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오늘도 수고했음 (5)
터벅 터벅 ―
병원을 빠져나온 유린이 느릿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달칵 ―
쿵 ―
병원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한 차량의 문을 열고 타는 유린.
기절해 있던 유린을 대신해 재희가 옮겨준 그녀의 차량이었다.
“하아…….”
운전석에 앉은 유린이 피곤한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기형 던전 사건이 종결된 지 하루가 지났다.
거의 죽은 듯이 기절해 있다가 바로 몇 시간 전에 깨어난 유린.
정신적 충격을 크게 받은 지영은 아직도 회복실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의사의 말로는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너무 큰 충격을 받은 정신이 회복하느라 그런 것이라고 했다.
정신적 회복은 신체적 회복보다 더 회복이 느리다나 뭐라나.
상대적으로 멘탈이 강한 유린이기에 금방 깨어날 수 있었던 거라고 했다.
‘멘탈이 강하다라…….’
끼익 ―
유린은 가만히 차 천장을 바라보며 운전석을 뒤로 젖혔다.
‘나도 많이 힘든데…….’
차 안에 거의 눕다시피 한 유린은 오른팔을 이마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울컥 ―
갑자기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기 위해서 이마 위에 올렸던 오른팔을 두 눈으로 내렸다.
“흐윽… 끄흐윽…….”
왜 우는지는 그녀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그동안 너무 과로해서?
기형 던전에서의 경험이 너무 충격적이라서?
지영이 걱정되어서?
아니, 적어도 그 이유가 분명하지는 않았다.
그녀 스스로조차 알 수 없는 답답함과 괴로움에,
주르륵 ―
유린은 차량 운전석에 누워 한참 동안이나 홀로 눈물을 쏟아냈다.
* * *
벌떡!
운전석에 누워 있던 유린이 무언가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시, 시간이……!’
유린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11:37 p.m]
어느덧 한밤중이 되어 있는 시간.
유린이 퇴원해서 주차장에 온 게 분명 초저녁이었으니 자신도 모르게 내리 3~4시간을 자버린 것이다.
부르릉 ―
빨리 시동을 건 유린은 병원 주차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미쳤지, 미쳤어…….’
혼자 센치해져서 울다가 차에서 잠이 들다니.
말똥말똥.
더 이상 졸리지 않았다.
너무나도 선명해진 시야가 너는 오늘 밤 다 잤다고 말하는 듯했다.
유린은 크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영화나 한 편 볼까.”
내부를 한 여인의 한숨으로 가득 채운 승용차 한 대가,
부우웅 ―
어두운 밤길을 바쁘게 가로질렀다.
* * *
터벅 터벅 ―
부스럭 ―
차량을 주차한 뒤 근처 편의점에서 과자와 맥주 몇 캔을 사 들고 돌아오는 유린의 발걸음에 힘이 없었다.
터벅 터벅 ―
밤길을 걷던 유린은 문득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아…….”
그녀의 머릿결처럼 검은 하늘에는 누가 실수로 쏟기라도 한 듯, 수많은 별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밤하늘 예쁘네.”
중얼 ―
밤하늘을 바라보며 걷던 유린은 문득 한 사람이 생각났다.
‘…오빤 뭐 하고 있을까.’
몇 달 전, 세계 정상 회담이 있기 바로 전날 밤.
유린과 태운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정식으로 연인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부터 10월 초가 된 지금까지, 유린과 태운은 단 한 번도 데이트를 하지 못했다.
전 세계적인 상황이 너무 정신없었고, 무엇보다 유린도 바빴지만 태운이 미친 듯이 바빴기 때문이다.
서로 연락조차 가끔씩 안부 문자만 주고받을 뿐, 전화상으로 목소리조차 듣지 못한 지도 벌써 몇 주가 넘어 있었다.
‘솔직히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러나 유린은 최대한 섭섭한 마음을 티 내지 않고, 그녀 자신도 모르게 감추려 했다.
코드 제로인 태운이 얼마나 바쁜지는 옆에서 그를 지켜봐 왔던 그녀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애초에 그가 코드 제로인 걸 모르고 사귄 것도 아니고, 이 정도도 이해해주지 못해서는 그와 교제할 수 없었다.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연애 초기가 아닌가.
신혼보다 더 풋풋하고 별것도 아닌 걸로 설렐 수 있는 황금, 아니 다이아몬드 같은 시간.
그 아쉬움과 그리움을 누르기 위해 그녀는 몇 달간 더 일에 몰두하고 수련에 전념해왔다.
그 결과가 바로 최단기간 베타조장 승격.
실로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허전한 마음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오빠… 보고 싶다…….’
크게 한숨 쉬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유린.
얼마나 걸었을까.
곧 그녀의 집인 단독 주택으로 들어가는 대문이 보였다.
그런데,
기웃 ―
대문 옆에 설치된 가로등 밑에 누군가 서서 자신의 집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남자?’
찌릿 ―
집 앞에 낯선 남자 하나가 서 있자 괜히 기분이 나빠진 유린.
학창 시절에도 종종 자신을 따라다니고 미행하던 남자들이 있었기에 유린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내가 헌터인 걸 모르나 보네.’
그저 평범하고 만만한 여자인 줄 알고 자신의 집 주변을 어슬렁거렸을 스토커.
“하아…….”
스토커를 상대할 생각에 피곤함을 느낀 유린이 또다시 크게 한숨을 쉬었다.
