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보스가 너무 강함 (1)
키이이이잉 ― !
원숭이의 방주를 마무리하느라 강력한 인력까지는 신경 쓰지 못한 채 끌려가던 태운.
슈아아아악 ― !
흑빛으로 물든 저승의 신의 손길이 태운의 가슴팍을 향해 짓쳐들어갔다.
“이젠 끝이야.”
개의 방주의 흑수가 태운의 가슴에 닿으려는 그 순간,
“과연 그럴까나?”
치지지지직!
어느새 한 손에 거대한 자줏빛 검을 생성한 태운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
갑자기 나타난 뇌검에 놀란 개의 방주가 눈이 커졌다.
콰르르르르릉 ― !
자줏빛 검과 흑빛 손이 충돌했다.
치이이이이이이익 ― !
“크아아아아아악!”
개의 방주가 뒤로 나동그라지며 비명을 질러댔다.
엄청난 고열에 맞닿은 손은 이미 불타는 것도 모자라 녹아 사라진 지 오래.
어찌나 뜨거웠는지 자뢰검이 닿았다 떨어진 그의 남은 팔의 단면에는 이미 살갗이 말라붙어 피 한 방울 새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치이이이이이이 ― !
뒤로 두어 번 구르는 동안 순식간에 양팔을 회복시킨 개의 방주.
“젠자앙!”
파밧 ― !
인력으로 끌어당긴 후 죽음의 권능으로 상대를 잡아채 무조건적인 승리를 취하던 그의 필승 전략.
자신의 필승 전략이 통하지 않는 상대임을 깨달은 개의 방주는 재빨리 뒤로 몸을 날려 후퇴했다.
그러나,
치직!
그걸 놓칠 태운이 아니었다.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는 개의 방주의 뒤를 점하는 태운.
“어딜 도망가?”
슈악 ― !
지체 없이 자뢰검을 놈의 목덜미에 대고 내리그었다.
그러나 그때,
번쩍 ― !
엄청난 빛무리와 함께 태운의 앞으로 금빛 섬광이 나타났다.
파직! 파지지직! 파지지지직!
한 손에는 금빛 벼락으로 이루어진 창을 들고 있는 남자.
남자의 금뢰창이 태운의 자뢰검과 개의 방주의 목덜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막아섰다.
꽈르르르르르릉 ― !
파직! 파지지직!
지지지지지직!
하늘이 부서지는 듯한 천둥소리가 하와이 전체를 뒤흔들었다.
* * *
콰르르르르릉 ― !
“더 이상의 만행은 두고 볼 수가 없군.”
빠직! 빠지지지직! 지지직!
태운과 개의 방주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남자가 금빛 번개창으로 태운의 자뢰검을 막아서고 있었다.
기기기기기긱……!
지지지직!
두 남자의 손목이 조금씩 비틀릴 때마다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번개가 비산했다.
“허억… 허억……!”
타닷!
개의 방주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재빨리 두 사람과 거리를 벌렸다.
“…한 발 빠져서 분석하느라 동료들이 당하는 걸 보고만 있었던 놈이 이제 와서 뭐라는 거냐?”
태운의 신랄한 비난에 용의 탈을 쓴 남자, 용의 방주 제이슨이 씨익 이를 드러내며 광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료라, 우리가 동료로 보이나? 우리는 동료가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그래, 비즈니스 파트너 같은 거라고나 할까.”
“세상에 사람 죽이는 비즈니스도 있나?”
“사람을 죽인다니? 우린 인류를 살리기 위한 조직이다. 토끼를 상대했다면 알고 있을 텐데?”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알지?”
토끼를 상대로 심문한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한 제이슨.
이에 살짝 놀란 태운이 미간을 좁혔다.
“그년은 워낙 오냐오냐 자랐으니까. 네놈이 바보가 아니라면 한 번쯤은 정체를 캐내기 위해 고문했을 테고, 고통에 약한 그년은 순순히 우리에 대해 불었겠지. 범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습격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나? 그 녀석은 남 잘되는 꼴은 잘 못 보는 녀석이거든.”
제이슨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우리가 네놈을 습격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자리에 온 용기는 칭찬해주지. 아니, 애도해야 하나?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고 오만이었다는 걸 곧 깨닫게 될 테니까.”
