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치료제를 만들어버림 (1)
헌터 협회.
헌터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고, 헌터들의 활동을 지원해주며 보조해주는 국가 조직.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헌터들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고 국가 전역에서 나타나는 던전을 관리하며 헌터들에게 배정해주는 등 헌터들의 활동이 용이하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헌터들의 토벌 경과나 던전의 브레이크 시기 여부를 판단하여 혹시나 시민들에게 닥칠 수 있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관리하는 역할도 맡았다.
그래, 시민들에게 벌어질 수 있는 불상사를 막는 것.
이 또한 협회의 역할이었다.
강한 힘을 가진 헌터를 관리하고자 만들어진 전 세계 헌터 협회의 초창기 이름이 헌터 경찰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 이 역할이 주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공무원이라는 신분적 한계로 인해 길드 헌터나 용병 헌터들에 비해 현격히 적은 수입을 가져가야 했던 헌터 협회 직원들.
이런 열악한 환경은 정말 뜻과 열정이 있는 헌터만이 협회에 남을 수 있게 하는 촘촘한 거름망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협회의 약화와 인력 부족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했다.
결국 헌터 경찰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된 협회는 그저 헌터들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보조 기관으로 전락.
단 하나의 국가도 예외 없이,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결국 강한 힘을 가진 헌터들을 제어할 수 있는 존재가 하나도 없게 되었고 고위 헌터들은 그 길로 정계와 결탁, 언론과 소문을 통제하며 암암리에 이른바 ‘범죄 면허증’을 취득한 꼴이나 다름없게 되었던 것이다.
태운은 최근 국내 헌터 범죄자들을 모두 정리하며 한 가지 고민에 빠졌었다.
‘헌터 범죄를 막는 방법…….’
헌터 범죄를 막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모두가 쉬쉬하는 헌터 범죄가 한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일 것임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태운.
그는 정보 왜곡망이 사라지고 한국의 소식이 해외에 전해질 경우, 다른 국가의 헌터 협회들이 겪게 될 난감한 상황을 미리 고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터 범죄를 막는 방법 첫 번째.
그건 포기했었던 헌터 경찰로서의 역할을 철저하게 이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헌터 협회 소속 헌터들의 전력을 길드 헌터들 전력 이상으로 강화해야 가능한 방법.
대부분의 헌터들이 기피하여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헌터 협회가 자신들의 전력을 강화할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인력 부족으로 인해 헌터 보조 역할인 전국의 던전 수 파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국가가 부지기수였으니까.
그나마 한국의 경우에는 태운이라는 초강자가 등장하여 그들을 이끌어주었기에 헌터 경찰로서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었던 매우 운이 좋은 케이스였을 뿐.
태운이 없었다면 한국도 다른 국가들과 여전히 비슷한 신세였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태운이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당장 각국의 헌터 협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헌터 범죄를 막는 두 번째.
그건 사실상 던전과 헌터가 나타났었던 초창기 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빨리 가능해지기를 원했던 방법이었다.
하지만 각국의 연구진들이 결국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선언한 뒤 모두가 포기하고 만 그 방법.
‘마력감염증 자체에 걸리지 않게 만드는 거지.’
바로 마력 백신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동안 쉬쉬했었던 한국의 헌터 범죄들을 모두 수면 밖으로 꺼내 올리며 작성된 헌터 범죄에 대한 통계 자료가 있었다.
그건 바로 헌터 범죄의 대부분이 마력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것.
직접적으로 마력 감염을 일으킨 사례 건수가 전체 헌터 범죄의 80%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20% 중 18%는 마력 감염을 빌미로 한 협박에 의해 일어난 범죄들이었다.
즉, 헌터가 범죄를 저지를 때에 마력 없이 순수하게 범죄를 저지른 비율은 불과 2%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마력 감염만 막는다면 헌터 범죄로 인한 대부분의 피해자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의미지.’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이미 세계의 누군가가 이루고도 남았을 터.
안타깝지만 지구의 물질이 아닌 마력을 병균이나 바이러스처럼 백신이나 치료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 세계 모든 이름 있는 연구팀이나 대학 연구진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에,
‘제발 뭐라도 성과가 나와 있으면 좋겠는데…….’
