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전쟁이 안 끝났음 (1)
ㄴ ㅅㅂ 뭐냐 저게.
한 댓글의 문장이 지금 한국에 있는 사람들의 기분을 제대로 대변해주고 있었다.
“뭐, 뭐야 저게……!”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한 것처럼 기뻐하며 자축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화면에 고정된 채 움직일 줄을 모르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 !
인천 앞바다가 갈라지고 있었다.
마치 성경 속의 모세가 강림이라도 한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압도적인 규모로 갈라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맨살을 드러내는 드넓은 서해의 갯벌.
평소에도 간조 때면 드넓게 맨살을 드러내곤 했던 서해의 갯벌이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달랐다.
무려 지평선이 보였다.
수평선이 아니라 지평선이.
그 지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지 그 어떤 사람도 모를 수가 없었다.
‘중국……!’
수도권 라인을 지키던 헌터들은 화면을 통해 지켜보고 있던 국민들보다 더 놀라고 있었다.
갑자기 서해 상공에 나가 있는 종군기자에게서 연락이 오더니,
―{긴장을 늦추지 마시라는 코드 제로 님의 전언입니다!}
―…예? 전쟁은 끝난 게 아닌……?
―바, 바다가 갈라진다!!
연락을 받고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바로 눈앞에서 바다가 쩍 하고 갈라졌으니까.
“우와아앗!”
헌터들이 크게 당황하기 시작하자,
“전원 조용!!”
쿠웅 ― !
어느새 청룡으로 변신한 천용의 중후하고 낮은 목소리가 일대를 삽시간에 잠재웠다.
“각자 동요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킨다! 겨우 바다가 갈라진 정도로 어린애처럼 굴지 마! 우리의 등 뒤엔 국민들이 있다!”
갈라지는 바다에 놀란 것은 천용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정신 차려라!”
그는 국내 최대 길드의 마스터이자 한 방어라인의 수장답게 겉으로는 전혀 동요한 티를 내지 않은 채 헌터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퍼뜩!
천용의 일갈에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헌터들의 눈빛이 다시 선명하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래… 시X, 이렇게 끝날 리가 없지!”
“하긴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한 놈 정도는 담가줘야지!”
“서해 갯벌에 묻어주마!”
당황도 한순간이었을 뿐, 거대한 청룡의 외침에 단숨에 사기가 돌아온 헌터들은 기합을 넣으며 전신의 근육에 바짝 긴장을 불어넣었다.
한편, 뒤집어진 건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 저런 헌터가 있었나…? 저 정도면 최소 세계급……!”
“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중국의 세계급 헌터 두 사람은 저런 능력이 아니라고!”
“바다를 통째로 가르는 헌터라니…! 코, 코드 제로보다 강한 거 아니야?”
새삼 느껴지는 중국의 강력함에 혀를 내두르다 못해 두려움을 느끼는 전 세계.
동시에 그들은 느꼈다.
중국을 상대하고 있는 국가가 자신들이 아닌 것에 대한 안도와,
‘안타깝다…….’
홀로 중국을 상대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연민을 말이다.
누가 봐도 한국은 딱히 잘못이 없었다.
그저 힘센 중국이 억지 논리를 부리다 못해 싸움을 건 것일 뿐.
그러나 약자는 강자에게 먹히는 게 당연한 것이 바로 이 세상을 관통하는 약육강식의 법칙.
그 약육강식의 법칙에 의해 헌터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입어 왔던 수많은 사람들은 한국의 일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지고 있었다.
세계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항상 가르쳐왔다.
약자를 보호하고 해하지 마라.
약자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하지만 정작 세계의 어른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어른들은 언제나 그와 상반되게 행동했다.
이젠 아이들도 전부 알고 있었다.