“글쎄… 상대해보니 그렇지만도 않던데? 범의 방주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다들 토끼만큼은 할 줄 알았는데… 사실 토끼도 강한 편이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 쉬워서 당황하고 있던 참이라서 말이야.”
으득……!
용과 닭의 방주를 제외한 방주들이 모두 하나같이 이를 갈았다.
코드 제로의 말에 딱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벌써 10명 중 돼지와 원숭이가 당했고, 말과 양은 권능을 전개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데다가, 개는 방금 죽을 뻔했으며 쥐와 뱀 그리고 소는 코드 제로를 눈앞에서 보고 겁을 먹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까.
애초에 전투 포지션이 아닌 닭의 방주를 제외하면 용 외에 코드 제로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방주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흠… 하긴 그래. 그건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저놈들 전부 방주 자격 실격이나 다름없지.”
“…….”
용의 방주의 말에 나머지 방주들이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용의 방주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뱀의 방주, 올리비아가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며 코드 제로를 노려보았다.
한국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결국 이 자리까지 온 그녀.
적어도 코드 제로에게 한 방 먹여 용의 방주에게 깎인 점수를 만회하고 싶었던 그녀였지만, 정작 돼지가 순식간에 죽어버리는 것을 보고 온몸이 굳어 아무것도 못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까드득……!
내심 협회 직원에게 휘둘리기나 하는 소의 방주를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올리비아였기에 그녀는 그녀 스스로 더 큰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주륵 ―
그녀가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까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때,
툭툭 ―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닭의 방주?”
닭의 탈을 쓴 중년인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위로해준 것이다.
“누구나 자기 역할이 있는 법입니다. 아가씨.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그렇게 이 갈면 나중에 후회해요.”
저벅 저벅 ―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며 올리비아를 위로해준 그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십이 방주 중 가장 전투력이 약한 닭의 방주.
그러나 약하다고 하여 그가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용의 방주 다음으로 이 전투에서 중요한 존재가 바로 닭의 방주였으니까.
저벅 저벅 ―
10명의 방주 중 가장 기운이 약한 닭의 방주가 슬금슬금 자신을 향해 걸어오자 태운은 한쪽 눈살을 찌푸리며 그와 제이슨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무슨 속셈이지?”
“뭐긴 뭐야. 그나마 제 역할을 하는 유일한 방주의 등장이란 거다.”
제이슨이 큭큭거렸다.
스윽 ―
쿠우우우……!
잔해더미 한가운데에 선 닭의 방주가 양손을 모으며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놔둘까 보냐.”
파직!
자줏빛 섬전이 된 태운이 닭의 방주의 행위를 저지하려 했으나,
번쩍!
황금빛 섬광의 제이슨이 순식간에 태운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쳇……!”
“네놈에겐 안 된 일이지만 ‘번개’는 ‘빛’을 넘어설 수 없다. 완벽한 상하관계랄까.”
초속 약 100,000km로 움직이는 번개.
반면 초속 약 300,000km로 움직이는 빛.
둘 다 가히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존재이지만 엄밀히 비교하자면 빛은 번개보다 약 3배나 빨랐다.
고유능력 ‘빛’의 세계급 헌터인 제이슨.
아무리 번개처럼 움직이는 태운이라지만 단순한 고유능력만으로도 태운의 스피드를 훨씬 상회하는 제이슨을 따돌리기엔 요원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쿠르르릉……!
파지지직!
태운과 똑같이 번개까지 다루고 있는 제이슨.
제우스의 권능 첫 번째, 뇌전의 힘을 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억울한가? 뭣하면 딱 번개 속도 정도로 어울려줄 수도 있다만.”
제이슨이 이죽거리며 태운을 도발했다.
“…….”
그런 제이슨을 가만히 노려보는 태운.
두 사람이 잠시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고오오오오 ― !
닭의 방주의 힘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 * *
닭의 방주.
십이 방주 중 전투력으로만 따진다면 최약체인 방주이자 최고령인 자.
하지만 그는 십이 방주 중에서도 용의 방주와 범의 방주 다음으로 존중받고 있는 자였다.
강자가 대우받는 강자존의 세계인 헌터계에서 흔하지 않은 일.
어째서?
단순히 최연장자라서?
아니, 그가 방주들 사이에서도 존중받는 이유는 오로지 그의 능력 때문이었다.
고오오오오오 ― !