태운이 도전하고 있었다.
‘메디스카이’라는 든든한 지원군과 함께 말이다.
* * *
띠 ― 띠 ― 띠 ―
취이이이익 ― !
백적산과 장군산 사이에 위치한 산골짜기에 지어진 메디스카이의 대규모 신약 개발단지.
타다다닥 ―
태운이 부탁한 마력 백신 개발을 위해 방마복을 입은 연구진들이 정체와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가 가득한 커다란 연구실 안에서 무언가를 분주히 기록하고 있었다.
쿠르르르륵 ―
커다랗고 투명한 캡슐 안에 이상한 액체와 함께 들어가 있는 한 남자.
쿠르르르륵 ―
그가 숨을 쉴 때마다 그의 입에 끼워진 산소마스크에서 공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인체 병기를 만드는 듯한 그 모습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경과는?”
“샘플 SE―2는 아무 반응도 없고… KQ―3은 오히려 부작용만 나타났습니다. 이걸로 이제… 현재 존재하는 모든 약들은 효과가 없는 걸로 판명났…….”
연구진들이 차트를 확인하며 정보를 주고받는 그때,
쿠르르르르륵 ― ! 쿠르르르르륵 ― !
캡슐 안에 있던 남자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삐익 ― ! 삐익 ― ! 삐익 ― !
덩달아 요란하게 난리 치기 시작하는 심전도 모니터.
“…이번엔 4일만인가.”
연구원 중 하나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쿠르르르륵 ― ! 쿠르르륵……!
의식이 없음에도 전신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남자.
버둥버둥.
그렇게 전신을 뒤틀기를 십수 초.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삐이이이이이……!
그의 심장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8번 실험체, 사망했습니다.”
“…소각장으로.”
딸깍!
촤아아악 ―
사망하고 나서야 캡슐 안에서 꺼내지는 남자.
그의 성기 부근에는 방주 모양의 검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남자의 정체는 바로 주작 길드의 산하 길드에 있던 길드원이자 노아즈 아크의 조직원 중 하나였던 것이다.
꽈악 ―
그 모습을 보던 한 연구원이 입술을 깨물었다.
“…괴롭나?”
그런 연구원의 옆에 다가와 말을 거는 선임 연구원.
방마복으로 전신이 가려진 상태였지만, 다른 연구원들과는 다른 뭔지 모를 위엄이 느껴지고 있었다.
“…조금 그렇습니다.”
“저들의 정체는 이미 말해두었을 텐데? 죄책감 가지지 말게. 저들을 사람으로 대우하지 마. 그건 피해자들에게 절대 용서받지 못할 짓이니까.”
“알겠습니다, 회장님.”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연구원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위엄을 드러내고 있는 연구원의 정체는 바로 메디스카이의 회장, 허준석이었으니까.
“음.”
툭툭 ―
그래도 그의 심정을 이해는 한다는 듯 허준석은 고개를 숙인 연구원의 등을 두어 번 두드려주었다.
“죄책감은 가지지 말고… 오히려 저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하게. 그들이 지은 죄를 일부나마 이 실험에 참여함으로써 덜어준다고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편할 거야.”
“새겨듣겠습니다.”
쿠르르르르 ―
실험실 한쪽에 마련되어있던 목관에 담겨 밖으로 옮겨지는 시체.
지이이잉 ―
실험실 문이 열리며 시체가 나가고,
뚜벅 ―
때마침 실험실로 오고 있던 한 남자가 열린 실험실 문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방마복을 입은 연구원들과 달리 정장 하나만을 걸치고 얼굴에 하얀 가면을 쓴 남자.
“아… 코드 제로 님!”
태운을 본 허준석의 표정에 어색한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 * *
마력 백신 제작 연구에 착수한 지 어언 3개월.
