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전쟁이 안 끝났음 (3)
치지직!
“…응?”
서해 해저면을 뒤흔들던 초 거대한 판다의 눈가가 살짝 꿈틀거렸다.
눈앞에서 붉은빛이 튀어 올랐으니까.
“…역시 세계급이 다르긴 하네.”
중얼…….
기다란 붉은 잔상의 라인을 그리며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치솟은 하얀 가면을 쓴 남자.
코드 제로가 어느 순간 첸의 눈앞에 위치해 있었다.
‘…어? 언제…? 아니 그것보다 상처가 왜 없……!’
첸의 두 눈이 의아함으로 물들기도 전,
키이이잉 ― !
“…근데 겨우 이 정도가 다는 아니지?”
[중력투법(重力鬪法) ― 중력각]
슈확 ― !
콰아아아아앙 ― !
거세게 차올려진 그의 앞발 차기가 첸의 거대한 턱을 후려쳤다.
“그어어어어어……!”
쿠웅 ― ! 쿠쿵 ― !
거대화한 신체만큼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 첸의 신체 능력.
그 덕분일까, 첸은 태운의 중력각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저 뒤로 몇 번 뒷걸음질을 쳤을 뿐.
쿠아앙 ― !
단순히 발을 디딜 뿐인데도 미약한 해진이 일어나며 일대가 뒤흔들렸다.
“크으으윽!”
거대한 판다가 이를 악문 채 이빨을 드러냈다.
치이이이이 ― !
그래도 태운의 일격에 턱뼈에 금이 갔는지 자가회복을 시전하는 첸.
단순히 쓰러지지만 않았을 뿐, 그의 눈빛은 상당히 당황스러워 보였다.
“어떻게… 어떻게 상처 하나, 아니 먼지 하나 묻지 않을 수가 있지?!”
코드 제로가 강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
그의 공격이 묵직하고 치명적일 거라고는 진작에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한 그의 공격이 막힐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첸이었다.
“강하긴 하더라. 나름 애 좀 먹었다고? 근데 나한테 타격으로 이길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공중에 떠오른 채 어깨를 으쓱거리는 코드 제로.
그 재수 없는 모습에,
“닥쳐어어어어!”
쿠아아아아아아 ― !
더욱 열이 받은 첸은 거대한 빌딩만 한 앞발을 재차 휘둘렀다.
“에휴.”
그런 첸을 바라보며 태운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거참 조언을 해줘도 말이야.”
태운은 날아오는… 아니, 일대를 뒤덮는 첸의 거대한 앞발을 바라보며 두 눈을 살짝 빛냈다.
키이이잉 ― !
[중력 조작]
[반중력(反重力) 베리어 ― 20,000G]
콰아아아아아앙 ― !
첸의 앞발이 태운의 전신에 제대로 직격했다.
슈아아아악 ― !
속절없이 뒤로 날아가는 태운의 신형.
“꺄아아악!”
그 장면을 지켜보던 국민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방 한방이 해진을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그런 공격을 정통으로 맞았으니 코드 제로 또한 몸이 성치는 못할 터.
“……!”
하지만 정작 공격을 맞춘 첸은 왠지 모를 이질감에 좀처럼 미소를 짓지 못하고 있었다.
“…뭐, 뭘 한 거냐……!”
슈아아아…….
뒤로 날아가다 천천히 감속하기 시작하는 태운의 신형.
우뚝 ―
곧 허공에서 제자리에 멈춰 선 태운은 살짝 숨을 내뱉으며 놀랍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중력 2만 배 이상의 충격이라고? 진짜 대단하네.”
그 어마어마한 공격에 직격당했음에도 태운의 몸은 뒤로 밀려났을 뿐, 상처나 먼지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태운이 얻어맞는 걸 본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
적어도 그 순간 태운이 벌인 수를 이해한 존재는 현장에 있던 왕룽 하나뿐이었다.
‘…중력을 상당히 능숙하게 다루는군.’
왕룽은 방금 전 첸의 앞발이 코드 제로의 전신을 덮치는 순간, 그의 전신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아마 순간적으로 본인을 중심으로 반중력을 전개하여 첸의 공격이 가져다주는 충격을 대부분 상쇄했을 것이다.
‘그 받아치는 힘이 조금 부족했기에 뒤로 밀려났던 거겠지.’
현재 일정 시간 유지 가능한 상태 중 최대치로 거대화를 전개한 첸의 공격력은 웬만한 수소폭탄 여러 개와 맞먹을 정도.
그 힘의 크기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기에, 반중력을 전개했음에도 땅이 파이고, 뒤로 밀려났던 것이리라.
