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전쟁이 안 끝났음 (2)
“마, 마력이……!”
“가, 갉아 먹힌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청뢰를 떨쳐내 보려던 이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마력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청뢰의 성질을 파악한 것이다.
“…이 자식……!”
터어엉 ― !
터어엉 ― !
하지만 역시 금방 마력의 일부를 전신으로 방출해 청뢰를 떨쳐내는 데에 성공한 S급 이상의 헌터들.
그러나,
“크아아아아악!”
터어엉!
터어엉!
팔룡 길드의 수천 명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A급 헌터들은 아무리 S급 헌터들처럼 마력을 방출한다고 한들 청뢰를 떨쳐낼 수 없었다.
마력을 밀어내는 헌터들의 힘보다 마력에 달라붙은 청뢰의 결합력이 더 강했으니까.
3차 각성을 이루지 못한 이들의 마력의 순수한 힘은 이토록 청뢰 앞에 무력하기가 짝이 없었다.
털썩 ―
쿠당!
태운이 내지른 단 한 번의 전격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팔룡 길드.
“……!”
그 말도 안 되는 위력에 살아남은 S급 헌터들이 입을 쩍 하고 벌린 채 뒤편을 쳐다보았다.
새까맣게 타버린 채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수천 명의 A급 헌터들의 시체.
푸시이이이 ―
그 어마어마한 양의 시체 타는 냄새가 서해 밑바닥을 온통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코드 제로오오오오오!”
허무하게 길드원의 대부분을 잃은 팔룡 길드들의 각 수장들이 노호성을 토해냈다.
파앗 ― !
더 이상 왕룽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은 채 단숨에 태운에게 달려드는 수백 명의 S급 헌터들.
고오오오오 ― !
핏발이 선 두 눈을 부릅뜬 수백 명의 S급 헌터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그 어떤 담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었다.
스팟 ― !
가장 먼저 다가온 건 팔룡 길드의 천지인 중 두 번째, 대지룡 길드의 길드마스터이자 S급 헌터인 짜오징이었다.
그의 고유 능력은 ‘절단’.
자신의 고유 능력을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쌍검을 든 그가 순식간에 태운의 지척에 다다랐다.
슈아아아악 ― !
절대로 막을 수 없는 짜오징의 검격이 공간마저 잘라내며 태운의 안면으로 날아들었다.
‘그 잘난 가면까지 통째로 잘라주마!’
짜오징의 날카로운 검날이 막 태운의 가면을 베어내려는 찰나,
그그긍 ―
그의 귓가에 알 수 없는 이명이 들려왔다.
“……?”
그가 그 이명을 채 인식하기도 전에,
[광역 중력 프레스 ― 3,000G]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지지지직!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짜오징을 비롯한 그의 뒤에서 달려들던 모든 S급 헌터들이 바닥에 달라붙고 말았다.
바닥을 붉은 피로 적시며 순식간에 전신이 쥐포로 변해버리는 S급 헌터들.
간신히 마력으로 전신을 강화하여 살아남은 일부 S급 헌터들만이,
“끄으으으으으윽……!”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바닥에 달라붙어 압사 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 * *
‘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자신도 나서려 했지만 왕룽의 제지에 나서지 못한 중국의 두 번째 세계급 헌터 첸이 흔들리는 눈으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계급 헌터와 S급 헌터.
물론 그 차이는 명백했다.
S급 헌터와 A급 헌터 사이의 차이가 하나의 커다란 강폭 정도라면, S급 헌터와 세계급 헌터의 차이는 지금 그들이 있는 서해의 폭 만큼이나 크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차이가 이렇게까지 일방적이고도 쉽게 제압되는 수준의 차이는 아니었다.
하물며 방금 놈에게 달려든 S급 헌터의 수는 수백 명.
수 명, 수십 명도 아닌 수백 명이었다.
‘괴, 괴물……!’
세계급 헌터인 첸의 두 눈에 공포의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그그극 ― !
한편,
“…….”
자신에게 달려들던 수백 명의 S급 헌터들을 단번에 제압하다 못해 대부분을 압사시킨 태운은 그의 발치에 쓰러져있는 S급 헌터들이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왜 가만히 있지?”
“음? 무슨 말인가?”
태운의 물음에 세계급 헌터, 왕룽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전혀 당황하는 표정이 아니군. 너희 둘을 제외한 모두가 당했는데도 말이야.”
