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전쟁이 일어남 (1)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협회의 선언이 있던 바로 그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협회의 선언에 당황하던 한국의 전 국민들이 투지를 불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가 저 중국 놈들한테 비굴하게 굽혀야 하냐!”
“족쳐! 짱깨 놈들 다 족쳐버려!”
“코드 제로를 넘길 바엔 그냥 다 같이 싸우다 뒤지자!”
“시X! 그래, 어차피 죽기밖에 더 해?”
고구려나 발해 시절을 제외하면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중국을 향해 큰 소리를 내지 못했던 대한민국.
하필 경제적으로도 깊게 엮이는 바람에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큰 대한민국은 21세기에 들어서도 매번 중요한 순간에 중국에게 비굴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흐름은 헌터가 탄생한 헌터 시대인 지금도 마찬가지.
절대적인 헌터의 숫자로도, 고위 헌터 숫자로도 압도적으로 밀리는 대한민국이 중국에게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인터넷 댓글이나 술집에서 화풀이하는 것뿐이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일말의 불평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의 처지.
그동안 동북공정이다 뭐다 하면서 모든 게 자기 것이라 우기며 한복과 김치 등 한국 문화까지 강탈하려던 일들마저 우회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적 홍보를 통해 힘겹게 지켜냈던 대한민국.
그러나 이번엔 조금 상황이 달랐다.
아예 국민 영웅을 빼앗으려 들지 않고 있는가?
한국인이 제일 싫어하는 선 넘는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와는 달리, 한국 국민들은 코드 제로를 믿고 있었다.
‘그라면 아무리 중국이더라도 쉽게 당하지 않지!’
‘코드 제로라면 중국의 세계급 헌터들에게도 밀리지 않을 거야……!’
거기다 비록 주작을 잃긴 했지만, 코드 원이라는 막강한 강자까지 추가로 등장한 상황.
지금껏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왔던 협회의 행보를 지켜보며 협회에 대한 신뢰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아진 국민들은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협회의 선언에도 그들에게 열렬한 응원과 지지의 뜻을 보냈다.
이에 힘을 보탠 건 단순히 일반 국민들뿐만이 아니었다.
[전쟁 발발 시, 청룡길드 참전 선언… 김천용 헌터 曰, “대한민국 대표 길드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
청룡의 참전 선언을 시작으로,
[청룡을 비롯한 3대 길드 전부 참전 선언… 산하 길드까지 전부 참전 리스트에 명단 올려.]
[흐름은 막을 수 없다… 전국에 등록된 모든 길드 참전 선언.]
전국의 모든 길드가 힘을 보태겠다며 참전 리스트에 명단을 올린 것이다.
물론 협회와 직접적으로 손을 잡은 것이 아닌 다른 길드들은 그동안 추락했던 길드의 이미지를 쇄신해보고자 했던 의도가 다분했지만, 어쨌든 모든 길드가 협회를 중심으로 힘을 모았다는 그림 자체가 시사하는 바는 굉장히 컸다.
더군다나 길드 헌터가 아닌 용병헌터들까지 뜻을 같이하겠다며 나서기 시작하니,
“오오오오……!”
국민들은 끓어오르는 한국인의 불굴 DNA를 주체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ㄴ 와씨 끓어오르누
ㄴ 나도 참전하고 싶게 만드네 이거
ㄴ 울 고조할아버지가 이런 기분이셨을까.
ㄴ 전쟁 자금이라도 보탠다 ㅅㅂ
ㄴ 오 나도
ㄴ 2222
ㄴ 3333
ㄴ 잠만 나 눈물 날 것 같애…….
ㄴ 울지마라 동포여……!
ㄴ ㅠㅠㅠㅠㅠㅠ
ㄴ 우리 한민족
아이가!ㅠㅠㅠㅠㅠㅠ
갑자기 전국에서 정부로 쏟아져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돈.
헌터들의 전쟁에 참여할 수 없는 국민들이 십시일반 전쟁자금에 보태라며 보내준 대량의 지원금이었다.
정부는 그 지원금으로 대량의 식량을 사들였고, 동시에 보유하고 있던 마석을 모두 갈아 일종의 마력 포션으로 제작했다.
“청룡과 그 산하 길드는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 라인, 백호와 그 산하 길드가 충청도 라인을 맡아주시고, 현무와 그 산하 길드가 전라도 라인을 맡아주시게. 다른 모든 길드들은 다섯 그룹으로 나눌 테니, 세 그룹은 각각 청룡, 백호, 현무를 보조 및 지원해주시고, 두 그룹 중 한 그룹은 만일을 대비해 동해와 남해 라인을 맡아주시게.”
