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괴물 호랑이가 꽤 강함 (3)
“…배터리? 아……!”
왕룽은 뭔가 알았다는 듯 입을 살짝 벌렸다.
“감히 건방지게도 무신 운장의 일화를 흉내 냈던 걸 말하는 건가 보군?”
운장.
관우의 자, 즉 또 다른 이름이었다.
삼국시대 최강의 무인이라 일컬어지는 여포 봉선을 제치고 중국의 무신으로 등극한 관우 운장.
그런 그의 일화를 빗대어 중국을 쳐부수겠다는 말을 했으니, 중국인인 왕룽의 입장에선 어지간히도 화가 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전쟁에 출전하기 전 태운의 중국에 대한 도발 영상을 보았던 왕룽은 오히려 너털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크하하하핫! 어설프게나마 무신을 따라 하려 했던 노력은 인정하지. 그만큼 중국의 위인은 중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말이 뭐 이리 많아? 좀 닥쳐라.”
하지만 태운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왕룽의 말을 끊어냈다.
치직!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왕룽을 바라보는 태운의 눈빛은 어느새 자줏빛으로 물들어있었다.
“…그건 또 새로운 번개로군. 번개를 색깔별로 다루는 능력이라도 되는 건가? 음… 그건 아니겠지. 중력도 다루는 걸 보면 말이야…….”
말이 끊어졌음에도 왕룽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미소를 지어 보이며 태운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척 봐도 한없이 여유로운 모습.
이미 태운을 상대로 두 번이나 우위를 점한 터라 자신이 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닥치라고.”
태운은 왕룽에게 더 이상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파지지직!
태운의 발치를 맴돌던 자줏빛 고리 하나가 지그재그 형태를 그리며 순식간에 왕룽을 향해 날아들었다.
초속 100,000km에 달하는 번개의 속도는 빛을 제외하면 그 비교 대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
아무리 왕룽이 헤라클레스의 권능인 ‘초월적 전투감각’을 둘렀다고는 하지만,
빠지지지지직!
일말의 전조조차 없이 날아드는 번개를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크으으으윽!”
순식간에 왕룽의 전신을 지지기 시작하는 자뢰.
전신이 자줏빛으로 물든 왕룽을 바라보며 이번엔 태운이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 근접전투 위주지? 그럼 너 나 못 이겨.”
태운의 손이 왕룽을 향해 뻗어졌다.
“잘 가라.”
파지지지지직!
두 줄기의 빛무리가 왕룽에게 뒤이어 날아들었다.
* * *
터어어어엉! 터어어어엉!
왕룽의 전신에서 연거푸 마력이 폭발했다.
청뢰를 튕겨낸 것처럼 자뢰를 튕겨내기 위한 왕룽의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 통해?’
무의미하게 마력만 사라질 뿐, 왕룽의 전신을 갉아먹고 있는 자줏빛 번개는 몸에 엉키기라도 한 듯 떨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끄으으으으윽!”
왕룽의 두 눈에 잔뜩 핏발이 솟아올랐다.
전신을 휘감는 엄청난 고통에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으니까.
차라리 불에 데이는 것이라면 이보다 덜했을 것이다.
작열통은 기본인데다가 몸속 여기저기를 뜨겁게 달군 칼날로 헤집고 다니는 듯한 통증이 연신 휘몰아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끄아아아아악!”
결국 고통을 참다못한 왕룽이 바닥에 엎어져 꼴사납게 뒹굴기 시작했다.
“이, 이런 치사한…! 크아아아아아악!”
“…치사해?”
태운은 바닥을 뒹굴며 치사하다는 말을 입에 담는 왕룽에게 피식 비웃음을 선사해주었다.
“권능인지 뭔지 네 힘도 아닌 힘으로 잘난 척한 건 안 치사하고?”
“궈, 권능은 나에게 가장 알맞은 힘… 즉, 나의 힘인… 끄아아아악!”
차르르릉 ―
차르르릉 ―
고통에 몸부림치는 와중에 태운에게 반격하려는 왕룽.
태운의 주위에는 어느새 또다시 수많은 사철검들이 생성되어 있었다.
“크으으으윽! 죽어어어!”
쐐액 ― !
회피조차 할 수 없게 빽빽하게 공간을 메운 사철검들이 왕룽의 손짓을 따라 일제히 태운의 전방위를 점하고 날아들었다.
그러나,
파직!
빠지지지직!
츠즈즈즈즈 ―
태운의 손끝에서 추가로 생성된 세 줄기의 자뢰가 날아드는 사철검들을 순식간에 태워버렸다.
