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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175화 (175/300)

175화. 왕따인데 안 꿇림 (1)

P6의 6개국 정상들이 입을 닫자, 발언권을 얻어낸(?) 타 국가 정상들은 하나둘 차례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헌터 범죄를 규명하라는 시위가 잇따라 빗발치고 있…….”

“시위가 무력시위로 번지며 화를 참지 못한 헌터들이…….”

“정부와 헌터 간의 갈등도 상당히 생기고 있어…….”

“무능력한 협회에게 과도하게 많은 권력이…….”

하지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도 결국 P6의 국가들과 별다르지 않았다.

대체로 한국이 끄집어내 놓은 헌터 사회의 어둠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생긴 갖가지 부작용과 그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용들이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국내 주요 길드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

“이대로라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길드가 남아나질 않…….”

그들은 적어도 마력감염증 치료제인 ‘리바이브’에 대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완전한 기득권인 P6와는 다르게 그들은 이제 중국을 꺾은 한국의 눈치도 보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무엇보다 회담장에 중국을 홀로 무너뜨린 코드 제로가 와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국가 수만큼이나 오랜 시간 동안 국가들의 발언이 이어졌고,

“후우…….”

마침내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정상, 김정원 대통령의 차례가 다가왔다.

후욱 ― !

김정원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자 단번에 집중되는 세계 정상들의 이목.

‘…한국이 이렇게까지 주목받은 적이 있었던가.’

좋다고 해야 할지 좋지 않다고 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상당히 복잡한 기분에 휩싸인 김 대통령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꼬깃 ―

품 안에 있던 쪽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 쪽지의 내용은

[대한민국 입장 정리]

며칠간 의인당 그리고 코드 제로와 머리를 맞대고 정리한 대한민국의 입장을 요약한 것이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한민국 대통령, 김정원입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정상 회담 발언이 시작되었다.

* * *

대한민국의 입장은 정리하자면 매우 간단하고 일목요연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린 잘못 없다!’였다.

“…헌터가 이바지하는 공로 등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도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바, 그들을 대우해주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대우의 범위가 범죄를 묵인하는 선까지 나아가는 것은 엄연한 차별이자 과도한 특권이며, 이는 평등한 사회를 뒤흔들 수 있는 계급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다소 사무적이고 문서적인 말투로 어느 정도 덮긴 했지만 김 대통령의 발언이 이어질수록 타국 정상들, 특히 P6 국가 정상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져 갔다.

그 문장들에 담긴 적나라한 비판적인 내용을 제대로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헌터가 이 세상에게 가져다주는 이점은 인정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상당한 대우가 필요하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하지만 그 대우의 범위에 ‘범죄 묵인’이 존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냐?

국제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만큼 그래도 어느 정도는 수그리며 나올 줄 알았던 그들의 예상과 달리 상당히 저돌적인 태도를 보이는 한국.

그러나 정상들의 불쾌한 눈빛은 발언 중인 김 대통령이 아닌 그 뒤에 서 있는 하얀 가면을 쓴 남자, 코드 제로를 향해 있었다.

‘저, 저……!’

‘완전 정부를 꼭두각시로 만들어놨군……!’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김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발언들이 한국 정부의 입장이라기보다는,

‘정부가 헌터 협회에 벌써 이렇게까지 먹혔을 줄이야!’

코드 제로, 즉 한국 헌터 협회의 입장이라는 걸 말이다.

그야 한국 정부는 저번 정상 회담 때만 해도 저런 스탠스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특히 김정원 대통령은 다른 정상들처럼 헌터의 힘을 위시하여 갖가지 이득을 취하던, 기득권이었던 인물이었다.

저 모습을 보라.

파르르…….

대통령이란 자가 정상 회담에서 발언을 하는데 왜 팔다리를 벌벌 떨고 있겠는가?

긴장되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던전이 나타나고 매년 열렸던 세계 정상 회담이었다.

벌써 이번이 김 대통령의 몇 번째 정상 회담이라고 생각하는가?

처음도 아니고 벌써 수차례 나온 자리에서 긴장되어 떤다는 건 매일 가는 길로 출근하던 직장인이 도중에 길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크흠…….”

“흐음…….”

타국 정상들이 하나둘 불편한 기색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저 발언도 상당히 거슬리긴 했지만, 자신들과 같은 기득권이었던 자가 한낱 협회 직원의 기세에 눌려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불편해진 것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팔다리를 달달 떨면서도 끝까지 발언을 이어 나갔다.

“…해서 한국은 이러한 과오와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뒤늦게나마 칼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지요. 헌터가 부를 축적하기에 유리하게 만들어진 시스템 하나만으로도 솔직히 그들에 대한 대우는 충분히 해주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와중에 범죄까지 용인해라?”

김 대통령은 타국 정상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짝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 세계는 헌터들만의 세계가 아닌 우리 모두의 세계입니다. 모두가 함께 평화롭고 질서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지요. 하지만 현재 한국… 아니,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헌터들은 그 선을 명백히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징치하고 처벌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아까 헌터 범죄의 공론화 문제로 인해 선량한 헌터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하셨지요?”

김 대통령은 품속에 손을 넣고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한국도 그 시기를 잠시 겪었습니다. 하지만 매우 짧았지요. 바로 이 모범마크제의 도입 덕분입니다.”

김 대통령이 꺼내든 무언가.

그건 바로 모범 헌터 마크가 그려지고 코팅된 종이였다.

“한국은 모범마크제 도입 이후 선량한 헌터들을 향한 대중들의 비난이 사라졌습니다. 모범 시민 훈장을 받은 시민을 욕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죠. 정말 선량한 헌터들을 걱정하시는 거라면 제대로 된 모범마크제 도입을 추천드립니다. 한국은 이에 다른 나라들을 도와줄 충분한 용의가 있습니다.”

