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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156화 (156/300)

156화. 해볼 만할 것 같음 (3)

서울의 한 이름 모를 동산.

절묘한 지형과 위치 덕에 그리 높지 않은 높이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동산이었다.

그런 뷰(View) 적인 측면에서 전략적 요충지(?) 같은 이 동산에,

“…….”

한 남자가 가만히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그때,

사박 ― 사박 ―

저 옆으로 난 산길에서 한 여인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청바지에 흰 티, 그리고 그 위에 가볍게 검은색 가디건 코트를 걸친 그녀의 모습.

그녀의 옷차림은 칠흑빛의 융단 같은 검은 머릿결과 잘 어우러져 안 그래도 빛나는 미모를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조차 빛나게 하고 있었다.

“…춥지는 않아?”

동산에 먼저 와 서 있던 남자, 태운이 가면을 벗은 채로 미소를 지으며 걱정스레 물었다.

비록 6월이 다 되어가는 5월이긴 했지만, 밤이기도 했고 은근히 공기가 차가웠으니까.

“…괜찮아.”

평소에도 말이 없으면 꽤나 무뚝뚝한 인상의 여인, 유린.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오늘따라 조금 더 차가워 보였다.

아니, 차갑다고 하기엔,

“…….”

“…왜 울려고 그래?”

태운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마치 꽃잎 끝자락에 맺힌 밤이슬이 톡 치면 떨어질 것처럼.

스윽 ―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유린.

눈을 조금씩 깜빡이며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던 눈물을 다시 눈 안으로 스며들게 했다.

파르르 ―

꾹 다문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말이야.”

유린은 태운을 쳐다보지 않고 하늘을 바라본 채로 힘겹게 파들거리는 입술을 떼었다.

“나는 이제 와서 오빠의 결정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아.”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유린의 목소리에 태운도 표정을 진지하게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토를 달고 싶지 않아. 오빠는 이미 모두를 설득하고 납득시켰으니까. 하지만…….”

스윽 ―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고개를 천천히 내리는 유린.

또르르 ―

결국 계속해서 차오르는 눈물을 모두 스며들게 하지 못했는지 그녀의 양 볼을 타고 두 줄기의 눈물이 별똥별처럼 흘러내렸다.

“나는 너무 불안해.”

그녀의 목소리가 그녀의 입술처럼 파르르 떨렸다.

“한 가지만 확실히 말해줘.”

태운을 마주하고 선 유린의 눈빛은 어느새 사뭇 결연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정말 이길 수 있는 거야?”

“…….”

태운은 울먹이며 자신에게 묻는 유린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 * *

얼마 만이던가?

이런 순수한 걱정을 받아 보던 때가.

―{항상 몸조심하고.}

―{방심하지 말고 태운아. 혹시라도 몸 이상하면 바로 기권해. 엄마는 너 다치는 것보다 지는 게 더 좋아.}

해외에서도 무패 행진을 달리며 제대로 된 적수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무적의 태운에게 매일 전화를 하시며 걱정해주시던 어머니.

격투기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선수 시절 내내 경기에서는 거의 맞아본 적조차 없이 커리어를 이어나가던 태운을 유일하게 걱정해주시는 분이었다.

―알아서 워낙 잘해야 말이지.

심지어 관장님조차 태운을 걱정하지 않았던 와중에 말이다.

찌르르 ―

태운은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듯한 유린의 두 눈빛을 마주하며 가슴 안쪽에 무언가가 찌르르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우수한 사람들은 외로운 법이었다.

주변의 기대만 받을 뿐 걱정은 받지 않으니까.

아무도 그들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뛰어난 재능과 능력으로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어떻게든 스스로 이겨낼 거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그 어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들 또한 인간.

때로는 누군가에게 걱정 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였다.

홀로 살아갈 수 없기에 서로 기대며 의지하는 동물.

그게 바로 인간 아니던가?

‘…혼자서 힘들었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대본 적이 없었던 태운이었다.

헌터가 된 이후에도 알게 된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 기대만 했을 뿐.

그나마 동석과 현주가 자신을 종종 걱정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긴 했지만, 결국 그 두 사람조차 자신이라면 어떻게든 해내지 않을까 하는 듯한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는 못했다.

흔들리는 두 눈을 어떻게든 부릅뜬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유린을 마주 보며 태운은 생각했다.

‘언제 이렇게까지 다가온 걸까.’

처음엔 그저 사관학교의 같은 반 지나가는 여자 생도였다.

외모가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단지 그뿐.

음흉하고 영악한 꼬마(?)와의 해프닝 때문에 그저 조금 웃겼던 학교 생활 에피소드의 한 등장인물이었던 그녀.

지나가는 인연인 줄로만 알았던 그녀는 알고 보니 동석과 현주의 딸이었고,

―안녕하세요. 초대 감사합… 어?

우연히 한 식사 자리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렇게 티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지.’

태운은 당시를 떠올려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안절부절못하던 동석과 반짝반짝 눈을 빛내던 현주, 그리고 타이밍 좋게 빠지던 기성까지.

아마 현주의 계략이었으리라.

정작 당사자인 유린은 진짜 몰랐었던 듯 크게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 더욱 웃겼다.

솔직히 취한 모습도 꽤나 귀여웠고.

그리고는 술이 깨자마자 협회의 그 누구보다도 수입이 많은 자신에게 민폐를 끼칠 수 없다며 계좌번호를 요구하던 유린.

귀엽다고 느낀 이후로는 그런 모습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마음에 들기 시작했던 태운은 냅다 그녀의 핸드폰에 자신의 번호를 찍었다.

