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왕따가 아니라 보스였음 (2)
“저 멍청한……!”
코드 제로에게 목을 붙잡힌 채 몸을 벌벌 떨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돼지의 방주.
그런 돼지의 방주를 바라보던 말의 방주가 이를 뿌득 갈며 분노를 토해냈다.
분명 자신은 코드 제로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바 있었다.
자신들의 생각보다 코드 제로는 훨씬 더 강력한 존재라고.
겉보기에는 범의 방주와 비등해 보였지만 사실은 그게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그러니 절대로 따로따로 달려들지 말고 다 함께 공격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돼지의 방주는 혼자 달려들었을 뿐만 아니라 한눈까지 팔았다.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내가 말했잖아…! 저놈은 위험하다고! 절대 혼자 달려들면 안 돼!”
말의 방주의 외침에 잔해더미 위에서 코드 제로를 올려다보고 있던 개의 방주, 쿠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위험하군.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더 이상 방주를 잃을 순 없어.”
순식간에 돼지의 방주가 당하자 충격을 받은 방주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토해내고 있는 그때,
“코드 원. 이리로 와.”
코드 제로가 의식을 잃은 한국의 대통령을 업고 있던 코드 원을 불렀다.
흠칫!
그 말에 코드 원을 앞에 두고 있던 소의 방주, 도명조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
스윽 ―
온몸이 굳어 있는 도명조를 바라보던 강천은 태운의 목소리를 듣고 승부에 대한 일말의 미련을 곧바로 버린 채 걸음을 옮겼다.
‘…나는 아직 멀었군.’
어차피 자신이 이기지 못할 상대였다.
전력으로 부여강화를 한 쌍검으로도 놈의 불꽃을 막아내기에 급급했으니까.
일단 지금 자신의 역할은 태운이 마음 놓고 싸울 수 있게 다른 이들을 챙기는 것이었다.
방주 하나도 감당하지 못하는 자신이 제대로 이들을 챙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태운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스윽 ―
김 대통령을 업은 강천이 도명조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
그 순간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떨고만 있는 도명조.
덜덜덜…….
도명조는 밀려오는 자괴감에 여전히 떨리고 있는 자신의 양손을 바라보았다.
‘…나는 왜 이리 겁에 질려 있는 거지?’
실제로 마주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코드 제로의 위세와 강력한 권위에 밀려 한국에서 철수하긴 했지만 붙어본 적도 없는 상대였다.
놈과 붙어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겁을 집어먹을 일이 아니었다.
‘왕룽과 쿠마리를 이겨서?’
단순히 자신보다 강한 상대들을 이겼기 때문에?
‘아니…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믿음이었다.
저자는 무슨 일이든,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내고 해결해낼 거라는 믿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적인 코드 제로에게 느끼고 있던 도명조의 짙은 경계심과 분노는 어느새 코드 제로가 패배하지 않을 거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언제부터?
‘…쿠마리가 당했을 때부터……!’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코드 제로가 어떤 어려움을 맞닥뜨리든 모두 해결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믿음을 가졌던 때가.
심지어 다른 방주들이 코드 제로와 관련해서 계획했던 일들이 어그러질 때마다 속으로 웃음 지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도명조는 자신도 모르게 코드 제로를 응원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씨X… 이게 무슨……!’
도명조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무슨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린 인질도 아니고 적에게 동조되다니!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십이 방주 중 자신을 포함한 10명의 방주가 모이고, 수없이 많은 던전 씨앗들을 동원했다고 하더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저 코드 제로는 또 어떻게든 이 위기를 돌파하고 해결하다 못해 넘어설 것만 같았다.
그래.
그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과도한 공포는 모두 코드 제로의 승리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비틀……!
돌연 도명조가 머리를 감싸 쥐고 비틀거리기 시작하자,
스윽 ―
어느새 다가온 양의 방주가 손을 뻗어 도명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정하세요.”
우웅 ―
양의 방주의 손길을 타고 그녀의 권능이 도명조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도명조의 몸 떨림이 빠르게 잦아들기 시작했다.
데메테르의 권능 첫 번째, 생명의 힘.