어른들은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그들조차 그들의 어른들로부터 배웠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을.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그 모순적인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방황하고 혼란을 느끼며, 결국은 비뚤어져 어른들보다 더 모순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세상은 그렇게 모순적인 어른들로 가득 채워져 가며 더욱더 모순적인 세상으로 변모해갔다.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아야만 이 모순적인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그 가르침을 따르면 결국 큰 손해를 입어야 하니까.
그래서일 것이다.
사람들이 약한 이들을 돕고 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경외하고 존경하며 찬양하는 것은.
그들은 이 모순적인 세상 속에서 어린 시절 배웠던 가르침을 실천하는 몇 안 되는 존재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자신들이 되지 못한 이상적인 모습을 실현하는 이들.
세상은 그들을 ‘의인(義人)’, 혹은 ‘영웅(英雄)’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 시대의 영웅 중 하나가,
콰아아아아아아 ― !
갈라진 바다에서 홀로 적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등 뒤의 약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 * *
갑자기 갈라진 바다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슈아아아아 ― !
태운은 곧바로 갈라진 바다 밑으로 내려갔다.
마치 거대한 푸른 벽처럼 양옆으로 늘어선 바닷물.
쉬이이익 ― !
뻥 뚫린 바다 밑으로 들어가는 태운의 양옆으로 거대한 해벽 너머에서 수많은 수중 생물들이 지나쳐갔다.
각종 바다 물고기들과 문어, 심지어 몇몇 상어들까지 말이다.
해저 바닥에 도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해는 전 세계적으로도 얕은 바다에 속하는 편이었으니까.
평균 수심이 40m에서 50m 정도밖에 안 되는 서해였다.
가장 깊은 곳도 겨우 100m가 넘을 정도.
적어도 지금 열린 바닷길은 그나마 평탄한 지형인 듯 특별히 움푹 꺼진 곳은 없어 보였다.
척 ―
인천으로 향하는 바닷길 한복판을 막고 선 태운.
“…….”
중국 산둥반도 쪽을 응시하는 태운의 두 눈빛은 어느새 착 가라앉아있었다.
‘이 힘… 분명 방주의 힘이다.’
아무리 강한 헌터라고 하더라도 바다를 가를 수 있을 리 없었다.
최소 세계급이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현재 세계급으로 알려진 헌터들 중에 바다나 물과 관련된 고유능력을 지닌 이는 없었다.
그러니 무조건 노아즈 아크의 방주일 수밖에.
태운이 해저 바닥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쿠우우우우우 ― !
저 멀리서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며 달려오고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아니, 무언가가 아니었다.
‘무리’였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수의.
쿠구구구구구구 ― !
수천 명의 헌터들이 내딛는 발구름으로 인해 서해 밑바닥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정말 징하게도 많다.”
무려 수백만의 헌터들을 쓸어버린 것이 바로 조금 전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저만한 수를 동원할 여력이 남아있단 말인가?
‘역시 숫자 하면 중국이네.’
과연 인구수 1위, 헌터수 1위에 빛나는 중국다운 저력이었다.
심지어 이번에 몰려온 헌터들은,
쿠구구구구구구구 ― !
풍기는 기운 자체가 예사롭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선두에 선 근육질의 남자.
그에게서는,
찌릿! 찌릿!
태운의 피부마저도 오싹하게 만들 정도의 가공할 만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촤아아아악 ― !
촤좌좌좌좍 ― !
수천 명의 헌터들이 동시에 발을 멈추었다.
“…….”
“…….”
약 1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로를 마주 보는 태운과 중국의 헌터들.
서해 한복판에서,
“네놈이 코드 제로인가?”
“너희는 뭐 인간 생산 공장이라도 운영하냐?”
마침내 태운과 중국 최대 전력, 팔룡 길드가 서로를 마주했다.
* * *
“저 미개한……!”
태운의 말에 발끈한 한 S급 헌터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나서려 했다.
그러나,
“가만히 있어라.”
“…네.”
S급 헌터는 선두에 선 근육질 남자의 손짓에 순순히 화를 삭이며 뒤로 물러났다.