전쟁 총사령관 역할을 맡게 된 동석의 지휘에,
“예.”
“네, 알겠습니다.”
모든 길드 마스터들은 군말 없이 동석을 따랐다.
코스모스를 거느린 그의 권위는 그 어떤 길드 마스터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치솟아있었으니까.
힘이 다소 부족했을 뿐 협회장으로서의 카리스마와 능력은 출중한 그였기에 그 누구도 동석이 지휘권을 잡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지 않았다.
“…저 혼자 싸워도 된다니까요.”
“조용히 하게.”
“…네.”
심지어 저 무시무시한 코드 제로가 동석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까.
‘협회장의 카리스마가 이 정도였나!’
‘저 코드 제로마저… 협회장의 권위가 어마무시하군!’
각 길드의 길드마스터들은 코드 제로를 말 한마디로 제압하는 동석을 흘깃거리며 저마다 마른침을 삼켜댔다.
그렇게 순식간에 모인 전쟁 병력과 물자, 그리고 순식간에 정리되는 전선 배치까지.
빨리빨리 문화의 세계 최고 선두주자이자 국제 전화코드마저 +82인 한국답게 전쟁 준비도 일사불란하게 순식간에 끝마치는 대한민국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던 나라가 있었으니,
“…그렇단 말이지?”
씨익 ―
바로 왕룽을 필두로 한 중국이었다.
* * *
한국 헌터 협회의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성명문이 발표되었던 5월 25일.
바로 그 다음날 26일, 한국이 서둘러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그때,
“전부 차단해.”
중국 주석 시창의 명령이 떨어졌다.
바로 경제 보복을 단행하라는 명령이었다.
쏴아아아아 ―
중국과 한국을 오가던 무역선이 모두 운행을 멈추었고,
키이이이잉…….
중국에서 가동되던 한국 기업들의 생산라인 또한 모두 가동을 멈추었다.
허둥지둥 ―
중국에 머물던 기업인들을 비롯한 모든 한국인들은 중국 정부에게 화를 당할까 재빨리 제 3국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도망치듯 돌아갔고,
한국에 머물던 중국인들은 혹시나 뭇매를 맞을까 모두 집안에 박혀 문을 걸어 잠그고 거리로는 코빼기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중국이 진짜로 모든 무역라인을 끊었습니다. 중국과 거래하던 회사들은 벌써부터 손해가 막심합니다.}
서민우 의원의 전화를 받은 태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애초에 전쟁을 노렸다 이거지……?’
거래와 무역이라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물의 흐름과 같았다.
물은 흐르지 않고 고이는 순간 썩기 시작하는 법.
일단 국민들이 모금해준 막대한 후원금으로 그들의 손해를 지원해줄 방도를 마련해두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며칠만 지나면 그 액수를 뛰어넘게 될 상황이었다.
중국 시장과의 고리가 끊어진 채 일주일만 지나도 대한민국은 직간접적으로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될 테니까.
나라 자체가 휘청일 수도 있는 상황.
태운은 길게 망설이지 않았다.
쏴아아아아 ―
하얀 가면을 쓴 채 백호 길드와 함께 태안 앞바다의 전선을 지키고 있던 태운.
서민우 의원의 전화를 받자마자 결단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해야겠군요.”
{행운을 빌겠습니다……!}
뚝 ―
전화를 끊고,
빙글 ―
뒤를 돌아 전선마다 배치되어 현장을 담당하는 종군 기자들을 마주 보고 섰다.
“협회장님.”
“…음.”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동석이 태운의 부름에 태운의 옆에 와 카메라 앞에 섰다.
지잉 ―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카메라.
이미 현장은 전국으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ㄴ …….
막상 전쟁이 다가오자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며 아무 내용의 댓글이 난무하던 댓글창이 동석과 태운이 카메라 앞에 서자 약속이라도 한 듯 잠잠해졌다.
“…국민 여러분.”
동석은 담담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서두를 열었다.
“아마 지금 뉴스 속보가 나가고 있을 겁니다. 결국 중국이 경제보복을 시작했다는 소식입니다. 현재 모든 무역 라인이 끊겼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매 초마다 한국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습니다.”
동석은 꽉 쥔 주먹을 들어올렸다.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습니까? 왕펑은 한국에서 말도 안 되는 같잖은 이유로 난동을 부렸고, 그 탓에 애꿎은 우리의 국민 한 분이 희생되셨으며, 죄 없는 호텔 직원은 크게 부상을 입고 입원까지 했습니다.”
스윽 ―
동석은 살짝 옆으로 비켜서며 태운을 살짝 돌아보았다.
