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세계가 한국을 왕따시킴 (2)
콰드드득……!
회담장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사아아아아아…….
지금 회담장으로 들어서는 한 무리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더없이 싸늘하게 변한 것이다.
저벅 저벅 ―
뚜벅 뚜벅 ―
그러나 선두에서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는 그런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 맨 앞에서 당당한 걸음걸이로 들어서고 있었다.
과연 중국을 홀로 침몰시킨 코드 제로다운 행보였다.
“…한국 자리는 저기 있군요.”
회담장 한쪽 구석에 마련된 한국의 자리.
무려 중국까지 꺾고 리바이브로 세계를 휘어잡은 한국의 위상에도 구석에 위치한 한국 대통령의 자리는 세계 정상들 사이에서 한국이 찬밥 취급당하고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P7에 속하는 국가들이 한국을 의도적으로 따돌리는 것이었다.
세계 정상 회담은 보통 P7에서 주최하고 관리하니까.
오히려 다른 국가 정상들은 한국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마력감염증의 유일한 치료제를 가진 한국 그리고 한국과 대척하는 세력인 기존 기득권 국가 P7.
바다 생태계를 뒤흔들며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상어 한 마리와 이미 세계라는 바다를 휘어잡고 있던 범고래 떼.
그 사이에 낀 다른 국가들은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에 놓인 처지였다.
게다가 그 상어가 범고래 떼 중 한 마리를 물어 죽였다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양쪽 모두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던 다른 국가 정상들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후우… 몸이 떨리다 못해 세포 하나하나까지 떨려 죽겠습니다.”
김정원 대통령이 추위라도 느껴지는 듯 몸을 오들오들 떨며 약한 소리를 했다.
하긴 일반인인 김정원 대통령은 이 자리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힘들 것이었다.
고오오오오오 ―
사방에서 폐부를 찌르는 듯한 헌터들의 살기가 한국의 일행을 감싸고 있었으니까.
“약한 소리 하지 마세요.”
후욱……!
보라색 1이 적힌 하얀 가면을 쓴 강천이 단번에 기세를 발산하며 타국 고위 헌터들의 살기를 차단시켰다.
“음…? 갑자기 좀 살겠군요.”
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헌터들의 살기로 인해 힘들어하던 이상희 기자와 방인성 카메라맨이 갑자기 가벼워진 공기에 어깨와 목을 돌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한국의 일행들을 향해 기운을 발산하며 압박을 가하던 수십 명의 헌터들의 표정에 놀라움과 충격이 어렸다.
‘코드 제로도 아닌 코드 원이……?’
‘역시 저자도 괴물이었나……!’
최소 A급에 이른, 게다가 절반 가까이가 S급인 헌터 수십 명의 기운을 단번에 막아서는 코드 원의 능력에 놀란 것이다.
‘역시 강천.’
태운은 속으로 빙긋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강천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나저나, 이번 회담은 너무 이상한데요. 기자나 카메라가 하나도 없어요.”
이상희 기자의 말에 김정원 대통령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엇… 정말 그렇습니다. 아무리 정상 회담 자리에선 기자나 카메라 수를 제한시킨다고 하지만… 이렇게 하나도 없는 경우는…….”
스윽 ―
이상희 기자와 김 대통령의 말에 태운은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이군.’
확실히 회담장에는 각국 정상들과 그들을 경호하기 위한 고위 헌터들만이 잔뜩 있을 뿐, 그 흔한 기자나 카메라가 하나도 없었다.
즉, 회담장에 기자와 카메라맨은 이상희 기자와 방인성 카메라맨 둘 뿐이라는 것.
졸지에 있으면 안 될 자리에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두 사람의 어깨가 살짝 위축되었고,
덜덜덜……!
이 모든 것이 한국을 공격할 사전 준비의 일환 중 하나라는 걸 눈치챈 김 대통령의 어깨가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죽을 필요 없습니다.”