‘그래도 영리하다.’
그 반중력의 중심을 본인의 몸이 아닌 공간에 두었다면 첸의 공격이 반중력을 뚫고 놈을 타격했을 터.
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가정했기에 상처 하나 입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정도의 강함에도… 방심하지 않고 자만하지 않는가.’
왕룽의 입가에 더욱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기대돼… 너무 기대되잖아……!’
왕룽은 광기와 희열이 잔뜩 어린 눈빛으로 공중에 떠 있는 태운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 * *
‘…저놈은 왜 저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첸의 어마무시한 힘에 살짝 감탄하던 태운은 순간 저 밑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시선에 얼굴을 찌푸렸다.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저 밑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왕룽.
오싹!
다른 의미로 소름이 돋은 태운은 한차례 몸을 털어내고 자세를 잡았다.
쿠아아아아아아 ― !
첸이 재차 공격을 날리고 있었으니까.
어마어마한 돌풍… 아니, 폭풍을 일으키며 날아드는 첸의 앞발.
벌써 첸의 공격을 수차례 막아낸 태운이었지만, 언제 봐도 참 어마어마한 공격이었다.
나름 무적의 타격 방어 기술로 고안해낸 반중력 베리어로도 부족할 만큼 말이다.
‘동물형 능력자의 4차 각성 능력 거대화… 참 대단하군.’
태운의 머릿속에 불현듯 한 남자의 존재가 떠올랐다.
바로 김천용이었다.
‘동물계 환수형은 분명 동물형 각성 능력도 가지고 있었지… 3차 능력인 단순 완전 변신만으로도 그렇게 거대한 그가 거대화까지 이룬다면……?’
씨익 ―
역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최강이라 불렸을 만한 헌터의 능력이었다.
심지어 그는 각성할 때마다 자연계 능력까지 새롭게 다루고 있지 않은가?
태운은 그 순간 확신했다.
김천용이 세계급이 되는 순간, 자신을 제외한 적수는 아마 없을 거라고.
‘그나마 강천이가 상대할 수 있으려나?’
또 모르는 일이었다.
강천의 능력도 대단했으니까.
‘좋은 라이벌이 되겠어.’
최근 자신에 대한 경쟁심을 버린 듯한 강천이었다.
그 나름대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예전만은 못한 상황.
태운은 그런 강천이 조금 안타까웠다.
그 또한 좋은 호적수만 있으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괴물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상황이 조금 진정되면… 두 사람 데리고 밥이나 한 끼 해야겠네.’
부르르르 ―
자신도 모르는 새 강천의 성장 기폭제로 채택되어버린 천용은 중계 영상을 보다가 돌연 등줄기를 타고 솟아오르는 오한에 몸을 살짝 떨었다.
‘…뭐지, 이 오한은?’
갑자기 느껴지는 오한에 천용이 살짝 몸을 떠는 그때,
콰아아아아아아 ― !
“크, 크윽! 중심 제대로 잡아!”
“으으윽! 노력해보겠습니다!”
피이이이이이잉 ― !
첸의 앞발이 허공을 가르며 일으킨 폭풍에 상황을 중계하던 군종 기자들의 헬기가 금방이라도 추락할 듯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하는 생중계 화면.
“어어어어… 화면 왜 이래!”
“아니, 저렇게 떨어진 곳까지 바람이 저리 강하단 말이야? 헬기가 돌아갈 정도로?”
“역시 세계급……!”
어지러이 돌아가는 카메라로 인해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현장의 상황을 놓친 그 순간,
“…아무래도 이 기술, 세계급부터는 쓰지 말아야겠어.”
태운이 뭐라 중얼거렸다.
“마력 효율이 안 좋아.”
콰아아아아아아아 ― !
첸의 앞발이 태운이 있던 공간을 통째로 휩쓸었다.
그러나,
‘느낌이 없다……!’
그 무엇도 걸리는 느낌을 받지 못한 첸의 동공이 살짝 흔들리는 순간,
치직!
어느새 다가온 태운의 신형이 거대화한 첸의 미간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거 맞고도 버티면 인정.”
키이이이잉 ― !
[뇌신화(雷身化) ― 적뢰 ver]
[중력투법(重力鬪法)]
치지지직!
피잇 ― !
태운의 주먹이 붉은 섬전이 되어 첸의 미간을 향해 쏘아졌다.
‘……!’
첸은 그 순간 느꼈다.
눈앞에서 불꽃이 튄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걸.
또한 순식간에 스쳐 가는 어린 시절의 기억에,
‘아, 안……!’