뿌지지지직!
태운의 목에 살짝 핏대가 세워지자, 사방에서 무언가 부서지고 짓눌리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신음과 비명 소리가 사라졌다.
후욱 ― !
중력을 거둬들이는 태운.
“…….”
중력을 거둬들였음에도 그에게 달려드는 이는 없었다.
모두 죽었으니까.
단 두 수만으로 수천이 넘던 팔룡의 헌터들을 전멸시킨 태운의 어마어마한 위용에도,
씨익 ―
왕룽은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뭐가 그리 웃긴 거지?”
“과연… 토끼를 이길만해!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지.”
짝짝짝짝짝!
돌연 박수까지 치기 시작하는 왕룽.
그 모습에 태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수많은 자국 헌터들의 시체 앞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왕룽의 모습은 무척이나 이질적이고 불쾌했으니까.
심지어 같은 편에 서 있던 첸마저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와, 왕룽 님……?”
첸이 왕룽의 눈치를 보며 옆으로 한 발 슬쩍 물러났다.
두려웠던 것이다.
대체 이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무리 헌터가 많은 중국이라고는 하지만 눈앞에서 그 중국의 최대전력이나 다름없는 S급 헌터 수백 명이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어째서 계속 웃고 계신 겁니까!’
왕룽의 입가에선 시종일관 미소가 떠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
* * *
잠시 말없이 미소를 지은 채 코드 제로와 시선을 맞추던 왕룽.
이윽고 천천히 옆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스윽 ―
광기가 잔뜩 어린 왕룽의 시선이 첸을 향했다.
“첸?”
“예, 예?”
첸이 떨리는 목소리로 왕룽의 부름에 답했다.
“가서 싸워라.”
“…혼자 말입니까?”
당황한 첸의 질문에 왕룽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모로 꺾었다.
“당연하지 않나? 세계급 씩이나 되어서 설마 같이 싸워달라고 할 작정은 아니겠지? 같은 세계급이라고는 하지만, 겨우 변방의 소국 헌터일 뿐이다. 대국의 세계급 헌터인 네가 더 강한 게 당연지사 아니겠어?”
씨익 ―
왕룽의 입가가 찢어질 듯 올라가며 섬뜩한 귀기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얼른 싸워라.”
“하, 하지만 왕룽 님…! 저자는 보통 세계급이 아닌……!”
“첸.”
오싹!
왕룽의 낮은 목소리에 첸은 전신에 소름이 쫙 끼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예.”
“설마 질 것 같아서 그런 건가?”
“그, 그것이……!”
“너를 누가 키웠지?”
쿠구구구구구 ― !
덜덜덜……!
태산처럼 솟아오르는 왕룽의 거대한 기운에 첸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와, 왕룽 님이십니다……!”
“맞아. 너는 내가 키운 이들 중 최강이며 나의 대리자라고 할 수 있다. 매번 말했지? 너의 패배는?”
“왕룽 님의 패배입니다……!”
“내가 소국 헌터에게 지는 게 말이 되나?”
“저, 절대로! 그럴 리가 없습니다! 왕룽 님은 세계 최강이신……!”
“그래.”
툭툭 ―
왕룽의 거대한 손이 첸의 등을 두어 번 두드렸다.
“그러니까 나의 대리자인 너도 질 일은 없는 거다. 알아들었나?”
“…네.”
“그럼 가라.”
터벅 ― 터벅 ―
척 보기에도 무척이나 자신이 없어 보이는 첸의 걸음걸이.
하지만 왕룽에게 떠밀린 첸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불쌍하군.”
태운은 진심으로 첸에게 연민을 느꼈다.
부하(?)를 사지로 내모는 상사라니.
세계급 헌터 씩이나 된 이가 저런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부터도 말도 안 되는 장면이었다.
“다, 닥쳐라. 너는 내가 끝내주지……!”
쿠오오오오오 ― !
잠시 등 뒤의 왕룽을 의식하던 첸은 그래도 세계 최강의 일각이라 불리는 세계급 헌터답게 금세 어마어마한 기세를 끌어올리며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나한테 방금 전 기술 따위 통하지 않을 거다.”
“아 그래? 해보면 알겠지.”
[중력 프레스 ― 4,000G]
크그그그그긍 ― !
어마어마한 압력이 삽시간에 첸의 전신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방금 전 수백 명의 S급 헌터들을 짓누른 압력보다 더 큰 압력.
