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195화 (195/300)

195화. 호랑이는 외로움 (1)

“하아…….”

“이놈아, 땅 꺼진다! 왜 그리 한숨을 쉬어대?”

철민이 옆에서 연신 계속해서 한숨을 쉬어대는 한 남자에게 핀잔을 주었다.

“…….”

그러자 남자는 가만히 철민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후우…….”

재차 다시 한숨을 쉬었다.

“아니, 근데 이 자식이?”

꽁 ―

철민은 냅다 남자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야.”

제법 거친 철민의 꿀밤에도 무던하게 반응하는 남자.

남자의 시시한 반응에 철민은 한쪽 눈꼬리를 올리며 남자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뭐야, 너 가을 타냐?”

“하아아아아아아…….”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두 남자 중 붉은 머리칼의 남자, 태성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거의 드러눕듯이 벤치 끝에 엉덩이를 걸쳤다.

“아니, 이놈이 근데…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뭐 걱정 있어?”

흘끔 ―

거의 드러누운 자세의 태성이 철민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홱 ―

토라진 아이처럼 고개를 돌려버렸다.

“…선배님은 모르십니다.”

태성의 우울한 목소리에 철민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표정을 진중하게 굳혔다.

“이놈아, 내가 모르긴 뭘 몰라! 내가 뭐 네 나이 때 안 겪어본 게 있을 것 같아? 다~ 겪어봤어!”

철민은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자, 말해봐. 이 대선배님이 상담해줄 테니까. 내가 인마, 젊었을 적에 안 겪어본 일이 없이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롭습니다.”

“…어? 뭐라고?”

철민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생각보다 너무 심각한 고민이어서?

철민이 겪어보지 못한 유형의 고민이라서?

아니,

“…너 뭐라고 했냐?”

“외롭다구요.”

그냥 너무 하찮은 고민이라서.

“…….”

한순간 할 말을 잃고 만 철민.

잠시 멍하니 태성을 바라보다,

빠악!

냅다 놈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 * *

“아아악! 선배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야, 이놈아! 난 또 심각한 고민인 줄 알았잖아!”

“전 심각하다고요!”

태성이 살짝 눈물을 글썽이며 뒤통수를 문질렀다.

마력을 담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거의 곰 같은 덩치의 철민이었다.

그의 솥뚜껑만 한 손바닥에 맞았으니 어찌 아프지 않으랴.

“아오 씨!”

태성은 안 그래도 심란해 죽겠는데 자신의 뒤통수까지 후려친 철민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오 씨? 씨? 이게 선배한테 못 하는 말이 없…….”

“서, 선배! 제가 알파조장인 거 잊으신 거 아니죠? 자꾸 이렇게 나오시면 하극상입니다!”

멈칫 ―

하극상이라는 말에 철민은 재차 들어 올리던 손을 멈추었다.

확실히 현재 철민의 지위는 알파 부조장.

반면 태성은 여전히 조장을 맡고 있었으니 애초에 반말하는 것도 하극상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철민이 레전드에 1세대라고는 하지만 A급 최상위의 태성을 이렇게 대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태성이 철민을 선배로서 존중해주고 있기 때문임을 그 또한 모르지 않았다.

스윽 ―

철민은 손을 내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그래, 왜 갑자기 그렇게 심각하게 외로운 건데? 여태까지 잘만 지내놓고서는.”

“그거야, 여태까지는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빴으니까요. 하지만 이젠 아니잖아요.”

태성이 벤치 끝까지 엉덩이를 쭉 빼고 걸터앉은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아아아아 ―

샛노랗고도 붉은 낙엽들이 흩날리는 푸른 하늘은 태성의 마음과는 다르게 쓸데없이 화려하고 예뻤다.

“나 빼고 다들 연애한다고요…….”

급격히 센치해지는 태성의 분위기에 철민은 뭔가 태클을 걸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헛기침을 했다.

“커흠! 뭘 새삼스럽게 그러냐! 기성이랑 인하가 연애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걔네 약혼했어요. 저번 주에.”

“그래, 약혼… 뭐, 뭣?”

철민은 처음 듣는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기성… 이 새끼… 나 결혼할 때까지 결혼 안 한다더니…….”

태성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입술을 깨물었다.

―뭐야, 인하는 왜 두 눈이 빨개? 싸웠어?

―음… 그게…….

―에헤헤헤… 오빠… 저 프러포즈 받았어요.

―뭐어?!

철민은 그때 보았다.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미안해 죽겠다는 기성의 표정을.

그리고 기성의 그러한 미안한 표정이,

푸욱 ― !

태성의 가슴을 더욱더 난도질했다.

―야, 야… 이 한기성아… 나 결혼하는 거 보고 하겠다며!

―미, 미안…….

―미안하면 다냐!

