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199화 (199/300)

199화. 동해를 토벌함 (1)

부우웅 ―

SUV 차량 한 대가 동해에 도착했다.

“하아아아……!”

차량에서 내린 여인이 시원한 바닷바람에 양팔을 벌리며 답답한 속을 풀어냈다.

“시원해?”

그녀를 따라 내린 은발의 남자가 미소를 그리며 웃었다.

“너무 좋아… 역시 바다라니까? 언제 와도 좋은 것 같아.”

흑청발의 긴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여자가 마주 웃었다.

“거의 매달 오는데도 안 지겨워?”

“안 지겹지~ 누구랑 같이 오는데?”

흑청발의 여인, 서아가 남자의 팔에 매달렸다.

“이번엔 던전 많이 없었으면 좋겠다. 저번 달엔 너무 많았어.”

“저번 달에 겨우 3개밖에 없었는데?”

“아니, 그것도 너무 많지. 네가 시간이 없어서 우리 데이트는 동해 토벌 때밖에 못 하잖아.”

서아의 볼멘소리에 은발의 남자, 강천이 미안하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미안해. 근데 이제 진짜, 바쁜 일 거의 끝났어!”

“…그래? 저번 달이랑 비교하면 어느 정돈데?”

“음… 한 50분의 1?”

“진짜……?”

“응. 거기다 다음 달 정도면 아마 더 줄어들걸? 그런데 이번에 신입까지 들어와서 더 줄어들 것 같더라고. 아마 다음 달부터는 네가 더 바쁠 것 같은데…….”

“헐. 대박. 그동안 못한 거 다 해야겠다!”

“하하하하! 하고 싶은 게 그렇게 많았어?”

“당연하지! 아직 못 해본 게 얼마나 많은데? 놀이공원도 못 갔지, 유원지도 못 갔지, 동물원도 못 갔지, 맛집 투어도 못 해봤지, 같이 등산도 해보고 싶고…….”

그동안 같이해보고 싶은 게 참 많았는지 말문이 터진 아이처럼 재잘대기 시작하는 서아.

그런 그녀를 보며 강천은 계속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그래. 우리 다 해보자. 다음 달 여유롭다는 말 취소. 저번 달보다 더 바쁘겠다.”

“히히히! 그래야지! 근데 말이야…….”

서아가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강천의 손을 붙잡았다.

“너 왜 자꾸 내 머리 쓰다듬어? 내가 동생이야? 이게, 누나한테 죽을라고!”

“푸하핫! 언제는 또 누나라 부르지 말라며? 동생이고 싶다며? 감히 오빠한테!”

“꺅! 간질이지 마! 미안해! 항복!”

동해 바닷가를 뛰어다니며 여느 평범한 커플처럼 순간을 즐기는 두 사람.

어느덧 동해 토벌을 독점하게 된 두 사람의 임무를 빙자한 동해 데이트가 시작되고 있었다.

* * *

강원 동해 라인 최남단 호산항에서부터 군사분계선이 위치한 고성군까지.

부우우우웅 ―

두 사람은 동해 라인을 따라 달리며 대강 그 근방을 수색해나갔다.

말이 동해 토벌이지, 사실상 가장 큰 목적지는 울릉도와 독도.

내륙이나 산지는 협회 직원들의 정기적인 수색 작업과 일반 시민들의 신고를 통해 던전이 대부분 다 발견되는 곳이었으므로,두 사람이 바다를 따라 달리는 것은 어찌 보면 겉치레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 바닷속에 던전이 생성되는 일도 있었기에, 두 사람은 호산항에서부터 동해를 따라 존재하는 모든 해수욕장을 둘러보며 고성군으로 북진했다.

“…10월인데도 해수욕하는 사람들이 꽤 있네.”

“그러게… 안 추운가?”

해수욕장에 놀러 온 사람들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이 사뭇 달랐다.

‘부럽다…….’

서아는 마음 편히 놀러 온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었고,

‘와… 진짜 안 추운가?’

강천은 진심으로 그들이 춥지는 않은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슬쩍 ―

즐겁게 노는 사람들이 부러워진 서아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강천의 눈치를 보다가 살짝 말을 꺼내보았다.

“우리도 토벌 빨리 끝나면 해수욕장 갈까……?”

“…10월에? 춥지 않겠어?”

조금 놀란 강천이 서아에게 되물었다.

