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177화 (177/300)

177화. 왕따인데 안 꿇림 (3)

“리바이브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코드 제로의 말에 정상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뭔가 대놓고 리바이브를 팔아보려는 듯 속임수를 쓰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리바이브는 치료제가 아닙니까? 치료제로 대체 어떻게…….”

“리바이브의 본질은 치료제입니다.”

태운은 재차 딴지를 걸려는 러시아 대통령의 말을 끊어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최근 리바이브가 단순히 마력감염증 치료제가 아닌 임시 면역제로도 기능한다는 점이 확인되었지요. 리바이브의 그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저와 메디스카이는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바로… 리바이브를 마력 각성에 사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말이지요.”

태운은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스윽 ―

작은 주사기 하나를 꺼냈다.

“이게 바로 그 결과물입니다. 각성 지원용 특수 주사기이지요.”

일반 주사기보다도 조금 많이 작은 주사기.

3.14cc짜리로 특수 제작된 주사기였다.

“……?”

별안간 작은 주사기 하나를 꺼내 들더니 그 주사기가 각성 지원용이라는 말에 정상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운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을 계속했다.

“저와 메디스카이 연구진은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마력 입자가 세포들의 변형을 자극하다 고열이 일어나며 사망에 이르는 것이 마력감염증의 사망 과정이라면, 사망에 이를 정도의 고열이 일어나는 걸 막을 정도로만 리바이브가 기능한다면…? 각성과 사망 방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지이잉 ―

방인성 카메라맨이 태운이 들고 있는 주사기를 줌인하여 잡았다.

손가락보다도 얇고, 길이가 손가락 두 마디는 될까 싶은 작은 주사기였다.

“그래서 모든 용량을 달리하며 실험을 해보았고, 그 결과 정확히 오차범위 0.001cc 이내의 3.14cc 용량의 리바이브를 투여하면 생명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마력 입자가 세포 변형을 지속적으로 자극할 수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리바이브가 부족하거나 더 많으면 어떻게 되나요?”

타다다닥 ― !

타이핑하던 이상희 기자가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태운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기준 용량보다 많으면 마력 각성의 확률은 0%가 된 채로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회복하게 됩니다. 부족하면 각성 확률은 남아 있을지언정 천천히 죽어갑니다. 다만 생존 기간은 평범한 마력감염증 환자보다 훨씬 길겠지요.”

“정확한 양을 주사했다고 전제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각성하는지도 설명해주시죠!”

질문을 던지며 회담장 내 유일한 기자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이상희 기자.

태운은 미리 말을 맞춘 것이 아님에도 적절한 질문을 던져주는 이상희 기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이어 나갔다.

“일단은 마력감염증 환자가 정확한 용량의 리바이브를 맞으면 일반 마력감염증 환자와는 다르게 정신을 잃지 않습니다. 의식이 남아 있는 것이죠. 다만 온몸의 세포를 공격하는 마력 입자들로 인해 끝없는 어지럼증과 전신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 전신 통증은 어느 정도나 되죠?”

“직접 겪어본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말씀드릴 수 없겠습니다만… 신경 반응이나 통증 민감도를 연구하여 미루어본 결과, 바늘로 찌르는 통증보다는 조금 더 고통스러우나 송곳으로 찌르는 통증보다는 덜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태운의 말에 세계 정상들의 안색이 살짝 하얗게 질렸다.

‘온몸을 바늘로…? 송곳으로…? 미친……!!’

‘뭐야, 그게… 엄청 무섭잖아……!’

이상희 기자는 태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도 오타 하나 없이 정확히 타이핑하며 연이어 질문을 던졌다.

“상당히 고통스럽겠군요. 그런 다음은요?”

“그 이후로는 일반 마력감염증 환자의 마력 각성 과정과 동일합니다. 최소 7일간의 긴 고통을 버텨내고 나면 슬슬 마력 각성자들이 탄생하기 시작합니다. 각성에 성공한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런 어지럼증과 전신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되는데, 이 시점은 일반 각성과 마찬가지로 개인차가 심합니다.”