한국을 포함한 일반적인 다른 나라에서는 최대 전력으로 여겨지는 S급 헌터를 손짓 하나로 다루는 남자의 모습.
“…네가 왕룽인가?”
“그래, 내가 왕룽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중국의 최강자, 세계급 헌터 왕룽이었다.
씨익 ―
“가면 멋있는데?”
대뜸 이를 드러내며 태운이 쓴 가면을 칭찬하는 왕룽.
하지만 태운은 그런 왕룽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말했다.
“네가 방주냐?”
흠칫!
태운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태운의 말에 순간적으로 수천 명의 길드원들이 단체로 움찔거렸다는 것을.
“…이거 참 곤란한데.”
왕룽이 크게 한숨을 쉬며 뒷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어떻게 이렇게 바로 핵심을 바로 찌르지? 토끼가 당한 시점에서 우리를 알고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만…….”
그러나 태운은 이번에도 그의 말을 받지 않고 자신이 할 말만을 했다.
“방금 전 반응, 너희 전원이 그 광신도 집단이구나.”
빠직 ―
왕룽의 말을 계속해서 무시한 채 자기 할 말만 하는 태운의 태도에 왕룽을 비롯한 중국 헌터들의 이마에 힘줄이 바짝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새X가… 계속 내 말을 무시하는……!”
“팔룡 길드 전원이 노아즈 아크라… 진짜 한국보다 훨씬 더 썩었네? 그래도 고맙다 야. 좋은 걸 알았어.”
태운은 여전히 왕룽의 말을 모조리 무시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희는 항상 뭉쳐있구나? 마치 바퀴벌레들처럼 말이야.”
“이 새끼가아아아아!”
쿠우우우우우웅 ― !
팔룡 길드를 비롯한 그 산하 길드까지 총 수천에 이르는 헌터들의 막대한 기파가 오직 태운 한 사람을 향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은 참 어리석어. 소국 주제에 그 주제도 모르고 자존심만 세울 줄 알지.”
뚜둑 ― 뚝 ―
왕룽을 비롯한 팔룡의 정예들이 몸을 풀며 살벌한 뼈 소리들이 그들의 전신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힘이 없으면 바닥에 엎드려 길 줄도 알아야지. 죽으면 다 끝 아닌가?”
하지만 겨우 그 정도에 위축될 태운이 아니었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처음으로 왕룽의 말을 받아주는 태운.
“와아… 그거 내가 지금 딱 생각하고 있던 건데… 어떻게 알았지? 혹시 고유능력이 독심술이라도 되나 봐?”
하지만 그건 받아주기보다는 받아친 것에 가까웠다.
“아니 근데 진짜 이 미친 새끼가 감히!”
성질을 이기지 못한 팔룡의 몇몇 헌터들이 고유능력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 ― !
마력을 유형화시킨 거대한 대검과 건틀릿을 장착하거나 갖가지 동물의 신체로 변형시키는 팔룡 길드의 헌터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어마어마한 기세를 피워내는 중국의 헌터들이 모두 태운 한 사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왕룽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
고유능력을 전개했을 뿐 정작 공격을 시작하지 못한 팔룡의 헌터들과는 달리,
“근데 너희 왜 여유 부리고 있냐?”
파직!
태운은 망설이지 않았다.
“나를 봤으면 보자마자 공격했어야지. 이 등신들아.”
[청뢰장(靑雷場)]
쿵 ― !
태운의 발이 한 차례 바닥을 구름과 동시에,
콰르르르르릉 ― !
일대를 울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청뢰의 줄기들이 해저 바닥을 타고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 전체를 뒤덮어버리는 푸른 뇌전의 거미줄에 속박당한 헌터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이, 이게 무슨… 끄아아아악!”
전신이 파랗게 물든 수천 명의 헌터들.
기껏 수천만 년 만에 흑갈색의 맨바닥을 드러낸 서해의 일부가,
파지지지지직!
다시 푸르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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