너무나도 압도적인 중국.
93%에 달하는 중국의 수치도 놀라운 건 놀라운 것이지만, 중국이 아니더라도 80%가 넘는 국가들이 꽤 많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이었다.
“왜 우리나라는 적었지?”
“CCTV 덕분이지. 한국이 49%고 그 다음으로 낮은 일본이 64%잖아. 아무리 헌터들이라고 해도 CCTV 앞에서 대놓고 저지르지는 않으니까… 헉!”
여인은 핸드폰을 보다가 헉 하는 소리와 함께 헛바람을 들이켰다.
“뭐, 뭐야? 또 왜 그래?”
여인의 너무나도 심각한 반응에 남자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말을 더듬었다.
“이, 인별 봐봐! 지금 생중계로 시위 탄압하는 모습이 그대로 나오고 있어!”
“뭐?”
재빨리 남자도 핸드폰을 들어 인별그램을 확인했다.
“헉!”
SNS 안에는,
{아아아아아악!}
정말로 여인의 말처럼 헌피연 시위를 폭행하는 외국의 경찰들과 헌터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오고 있었다.
헌피연의 목소리가 지금보다 더 커지는 걸 두려워한 몇몇 국가들의 정부와 헌터계가 그들을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탄압의 불똥은,
띠리리 ―
결국 한국에게까지 튀어 오르고 있었다.
“네, 협회장 한동석입니다.”
갑자기 울리는 협회장실 전화를 받은 동석.
곧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바꿔드리겠습니다.”
스윽 ―
눈앞에 있던 태운에게 전화를 내밀었다.
“…뭔가요?”
“대통령… 김정원 대통령의 전화일세.”
“…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태운의 귀에 김정원 대통령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코, 코드 제로 씨! 큰일났습니다!}
“……!”
한국 정부를 향한 세계의 압박이 시작된 것이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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