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치료제를 만들어버림 (3)
―제마액을 담을 수 있는 조금 커다란 사발 같은 건 없습니까?
―사, 사발이요? 어… 저, 저기 대용량 비커 몇 개만 가져오게!
―예, 예!
―…조금 위험할 수 있으니 잠시 실험실을 비워주실 수 있습니까? 몇 분이면 됩니다.
―아… 무, 물론입니다.
―회, 회장님?
―괜찮아! 책임은 다 내가 질 테니 전부 다 나가게!
우르르르 ―
그렇게 해서 실험실에 잠시간 혼자 남게 된 태운.
“…….”
그의 앞에는 제마액이 가득한 1,000ml 짜리 비커 3개가 놓여있었다.
―아무리 작게 분쇄하더라도… 앞으로 인류의 기술이 얼마나 발전한다 해도 산소만큼이나 작게 입자를 만들 수 있을지는…….
분쇄.
가루처럼 잘게 부스러뜨린다는 의미.
우연의 일치 혹은 하나의 운명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정말 공교롭게도,
“…사실 내 능력은 이걸 위한 안배였을지도…….”
태운은 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슥 ―
태운은 가만히 제마액이 가득 든 비커 중 하나에다가 마력을 입힌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우웅 ―
손가락 끝에 태운의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의 고유능력 ‘초힘’의 성질을 지닌 채.
키잉 ―
마침내 그의 4번째 각성 능력, ‘약력(약한 핵력)’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 * *
약력.
약한 핵력의 줄임말이자 태초에 존재하던 하나의 힘인 ‘초힘’이 분리되며 탄생한 4대 힘 중 하나.
사전적 의미로 풀어본다면 원자핵이 외부의 작용 없이 자연 붕괴하는 힘, 즉 베타 붕괴를 일으키는 원자핵 안에서의 약한 상호 작용을 뜻했다.
간단히 말하면 강력에 의해 결합된 원자핵을 붕괴시키는 힘을 바로 약력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즉, 더욱더 간단히 요약하자면, 태운의 네 번째 힘 ‘약력’은 물질을 붕괴하고 분쇄하는 힘.
‘강력’에 의해 마력입자가 결합되어 번개임에도 그 형태를 끝까지 유지하는 막강한 자뢰를 소멸시킬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태운이었다.
그야 이 힘은 너무나도 위험했으니까.
원자핵마저 붕괴시키는 이 힘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이 힘에 조금 닿는 것만으로도 그 대상은 모든 조직이 부서지고 붕괴하여 끝내 소멸한다.
왕펑의 모래 낫이 태운의 주먹에 닿자마자 힘없이 분쇄 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애초에 이 힘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강력한 적을 만난 적이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상대를 죽이는 걸 넘어 소멸시킨다는 사실이 찝찝했던 태운은 최대한 이 힘을 사용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구나.’
이런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라면 대환영이었다.
치리릭 ―
태운의 마력이 비커 안의 제마액 전체를 감싸자 미세한 소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태운의 마력에 닿은 제마액 속 뼛가루들이 더욱 잘게 분쇄되기 시작한 것이다.
스윽 ―
겨우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손가락을 넣었다 빼는 태운.
곧바로 두 번째 비커로 옮겨 다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키잉 ―
치리릭 ―
이번엔 5초.
다시 손가락을 뺀 태운은 마찬가지로 세 번째 비커로 옮겨 다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키잉 ―
치리릭 ―
마지막 비커는 10초.
3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3개의 비커 속 제마액의 분쇄를 완료한 태운은 실험실 밖으로 나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허 회장과 연구원들을 다시 불렀다.
“제마액 속 뼛가루 크기, 지금 확인할 수 있습니까?”
“…벌써요?”
자신들이 나온 지 겨우 1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들어와 확인하라는 태운의 말에 연구원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네, 확인해보겠습니다.”
하지만 태운을 그 누구보다도 믿고 있는 허 회장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얼른 연구원들을 이끌었다.
