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왕따를 습격함 (2)
“도명조……!”
화장실 입구 쪽 소의 탈을 쓰고 있는 남자를 본 강천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날을 세웠다.
“…어라? 네가 내 정체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천천히 화장실 안으로 들어서는 도명조.
그러다,
“아!”
무언가 생각난 듯 가면을 벗으며 살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코드 제로가 이야기해줬구나? 또 언제 어디서 알아냈대…? 그런 놈을 대체 어떻게 공략하라는 거야.”
미소를 짓고 있으면서도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투덜거리는 도명조.
그런 도명조를 바라보며 강천은 코드 원 가면 뒤에서 눈만 살짝 움직여 김 대통령이 있는 변기 칸 쪽을 보았다.
‘…그래. 차라리 안에 있어서 다행이지.’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여파는 변기 칸을 둘러싼 벽과 문이 막아줄 수 있을 테니까.
도명조와 대치한 강천의 등줄기로 계속해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도명조.
전 한국의 S급 헌터.
지금은 일본으로 도망간 것으로 추정되며 일본으로 가기 전, 혼자서 김천용과 정호백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남자.
그리고 태운이 두 차례나 상대해보았고, 그 엄청난 형이 대단하다고 인정한 강자들의 집단인 십이 방주 중 한 자리를 차지한 소의 방주.
아무리 S급에 올라 코드 원의 자리를 받게 된 강천이라고는 하지만,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잠깐이라도 버틸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군.’
최소 세계급 이상이라고 평가받는 방주인 도명조를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때,
―형, 내가 방주랑 싸우면 어떨 것 같아?
―너? 음… 지겠지.
한중 전쟁이 끝나고 한차례 태운과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강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길 가능성은 아예 없어?
―아마도? 네가 세계급이 되면 또 모를까.
―그렇군. 그렇다면 이번 임무가 내 마지막이 되는 건가.
―뭐래, 이 미친놈이.
그러면서 태운이 해주었던 말이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방주를 상대로 승산이 있는 사람은 너랑 청룡 길드장밖에 없어.
―…뭔 소리야. 방금 확률이 제로라면서요. 이 코드 제로 형님아.
―받아.
툭 ―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강천에게 던져주는 태운.
주머니를 받아 든 강천은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거? 아공간 주머니? 나도 있는데?
―설마 주머니가 메인이겠냐? 내용물이 메인이지.
슉 ―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어보는 강천.
그리고 그 안에는,
달그락 ―
어마어마한 양의 약병들이 들어 있었다.
―형… 이거……!
―세계급이 되지 않는 한, 일반적인 상태라면 너와 청룡 길드장은 방주를 상대로 이길 확률이 제로인 건 맞아.
태운은 놀란 강천의 얼굴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상시 전력 상태’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
태운이 강천에게 건네준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 포션이었다.
한중 전쟁 전, 전쟁을 대비해 정부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마석을 갈아서 만든 마력 회복 전용 포션.
거기에 태운이 가지고 있던 마석까지 갈아 더하니 웬만한 대용량 아공간 주머니가 아니고서는 들고 다닐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이 나오게 된 것이다.
―솔직히 나는 안 죽을 자신 있거든? 근데 네가 없으면 나머지 세 사람을 나 혼자 다 지킬 수 있으리라는 확신까지는 없다.
―…….
―죽으면 뒤진다 진짜. 나 너 믿고 정상 회담 가는 거야.
―…진짜 더럽게 부담되네.
―크크큭!
태운은 악동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강천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아끼지 말고 쏟아부어라. 그 안의 마력 포션은 무려 한국 헌터 전체를 위해 만들었던 대규모 전쟁 지원용 포션들이니까. 아무리 S급이라고 해도 너 하나 정도는 수백 번까지 채워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상시 전력 상태면 승률이 얼마나 되는데?
―몰라, 인마. 내가 전투력 측정기냐? 다 붙어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 범이랑 토끼도 차이 엄청났거든?
―아, 대충! 평균이라도!
―알았다, 알았어. 뭐… 대충 토끼 기준 9할, 범 기준 9.9할 정도겠지.