“그럼 각성을 못 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마력을 각성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원래라면 마력에 감염되었을 경우 사망하셨을 분들이죠. 그런 분들은 최대 10일에서 13일 정도까지 경과를 지켜본 뒤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각성 지원을 중단합니다.”

“지원을 중단하신다는 말씀은……?”

“리바이브를 추가 투여하여 완치시킨다는 말입니다.”

이상희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럼증에 전신을 바늘로 찌르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최소 7일이나 참아내야 한다니 정말 어려운 과정이군요. 아무리 목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보장된다고는 해도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면 어떡하죠?”

“당연히 지원자의 의사를 최우선적으로 존중해서 중간에 리바이브를 추가 투여하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되면 각성 여부는 알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고통에서는 해방될 수 있으니까요.”

태운은 다시 한번 검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요지는 간단합니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게 죽다 살아난 사람들이 헌터가 되었다면 이제는 참을성이 강하고 오래 견디는 사람,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 헌터가 되는 것이죠!”

“헌터 각성 확률은요?”

“안타깝게도 일반 각성 확률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계 정상들을 도외시하고 자기들끼리 문답을 주고받는 두 사람.

하지만 그 내용이 가히 충격적인 수준이었기에, 세계 정상들은 차마 그 문답 중간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저, 저게 사실이라면… 리바이브는 헌터 양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가!’

‘저 주사기를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해도 리바이브가 없으면 무용지물……!’

‘이러다 정말 한국이 세계를……?’

크게 놀란 세계 정상들이 흘끔흘끔 P6 국가 정상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리바이브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확인한 P6 국가 정상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저게 정말 사실이라면 대단한 것이겠지만… 그걸 하필 한국, 그것도 코드 제로가 가졌다는 게 문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릴 수밖에.’

‘코드 제로라… 안타깝군. 저 재능과 능력을 다른 데 사용했다면 훨씬 더 든든한 우군이 되었을지도 몰랐을 텐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P6 그리고 그 국가의 수장들.

그들 스스로는 눈치채지 못한 듯하지만,

사아아아아 ―

그들의 두 눈에는 어느새 지독한 탐욕과 살벌한 살기가 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 * *

“와…….”

“…이건 정말 언변마저도 경지에 이르렀다고 봐야 할 수준이네요.”

“말빨도 세네.”

태운이 마이크를 잡고 난 이후의 모든 대화 내용을 영상으로 담고, 타이핑하던 두 JBS 언론인들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들의 옆에 선 강천도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누가 감당하리라 보십니까?

―최근 주춤하긴 했지만 헌터는 전 세계인의 1순위 워너비 직업군이었습니다. 고통스럽다고 한들 목숨이 보장되는 기회를 사람들이 두고 보고만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체 그런 연구들을 어떻게 한 겁니까! 설마, 인체 실험을 한 거 아닙니까!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일반인들에게 기증받은 장기나 세포조직에 실험하고 연구한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검증되지 않은 내용 아닙니까!

―검증할 때만 자원자를 모집해서 진행했습니다. 안전은 확실히 보장되도록 리바이브는 수십 회분을 상시 구비 중이었고요.

―그래서, 모범마크제는 어떻게 도와주실 요량이십니까? 결국 타국에 영향력을 강화하겠단 소리 아닙니까?

―사례와 자료를 공유해드리고 앞서 경험한 바에 따라 몇 가지 조언을 해드릴 뿐입니다. 물론 그 이상의 도움을 요청하신다면 그 이상 응해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영향력…이라고 하셨습니까? 이미 한국은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에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만… 배 아프신가 봅니다?

―헌터의 다산을 장려하신다고 하셨는데, 결국 한 아이가 태어나려면 수많은 생명이 유산되어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이거 생명 경시 아닙니까?

―안타까운 일이긴 합니다만… 마력으로 인해 멀쩡한 사람들이 죽는 것도 자연의 섭리라고 하신 분이 유산을 생명 경시라고 지칭하신다면 제가 할 말이 없군요. 본인이 했던 말이나 돌이켜보시죠.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세계 정상들의 집요한 공격.

그러나 태운은 능숙하고도 여유 있게 그런 정상들의 질문을 받아치고 회피해낸 것이다.