태운은 그런 그들을 안심시켰다.
“우리는 그 중국의 전력을 대패시킨 한국을 대표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중국보다 강한 나라는 미국 하나뿐이죠. 겁먹을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사실 중국을 이긴 건 한국이 아니라 코드 제로이긴 했지만,
‘그, 그래… 이번엔 코드 제로뿐만이 아니라 코드 원까지 있어!’
‘시X, 그래 올 테면 와보라지. 어차피 목숨 걸고 왔으니까!’
오히려 그랬기에 이상희 기자와 방인성 카메라맨은 그런 태운의 말에 더 안심할 수 있었다.
즉, 지금 자신들의 옆에는 수백만 중국 헌터들을 상회하는 전력이 있다는 것이니까.
홀로 중국을 감당한 코드 제로.
그리고 코드 제로와 함께 국내에서만큼은 그 못지않은 명성과 위용을 자랑하는 코드 원까지.
막말로 미국을 제외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헌터들의 전력이 중국의 팔룡 길드 전체보다 강하다고 생각되지 않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그래도 안심되지 않는 듯 품속에 있던 리바이브 2회분을 손으로 자꾸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툭 ―
태운은 가면 속에 설치한 작은 이어무전기로 강천에게 작게 속삭였다.
{혹시라도 소란이 벌어지면 이 세 사람을 지키는 데에만 집중해줘.}
{라저.}
사아아아아 ―
한국 일행의 등장으로 살벌하게 가라앉은 회담장 분위기.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탕탕탕!
“그럼… 정상 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아슬아슬한 세계 정상 회담이 시작되었다.
* * *
회담.
어떤 문제를 가지고 관련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토의하는 것.
그렇다면 세계 정상 회담은 세계 정상들이 자유롭게 토의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먼저 발언하겠습니다.”
이번 세계 정상 회담은 철저한 힘의 논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기존 정상 회담에서야 많은 기자와 카메라가 있었으니 대놓고 힘의 논리를 내세울 수 없었지만, 이번 정상 회담에는 그 누구도 기자나 카메라를 대동하지 않았으니까.
오직 한 국가, 한국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주로 발언하는 나라는 P7… 아니, 오늘만큼은 P6가 되어버린 6개국이었다.
미국, 일본, 러시아, 독일, 영국, 아이슬란드.
모두 세계급 헌터를 보유한 국가들이었다.
카메라와 기자들이 없다는 걸 의식한 그들은 완전히 대놓고 그들만의 담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시작된 헌터에 대한 탄압으로 인해 선량한 헌터들마저 피해를…….”
“범죄자로 오해받은 헌터들의 활동에 제약이 생기고 있…….”
“지구를 위해 희생해온 그들을 향해 도 넘은 비난이 쏟아지고 있…….”
“그들을 대접해주지는 못할지언정 돌을 던지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주로 한국에서 시작된 헌터계 정리에 관한 발언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리바이브로 인해 앞으로 헌터에 대한 공급 문제가 발생…….”
“헌터의 부족은 곧 인류의 궤멸로 이어진다는 커다란 문제가 있…….”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건 곧 인류의 자멸을 초래하는 것이라는 건 이미 환경 파괴로 인해 겪어본 바로…….”
“희생자들에겐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이 또한 자연의 섭리…….”
“모든 자연재해를 막을 수는 없듯이 마력감염증 또한 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으로 놔두어야…….”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고 보는 견해가…….”
마력감염증 치료제, 리바이브에 관한 비판적인 의견 또한 쏟아져 나왔다.
6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 정상들은 그저 멀뚱멀뚱 그들의 발언을 들으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그건 당연히 한국 측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자기들끼리만 작정하고 이야기하고 있구만!’
김 대통령은 속으로 분을 삭였다.
아무리 국가의 힘이 강하고 다른 이들을 무시한다고 해도 적당한 선이 있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거라면 다른 국가 정상들은 왜 불렀단 말인가?