―뭐야? 토끼가 더 셌어? 그리고 아무리 상시 전력 상태라지만 승률이 뭐 그리 높아?
―뭔 소리세요. 네가 질 확률인데요.
―야, 이씨! 뭐야! 제로나 마찬가지잖아!
―얼씨구? 야, 0이랑 1의 차이가 얼마나 큰 줄 알아?
씨익 ―
태운과의 대화를 떠올린 강천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이, 도명조.”
긴장한 듯 보이더니 돌연 갑자기 웃고 있는 듯한 강천의 목소리에,
“……?”
도명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너… 범이나 토끼보다 강하냐?”
“……!”
부르르……!
순간적으로 떨리는 도명조의 두 주먹.
그 떨림을 확인한 강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좋아. 그럼 승률 1할은 넘는 거네.”
“…네가? 나를 상대로?”
화르르륵 ― !
도명조의 양손에서 짙은 적색의 겁화가 피어올랐다.
“주제를 알아라. 버러지……!”
“아씨, 맞다. 너 능력 불이었지.”
새삼 도명조의 능력을 상기한 강천은 입술을 깨물었다.
화기나 폭탄 등을 사용하는 강천에게 있어서는 상성이 그다지 좋지 않은 유형이었으니까.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우우우우웅 ― !
양손을 쌍검으로 변형시킨 후 부여강화를 위해 두 검에다 마력을 있는 대로 불어넣는 강천.
양손에 각자의 능력을 가득 두른 두 사람이,
슈욱 ― !
스팟 ― !
그렇게 회담장 화장실 한복판에서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앙 ― !
회담장 건물 전체가 뒤흔들렸다.
* * *
한편, 다시 정상 회담이 이루어졌던 회담장.
키잉 ― !
개의 방주, 쿠조의 고유능력 ‘인력(引力)’이 발현되면서 두 사람에게 달려가려는 태운의 몸을 잡아끌었다.
덜컥 ― !
자신의 몸을 잡아당기는 인력에 움직임에 제동이 걸린 태운.
“방해 마라……!”
까드득 ― !
키이잉 ― !
[자기장(磁氣場)]
[자화(磁化)]
[자기배척(磁氣排斥)]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도 순식간에 전개한 적절한 반격.
“……!”
단숨에 개의 방주의 인력을 상쇄시킨 태운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원숭이의 방주의 손이 두 사람의 목덜미를 잡으려는 찰나,
치직!
[뇌신화(雷身化) ― 청뢰 ver]
파악 ― !
순식간에 그 사이로 끼어든 태운의 손이 원숭이의 방주, 에메르송의 손을 쳐냈다.
“와, 엄청 빠르네?”
씨익 ―
암습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짓고 있는 두 방주.
치지직!
전신에서 푸른 번개를 일으키며 두 사람을 보호하는 태운의 눈빛이 그런 두 방주를 노려보며 매서운 안광을 번뜩였다.
“…다른 이들은 이미 섬을 빠져나갔나.”
“와… 그걸 그 짧은 사이에 파악했어?”
“크큭… 좋아. 우릴 그동안 애먹였으면 이 정돈 되어야지.”
순식간에 자기장을 회담장 전체로 퍼트려 회담장 내에 남아 있는 이들의 수를 확인한 태운.
문제는,
쿠구구구구궁……!
화장실로 향한 강천과 김 대통령이 있는 곳에서 또 다른 하나의 강한 기척이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방주 하나가 강천이 쪽으로 향했다.’
전부 자신이 상대하기는 하겠지만 혹시나 방주와 부딪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강천에게 마력 포션을 거의 전부 넘겨놓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직 S급에 불과한 강천이 방주를 이기기는 힘들 터였다.
“…쯧.”
그놈의 화장실이 문제였다.
이럴까봐 최대한 일행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했던 건데.
‘그냥 다 같이 화장실로 향했어야 했나.’
자신의 실수를 곧바로 인정한 태운은 눈앞의 두 방주부터 제거하기 위해 힘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아니, 전개하려 했다.
“어이쿠, 미안한데 겨우 우리 둘이 너를 상대할 생각은 없거든?”
“성질 한번 급하군.”
