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치료제를 만들어버림 (2)
연구원들의 죄책감을 단번에 없애준 태운은 허준석 회장과 함께 개발단지 식사동으로 이동했다.
차라랑 ― 차라랑 ―
수백 명의 연구원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식사동.
여기저기서 식기들이 부딪히며 식당 직원들의 설거지 소리가 들려오고,
달그락 ―
피곤에 찌든 몇몇 연구원들이 여기저기서 음식을 푸며 조용히 식사를 하는 소리가 간간히 그 사이로 들려오고 있었다.
완전히 자율적인 식사를 권장하는 신약개발단지.
그 때문일까, 점심 시간이 되었음에도 식당 안에는 겨우 10명이 조금 넘는 연구원들이 여기저기 떨어져서 식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 메인 메뉴는 제육이군요.”
허준석 회장이 미소를 지으며 식판을 꺼내들었다.
“맛있는 게 나왔네요.”
허준석 회장의 뒤를 따라 식판을 꺼내드는 태운.
밥, 제육볶음, 계란국, 그리고 김치와 몇 가지 채소를 식판을 담은 두 사람은 식당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맛있게 드십시오.”
“예. 잘 먹겠습니다. 회장님.”
식사동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는 두 사람.
두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생각하면 실로 소탈한 식사가 아닐 수 없었다.
20분 정도 흐른 뒤,
“일어날까요?”
“예.”
잔반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식판을 반납한 뒤, 다시 연구동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걸어가며 허준석 회장은 태운에게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래서 일단 시중에 있는 모든 약물들은 마력에 효과가 없음을 보았습니다. 무반응인 게 대다수였고, 몇몇 약물들은 그냥 정상적인 사람이 먹은 것처럼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하더군요. 아예 마력과 약물 사이에 상호작용 자체가 없는 겁니다.”
“의료기기 쪽은 어땠습니까?”
“마찬가지였습니다. 방사선, 레이저 등등… 마력에는 아무 영향을 줄 수가 없더군요.”
“음…….”
태운은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던전과 몬스터의 마력은 애초에 다른 세계의 물질이었으니까.
지구가 가진 자연의 기운과는 아예 다른 차원의 물질이라 상호작용이 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치 2차원의 존재가 3차원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마력 호흡이 그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가 비효율적인 것이겠지.
“그러면… 앞으로의 연구 계획은……?”
“아무래도… 원점으로 돌아가야겠지요.”
허준석 회장이 살짝 한숨을 쉬었다.
“결국 마력에 반응하는 건 마력에 적응한 헌터나 던전에서 나온 부산물들밖에 없다는 것이니까요. 마정석과 몬스터의 뼈, 그리고 살점으로 실험을 이미 시작하긴 했습니다. 사실 이쪽으로는 이미 세계 각지에서 과거에 진행했던 연구 데이터들이 많이 있어서 자료 자체는 많습니다. 혹시 마력감염증에 걸린 사람들이 대체 어떤 이유로 죽게 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마력에 적응하지 못해서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태운의 대답에 허준석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적으로만 말하면 그 말이 맞긴 합니다. 실제로 간단하기도 하고요.”
“혹시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 자세한 과정은 저도 모르고 있었네요.”
설명해달라는 태운의 말에 허준석 회장의 두 눈이 살짝 빛났다.
전문분야에 대해 설명하기 좋아하는 찐 이과의 특성이 고개를 든 것이었다.
“사실 우리 지구에도 마력 입자가 있는 건 알고 계시죠? 헌터들이 마력 호흡을 해서 몸에 마력 입자들을 쌓는 과정이 바로 그것이니까요. 지구가 원래 가지고 있던 마력, 그러니까 기라는 물질은 자연의 일부인 우리와 함께 같은 흐름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던전의 마력이나 헌터들이 쌓은 마력은 다르죠.”
허준석 회장은 양손을 들어 주먹을 쥐고는 두 주먹을 툭 부딪쳐 보였다.