농업과 곡물, 자연의 풍요를 주관하는 여신인 데메테르는 모든 생명을 보호하는 여신.
그녀의 손을 타고 흘러 들어간 데메테르의 권능이 흔들리는 도명조의 심신을 빠르게 안정시켜준 것이다.
“허억……!”
심신이 안정되자 탁기를 내보내듯 커다란 숨을 한번 토해낸 도명조가 한결 편안해진 눈빛으로 양의 방주를 바라보았다.
“…고맙다.”
“별말씀을. 방주의 전력이 더 줄어들면 다 같이 곤란해지니까요.”
싱긋 ―
양 탈 뒤에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양의 방주.
그리고는,
스윽 ―
방금 전까지의 미소가 무색할 정도로 무섭게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공중에 떠 있는 코드 제로를 노려보았다.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네요. 방주를 셋씩이나 죽인 것도 모자라, 소의 방주마저 심마에 빠뜨리다니……!”
쿠구구구구구……!
양의 방주의 두 눈이 갈녹색 빛으로 물들며 거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데메테르의 권능 두 번째, 대지의 힘.
드드드드드드 ― !
하와이섬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윽……!”
걸음을 옮기던 강천이 그 엄청난 흔들림에 비틀거렸다.
스윽 ―
두둥실.
지친 강천이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지 못하자, 태운은 강천의 몸에 역중력을 걸어 그의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그리고는,
파직!
“성질 한번 급하군. 좀만 기다려보지?”
자줏빛 안광을 번뜩이면서 갈녹색 안광을 드러내며 힘을 끌어올리는 양의 방주를 내려다보았다.
“거름으로 만들어드리죠!”
힘을 모은 양의 방주가 대지를 융기하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아, 가만히 좀 있어보라고.”
키이이이잉 ― !
팍!
태운의 손바닥이 지면을 향했다.
그그그그그그극……!
섬 전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불룩……!
마치 화산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불룩 솟아올랐다가,
콰드득!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솟아오른 만큼 짓이겨지길 반복하는 하와이.
그그그그그극……!
‘마, 말도 안 돼!’
지금 사용하는 것은 그녀의 고유 능력이 아니었다.
무려 신의 권능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자는 본인의 고유능력으로 신의 권능을 억누르고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당황한 양의 방주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젠장!”
생각대로 대지가 움직이질 않자 양의 방주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말의 방주!”
“알고 있다고!”
양의 방주의 외침에 애초부터 그녀와 함께 힘을 끌어올리고 있던 말의 방주가 권능을 전개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포세이돈의 권능 첫 번째, 바다의 힘.
한중 전쟁 당시 서해를 갈랐던 강대한 힘이 거대한 해일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아아 ― !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높게 솟아오른 거대한 쓰나미가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하와이 전체를 덮칠 기세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틈을 안 주네, 진짜.”
뚜둑!
쿠웅 ― !
돼지의 방주의 목을 확실히 꺾어 완전히 숨통을 끊어버린 태운이 그를 공중에서 떨어뜨리고,
키이이이잉 ― !
팍 ― !
돼지의 방주의 멱을 딴 손을 거대한 해일이 몰려오는 방향을 향하여 냅다 휘저었다.
하와이 제도 전체를 넘어 태평양의 일부분을 자신의 중력장 범위 안에 넣어놓은 태운.
적어도 자신이 펼친 중력장과 자기장 아래에서, 그는 신과 같은 신기를 부릴 수 있었다.
[중력여래신장(重力如來身掌)]
거대한 무형의 손이 귀찮다는 듯 몰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순식간에 쳐냈다.
푸화아아아아아악 ― !
그 압도적인 기세가 무색하게도 저 멀리, 하늘 위로 흩날리며 비산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바닷물.
“…뭣?”
그 말도 안 되는 신위에 말의 방주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거대한 해일이 순식간에 코드 제로의 손을 따라 지워졌으니까.
‘손으로 무슨 물총 막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물총의 물도 손으로 저렇게 막아내진 못할 것이다.
“킥킥킥! 대단해!”