두 방주가 미소를 지으며 물러서자마자,
드드드드드드드 ― !
회담장 건물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화장실 쪽에서 터져 나온 충격파에 의한 진동과는 다소 다른 흔들림.
건물이 위치한 지반 자체를 뒤흔드는 듯한 진동이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쿠르르릉 ― !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콰앙!
“꺄악!”
“크윽!”
이상희 기자와 방인성 카메라맨이 천장에서 떨어진 돌들에 놀라 비명과 신음을 토해냈다.
후욱 ― !
태운은 재빨리 두 사람을 양 허리에 껴안은 채 건물 위로 솟구쳤다.
“장비는!”
“채, 챙겼어요!”
이미 노트북을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은 이상희 기자.
그러나,
“저는 이거 다 찍겠습니다!”
방인성 카메라맨은 이 전투 상황까지도 모두 찍겠다며 카메라를 집어넣지 않고 있었다,
옷과 가방에 소형 카메라가 있긴 했지만 카메라에 비하면 상당히 저화질이었고, 줌인과 줌아웃 등 조절도 불가능했으니까.
“알겠습니다! 조심하세요!”
치지지직!
콰아앙!
태운은 고개를 끄덕임과 함께 청뢰로 미리 천장을 부수며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탈출했다.
그와 동시에,
치직!
자기장에 포착된 화장실 쪽의 방주를 향해 한쪽 발을 뻗었다.
급박한 와중에도 조금이나마 강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자기장(磁氣場)]
[자기추적포착(磁氣追跡捕捉)]
[유도전격(誘導電擊) ― 청뢰 ver]
파지지지직!
자기장의 도움을 받아 적뢰의 성질이 덧씌워진 청뢰가 열 추적 미사일처럼 태운이 지정한 자기를 추적해 쏘아졌다.
콰앙!
그렇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청뢰를 쏘아 보내는 동시에, 천장을 부수고 건물을 탈출하는 세 사람.
이윽고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미, 미친……!”
“이, 이게 다 뭐야……!”
“키에에에에에에에엑!”
“쿠어어어어어어어엉!”
회담장 주위를 둘러싼 엄청난 수의 게이트와 몬스터들이었다.
* * *
치지지지직!
한편, 눈 깜짝할 사이에 화장실에 도달한 청뢰.
퍼어어어어엉 ― !
“뒈져라……!”
도명조는 검붉은 흑염을 어느새 양손이 아닌 전신에 두른 채 강천을 거칠게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러다 부지불식간에 코앞으로 날아든 푸른 번개에,
“……!”
도명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파지지지지직!
순식간에 도명조의 전신을 휘감는 푸른 뇌전.
“크으으으윽!”
하지만 그 고통도 잠깐,
터어어엉 ― !
청뢰에 감전당하자마자 그 성질을 본능적으로 파악한 도명조가 마력을 방출하며 감전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문제는 청뢰가 도명조에게 입힌 데미지가 아니었다.
부르르 ―
겉으로 내색한 적은 없지만 은연중에 코드 제로를 두려워하고 있던 도명조였다.
코드 제로의 능력인 청뢰를 알아보고 근처에 코드 제로가 나타난 줄 알며 주위를 살피기 시작하자,
‘…빈틈!’
전력을 다했음에도 한없이 밀리고 있던 강천은 한 차례 감전당한 뒤 주위를 살피는 사이에 드러난 도명조의 작은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스팟 ― !
빠르게 도명조의 지척까지 접근한 강천.
푸욱 ― !
“커헉……!”
그의 검이 주위로 신경이 분산된 도명조의 뱃가죽을 뚫고 들어갔다.
키잉 ― !
도명조의 복부를 비집고 들어간 검을 순식간에 변형시키는 강천.
그리고는,
“이거나 먹어라……!”
[백린탄(白燐彈) ― 소형 ver]
냅다 그의 뱃속에다가 백린탄을 쏟아부어버렸다.
콰과과과과과광 ― !
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 ― !
폭발음과 함께 살갗이 타는 역한 냄새가 화장실 내부를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쿠구구구구구궁 ― !
무너져내리는 회담장 건물 안에서,
“크아아아아아아악!”
도명조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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