비록 백신이나 약 같은 것들이 개발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맞지만,
“…죄송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연구에 아무런 진척이 없는 것은 허준석으로 하여금 태운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조금 아쉽긴 하네요. 괜찮습니다. 원래 백신이라는 게 만들어달라고 했다고 해서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애초에 벌써 수십 년이나 아무도 이루지 못한 걸 3개월 만에 이루는 게 이상하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운은 조금은 아쉬운 듯 그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아즈 아크 놈들을 잡아 실험체로 쓸 수 있게까지 해주지 않았는가?
원래 같으면 비윤리적이며 비도덕적이라고 해서 결코 용납되지 않을 인체 실험까지 가능하게 해주었는데도 성과가 없다는 건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긴 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허준석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는 부분이기도 했다.
‘인체 실험까지 하면서 성과가 하나도 없다니……!’
“후우…….”
상당히 화가 나긴 했지만, 그 누구도 아닌 코드 제로 앞이었기에 허준석은 일단 길게 한숨을 쉬며 분노를 삭여냈다.
“…그나저나 아직도 죄책감을 느끼는 연구원분들이 많은가 봅니다.”
두리번 두리번.
태운은 그 짧은 순간에 가만히 실험실 안을 둘러보며 연구원들의 표정에 담긴 감정을 읽어냈다.
“…네. 아무래도 생각처럼 마음이 굳게 잘 먹어지지는 않나 봅니다.”
상당히 침울해져 있는 연구원들.
아무리 범죄자라고는 하지만 사람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죽게 했다는 사실이 그들로 하여금 커다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는 듯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걸 준비해오길 잘했네요.”
촤락 ―
태운은 품에서 코팅된 종이 뭉치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건……?”
“수감동에 들어가 있는 범죄자들의 모든 범죄 기록입니다. 지금까지 실험당했던 이들에 대한 범죄 기록도 모두 나와 있습니다.”
“……!”
태운의 말을 들은 연구원들이 놀란 눈으로 태운을 바라보았다.
“다들! 여기 와서 이거 좀 드시죠!”
쿵 ―
태운은 고생하는 연구원들을 위해 사온 커다란 피로회복제 박스를 책상에 올려놓으며 연구원들을 끌어모았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까득!
꽤 피곤했는지 곧바로 피로회복제 뚜껑을 따고 목 뒤로 털어 넣는 연구원들.
그리고 그런 연구원들에게,
“연구원분들? 이것 좀 한번 보시죠.”
태운은 코팅 뭉치를 내밀었다.
“…이게 무슨…….”
갑자기 주어진 종이 다발에 한 연구원이 얼떨결에 코팅 뭉치를 받아들었다.
“죄책감에 너무 시달려 하시는 것 같아서요. 여러분들이 실험에 사용하실 실험체들의 범죄 기록들입니다. 참고로 밝혀진 것만 그 정도. 실제로는 더 있을 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태운은 연구원이 들고 있는 코팅 뭉치를 몇 장 넘기며 사진을 확인하더니, 중간에서 한 장을 꺼내들었다.
“방금 전 죽은 남자, 이름은 유호순이네요. 마력 감염으로만 3명을 죽였으며 그 밖에는 무전취식 17건, 절도 8건, 폭행 6건이 있네요. 폭행 건수는 6건이지만 피해자는 14명이군요. 혼자서 여러 명을 폭행한 건수도 적지 않았어요. 폭행 피해자 중 한 분은 식물인간이 되었고, 2명은 중태에 빠졌고… 경상자는 하나도 없이 전부 중상자로 분류되셨네요.”
“……!”
충격을 받은 연구원들이 두 동공을 잘게 떨었다.
예비 사형수라고 듣긴 했지만, 구체적인 범죄 기록을 확인하니 더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여기 수감된 이들은 모두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은 범죄 전력들을 가지고 있는 놈들입니다.”
연구원들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 태운의 목소리에 약간의 분노가 묻어나왔다.
“연구원분들?”
흠칫!
태운의 부름에 방금 전까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던 연구원들이 어깨를 살짝 떨었다.
“이래도… 죄책감이 느껴지십니까?”
태운이 가져온 실험체들의 범죄 기록을 확인하는 연구원들의 전신이,
부르르르 ―
어느새 분노에 휩싸여 떨리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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