―아니, 형이 연애를 안 하잖아…….

―으윽!

―그런데 저번에 중국이랑 전쟁이 일어난다 만다 하면서 새삼 느낀 게 있었거든. 나는 인하 없으면 안 된다는 거.

―으윽!

―그래서 그냥 찜해버렸어. 인하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도, 동생아… 그, 그거야! 그 지점이라고! 그때를 잘 이겨내야 해! 결혼은 지옥이라고!

―…형. 결혼 안 해봤잖아?

―크윽! 하지만… 주위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부모님은 행복해 보이시던데?

―끄윽!

얻은 것 하나 없이 기성에게 팩폭으로 뚜드려맞았던 지난주를 회상한 태성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씨X…….”

하늘을 바라보다 눈시울을 붉히는 태성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철민은 그가 진심으로 외로워하고 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뭐… 너도 네 짝이 있을 거다. 그동안은 너무 바빠서 그랬던 거지. 너무 상심하지 마.”

“저보다 훨씬 바쁜 강… 아니, 코드 원도 연애 중이고 코드 제로도 연애 중입니다. 바쁜 건 이제 핑계가 될 수 없다고요!”

긁적…….

철민은 볼을 긁적이며 식은땀을 흘렸다.

‘…거참, 달래기 한번 힘드네!’

애써 무언가 태성의 기분을 위로해줄 말을 찾던 철민.

그리고 한 사람을 떠올리며 태성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창훈이! 창훈이도 솔로잖아! 짜식아, 너만 솔로인 거 아니라니까?”

몇 달 전 베타조장에서 A급 헌터가 되며 알파조로 올라온 안창훈.

뛰어난 전투 센스로 벌써 마력 수치가 2만을 돌파하며 기성과 인하를 위협하는 알파조의 다크호스가 된 그였다.

철민이 알기론 분명 창훈은 저번 달만 해도 여자친구 사귈 시간은 없다며 레이드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철민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걔 썸 타요.”

여자친구가 없다고 해서 완전한 솔로라는 법도 없다는 것이었다.

“써, 썸? 창훈이가? 걔, 연애할 시간 없다고 했는데? 아니! 대체 누구랑?!”

“…재희요.”

창훈이 알파조로 올라오면서 베타조장이 되었던 김재희.

창훈과 비슷한 B급 최상위였던 그녀는 며칠 전 알파조로 승급한 새파란 신입이었다.

“…이것들이, 평화로워지니까 사방에서 연애질을 하기 시작하는구만? 크핫! 청춘인데?”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철민의 혼잣말에,

푸욱 ― !

태성은 다시 한번 마음의 상처를 입고 말았다.

콰악!

태성의 우악스러운 두 손이 철민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선배님……!”

울컥 ―

태성이 정면으로 철민의 얼굴을 바라보며 울먹였다.

“저도 연애가 하고 싶어요오……!”

“…….”

철민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 * *

철민은 태성에게 처방을 내려주었다.

그건 바로,

콰아아아아앙!

몸을 굴려 잡생각을 없애게 해주는 처방이었다.

다만,

“끼로로로로로로!”

하필 철민이 잡아놓은 던전의 유형이 문제였다.

A급 최상위 던전, ‘긴팔 아마조네스 왕국.’

출몰하는 몬스터는 인간과 비슷한 키와 체형을 지닌 인간형 몬스터, 긴팔 여전사.

다만 그 이름답게 그들의 팔은 인간의 2배나 될 정도로 기다랬다.

가만히 똑바로 서 있어도 양팔이 바닥까지 닿을 정도의 길이.

그런 기다란 팔로 거대한 대궁들을 당겨대니,

쐐애애애애액 ― !

일반적인 화살의 몇 배나 되는 속도와 파괴력을 지닌 화살들이 여기저기서 날아왔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거대한 숲속 나무 위에 지어진 수많은 여전사들의 집.

나무 위를 맨땅처럼 여기저기 누비며 비처럼 쏟아붓는 그녀들의 공격은 강철비처럼 매서웠다.

콰아아아앙!

화살 하나하나가 지면에 처박힐 때마다 땅거죽이 움푹 파여댔다.

“크윽!”

홀로 화살들을 피해내던 태성은 이를 꽉 물었다.

오싹! 오싹!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냈음에도 지나가는 바람에 살갗이 베일 듯한 느낌에 절로 소름이 돋았으니까.

A급 최상위 헌터인 그가 A급 최상위 던전에 홀로 들어오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 행위.

그러나,

―야, 너 혼자 들어가.

―…네?

대뜸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입구 앞에 주저앉아 더 이상의 전진을 거부하는 철민의 돌발행동에 태성은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미친… 저 지금 뒤지라는 겁니까? 아니, 사람이 외로움에 사무쳐 있는데 달래주지는 못할망정! 그것도 선배님께서! 역시 선배님도 결혼한 커플이시다 이겁니까!