“여기 자랑스런 협회의 직원이자 우리의 영웅이기도 한 코드 제로는 그에 따른 합당한 절차를 진행했을 뿐입니다. 그런 그에게 죄가 있는 것입니까?”
ㄴ 없지
ㄴ 1도 없지 ㅅㅂ
ㄴ 왕펑 개X끼 중국 개X끼
ㄴ 왕펑! 대가리 펑!
동석의 탄식 어린 호소에 동조하며 올라오는 수많은 댓글들.
카메라 앞이다 보니 그 댓글들을 확인할 수 없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적어도 이 순간 한마음 한뜻이었기에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협회는 이 친구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협회의 이기적인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 친구가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 한 일이 어느 정도입니까? 수많은 사람들을 구했고, 헌터계의 어둠을 몰아내 주었으며 심지어 모두의 소원이던 치료제까지 개발해냈습니다. 그뿐입니까? 그 막대한 이익을 사회로 돌려 제 2의 한강의 기적을 불러온 이가 누구입니까?”
ㄴ 씹 지린다. 이게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냐?
ㄴ 늘어놓으니까 개지리긴 하네 ㄷㄷㄷㄴ 그는 신이라니까! 그는 신이라니까! 그는 신이라니까!
ㄴ 윗댓 신났네
ㄴ 펀치라인 지렸다
슬쩍 ―
동석은 가만히 자리를 비켜 옆으로 나오며 태운에게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사실상 이번 전쟁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 자명했으니까.
아니, 애초에 그가 없었다면 전쟁이라는 단어를 차마 입에 올려놓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아무리 모든 국민들이 그를 믿고 있다고는 해도 그는 겨우 한 사람.
국민들의 마음속에 전쟁에 대한 불안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을 터였다.
‘자네가 직접 국민들을 안심시켜주게. 끝까지 자네에게 맡겨서 미안하구만.’
동석은 옆으로 물러난 채 한없이 미안한 눈빛으로 태운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강력한 헌터라고는 해도 겨우 한 명의 20대 청년일 뿐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그런 그에게 수천만 국민들의 목숨을 짊어지게 만들었다.
그를 지킬 힘이 없음에도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던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나라, 대한민국.
결국 태운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런 대한민국을 위해 수천만의 목숨을 짊어진 채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미안하네. 정말 미안하네.’
먼저 이 나라를 살아가고 이끌어온 한 어른으로서, 비굴하지 않아도 되는 좀 더 강한 나라로 만들어놓지 못한 기성세대로서 동석은 마음속 깊이 그에게 사죄했다.
“…….”
하얀 가면을 쓴 태운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꿀꺽 ―
마찬가지로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태운을 화면 너머에서 바라보고 있던 국민들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다 같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코드 제로.
국민 영웅.
전쟁을 앞둔 지금,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
두근 ― 두근 ―
모든 이들이 말없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태운을 보며 가슴을 졸였다.
그러던 그때,
{…중국의 유명한 역사 이야기, 삼국지 중 이 일화는 모두가 알고 계실 겁니다.}
코드 제로가 별안간 뜬금없는 말을 시작했다.
“……?”
생중계를 보던 모두가 당황하여 두 눈을 끔뻑였다.
{동탁군의 장수, 화웅과의 일전을 앞둔 관우는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하죠?}
태운은 카메라 앞에서 술잔을 잡는 포즈를 취하며 살짝 손을 들어올렸다.
{술잔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소.}
꿀꺽 ―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생중계를 보던 이들은 모두 화면에서 눈을 떼지도 못한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이어나가는 코드 제로의 모습에서 한순간이라도 눈을 뗐다간 뭔가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으니까.
주섬주섬 ―
관우의 명대사를 내뱉은 태운은 가만히 품속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틱 ―
{어젯밤에 통화를 좀 오래 하다가 잤더니 충전을 못 해서 배터리가 거의 없네요. 3% 남았습니다.}
화끈 ― !
태운의 말에 인천 전선에서 대기하며 그 생중계를 보던 유린이 달아오른 자신의 귀를 얼른 숨겼다.
탁 ―
가면 귀 쪽의 버튼을 눌러 입부분을 드러내며 하관을 공개하는 태운.
씨익 ―
입을 드러낸 태운이 카메라에 대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폰이 꺼지기 전에 돌아오겠습니다.}
“……!”
그 말 한마디와 함께 생중계를 보던 모든 사람들의 피부를 타고 전율이 솟구쳤고,
“으아아아아아아아!!!”
“다 쓸어버려어어어어!!!!”
한국 헌터들의 함성이 대한민국 서해를 넘어 대륙까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2097년 5월 27일.
마침내 한국은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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