철마저 흔적도 없이 태워버리는 자뢰의 엄청난 고열.
빠드드득 ― !
순식간에 자신의 공격이 무용지물이 되는 걸 본 왕룽은 고통을 참아내며 이를 빠득빠득 갈아댔다.
“…미안한데, 이게 다야? 그래도 토끼는 잠깐이지만, 이 번개를 막아내기라도 했었는데 말이야.”
“……!”
전 토끼의 방주, 쿠마리가 이 강력한 번개를 잠깐이라도 막아냈다는 사실에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왕룽.
그의 머릿속에 불현듯 언젠가 했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암흑룡의 던전… 그 던전 안이었다면 너도 내 상대는 안 돼……!
―크하하하하핫! 나를 이긴다고? 네가? 이렇게 약해 빠져가지고?
―이건 전력을 다하는 장이 아니니까……!
―나도 전력은 아니었는데? 크하하핫!
언젠가 방주 간의 서열을 정하고자 간단히 치렀던 서열전.
왕룽에게 패배한 쿠마리가 이를 갈며 자신에게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난 것이었다.
“개소리 마라……!”
쿠구구구구 ― !
자줏빛 거미줄에 전신이 엉켜버린 왕룽의 몸에서 가히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새로운 성질의 기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십이방주 중 최강…! 그래, 좋아. 나의 전력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치지지직!
희번뜩!
자줏빛 번개를 몸에 매단 채 눈을 번뜩이는 왕룽의 기세가 그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워졌다.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에 대해 알고 있나?”
“……!”
왕룽의 말에 태운의 두 눈이 조금 커졌다.
“설마……!”
“그래, 그 설마다.”
씨익 ―
일반인이었다면 수백 수천 번은 더 정신이 날아갔을 만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애써 덜덜 떨리는 입가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왕룽.
쿠우우우우 ― !
자줏빛으로 물들어있던 그의 전신이 황금색… 아니, 조금은 어두운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 *
쿠구구구구 ― !
왕룽… 아니, 범의 방주의 진정한 전력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과업.”
지이이이잉 ―
“네메아의 사자.”
치지징 ―
왕룽의 전신을 뒤덮는 사자 가죽의 형상.
그 어떤 공격에도 상처를 입지 않는 네메아의 사자 가죽이 왕룽의 전신을 뒤덮자,
치지직!
“……!”
왕룽의 전신을 헤집던 자뢰 줄기들이 무언가에 밀려나듯 튕겨져 나오더니 태운에게로 돌아와 자줏빛 고리를 형성했다.
“세 번째 과업.”
지이이이잉 ―
“황금 뿔의 사슴.”
쉬이이익 ― !
어디선가 나타난 황금색 뿔을 가진 사슴 한 마리가 태운을 들이받으려 냅다 달려들었다.
가히 바람과 같은 속도였지만,
“…뭐야, 이건.”
태운에게는 그렇게까지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태운은 냅다 고리 중 하나인 자뢰를 날려 사슴을 없애려 했으나,
치직!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사슴에게 금방이라도 직격할 듯했던 자뢰가 무언가에 밀려 사슴 주위를 돌아갔다.
“……!”
“그 사슴은 상처를 입힐 수 없다. 여신의 신수이니까. 그게 룰이다.”
“…뭐?”
그 말도 안 되는 룰에 태운이 당황함을 금치 못하는 그때,
“네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열 번째 과업.”
어느새 자뢰에게서 벗어난 왕룽이 연이어 능력을 전개했다.
“에리만토스의 멧돼지, 크레타의 황소, 스팀팔로스의 새, 디오메데스 왕의 식인 말, 게리온의 소.”
지이이잉 ―
지이이잉 ―
지이이잉 ―
지이이잉 ―
지이이잉 ―
“뀌에에엑!”
“음모오오오!”
“삐이이익!”
“푸르르르!”
““음머어어어!””
상처를 입힐 수 없는 사기적인 황금 뿔의 사슴에 더해 태운의 주위에서 마구 솟아오르는 갖가지 짐승들.
거대한 바위만 한 멧돼지와 일반 소의 몇 배는 될 법한 성난 황소.
푸른 깃털로 덮인 새들과 입가에는 피칠갑을 한 채 입에서 불을 뿜는 말 한 마리.
마지막으로 일반 소처럼 보이지만 그 수가 수십 마리는 되는 소 떼가 등장했다.
“이게 무슨……!”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왕룽의 소환 능력에 당황한 태운의 두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왕룽의 능력에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크게 당황했다.