주마등이라는 게 정말로 존재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뇌신권(雷神拳)]
꽈아아아아아아아앙 ― !
해진을 일으킨 첸의 공격만큼이나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웅 ― 웅 ― 웅 ― 웅 ― !
“으윽! 거리 벌려!”
간신히 중심을 잡은 군종 기자들의 헬기는 연이어 터져 나온 엄청난 충격음에 귀를 막으며 거리를 더욱더 벌렸다.
그리고 귀를 막는 와중에도 앵글을 유지하기 위해 꽉 잡은 그들의 카메라.
그 카메라에 담긴 영상 속에서는,
푸슈슈슈슈슈슉 ― !
미간이 뻥 뚫린 거대한 판다가 어마어마한 출혈을 일으키며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 * *
순간 의식이 날아갔다.
하지만,
치이이이이이이익 ― !
세계급 헌터의 생존력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순식간에 부서지고 함몰된 두개골을 회복시키는 첸.
쿠우우우우웅!
거대한 그 몸이 바닥에 쓰러졌을 땐, 이미 상처를 모두 회복한 뒤였다.
“커헉! 허억… 허억……!”
순간 사후 세계를 목격하고 온 첸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지, 진짜 죽을 뻔했다……!’
거대화를 하며 자신도 모르게 방심하게 된 조금 전의 자신을 반성하면서.
‘…겨우 이 정도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첸은 이를 악물었다.
진짜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걸 몸소 느꼈으니까.
쿠구구구구 ―
키이이이이이잉 ― !
해저면을 짚고 일어서는 거대한 판다의 전신에서 마력이 재차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붉은 번개를 두른 채 공중에 서 있는 코드 제로를 바라보며 첸이 거센 안광을 터뜨렸다.
“중국의 세계급 헌터! 첸이다아아아아!”
그그그그그극 ― !
수십 미터나 솟아올랐던 첸의 신체가 더욱더 커지기 시작했다.
해벽 위로 머리가 조금 솟아올라 있던 첸의 신체.
하지만 이제 첸의 신체는,
우우우우우우 ― !
수십 미터나 되는 해벽이 겨우 그의 무릎까지만 가릴 수 있을 만큼 커져 있었다.
어느 정도 지속 가능한 크기였던 지금까지의 거대화와 달리 한순간이나마 최대의 전력을 발휘하기 위한 초거대화.
족히 수백 미터는 가뿐히 뛰어넘을 것 같은 거대한 판다는 영화 속 거대 괴수들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비록 유지 시간은 수 초에 불과하지만, 그 정도 시간이면 일격을 날리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푸화악 ― !
단순한 포효 한 번에 사방으로 돌풍이 휘몰아쳤다.
“아니 대체 언제까지…! 거리 더 벌려!”
“뒤로! 뒤로 물러난다!”
투두두두두두 ―
한번 뒤로 물러났던 군종 헬기들은 그 돌풍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또다시 뒤로 물러났다.
카메라 배율이 좋아서 망정이지, 벌써 군종 기자들의 현장과의 거리는 육안으로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세계급들의 싸움…! 정말 엄청나구나!’
군종 기자들이 카메라에 눈을 붙인 채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그때,
“죽어라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 ― !
첸의 전력을 다한 공격이 태운을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빌딩이 휘둘러지는 것이라 착각할 만큼 거대했던 공격은, 이제 아예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내가 이걸 가만히 맞아주고 있을 것 같아?”
가만히 있을 태운이 아니었다.
어느새 붉은 번개 두른 태운의 신형이 첸의 팔을 지나쳐 또다시 미간 앞에 나타났다.
“……!”
팔을 휘두르던 첸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고,
“한 방으론 안 된다는 거지?”
씨익 ―
태운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어났다.
키이이잉 ― !
[뇌신화(雷身化) ― 적뢰 ver]
[중력투법(重力鬪法)]
치직!
[뇌신권(雷神拳) ― 10연격]
꽈과과과과과과과과광 ― !
첸의 머리로 말 그대로 10번의 벼락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너덜너덜해진 첸의 머리.
그 끔찍한 모습에,
“꺄아아악!”
“히이익!”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고,
“아, 안 돼!”
부모들은 아이들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과거 제주도에서 첸과 싸울 뻔했으며 코드 제로에게도 참교육을 당할 뻔했던 한 백발의 남자는,
‘…정말 난 죽었다 살아났구나.’
덜덜덜……!
중계 영상을 보다 그만 하의에 실수하고 말았다.
찔끔.
다행히 아주 조금이었지만 말이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