“왼쪽 비커부터 차례로 확인하시죠. 아마 오른쪽으로 갈수록 작을 겁니다.”
꿀꺽 ―
담담하고도 진지한 태운의 말에 허 회장과 연구원들은 스포이드로 비커 안에서 제마액을 약간 추출하여 곧바로 제마액 속 뼛가루의 크기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본래 약 200 마이크로미터였던 제마액 속 뼛가루 입자의 크기.
삐익 ―
첫 번째 비커 속 뼛가루의 크기가 측정되었다.
“…587 나노미터입니다!”
깜짝 놀란 허 회장이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비록 0.06 나노미터인 산소의 크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0 마이크로미터, 즉 나노미터로 변환하면 200,000 나노미터였던 뼛가루를 그 짧은 시간 만에 587 나노미터로 만들었으니까.
현대 과학 기술의 한계인 20 나노미터에도 미치지 못하는 커다란 크기이지만, 분쇄하는 데에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가히 기적에 가까운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스윽 ―
어쨌든 587 나노미터라는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에 허 회장은 슬쩍 태운의 눈치를 살폈다.
“…….”
측정 결과를 띄운 모니터를 보며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 태운.
그의 그저 담담한 표정은 오히려 허 회장을 안심시켜주고 있었다.
“다음!”
삐익 ―
두 번째 비커 속 뼛가루의 크기가 측정되었다.
“……!”
측정 결과가 나온 모니터를 바라본 연구원들이 입을 쩍 벌린 채 말을 잃었다.
“…3, 3 나노미터입니다!”
단번에 인류 분쇄 능력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결과에 모두가 입을 쩌억 벌렸다.
“……!”
그 결과를 들은 허 회장의 두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크게 흔들렸다.
‘3 나노미터라니?’
인간의 능력으로 만든 분쇄기는 그 입자의 크기에 따라 종류가 나뉘어지는데, 일반적으로 조분쇄기, 중분쇄기, 미분쇄기, 초미분쇄기로 나뉘어졌다.
20 나노미터라는 결과도 초미분쇄기를 뛰어넘은 극초미분쇄기를 사용해서 얻어진 결과물.
그런데 지금 이 남자는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그 한계를 돌파해냈다.
‘…능력이 번개가 아니셨나?’
허 회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물론 번개는 대상을 파괴하고 태우는 무시무시한 자연의 힘.
하지만 이렇게 극도로 미세한 단위까지 물질을 분쇄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도 그 어떤 논문에서조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덜덜덜……!
세 번째 비커 속 제마액을 측정기로 옮기는 연구원들의 전신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작을 거라고 했으니까.
첫 번째 비커에서 두 번째 비커로 가는 것만으로도 수백 분의 일로 작아졌던 뼛가루 입자.
그럼 세 번째 입자의 크기는 대체 얼마란 말인가?
모두가 몸을 벌벌 떨 정도로 긴장한 와중에,
삐익 ―
마침내 세 번째 비커 속 뼛가루의 크기가 측정되었다.
그리고,
““…….””
수초 간 정적이 이어졌다.
10초쯤 흘렀을까.
““우,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연구원들의 환호성이 실험실 전체를 가득히 채우기 시작했다.
* * *
‘…꿈인가?’
허 회장은 두 눈을 믿을 수가 없다는 듯 계속해서 두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하지만 선명하게 모니터 안에 떠 있는 수치.
이것은 현실이었다.
[51.24 pm]
“…51.24 피코미터……!”
피코미터.
나노미터보다 작은 단위였다.
참고로 1 나노미터는 1,000 피코미터.
즉, 51.24 피코미터는 약 0.05 나노미터(정확히는 0.05124 나노미터)를 의미했다.
0.06 나노미터인 산소보다도 조금 더 작은 크기였던 것이다.
“…10초 정도가 적당한가.”
허 회장의 옆에서 함께 모니터를 바라보던 태운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가 걸쳐졌다.
“코, 코드 제로님……!”
거의 울먹이는 듯한 눈빛으로 태운을 쳐다보는 허 회장.
샤아아아아아아 ― !