결국 청문회처럼 공격하던 정상들은 지쳤는지 속으로 백기를 흔들었고,

“…30분간 휴식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세계 정상 회담의 의장을 맡은 로건에 의해 정상 회담은 잠시 브레이크타임을 가지게 되었다.

드르륵 ―

드르륵 ―

웅성웅성.

시끌시끌.

저마다 친한 정상이나 경호 헌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정상들.

“에휴. 화장실이나 가야겠어.”

“볼일 좀 보고 오지.”

다들 화장실이 급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하나둘 회담장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코드 제로님!”

회담장 내 유일한 언론인인 이상희 기자와 방인성 카메라맨이 그들에게 다가오는 코드 제로에게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영상 잘 찍혔어요?”

“그럼요. 워낙 인물이 좋으셔서 화면빨 잘 받으시던데요?”

“…가면 썼는데요?”

“가면이 잘생기셨어요!”

“…그거 칭찬 맞죠?”

두 사람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을 푸는 그들.

그런 와중에,

{수상한 낌새 있었냐?}

{아직 느껴진 건 없었어. 근데 김 대통령, 저렇게 저기 혼자 놔둬도 괜찮아? 물론 그리 먼 건 아니지만…….}

{계속 주의하는 중이야. 이 거리면 천만 분의 일 초 만에도 갈 수 있으니까 걱정 마. 그리고 어차피 놈들의 목표는 대통령이 아니라 나야.}

{…오케이.}

태운과 강천은 계속 가면 속 이어무전기로 서로 소통하며 주위를 감시했다.

한편, 회담석에 혼자 남겨진 김 대통령.

“푸하아아아아…….”

김정원 대통령은 진이 다 빠졌는지 회담 테이블 위에 팔을 괸 채 마른세수를 했다.

‘이런 정상 회담은… 한 번만 더 했다간 진짜 피 말라 죽겠구만.’

어차피 이번 정상 회담이 마지막일 터였다.

‘다음 정상 회담쯤에는… 아마 저 하늘나라에 있을지도 몰라.’

내년에 임기가 끝나면 자신에게 어떤 처분이 내려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내년엔 감옥에 있기를 기도하자.’

최대한 협회와 코드 제로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해서 감옥으로라도 선처받자는 것이 김 대통령의 목표.

짜악!

다시금 자신의 목표를 상기한 김 대통령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마른세수를 하던 손으로 자신의 뺨을 세게 때렸다.

“으윽……!”

너무 세게 때렸는지 양 볼이 화끈해졌다.

그런데 그 순간,

꾸르르르륵……!

돌연 배가 뒤틀릴 듯 아프기 시작했다.

“어어억……!”

갑자기 닥쳐온 복통에 김 대통령은 배를 움켜잡은 채 몸을 비틀었다.

‘뭐, 뭐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인가……?’

혹시나 긴장해서 배가 아플까 싶어 전날부터 여태까지 물과 약간의 식빵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김 대통령이었다.

“으이씨……!”

세상 억울해진 김 대통령은 최대한 티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기……!”

휘익!

대화를 나누던 일행이 그를 돌아보았다.

“왜 그럽니까?”

꾸르르르륵……!

코드 제로를 마주하자 심리적으로 더 위축된 김 대통령은 배가 더욱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얼굴이 살짝 하얘진 채로 겨우겨우 말을 내뱉었다.

“저… 화장실에 가려고……!”

“…최대한 떨어지면 안 되는데…….”

경호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붙어 있어야 하는 김 대통령과 두 언론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김 대통령에게는 이 용변을 해결하는 것이 목숨보다 더 급한 일이었다.

“끄으으으으윽… 저 정말로 급한… 크윽……!”

“…어쩔 수 없죠. 강천아, 부탁한다.”

“와, 이 나이에 누구 화장실 따라가는 건 또 처음이네. 갑시다.”

툭 ―

살짝 귀찮은 듯한 강천이 김 대통령의 등허리를 툭 쳤고,

“끄윽!”

그 충격에 괄약근이 위험했던 김 대통령은 외마디 비명을 간신히 참아내며 엉거주춤 화장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킥킥.”

회담장 구석의 한 남자가 남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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