“추우면 얼마나 춥다고~ 겨울 바다에도 가는 사람도 있는데! 10월이면 약과지!”

“그런가? 흐음… 그래도 감기 걸리면…….”

“헌터가 무슨 감기야!”

바짝 ―

서아는 강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고양이처럼 슬쩍 머리를 비비기 시작했다.

“해수욕장 가자! 응? 가자아아아~~”

어깨에 머리를 비비는 서아의 행동에 팔이 가려워진 강천.

웃음을 참으며 강천은 겨우겨우 서아의 머리를 밀어냈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푸핫… 어우, 간지러워……!”

“아싸!”

서아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드디어 때가 왔어……!’

서아는 살짝 자신의 복부를 어루만졌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기회가 찾아올지 몰라 피나는 노력으로 몸매를 관리하고 있던 서아.

워낙 바쁘기도 했지만 강천이 혹시 그것(?)인지 의심도 해볼 정도로 두 사람 사이의 스킨십 진도가 더 나아가지 않았기에 홀로 고민이 많았던 그녀였다.

하지만,

‘내 몸매를 보고도 계속 그 선비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때가 도래했다.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스스로 쟁취하는 수밖에.

“후후후후후……!”

의미심장한 웃음소리를 흘리는 서아의 행동에,

“…그렇게 좋아?”

조금 눈치가 없는 강천은 그저 서아가 해수욕장에 가게 되어 좋아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 * *

울릉도로 넘어가는 배를 타기 전, 두 사람은 잠시 바다 근처의 대형마트에 들렀다.

목적은 수영복.

‘필살 수영복!’

몸매 관리만 생각했지, 수영복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서아는 강천을 남성 수영복 코너로 보낸 뒤 눈에 불을 켜고서 여성 수영복 코너를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꿀꺽……!

여자인 서아조차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어마어마한 수영복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헉! 이걸 입는다고?’

‘이건 너무 다 보이는 거 아니야?’

‘어, 언더붑? 뭐야, 이건 또!’

‘이, 이건… 엉덩이가 다 드러나는데? 너무 야하잖아!’

철들기 전부터 헌터 생활을 시작한 데다가 연애가 처음인 서아가 수영복 패션에 익숙할 리 만무했다.

예쁜 여성 한 명이 수영복 코너를 돌아다니며 선택은 못 하고 연신 깜짝깜짝 놀라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자, 보다 못한 수영복 코너 직원이 비즈니스용 미소를 장착한 채 그녀에게 접근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찾으시는 스타일이 있으실까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네, 네? 아…….”

직원의 접근에 놀란 서아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혼자 봐도 민망한 와중에 직원까지 다가오자 더 민망해진 탓이었다.

‘으아아아아……!’

그녀의 두 눈이 빙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어지러웠다.

어른의 세계는 참으로 무섭고 어지러운 것이었다.

‘어른이 되기가 이렇게까지 힘든 거였어……?’

머릿속이 새하얘진 서아는 일단 생각하고 온 대로 말을 내뱉었다.

“그… 비, 비키니를 좀 보려고…….”

“아, 비키니요? 이런 스타일은 어떠세요?”

스윽 ―

직원이 내민 한 비키니 수영복.

어깨끈이 없는 하얀색 수영복이었다.

“어… 어깨끈이 없는…….”

“아, 어깨끈이요? 이건 없어요. 가슴에 딱 붙는 스타일이거든요. 옷으로 따지면 오프숄더 느낌으로? 혹시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예? 사, 사이즈요?”

화악 ―

비키니 수영복을 앞에 두고 사이즈를 질문받자 순식간에 새빨개지는 서아의 두 귀.

소리 내어 말하는 게 민망했던 서아는 직원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아, 그러시구나. 알겠습니다. 그럼 그 사이즈로 하나 가져다드릴까요? 매장에 나와 있는 건 A컵 사이즈예요.”

“아, 아뇨! 이…건 너무 좀 뭐랄까… 네! 어깨끈이 없는 건 조금 불안할 것 같아요!”

“어깨끈이요? 아… 그럼 이건 어떠세요?”

직원이 내민 또 하나의 수영복.

이번 수영복의 형태는 그냥 정석적인 비키니였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레, 레이스?’

수영복 전체에 짧지만 나풀나풀한 레이스가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입문하는 초짜인 서아에게 그 레이스의 존재는 수영복을 오히려 더 야해 보이게 만드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게 했다.

“히… 히익……!”