그들의 주요 견제 대상인 한국은 그렇다 쳐도 다른 국가에게까지 이러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타국 정상들을 방청객 취급하는 P6 국가들의 독주에 모두의 불만이 점점 쌓여가고 있을 때쯤,
타다다다닥 ― !
지이이이잉 ―
회담장 뒤쪽에서 회담 내용을 기록하고 촬영하는 이상희 기자와 방인성 카메라맨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P6 소속 국가, 영국과 독일의 두 S급 헌터가 두 사람을 제지하고 나선 것이다.
“…예? 무슨 소리예요. 이번 정상 회담은 생중계 금지였지, 취재 금지가 아니었잖아요.”
타다다다닥 ― !
이상희 기자가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타이핑하며 방해 말라는 듯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까 전까지 긴장하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본업이 시작되자 누구보다 진심으로, 진지하게 임하기 시작하니 두려움 같은 감정 따위는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였던 것이다.
“어어, 카메라 가리지 마세요. 생중계 아니고 녹화라고요.”
방인성 카메라맨도 자꾸만 카메라 앵글을 가리는 독일의 S급 헌터를 피해 카메라를 이리저리 놀렸다.
S급 헌터에게도 쫄지 않는 패기라니.
역시 소문광 사장이 인정하는 열혈의 두 언론인이었다.
“아니, 이러시면 안 된다니……!”
자신들을 무시한 채 타이핑과 촬영을 이어가는 두 사람에게 발끈한 두 S급 헌터가 손을 뻗으며 무력을 사용하려는 찰나,
타악 ― !
강천이 두 S급 헌터 사이로 들어와 두 사람의 손을 쳐냈다.
“뭡니까? 무슨 짓이죠?”
“……!”
강천의 우악스러운 완력에 어이없을 만큼 쉽게 밀려난 두 S급 헌터의 표정에 약간의 놀라움의 빛이 어렸다가 사라졌다.
“지금 이게 무슨……!”
“당신들이야말로 무슨 짓입니까? 왜 제 할 일 잘하고 있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겁니까?”
두 명의 S급 헌터를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는 강천의 기세.
정상 회담 중에 외부에서 소란이 커지려 하자,
까딱 ― 까딱 ―
휙! 휙!
회담 자리에 앉아 있던 영국 총리와 독일 대통령은 슬쩍 고갯짓으로 물러나라 지시했다.
생중계가 아닌 것을 확인했으니 주된 목적은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생중계가 아닌 이상 회담이 끝나고 처리해도 늦지 않을 터였다.
“…쯧.”
두 S급 헌터는 약간의 불만 어린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회담을 방해할 수는 없었으니까.
웅성웅성…….
한 차례 작은 마찰이 일어나자 조금 어수선해지는 회담장 분위기.
“자자, 정숙합시다.”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미국 대통령이 정리하고 나섰다.
미국 대통령은 타국 정상들의 표정에 불만이 잔뜩 어려 있음을 알아차리고 천천히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로 했다.
“자… 너무 소수의 정상끼리만 떠든 감이 없지 않아 있군요. 그럼 다른 정상분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기로 하죠.”
선심 쓰듯이 발언권을 타국에게 넘기는 P6의 수장, 미국.
그 오만한 자세에도 다른 국가들은 이렇다 할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 선심에서도 한국은 가장 마지막 순서로 밀려나고 있었다.
“…….”
한편, 태운은 회담을 가만히 지켜보며 김 대통령 바로 뒤에 서 있었다.
각 정상의 바로 뒤에 경호를 위해 서 있는 고위 헌터들.
그렇게 가만히 회담장을 살피던 와중,
파직!
태운의 시선이 미국 대통령 뒤에 서 있던 세계 최강의 헌터, 제이슨과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리고 그 순간,
씨익 ―
태운과 눈을 마주친 제이슨의 입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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