―닥치고 굴러! 구르면 잡생각도 사라지니까!

―구르라니요! 제가 조장입니다!

―뭐! 꼬우면 코스모스로 올라가던가!

으드득!

결국 철민의 도발에 넘어가고 만 태성.

―방금 그 말, 후회하게 만들어드릴 겁니다! 선배님이고 뭐고 안 봐줘요! 지옥을 경험시켜드리죠!

―너 같은 애송이가? 풉! 미안한데 내가 먼저 올라갈 수도 있거든? 코드 네임 투는 내 거야, 이 자식아!

콰아아아아앙!

까드드드득 ― !

재차 대기와 대지를 찢어발기는 화살을 피해낸 태성이 이를 부서져라 갈았다.

슈악!

콰득!

범의 다리로 변형된 태성의 팔다리가 땅을 박차고 화살이 쏟아지는 나무 하나에 발톱을 박아넣었다.

키이잉 ― !

콰과과곽!

거칠게 지그재그로 나무를 타기 시작하는 태성.

그의 신형이 빠르게 나무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끼로로로로로!”

나무 위에 있던 여전사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본거지를 습격당하게 생겼으니까.

쉬시시시식!

그동안 어디 숨어 있었던 것인지, 동그란 대나무 통을 쥔 여전사들이 화살을 들고 있던 여전사들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훅 ― ! 후훅 ― !

피잉 ― !

육안으로는 제대로 확인할 수도 없는 미세한 침들이 나무를 오르는 태성을 향해 수없이 쏟아졌다.

대량의 침에 꿰뚫려 금방이라도 고슴도치가 되어버릴 위기에 처한 태성.

그러나 그의 동물적인 감각은 허공을 뒤덮는 침들의 빈 공간을 단번에 찾아낼 수 있게 해주었다.

파밧!

태성은 하나의 면처럼 쏟아져 내리는 침들 중 그나마 침의 수가 적고 허술한 공간을 향해 몸을 날렸다.

피비빅!

쏟아져 내린 침들의 숫자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대여섯 개의 침이 태성의 몸통에 박혔다.

치이이이이이!

강력한 산성독이 발라져 있는 듯 태성의 피부를 녹이며 파고드는 독침들.

“끄으으읏!”

치이이이이익 ― !

호랑이의 빠른 회복력과 자가회복을 전개해 재빨리 독과 침들을 몰아낸 태성이 기어코 여전사들이 머무는 나무 꼭대기 위의 집까지 올라섰다.

“끼로로로로로!”

스릉 ― 스르릉 ―

원거리 공격을 뚫고서 침입자가 자신들의 주거지에 침입하자 저마다 옆구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꺼내 드는 여전사들.

흠칫!

순간적으로 검을 꺼내 드는 여전사들의 모습이 섹시하다고 생각해버린 태성의 움직임이 잠시 굳어버렸다.

“이런 씨X… 진짜……!”

아무리 인간 여성형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두 팔은 무슨 팔척 귀신처럼 기다란 데다가 전체적인 피부색마저도 초록색과 파란색이 뒤섞인, 인간도 아닌 몬스터에게 일순간이나마 끌려버린 태성은 방금 전의 자신에게 경멸감을 느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원래 생각처럼 되질 않는 것.

“끼로로로로로!”

인간의 언어와는 전혀 다른, 야만스럽고 단순한 언어를 사용하는 여전사들이 단검을 들고 달려들었음에도,

콰가각!

“으으윽!”

태성은 차마 그들에게 공격을 가하지 못하고 방어와 회피만을 반복하며 속절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피슉!

한 여전사의 단검이 태성의 팔을 얕게 베어내며 그의 팔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공중으로 흩뿌려진 자신의 핏방울을 보며 태성은 문득 생각했다.

철민이 일부러 이런 던전을 고른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한편, 태성이 홀로 그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시각.

철민은 던전 입구 쪽 풀밭에 앉아 가만히 던전 안에서 들려오는 소음들을 경청하고 있었다.

끼로로로로로……!

먼 곳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여전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철민은 혼자 중얼거렸다.

“…그렇게 연애에 집착해서 쓰나.”

씨익 ―

그의 입가에 심술궂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원래 번뇌는 직접 끊어내야 하는 법이지.”

그 말과 함께,

콰득!

철민은 한 손에 쥐고 있던 왕국 정찰병 한 마리의 목을 꺾어버렸다.

연애하고 싶다는 후배에게 여성형 몬스터를 상대하게 만드는 철민.

태성을 누구보다 강하게 키우는 철민이었다.

며칠 뒤,

“이 양반,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철썩!

철민은 현숙에게 등짝에 불이 나도록 맞아야 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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