허 회장의 눈에 들어온 태운의 모습은 어느새 찬란한 후광이 함께 비춰지고 있었다.
그래, 그야말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온 신처럼.
그런 부담스러운 허 회장의 눈빛을 차마 정면으로 받아내지 못한 태운은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크흠… 그럼 이제 검증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로 잘게 분해한 재마액이 치료제로 작용할 수 있는지.”
“…아! 그, 그렇죠!”
퍼뜩!
조금 뒤늦게 정신을 차린 허 회장은 재빨리 어린아이들처럼 만세를 부르고 있는 연구원들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9, 9번 실험체! 데려오게! 마력감염증 며칠째지?”
“실험체 간 3일 정도 텀을 두었으니 이제 만 하루 정도 되었습니다!”
“좋아! 9번 데려와서 바로 검증 들어간다!”
“넵!”
타다다다 ―
마력감염증 치료제 개발.
그 역사에 길이 남을 현장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연구진들이 진짜 어린아이처럼 신난 발걸음으로 우다다 실험체를 데리러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연구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뭔가 다들 귀여우시네.”
태운은 재밌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 * *
검증은 성공이었다.
“크허억……!”
마력감염증에 걸려 의식을 잃었던 9번 실험체가 3번째 비커 속 제마액이 투여된 지 2분 만에 깨어난 것이다.
우리 몸의 피가 전신을 한번 순환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약 1분이니, 제마액의 마력 흡수 시간을 고려하면 딱 알맞은 시간이었다.
“깨어났다…….”
“깨어났어……!”
“정말로 깨어나다니……!”
순식간에 치료가 된 9번 실험체의 모습에 연구원들이 감격하여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울먹이기 시작했다.
“다, 다들 진정하고! 계속 상태를 모니터하게! 세포로 퍼진 제마액이 인체에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확인해야지!”
“…회장님, 이미 전부 사라졌습니다. 워낙 크기가 작아서 말이죠. 마력 흡수가 끝나자마자 소멸했습니다.”
“몸 전체에 남아있는 제마액 반응 없습니다. 치료 완료 즉시 소멸했습니다!”
완벽하다.
이보다 완벽할 수 있을까?
치료 완료 즉시 몸에 남지도 않고 사라지는 치료제라니.
그 어떤 부작용도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치료제가 아닌가?
모두가 경사가 난 듯 행복해하고 있는 와중에,
“크윽… 그 협회 직원 개자식…! 가만두지 않… 히익!”
마력감염증에 걸려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9번 실험체는 마지막 기억 속의 존재인 수감동을 관리하는 협회 직원을 떠올리다 깜짝 놀라 헛숨을 들이켰다.
덜덜덜……!
“너, 너는……!”
그야 깨어나자마자 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를 보고 말았으니까.
노아즈 아크의 최대의 적이자 끝판왕, 코드 제로를 보자마자 9번 실험체는 덜덜 떨기 시작했다.
“가만두지 않는다고?”
툭 ―
태운의 손가락 끝이 남자의 심장 부근을 건드렸다.
“역시 너희는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들이라니까. 한결 같아서 고맙다. 잘 가라.”
치직!
태운의 손가락 끝에서 방출된 작은 번개가 9번 실험체의 심장을 단번에 마비시켰다.
쿵 ―
기껏 마력감염증에서 깨어났던 9번 실험체는 최초로 치료제로 되살아난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그렇게 어이없이 심장 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자, 그럼.”
빙글 ―
태운은 9번 실험체에게서 몸을 돌리며 허 회장을 마주 보았다.
눈앞에서 사람을 죽였음에도 허 회장을 비롯한 연구원들은 그저 선망 가득한 눈빛으로 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험체로 쓰이는 모든 노아즈 아크 조직원들이 죽음마저도 사치일 정도로 더러운 쓰레기라는 걸 이미 알게 된 뒤였으니까.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태운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력감염증 치료제의 대량 생산을 시작해보죠.”
2097년 4월 28일.
마침내 마력감염증의 치료제가 개발되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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