말의 방주와 양의 방주의 힘이 무용지물이 되자 원숭이의 방주, 에메르송이 웃음을 터뜨리며 난입했다.
키잉 ― !
원숭이의 방주가 권능을 전개하며 두 눈을 빛냈다.
아테나의 권능 첫 번째, 통찰.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의 권능답게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통찰안이 원숭이의 방주의 두 눈에 덧씌워진 것이었다.
“크하하하하하하! 이건 대체 무슨 괴물이냐고오오오!”
키이이잉 ― !
통찰안으로 태운의 정보를 꿰뚫어본 원숭이의 방주가 광소를 터뜨렸다.
오싹! 오싹!
그의 정보를 엿본 것만으로도 돋아나는 소름에 원숭이의 방주는 양팔을 문지르며 방주들에게 외쳤다.
“힘을 더 빼야 한다! 전력은커녕 반도 사용하지 않았어! 놈의 능력은 중력과 번개뿐만이 아니라고!”
움찔.
원숭이의 방주의 외침을 들은 태운의 볼이 씰룩였다.
‘정보를 보는 권능을 사용하는 건가?’
슬쩍 ―
태운은 가만히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이상희 기자와 방인성 카메라맨을 흘끔거렸다.
‘…아직 공개하고 싶지는 않아서 말이지.’
파지지지직!
콰르르르르릉 ― ! 꽈르르르르릉 ― !
뒤이어 원숭이의 방주가 외친 태운의 정보가 순식간에 터져 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자줏빛 번개와 천둥소리에 묻혔다.
“…뭐라고?! 못 들었어!”
생각보다 훨씬 압도적인 코드 제로의 힘에, 나서는 것을 망설이고 있던 방주들이 원숭이의 방주에게 소리쳤다.
천둥소리에 파묻히는 바람에 원숭이의 방주의 목소리가 그들에게도 닿지 못한 것이었다.
태운과 맞붙기 전 제대로 그의 정보를 알고 싶었던 방주들의 시선이 원숭이의 방주에게 쏠리고,
쐐애애애액 ― !
모든 방주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떨어진 틈을 타 태운의 신형이 원숭이의 방주에게로 쇄도했다.
[뇌신화(雷身化) ― 자뢰 ver]
치지지지직!
눈 깜짝할 사이에 원숭이의 방주의 지척에 도달한 태운의 신형.
“안 돼!”
깜짝 놀란 개의 방주가 원숭이의 방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고유능력 ‘인력(引力)’을 전개했지만,
“늦었어.”
키이이잉 ― !
[중력투법(重力鬪法)]
[뇌신권(雷神拳)]
꽈아아아아아아앙 ― !
콰르르르르르릉 ― !
단 일격에 지반이 뒤집어지고 대기가 찢어지며 몰려오던 파도가 역행했다.
“쿨럭……!”
“끄윽……!”
여전히 대지와 바다를 향해 권능을 전개하고 있던 양의 방주와 말의 방주가 속이 뒤집어졌는지 핏물을 울컥 토해냈다.
후두두둑…….
단 일격에 상반신 전체가 고기 조각이 되어버린 원숭이의 방주의 시체 조각들이 뒤집어진 지반 위로 쏟아졌다.
으득……!
한편, 인력을 전개해 태운의 신형을 끌어당기던 개의 방주.
원숭이가 당하고, 양과 말이 피를 토해냈음에도 그는 이를 갈며 어떻게든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키이이이잉 ― !
슈우우욱 ― !
우여곡절 끝에 어떻게든 태운을 끌어당기는 데에 성공한 개의 방주가 그의 양손을 쭉 뻗었다.
슈아아아……!
그의 손이 흑빛으로 물들었다.
“잘 싸웠다. 하지만…….”
누가 봐도 닿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의 기운이었다.
개의 방주가 가진 하데스의 첫 번째이자 최강의 권능, 죽음.
“이젠 끝이야.”
접촉만으로도 상대의 혼을 앗아가는 죽음의 기운이 담긴 손이,
슈욱 ― !
인력에 끌려온 태운을 향해 쭉 뻗어졌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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