“던전이나 헌터들에 의해 흐름과 성질이 변형된 마력입자는 일반인 신체의 세포와 만나게 되면 충돌을 일으킵니다. 서로 반발하는 거지요. 단순히 반발에서만 그치면 좋겠습니다만, 이 변형된 마력이라는 게 성질이 고약합니다. 어떻게든 자신과 부딪힌 세포의 기운의 흐름마저 바꾸려 들죠.”
“……!”
태운의 얼굴에 뭔가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래서……!”
“네, 맞습니다. 생물의 세포와 만난 마력 입자가 세포의 성질을 바꾸려 드는 것. 이것이 바로 마력감염증입니다. 여기서 마력에 의해 성질이 바뀌면 각성하는 것이고, 바뀌지 않으면…….”
“…마력 입자에게 끝까지 저항하다가 발생한 고열로 인해 사망하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허준석 회장이 조금 가라앉은 표정으로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마력감염증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이 훨씬 더 강한 분들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력 입자에 끝까지 대항하셨다는 거 아닙니까? 그에 반해 헌터가 된 이들은 줏대 없이 변한 것이지 않습니까?”
헌터인 태운이 그렇게 말을 하자, 허준석 회장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하… 어쨌든 결국 마력 백신이라 함은, 그런 세포들의 대항성을 낮춰줘야 하는 것인데… 사실 이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한번 변하지 않으려는 세포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거든요.”
“그럼…….”
“예, 사실 마력감염증 같은 경우엔 백신보다 치료제가 훨씬 더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사실 치료제로 쓸만한 물건은 이미 거의 완성된 채로 오래전부터 세상에 나와 있습니다.”
“……!”
허준석 회장의 말에 태운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이미 거의 완성된… 채로 세상에 나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마력감염증 치료제가……?”
끄덕 ―
입을 꾹 닫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허준석 회장.
그리고 곧바로 다시 떨어진 허 회장의 입에서 새어 나온 말에,
“제마액.”
“……!”
태운은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마액이 바로 마력감염증 치료제의 가장 유력한 후보군입니다.”
* * *
다시 연구동.
실험실로 돌아온 허 회장은 태운을 이끌고 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제마액이 헌터를 약화시키는 프로세스는 알고 계시죠?”
“네. 지구로 나오면 곧바로 산화하여 소멸하기 시작하는 몬스터의 뼛가루가 주변의 마력을 흡수함으로써 그 형태를 유지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 아닙니까?”
단 일주일이면 완전히 산화되어 사라지는 몬스터의 뼈.
그러나 몬스터의 뼈는 지구의 마력이 아닌 변형된 마력을 흡수하여 그 형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제마액이 바로 그런 원리.
마정석과 달리 헌터가 가지고 있는 마력을 빼앗아 흡수하지는 못하지만, 헌터가 마력을 발현하는 순간 그 마력을 흡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몬스터의 뼛가루를 액체 형태로 만든 제마액은 헌터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마력이 흐르는 혈관에 주사할 경우엔 계속해서 조금씩 마력을 흡수하기에 피를 완전히 갈아엎지 않는 이상, 영구적으로 헌터를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제마액은 그렇게 마력을 흡수합니다. 이는 즉 마력감염증에 걸린 환자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죠.”
허 회장의 말에 태운이 두 눈을 반짝였다.
“확실히… 그렇군요. 마력감염증 환자 몸 안의 마력은 애초에 양도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허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딸깍 ―
허 회장은 컴퓨터 안에 있는 한 파일을 열어 보였다.
외국의 한 교수가 제마액과 관련하여 쓴 논문이었다.
“이미 외국에서도 제마액을 가지고 치료제를 만들려는 시도를 한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패했죠. 왜인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그건 바로 제마액에 들어있는 뼛가루의 크기 때문이지요.”
딸깍 ― 딸깍 ―
허 회장이 마우스로 또 다른 파일을 열었다.
“이건…….”
“현미경으로 확대한 제마액 속 몬스터의 뼛가루 알갱이입니다.”
