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팬티를 벗기기 시작함 (3)
세계가 다시 한번 커다란 혼란에 휩싸였다.
“모든 헌터들은 필히 헌터 협회 검증 담당자에게 검증받으십시오. 검증을 거부할 시 노아즈 아크로 간주하고 체포할 것이며, 불응 시 사살하겠습니다.”
각국의 헌터 협회가 한국 헌터 협회의 지침에 따라 각국의 모든 헌터들의 성기를 검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씨X! 이거 인권 유린 아니야?”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우선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당연히 몇몇 헌터들은 반발했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성기였다.
인간의 가장 은밀한 부위이자 성스러운(?) 부위.
아무리 남성 헌터들은 남성 검증 담당자가, 여성 헌터들은 여성 검증 담당자가 검사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잡아!”
콰아아앙!
검증을 거부한 헌터들의 성기에서 방주 모양의 심벌이 계속해서 발견되자, 헌터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얌전히 헌터 협회의 조사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도 대대적으로 검증 작업이 실시되었다.
사실상 이미 주작 산하 길드들을 모조리 통제하며 잡아들였던 한국이었지만, 그래도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자는 생각으로 실시한 일이었다.
그리고,
“역시……!”
주작 산하 길드가 아닌, 은밀한 협력 관계였던 2개의 작은 길드가 추가로 검거되었다.
“…하긴. 바보가 아닌 이상 모든 조직원을 하나의 바운더리 안에 묶어놓지는 않았겠지.”
물론 검거된 조직원들이 반항하려 했으나,
파직!
태운의 번갯불 한 번에 찍소리도 못하고 얼음이 되었다.
협회의 힘이 그 어느 곳보다 강한 한국과는 달리 꽤나 애를 먹는 다른 나라들.
더군다나 미국처럼 정부가 노아즈 아크와 밀접하게 결탁한 경우에는 수사는커녕 협회가 목소리를 내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그런 경우엔 결국 또 시민들이 시위를 벌여야 했다.
“타도하자! 노아즈 아크!”
“테러 조직과 결탁한 정부는 전원 퇴진하라!”
“국민의 생명을 물로 보는 정부는 모두 물러나라!”
콰아앙!
미국의 로건 대통령이 자신의 집무실 책상을 후려치며 분노를 토해냈다.
“제이슨이 당하다니… 제이슨이 당하다니……!”
가장 든든한 우군이자 가장 강력한 패였던 미국의 세계급 헌터 제이슨.
용의 방주로서 노아즈 아크를 가장 선두에서 이끌던 그의 사망 소식은 로건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각하!”
백악관 비서실장이 다급하게 대통령 집무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무리 백악관 내 출입이 대통령 다음으로 자유로운 비서실장이라지만 상당히 무례한 행동.
그러나 비서실장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을 만큼 시급을 다투는 일임이 분명해 보였다.
“무, 무슨 일인가?”
“무력 시위대가 민주당 관저를 무너뜨렸습니다!”
“……!”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로건.
게다가 비서실장은 로건이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방금 전보다 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거, 거기다! 백악관 앞에 무력 시위대를 이끌고 코드 원이 나타났습니다!”
“…뭐?”
로건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코드 원이라니?
그게 누구…….
“……!”
하얀 가면을 쓴 남자를 떠올린 로건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항상 코드 제로의 뒤에 서 있던, 숫자 1이 그려진 하얀 가면을 쓴 존재가 떠오른 것이다.
“그, 그자는 한국의 협회 직원인데? 그자가 왜 미국에……!”
로건 대통령이 갑자기 들이닥친 코드 원의 존재에 당황하여 의문을 표하는 그때,
{Ah ah, hey president Logan!(아아, 어이 로건 대통령!)}
백악관 밖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금은 어색한 영어 발음이었지만 뜻을 알아듣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정도의 영어.
백악관 관저 앞, 한 남자가 보라색 1이 그려진 하얀 가면을 쓴 채 확성기를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늘어선 미국의 무력 시위대.
‘타도 정부’라든지 ‘척살 노아즈 아크’ 등의 메시지가 적힌 플래카드를 든 시위대가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코드 원의 뒤에 서 있었다.