그야 왕룽의 고유 능력은 ‘사철’로 알려져 있었으니까.
태운의 팔에 상처를 입힐 정도로 강력했던 ‘초강력(超强力)’의 권능은 겉으로 티 나지 않는 능력이었기에 힘이 엄청 세구나 하고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갔지만,
“뭐, 뭐야 저게… 소환을 한다고?”
“왕룽은 분명 사철을 사용하는 자연형 능력자였던 게…….”
짐승… 아니, 괴물을 소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왕룽의 전투 장면을 보고 당황한 건,
{저 미친놈이……!}
시청자들 뿐만이 아니었다.
* * *
코드 제로의 전력을 분석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범의 방주의 선전을 기대하며 화상으로 모여 다 함께 한중 전쟁을 지켜보고 있던 방주들.
왕룽을 돕기 위해 중국에 가 있는 말의 방주를 제외한 열 명의 방주들이 모여 모든 전투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 ‘초강력(超强力)’의 권능이나 ‘초월적 전투감각’의 권능을 사용하여 코드 제로를 밀어붙일 때만 해도 좋았던 분위기가,
{콰아아아앙!}
순식간에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싸움이 전 세계에 생중계 중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겉으로 표가 나는 권능을 전개한 범의 방주의 행동 때문이었다.
{저 미친놈이……!}
용의 방주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권능, 그러니까 방주들의 또 다른 힘은 기밀 중의 기밀.
때문에 방주들은 대외적으로 자신의 고유 능력과 권능의 힘, 둘 중 하나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권능에 대해 들키는 순간 ‘노아즈 아크’의 존재가 세간에 알려질 위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헬기가 떠 있는 것까지 뻔히 다 알면서……!}
범의 방주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노아즈 아크의 존재의 단서를 세간에 노출시키는 우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범도 나름 노력은 한 것 같은데. 저 자줏빛 번개만 아니었어도 헬기들은 진작에 격추되었을 거야.}
개의 방주가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왕룽이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능력을 전개하기 직전, 분명 허공에서 따로 생성되던 사철검들이 있었다.
아마 서해 상공에 뜬 채 두 사람의 싸움을 촬영하는 헬기와 기자들을 노린 사철검이었을 터.
하지만 막 사철검들이 형태를 갖추기가 무섭게,
―파직!
코드 제로의 전신에 어른거리던 자줏빛 번개가 그 사철검들을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던 것이다.
{…격추를 못 시켰으면 능력을 사용하지를 말던가. 완전 민폐로군.}
왕룽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도명조가 미간을 찌푸리며 비아냥거렸다.
{…….}
비록 꽤나 원색적인 비난이긴 했지만, 그 말 또한 사실이었기에 그 누구도 도명조의 말을 부정하거나 반박하지 않았다.
사아아아아 ―
순식간에 서해보다 더 깊숙하고 싸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뱀의 방주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좋게 해보고자 희망적인 말을 던져보았다.
{그, 그래도 코드 제로만 죽이면 어떻게든 다 되지 않겠어요? 솔직히 또 다른 능력을 보였다고 해서 전 세계 사람들이 갑자기 우리의 존재를 인식할 리도 없잖아요.}
{…코드 제로를 죽일 수 있다면 말이지.}
뱀의 방주의 말을 받는 도명조가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뱀의 방주가 눈썹을 매섭게 치켜떴다.
{그게 무슨 말이죠? 12과업까지 전개한 범의 방주가 코드 제로를 못 이길 거란 말인가요? 애초에 범의 방주는 초강력의 권능 하나만으로도 놈을 몰아붙였던……!}
{…힘을 숨긴 게 범의 방주뿐이라고 생각해?}
{……!}
도명조의 말에 다른 방주들의 얼굴에 경악이 깃들었다.
코드 제로가 지금까지 보여준 게 전력이 아니란 말인가?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나? 소.}
생각이 복잡해 보이는 듯한 표정으로 용의 방주가 물었다.
그러나 도명조는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몰라,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알고 있지.}
전투 생중계 영상을 바라보는 도명조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저 괴물 놈이 겨우 저런 거에 당할 리 없다는 거 말이야.}
왕룽이 소환한 괴수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화면 속 코드 제로의 모습.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코드 제로를 관찰하고 영상들을 분석해온 도명조는 알 수 있었다.
코드 제로의 귀가 살짝 위아래로 움찔거렸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사람의 귀가 그렇게 움찔거릴 때는 단 한 순간.
씨익 ―
바로 미소를 지을 때뿐이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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