확대를 해놓아서 그런지 컴퓨터 화면 속 뼛가루 입자는 하얀 바위처럼 커다래 보였다.
“제마액이 마력감염증 환자에게 치료제로 쓰이려면 제마액 속의 뼛가루가 세포 하나하나에 전부 도달해야 합니다. 감염된 마력의 일부만 흡수해서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모든 세포가 공통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하나 있지요. 뭔지 아십니까?”
“…산소 아닙니까?”
태운의 대답에 허 회장이 조금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잘 아시는군요. 보통 사람들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게 일반적인데… 어쨌든 맞습니다. 산소. 이 산소는 적혈구에 의해 혈관을 통해서 운반됩니다.”
딸깍 ― 딸깍 ―
허 회장이 다른 사진을 하나 화면에 띄웠다.
“가장 작은 모세혈관까지 겨우겨우 이동하는 적혈구의 크기가 바로 8 마이크로미터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제마액 속에 들어있는 몬스터 뼛가루는 200 마이크로미터 초반이지요.”
“마이크로미터라… 밀리미터나 센티미터로 변환하면 수치가 어떻게 되나요?”
“1 센티미터는 10,000 마이크로미터고, 1 밀리미터는 1,000 마이크로미터입니다.”
“…엄청나게 작군요.”
“우리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가 대략 100 마이크로미터이니까요. 제마액 속 뼛가루도 거의 우리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최소 단위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일반적인 사람의 머리카락의 굵기가 대략 0.1 밀리미터다.
0.1 밀리미터를 마이크로미터로 변환한다면 100 마이크로미터, 즉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최소 단위가 되었다.
“…지금 인류가 가진 기술로는 이 뼛가루를 최대 20 나노미터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적혈구보다 훨씬 작게 만들 수 있군요. 그러면 모세혈관을 통과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차라리 문제가 거기까지였다면 다행이겠지요.”
허 회장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모든 세포까지 도달하기 위해선 단순히 모세혈관을 지나는 것만이 아니라 혈관의 벽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산소처럼 적혈구가 직접 옮길 수 있을 정도로 작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산소는 크기가 어느 정도입니까?”
“0.06 나노미터.”
“……!”
“참고로 1 센티미터는 10,000,000 나노미터입니다.”
1센티미터는 천만 나노미터.
1밀리미터는 백만 나노미터.
1마이크로미터는 천 나노미터.
도저히 가늠조차 되지 않는 크기였다.
1나노미터도 그렇게 작은 와중에 산소의 크기는 0.06 나노미터라니?
인간이 볼 수도 느낄 수조차 없을 만한 대단히 작은 크기였다.
“…20 나노미터와 0.06 나노미터입니까… 차이가 너무 나는군요.”
태운의 말에 허 회장은 아쉽다는 표정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작게 분쇄하더라도… 앞으로 인류의 기술이 얼마나 발전한다 해도 산소만큼이나 작게 입자를 만들 수 있을지는…….”
결국 사실상 마력감염증 치료제도 불가능하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인 허 회장의 말.
그렇게 허 회장이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려는 그때,
“…방금 뭐라고 하셨죠?”
“…네?”
돌연 태운이 달라진 눈빛으로 허 회장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 인류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렇게까지 작게 만들 수는…….”
“그전에요!”
“예, 예? 뭐라고 했… 아…! 아무리 작게 분쇄해도……?”
다시 한번 허 회장의 말을 들은 태운의 두 눈이 반짝하고 빛냈다.
“만약 분쇄가 가능하다면 치료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치료제는 그 자체로 완성된 것입니다. 마력을 모두 흡수한 뼛가루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소멸할 테니 인체에도 무해하니까요.”
스윽 ―
태운은 실험실 한쪽에 놓인 제마액을 바라보았다.
“…허 회장님.”
“예?”
“아무래도 될 것 같은데요?”
“…네?”
씨익 ―
제마액을 바라보는 태운의 입가에 흥분으로 가득 찬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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