{I will catch you. So just get caught meekly.(나는 너를 잡을 것이다. 그러니 순순히 잡혀라.)}
강천은 백악관 관저 앞에 선 채 손에 든 종이 내용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A charge of a crime is… 아, 몰라. 자동번역기 써서 알아서 들어라.}
서투른 영어 실력으로 태운이 써준 글을 번역해 읽어보려던 강천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냥 한국어로 읽기 시작했다.
{너의 죄명은 국제 테러 조직과의 결탁 및 국민들에 대한 살인 교사와 방관 그리고 한국 정상 회담 참석자 5인에 대한 살인 교사다.}
{한국의 헌터 협회는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해 노아즈 아크와 결탁한 세력을 모조리 쳐부술 것이며, 로건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는 순순히 코스모스의 수사와 처분에 협조해라.}
{순순히 조사에 응하지 않을 시 노아즈 아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간주할 것이며, 이에 더해 반항 혹은 도주의 낌새가 보일 시 사유를 불문하고 척살할 것이다.}
씨익 ―
글을 읽어 내려가던 강천은 종이를 내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백악관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로건을 바라보았다.
{뭐, 꼬우면 전쟁하던가.}
세계의 패권과 질서가 한국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 * *
미국을 비롯한 노아즈 아크와 결탁한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하나둘 코스모스에 의해 정리되어 갔다.
정부의 방해가 사라지자, 이에 힘입은 해당 국가의 헌터 협회들은 검증 조사를 받지 않고 도망치거나 반항하는 노아즈 아크 조직원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크악!”
그러나 순순히 당할 노아즈 아크 조직원들이 아니었다.
이미 세계 각지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던 노아즈 아크 조직원들의 수와 세력은 여태껏 억눌려 있다가 이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헌터 협회가 상대할 만한 규모가 아니었던 것이다.
“돕겠습니다!”
하지만 노아즈 아크와 관련이 없음을 검증받은 헌터들이 협회를 돕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서서히 역전되기 시작했다.
“체포하려고 하지 마! 그냥 사살해도 된다!”
거기다 칼을 든 살인마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는 코스모스의 노아즈 아크 대응 원칙을 각국의 협회들이 받아들이면서 가속화되기 시작하는 노아즈 아크 정리 작업.
한국의 코드 제로와 코드 원까지 하루에도 수개국을 돌아다니며 노아즈 아크의 고위 헌터들을 정리해주자 그 잔당들이 수세에 몰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더 이상 대항하지 않고 사회 음지 곳곳으로 숨어들기 시작하는 잔당들.
그렇게 방주들을 잃은 노아즈 아크가 빠른 속도로 몰락을 향해 나아가던 그때,
번뜩!
권능의 적응을 위해 폐관에 들었던 푸르바가 마침내 눈을 떴다.
그리고,
우웅 ―
[한번 보지. 여기로 와라.]
그는 폐관에서 나오자마자 기어이 살아남은 도명조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
그렇게 마지막 남은 최후의 두 방주가 접선했다.
* * *
딸랑 ―
“여어.”
중국의 한 홍등가 지하 주점.
손님은커녕 직원 하나 없이 홀로 앉아 있던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
방금 주점 문을 열고 들어선 다른 남자가 손을 흔든 남자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슈욱 ― !
콰악!
눈 깜짝하는 순간 앉아 있던 남자에게 달려든 남자, 푸르바가 상대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 올리며 으르렁거렸다.
“네놈… 대체 무슨 낯짝으로 나를 보자고 한 거지?”
“켁… 케엑……!”
푸르바의 손에 목을 죄인 남자, 도명조가 그의 손을 탁탁 치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케엑… 이, 이것 좀 놓고……!”
콰아앙!
그대로 도명조를 주점 구석으로 집어 던지는 푸르바.
커다란 굉음이 터져나왔지만 주점에서는 아무도 나와보지 않았다.
애초에 이미 도명조가 주점 안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뒤였으니까.
“쿨럭! 쿨럭!”
졸지에 만나자마자 주점 구석의 벽면에 처박힌 도명조가 목을 문지르며 기침을 토해냈다.
“이, 이봐! 진정하라고!”
“내가 왜 네놈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이유를 100가지만 대봐. 이 비겁한 겁쟁이 새끼야.”