꿀꺽 ―

김정원 대통령이 말을 잇다가 마른침을 한 차례 삼켰다.

다음으로 말해야 할 마지막 문장이 차마 본인 입으로 내뱉기가 굉장히 민망했던 탓이었다.

“…한국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모든 일은 종두득두처럼 인과응보이니 권선징악하여 사필귀정토록 하라.”

김 대통령의 말에 자동번역기를 끼고 있던 타국 정상들은 사자성어가 번역되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귓가를 매만졌다.

“아무래도 어려운 말이라 번역이 안 되는 듯한데… 풀어서 말씀해주시죠.”

등 뒤에 서 있던 태운의 속삭임에,

흠칫!

김 대통령은 본인도 상당히 찔리는지 어깨를 살짝 움츠리며 천천히 타국 정상들에게 방금 전 발언의 뜻을 풀이해주기 시작했다.

“…모든 일은 콩 심은 데 콩 나는 것처럼(종두득두 : 種豆得豆) 행한 대로 대가를 받으니(인과응보 : 因果應報), 선행을 권하고 악행을 징계하여(권선징악 : 勸善懲惡) 모든 일이 결국 옳은 이치대로 가도록(사필귀정 : 事必歸正) 해라… 라는 의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X되기 싫으면 알아서 잘해라!’

라는 의미였다.

그 의미를 회담장 안 모든 이들이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었고,

빠직……!

잔뜩 열받은 정상들은 물론이고 고위 헌터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태운 한 사람을 향하기 시작했다.

‘후우…….’

푸욱 ―

김 대통령은 본인이 말해놓고서도 고개를 들 낯이 없는지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 * *

고개를 떨군 기존 기득권인 한국의 대통령과 여전히 당당하고 꿇릴 것이 없다는 듯 어깨와 가슴을 쫙 펴고 서 있는 코드 제로.

척 봐도 대조되는 두 사람의 모습은 타국 정상들에게 커다란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

누가 봐도 한 나라의 대통령을 겁박하는 악인의 포지션에 서 있는 코드 제로의 당당한 모습이 말 그대로 너무나도 저게 맞지―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했기 때문이다.

스으으윽 ―

그런 코드 제로의 모습을 보자, 그들의 내면 속에 있는 일말의 양심의 새싹이 머리를 쳐들며 폐부를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

김 대통령의 발언이 끝나고 적막이 찾아온 회담장.

그 누구도 섣부르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상당히 열받긴 했지만 김 대통령의 발언에 동의하지 못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말을 꺼내는 순간 어른… 아니, 인간으로서 마지막 양심까지 걷어차버리게 될까 봐서였다.

그렇다고 한국의 발언에 동의할 수도 없었다.

그건 본인의 목을 죄는 행동과 다름없었으니까.

즉, 인간임과 동시에 기득권이기도 한 그들이 둘 중 하나에 대한 선택을 종용받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타인의 눈물로 쌓아 올린 특권을 버리고 인간으로서 살아갈지, 아니면 비인이 되어 특권을 누리며 살아갈지 말이다.

힘에 취해 향락과 특권에 찌들며 그저 욕망을 좇던 이들이 잠깐이나마 맨정신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

그렇게 거의 20초가 넘는 적막이 이어지고,

“…잘 들었습니다.”

그 적막을 깬 사람은 기득권 중의 기득권, P6의 수장인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미국 대통령, 로건은 위기감을 느꼈다.

그의 눈에는 타국 정상들이 한국 대통령의 말에 흔들리는 것이 훤히 보이고 있었으니까.

김 대통령의 발언이 도발성이 꽤 짙게 묻은, 다소 거친 발언이긴 했지만 그 내용 자체가 상당히 사람의 양심을 관통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발언들은 대부분 저자의 머리에서 나왔을 터.’

로건의 부리부리한 눈빛이 김 대통령의 뒤에 서 있는 코드 제로를 향했다.

‘…실로 무서운 자다.’

가진 바 무력도 가히 재해급인데다가 지닌 심계와 지략마저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니.

게다가 도덕적으로도 최소한 저자는 여기 있는 이들 모두를 훨씬 앞서 있었다.

그야말로 지, 덕, 체의 삼위일체를 이룬 존재인 것이다.

‘이야기가 통할 상대가 아니야.’

그들이라고 해서 이 모든 행위가 악이라는 것을 몰랐을까?

아니,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 책임을 외면하고 즐거움만 누렸을 뿐이니까.

그러나 로건은 여전히 그 즐거움을 버리고 책임을 직면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코드 제로 또한 로건과 같은 기득권들의 입장과 타협할 리가 없을 터였다.

‘…그나마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다행이군.’

사전에 노아즈 아크의 계획에 대해 언질을 받은 바 있는 로건은 그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더 커지기 전에 이 자리에서 제거할 수 있음에 안도했다.

“그나저나, 한국의 발언은 여기서 끝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리 모두에게 해주셔야 할 이야기가 있었지요.”

로건은 한국 측이 던진 의미심장한 선택지를 애써 외면하며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스윽 ―

제이슨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코드 제로가 시선을 살짝 내리며 로건을 쳐다보았다.

태운과 시선을 마주친 로건이 빙긋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제거할 땐 제거하더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코드 제로.”

뽑아먹을 수 있는 건 다 뽑아먹는 게 바로 기득권의 본능 아니겠는가?

로건과 비슷한 생각을 한 듯 그를 비롯한 몇몇 국가 정상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외국산 구렁이들 같으니라고.”

그들의 속내를 파악한 태운의 입가에도 비뚤어진 미소가 걸쳐졌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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