질겁한 서아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 조금 더 안… 야한 건 없나요오…….”

급격하게 자신감을 잃은 서아가 약간 울상이 된 채 물었다.

고객이 울상이 되어버리자 오히려 당황한 건 직원이었다.

‘시, 실수했다!’

수영복 매장에서 놀라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 이런 것에 면역이 부족한 초짜 손님인 걸 고려했어야 했다.

너무 습관대로, 평범한 손님들에게 추천하던 방식대로 한 것이 커다란 화근이었던 듯했다.

“그, 그럼! 비키니 말고 이건 어떠세요? 이 정도면 무난하지 않을까요?”

손님이 울기 전에 냅다 제일 무난한 래시가드를 추천하는 직원.

직원의 등 뒤로 식은땀이 뻘뻘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울지 마… 제발!’

손님을 울렸다는 소문이라도 났다간 이 매장은 끝이니까.

이미지에 흠을 냈다고 해고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으음…….”

확실히 손님의 표정이 상당히 진정되어 보였다.

그러나 뭔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 듯했다.

“소, 손님? 뭔가 문제라도……?”

“그, 그게요…….”

서아가 다시 민망한지 직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 남자친구한테 섹스어필을 하고 싶은데… 이건 좀… 너무 무난한 게 아닌지…….”

빠직 ―

직원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너무 야하다고 싫다며!’

조금은 다른 의미에 진상이 걸려버린 듯했다.

* * *

“수영복 샀어?”

“응!”

서아가 기분 좋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이 정도면 딱 좋아! 너무 야하지도 않고! 너무 무난하지도 않아!’

수영복을 품에 안은 서아가 소중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 쇼핑백을 꽉 끌어안았다.

“뭔데? 무슨 수영복인데?”

강천이 궁금해하자,

“어허! 어디 여자 수영복을 함부로 보려 하느냐!”

서아는 엄근진 표정을 지으며 강천을 밀어냈다.

“…아니, 어차피 입고 보여줄 거 아니야?”

서아의 손바닥에 얼굴을 밀린 강천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따로 보는 거랑 입고 보는 건 다르지!”

“그래? 다른 거야?”

마찬가지로 연애가 처음인 강천은 살짝 흐음거릴 뿐, 그런가 보다 하고 서아의 수영복을 확인하는 걸 포기했다.

“너는? 너는 뭐 샀어?”

서아가 궁금한 듯 강천이 든 쇼핑백으로 손을 뻗자,

“어허! 어디 남자 수영복을 함부로 보려 하느나!”

강천은 방금 전 당한 그대로 돌려주며 쇼핑백을 휙 들어 올렸다.

“아니, 왜 따라 해!”

“어허~ 남녀가 유별하거늘!”

“…우씨.”

서아는 자신을 놀리는 데에 심취한 강천을 째려보았다.

“어차피 남자 수영복 종류는 한 가지 아니야? 무늬만 다르잖아.”

“…어? 왜 한 가지야?”

“어? 팬티처럼 생긴 삼각 수영복 하나 아니야?”

“…….”

할 말을 잃고 만 강천.

잠시 멍하니 서아를 바라보던 강천은 눈을 가늘게 뜨며 게슴츠레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연애 처음 맞네.”

“…어?”

“연애 처음이네. 내가 처음인 거네. 그치? 모태솔로 아니라고 우기더니만~ 남자 수영복 종류가 하나밖에 없는 줄 알고 있고~”

연애가 처음인 사람은 티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모태솔로가 아닌 척 강천에게 말하곤 했던 서아는 자신의 지위(?)를 어이없이 들켜버리자 양 볼이 홍당무가 되어버렸다.

“아, 아니거든! 저, 전 남친이 그것만 입어서……!”

“누나, 미안한데 요즘 그런 수영복을 누가 입는다고 그래.”

“…어?”

“누나가 생각하는 그런 수영복은 남자들도 민망해서 잘 안 입어.”

“…어어?”

벙찐 서아의 표정이 볼 만해졌다.

그런 서아를 바라보며 강천은 쇼핑백을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자자, 얼른 배 타자. 토벌 아직 안 끝난 거 알지? 정신 차리시죠, A급 헌터님.”

울릉도로 향하는 배의 탑승을 시작한다는 안내방송을 들은 강천이 서아의 등을 천천히 떠밀며 배가 정박해 있는 부둣가로 나아갔다.

“…어어?”

서아는 그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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