닭의 방주의 주변에 검푸른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이름 쿠에쿠.
알제리의 A급 헌터.
고유능력은,
끼기기기기기긱 ― !
‘강령술(降靈術)’이었다.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이마에 영혼을 보는 영안이 열렸다.
끼아아아아아악 ― !
끄어어어어어억 ― !
어느 곳이나 그렇듯 육신을 잃은 영혼들이 길을 헤매고 돌아다니고 있는 현실의 이면세계.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이면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동자가 어느 두 지점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취이이이이이이……!”
쿠에쿠의 입에서 거친 바람 소리가 새어 나오고,
또륵 ―
또르륵 ―
일말의 미동조차 없이 가만히 서 있던 두 영혼이 그런 쿠에쿠의 부름에 응답했다.
“돼지의 방주와 원숭이의 방주는 각자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 부활을 준비하라.”
목숨을 살려준다는 쿠에쿠의 말에,
쉬리릭 ―
두 영혼이 얼른 자신의 육체가 놓여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두 영혼이 제자리에 자리하자,
파앗!
쿠에쿠가 권능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페르세포네의 권능 첫 번째, 환생.
본래 영혼은 한 번 육신을 떠나면 자신의 육신을 찾을 수 없어 다른 육신으로 다시 태어나기 마련이지만,
고오오오오오 ― !
쿠에쿠의 강령술은 죽은 영혼이 다시 자신의 육신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권능과 찰떡궁합인 그의 고유능력.
뚜쿵 ― !
죽었던 두 방주의 영혼이 자신의 육신으로 돌아가 안착하자 시체가 펄떡이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이……!
신체에 남아 있던 잔존 마나로 서서히 치유되기 시작하는 두 사람의 신체.
스윽 ―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한 신체로 돌아온 두 사람이 창백한 기색으로 일어서더니,
후욱 ―
수 초 만에 혈색을 되찾으며 큰 숨을 토해냈다.
“커허억…! 허억… 허억……!”
“쿨럭! 쿠에에엑! 허억… 허억……!”
내부의 장기가 모조리 타고 목이 꺾였던 돼지의 방주와 상체가 아예 날아가버렸던 원숭이의 방주.
거친 숨을 몰아쉬는 두 방주를 바라보며 닭의 방주가 가만히 조언을 던졌다.
“사망 당시 육체가 손상되었던 만큼 영혼의 소실도 있었습니다. 아마 과거의 기억이 상당 부분 날아갔을 겁니다. 돼지의 방주는 기껏해야 몇 년이겠지만… 원숭이, 당신은 아마 지금껏 살아온 날의 대부분이 날아갔겠군요.”
“허억… 허억… 상관없어… 고맙다, 닭의 방주……!”
“크허억… 허억… 시X… 오늘 아침의 일도 기억이 안 나…! 이런 개자식……!”
쿠우우우우우 ― !
태운의 손에 죽임을 당했던 두 방주가 태운을 바라보며 거센 기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분명 목숨이 끊어졌던 두 방주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부활하는 모습에,
“미친…….”
“아……!”
공중에 무력하게 떠서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내고 있던 두 언론인이 안타까운 탄식을 토해냈다.
‘형……!’
안타깝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선 도움이 되지 못해 짐만 되고 있는 강천 또한 두 방주가 부활하는 모습에 당황한 눈으로 태운을 쳐다보았다.
‘괜찮은 거 맞지……?’
꽤나 큰 힘을 사용하여 방주 두 명을 처리한 것이 무용지물이 된 데다가 강점 중 하나였던 압도적인 스피드마저 용의 방주란 자에게 막힌 상황.
더군다나 상대측에 부활술사가 있다는 것까지 확인된 암울한 실정이었다.
게다가 태운에게는 자신과 대통령 그리고 두 언론인이라는 짐까지 있었다.
둥실둥실.
지금 네 사람이 떠 있는 것 자체로도 태운의 마력은 계속 소모되고 있을 터.
강천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며 용의 방주와 대치하고 있는 태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
태운의 가면 뒤 눈매를 바라본 강천의 동공이 흔들렸다.
‘…웃고 있어……?’
마력으로 안력을 강화한 강천의 눈에는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본인을 둘러싼 열 명의 방주를 둘러보는 태운의 눈매가,
씨익 ―
명백한 초승달 모양의 호선을 그리고 있는 것을 말이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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