그러나,
“캬악!”
첸은 그 압력에 정면으로 맞서며 커다란 괴성을 터뜨렸다.
구우우우우우우우우 ― !
그극… 그그극……!
엄청난 압력에도 불구하고 점차 변하기 시작하는 첸의 몸.
그의 고유 능력 ‘대왕 판다(Giant Panda)’가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170cm 정도로 작은 키였던 첸의 신체가 180이 조금 넘는 대왕 판다의 모습으로 변했다.
중국 홍보대사로 선정되기도 했었던 헌터답게 중국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모습.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그그그극……!
전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커지는 첸의 신체.
“아앗……!”
어느새 판다로 변한 첸의 몸은 수십 미터나 되는 수심만큼이나 높은 장벽처럼 서 있던 해벽을 넘어서며 차마 바다 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던 종군 기자들의 카메라에 포착되기에 이르렀다.
세계급 헌터는 3차 각성을 이룬 S급 헌터를 뛰어넘는 4차 각성을 이룬 존재들.
동물형 능력자의 4차 각성의 특성, ‘거대화’가 시전된 것이었다.
“구어어어어어어어어!”
어마어마한 크기의 판다가 서해 전역에 괴성을 터뜨렸다.
콰아아아아아아 ― !
그 음파만으로 밀려나는 바닷물.
조금 전보다 몇 배는 더 큰 파도가 한반도를 향해 밀려가기 시작했다.
그그극… 그그그극……!
첸은 4,000배에 이르는 중력 따위는 거뜬하다는 듯 운신에 거의 불편함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사지 받기에 딱 좋은 압력이로구나!”
부와아아아아아앙 ― !
거대한 빌딩을 잡고 휘두르는 듯한 첸의 앞발이 태운을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동물형 능력자의 4차 각성 능력, ‘거대화’.
마력으로 몸집을 거대화시킨 만큼, 신체 능력도 비례하여 상승했다.
단순 정비례냐고?
아니, 그 상승 폭은 거의 제곱에 가까울 정도.
신체 강화의 최정점이라고 불리는 동물형 능력자의 마지막 각성다운 미친 능력이었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단 한 방이었다.
그 한 방에,
드드드드드드드드드 ― !
해진이 발생했다.
콰아아아아아 ― !
철썩 ― ! 철썩 ― !
말의 방주의 힘에 붙들려 갈라져 있던 바다가 금방이라도 원 상태로 돌아갈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안 끝났어!”
부와아아아아아아앙 ― !
연거푸 떨어져 내리는 첸의 거대한 앞발.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수십 미터 아래의 해저 바닥의 먼지가 수십 미터 높이의 해벽을 뛰어넘을 정도로 높게 솟아올랐다.
드드드드드드드드 ― !
그 충격에 서해 일대가 크게 흔들리며 멀리 떨어져 있던 한반도에까지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런 미친… 진동이 여기까지 느껴진다고?”
역시 세계급이다 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 상황.
온몸으로 직접 진동을 느끼고 있는 한국인들을 비롯해, 실제로 세계급 헌터가 전력으로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세계인들은 세계급 헌터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 새삼 피부로 느끼며 전율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저게 동물형 능력자의 정점……!”
또한 전 세계의 모든 동물형 능력자들도 또 다른 의미에서 전율하고 있었다.
10명뿐인 세계급 헌터 중에서도 총 3명에 불과한 동물형 세계급 능력자.
그중 하나인 첸의 실제 전투 장면을 전쟁 중계를 통해 볼 수 있게 된 동물형 능력자들은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눈을 부릅뜬 채, 코드 제로와 첸의 전투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거…….”
“코드 제로가 지는 거 아니야?”
아직 해저 바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태운에게 바디캠이 있긴 했지만, 그의 바디캠은 중계용이 아닌 녹화용.
결국 상황을 모르는 바깥에 사람들은 코드 제로가 저렇게 어마무시한 첸과 함께 바다를 건너왔을 몇인지도 모를 병력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단 두 방의 내려찍기에 싱크홀마냥 커다란 구덩이가 파인 서해의 해저면.
“크큭……!”
태운이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자신의 공격을 얻어맞고 있자 흥분한 첸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려는 그때,
파지직!
붉은 번개 한줄기가 깊은 구덩이 밑에서 공중으로 치솟았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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