그렇게 시간이 날 때면 종종 유린을 만나왔던 태운.

그러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점점 더 마음속에 담아왔던 것 같았다.

물론 유일하게 가면을 벗고 편하게 만날 수 있었다는 점도 한몫하긴 했지만 말이다.

“당연히 이기지. 오빠 못 믿어?”

태운은 그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새삼 깨달으며 그녀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해주었다.

―엄마, 걱정하지 말라니까. 내가 그냥 이겨. 나 못 믿어?

과거, 어머니께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그 대답으로 만족할 수 없는 듯했다.

“내 말은… 오빠가 무사할 수 있냐는 뜻이야.”

―엄마는 너 다칠까 봐 그러는 거지.

울컥 ―

자신을 걱정해주는 유린의 모습에서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을 느낀 태운은 순간 속에서 차오르는 울컥함을 참기 위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는 두 남녀.

두 남녀의 눈빛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

“…….”

적어도 서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를 얼마나 마주 보았을까.

스윽 ―

태운의 커다란 손이 유린의 머리 위에 올라왔다.

쓰담 ― 쓰담 ―

태운이 살짝 눈시울을 붉힌 채 미소를 지으며 유린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한 것이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당연히 나는 괜찮지. 털끝 하나도 안 다칠걸?”

화아아아악 ― !

갑자기 머리를 쓰다듬는 태운의 행동에 유린의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졌다.

그리고 그런 유린을 보며 태운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근데 너무 걱정하는 거 아니야? 뭐지? 나한테 마음 있나?”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장난스레 그녀의 마음을 떠보는 태운.

“어어어……?”

갑자기 전개되는 분위기에 그저 걱정하는 마음만으로 가득했던 유린의 머릿속은 어느새 새하얀 백지가 되어버렸다.

‘지, 지금 고백해야 하는 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연애 경험 제로에 빛나는 유린이었다.

애초에 로맨스 장르의 영화나 드라마조차 즐겨보지 않는 그녀였기에,

‘뭐, 뭘 어떻게 해야……!’

당황한 유린은 사고가 마비되고 말았다.

그렇게 결국 순간적으로 이성의 끈을 놓친 유린은,

“나, 나 사실은……!”

그녀의 본능(?)에 가까운 성격에 따라 급발진 고백을 냅다 박아 버리려 했다.

그러나,

툭 ―

어느새 다가온 태운의 손가락이 그녀의 급발진 고백을 막아버렸다.

“……?”

누가 봐도 고백하려 타이밍에 그녀의 입을 막아버리는 태운의 행동에 유린은 잠시 또 당황하다가 끝내 울상이 되고 말았다.

그가 자신의 고백을 거절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그녀의 가슴에 뼈가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려는 그때,

“…보통 유도는 여자가 하고 고백은 남자가 하지 않나?”

태운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그 바람을 순식간에 따뜻한 봄바람으로 바꿔주었다.

“……!”

살랑 살랑 ―

그런 태운의 말에 유린은 자신도 모르게 풀려버릴 것만 같은 안면근육을 감추려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고정관념 좋지 않아.”

“하하핫! 그런가?”

짧지만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린 태운은 고개를 숙인 유린의 머리를 재차 귀엽다는 듯 쓰다듬었다.

“근데 나 지금은 안 할 거야.”

“…어……?”

자꾸만 변화구를 던지는 태운으로 인해 유린은 이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번 전쟁이 끝나면… 전쟁이 끝나면 그때 가서 할게.”

“……!”

태운의 말에 유린의 안색이 점점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오, 오빠…! 그런 말 하면 안 돼……!”

갑자기 안색이 하얗게 질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을 휘젓는 유린의 행동에 태운은 살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왜?”

“그, 그런 거 사망 플래그라고……!”

상당히 진지하게 믿고 있는 것인지 그녀는 재차 울먹이기 시작했다.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까.

기껏 코앞까지 이룬 첫사랑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린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뭐? 하하하하핫!”

그런 그녀의 모습에 태운은 귀엽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웃겨… 이 바보야……!”

자신은 진지한데 그저 웃고 있는 태운이 원망스러웠던 유린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을 살짝 밀어냈다.

“크, 크흠…….”

유린의 심각한 표정에 태운은 혼자 너무 웃었나 싶어 헛기침하며 어정쩡하게 떨어져나온 자신의 손을 등 뒤로 숨기며 뒷짐을 지었다.

스윽 ―

몸을 옆으로 돌려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태운.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유린의 시선을 느끼며 아무렇지 않게 담담히 말했다.

“그런 플래그는 커다란 위기 상황에만 적용되는 거야.”

“그게 위기 상황이 아니면 뭔데……!”

무려 중국과의 전쟁이다.

세계 2위, 아니 사실 1위와도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의 초강대국인 중국.

객관적인 전력 지표로 보자면 8대 길드 중 하나만으로도 한국의 3대 길드 전체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평가받는 그런 나라였다.

그런 중국과 전쟁을 해야 하는데 위기 상황이 아니라니?

하지만 태운은 진심으로 위기라고 느끼지 않는 듯했다.

“위기라기보다는… 그냥 간단한 운동회 정도? 대한민국이 백팀, 저쪽이 홍팀인 거지.”

남의 속은 모르고 또 혼자 계속해서 속 편한 소리를 하고 있는 그런 태운의 모습에,

“…혼자 자꾸 뭐라는 거야아아!!”

유린은 홀로 속이 타들어가는 걸 느끼며 철든 이후 처음으로 소리를 질러보았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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