슈욱!
마치 귀신처럼 눈 한 번 깜빡하는 순간에 도명조의 지척까지 이동한 푸르바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도명조의 안면을 발로 걷어찼다.
콰직!
“크아아악! 이… 개X끼가 진짜!”
화르르륵 ― !
도명조의 전신에서 피어나는 흑염.
무려 신의 금속인 오리하르콘을 녹이고 제련할 수 있는 초고열의 불길이 순식간에 푸르바의 신형을 덮쳤다.
콰아아앙!
주점 내 테이블과 의자들이 검붉은 불길에 휩쓸려 한 줌의 재로 화했다.
“허억… 허억……!”
가까스로 한숨을 돌린 도명조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니까 왜 말을 안 듣고 다짜고짜……!”
“다했냐?”
흠칫!
도명조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푸르바의 목소리에 어깨를 떨었다.
스릉 ―
어느새 도명조의 목에 걸쳐진 거대한 낫.
크로노스의 신기, 스퀴테였다.
“다른 방주들이 놈의 손에 죽는 와중에 너는 도망을 쳐? 그런데도 나를 찾아온다라… 내가 어지간히도 호구로 보였나 보군. 게다가 이미 너는 나한테 두 번이나 빚을 지지 않았나? 대체 무슨 염치로 나를 찾아온 거야……!”
꿀꺽 ―
도명조는 목울대를 꿀렁이며 마른침을 삼켰다.
권능에 적응한 푸르바는 강했다.
이제 도명조는 손을 쓸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말이다.
반항하기보다는 최대한 비위를 맞추는 것이 낫겠다는 계산이 선 도명조는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진정해라 푸르바… 나는 배신한 게 아니다. 놈의 전력을 겪어보고 살아남은 유일한 이로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훗날 노아즈 아크를 재건하기 위해 몸을 뺀 거다…! 결코 겁이 나서 도망친 게 아닌……!”
스릉 ―
주륵 ―
푸르바의 낫이 도명조의 목을 살짝 긁었다.
“말은 잘하는군. 항상 말만 그럴싸하지, 네놈은 언제나 네놈의 일을 미루고 도망만 쳤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야. 네놈 때문에 니마가 죽었고, 놈의 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가만히 있었던 네놈 때문에 다른 방주들이 죽었어. 네놈이 진작에 끝내버리지 못하는 바람에 코드 제로는 저만치 강해진 거야. 네놈이 제때 일만 잘 마무리했었어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어! 알아?!”
“…이미 지난 일을 후회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푸르바. 어쨌든 우린 이제 마지막 남은 두 방주라고. 노아신께서 돌아오시기 전까지 최대한 상황을 수습해야 할 거 아니야? 너 혼자 그게 가능하겠어?”
흠칫!
도명조가 노아신을 언급하자 살짝 몸을 떠는 푸르바.
상당히 흥분해 있었던 그의 눈빛이 조금 선명해지며 차분하게 돌아왔다.
“…이미 노아즈 아크는 끝났어. 네팔의 조직원들은 이미 모두 당했고, 나도 검증을 미루면서 쫓기게 된 신세다. 탐지 능력자들까지 동원된 탓에 이미 이 세상에 노아즈 아크가 숨을 수 있는 곳은 없…….”
“아니, 있다.”
자신의 말을 끊으며 들어오는 도명조의 확신 어린 발언에 푸르바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개소리 마라. 대체 그런 곳이 어디 있다는 거지? 당장 네놈도 일본에서 쫓기는 몸이지 않나?”
“크큭! 나를 뭐로 보고? 나를 비롯한 모든 아마테라스는 이미 안전한 곳에 머무르고 있다.”
“…안전한 곳?”
목에 낫을 댄 와중에도 기세가 등등해진 도명조.
그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멀지 않아. 너도 아는 곳이지.”
스윽 ―
도명조는 가만히 푸르바의 낫을 밀어내며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 보았다.
“말해봐.”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도명조를 노려보는 푸르바.
도명조는 그런 푸르바에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북한.”
“……!”
놀란 표정을 짓는 푸르바에게 도명조가 손을 내밀었다.
“같이 가자고, 친구.”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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