대체 하루에 몇 번이나 한숨을 쉬는 건지.
유린은 자신의 한숨 때문에 괜히 땅이 꺼지는 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터벅 터벅 ―
열 걸음 정도 더 걸어갔을까.
대충 실루엣만 보이던 남자의 모습이 조금씩 선명하게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
조금 선명해진 모습만으로 남자의 정체를 알아본 그녀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어 섰다.
“…아!”
가로등 밑에 서 있던 남자는 집 앞을 서성이다가 조금 떨어진 거리에 우뚝 멈춰 선 유린을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유린의 전신이 순간적으로 파르르 떨렸다.
너무 놀란 것이다.
지금쯤 해외를 전전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이가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까.
유린이 전신을 떨게 할 정도로 놀라게 만든 남자의 정체는,
“잘 지냈어?”
바로 태운이었다.
* * *
유린의 집 앞 가로등 밑.
그 불빛 아래에서 두 남녀가 마침내 서로 마주했다.
“오, 오빠……!”
덜덜덜……!
유린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태운의 볼을 어루만졌다.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 태운.
그리웠던 맨얼굴의 그가 자신의 앞에 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유린의 두 눈은 묘하게 초점이 어긋나 있었다.
“뭐야… 이 반응은? 나 안 반가워?”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레 말을 붙이는 태운.
그가 머리를 넘겨주며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얼굴에 닿자,
울컥 ―
유린은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정말 태운이 자신의 앞에 있다는 걸 말이다.
“으흑……!”
유린은 갑자기 차오르는 눈물에 입술을 꾹 깨물며 태운의 품에 안겼다.
“……!”
격한 유린의 반응에 조금 놀란 태운.
그러나 곧 그녀의 심정을 이해한 듯 마주 안아주며 가만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그동안 만나지도 못하고, 연락도 제대로…….”
도리도리 ―
유린은 그의 품에 안긴 채 고개를 마구 저었다.
미안해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
자신의 사정을 이해해주는 유린을 보며 태운은 마음이 절로 안심되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역시, 내가 여자 보는 눈이 참 괜찮단 말이야. 아빠 닮아서 그런가?”
스윽 ―
태운의 품에서 살짝 떨어진 유린이 두 눈에 눈물을 가득 채우고 코가 새빨개진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와… 보통 이러면 눈물이랑 콧물이 범벅되지 않나? 어떻게 이렇게 깔끔하게 눈물만 나오지? 역시 여신……!”
“…놀리지 마.”
퍽 ―
그녀의 작은 주먹이 태운의 어깨를 때렸다.
며칠 전 소형차만 한 괴물 가재들을 단번에 부수고 짓이기던 B급 최상위 헌터, 한유린의 주먹이라기엔 너무나도 솜방망이 같은 주먹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오빠가 왜 여기 있어? 지금 해외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유린은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태운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너무나도 반갑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던 것이다.
헌터계의 전 세계적인 변화로 인해 코스모스의 힘을 필요로 하는 나라들이 많았으니까.
유린은 태운이 지금도 괜히 바쁜 일을 제쳐두고 자신 때문에 온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괜찮아. 시급을 다투는 일들은 다 끝났어. 일 자체는 아직 꽤 많이 남긴 했는데…….”
꽈악 ―
태운은 자신의 품에서 떨어진 유린을 다시 꽉 끌어안았다.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발그레 ―
보고 싶었다는 태운의 말에 유린의 얼굴이 한순간에 빨개졌다.
사귀기로 한 지 몇 달이나 지났지만 단 한 번의 데이트도 못 하고, 연락만 가끔 주고받던 두 사람의 관계.
그래서일까.
유린은 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사람처럼 두근대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거 알아? 오늘 개천절이다?”
“……?”
태운의 말에,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는 유린.
개천절이 뭐 특별한 날이던가……?
혹시 기념일이 아닌가 싶어 유린은 조심스레 물었다.
“개천절이 왜…? 혹시 무슨 특별한 날인가……?”
“그럼! 특별한 날이지!”
태운이 싱긋 웃어 보였다.
“바로 우리가 사귄 지 123일째 되는 날이거든!”
“……?”
유린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태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 원래 123일도 기념일이야?”
혼란스러워하는 유린을 보며 태운은 재밌다는 듯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럼. 너랑 함께하는 모든 날이 기념일이지.”
태운은 유린을 꽉 끌어안은 채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눈부셨다.”
“…그거 언제 적 드라마야, 대체.”
낮은 목소리로 옛날 드라마의 대사를 던지는 태운에게 안긴 채 유린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태운의 낮은 목소리가 그의 가슴통을 울릴 때마다 유린의 귓가에 기분 좋은 울림이 전해지고 있었다.
“사실 다 핑계고… 그냥 진짜 보고 싶어서 온 거야.”
태운은 유린과 눈을 맞추며 진지하게 마음을 전했다.
“오늘도 수고했어.”
그런 태운의 진지한 고백에,
울컥 ―
유린은 최근 힘들었던 모든 시간에 대해 보상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우리 여왕님이 오늘 왜 이렇게 울어댈까…?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 그래.”
유린이 며칠 전 겪은 일을 모르고 있는 태운은 그저 유린이 너무 많은 일 때문에 고생해서 그런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울먹이는 유린을 앞에 두고,
부스럭 ―
태운은 품 안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 열었다.
“짜잔!”
아공간 주머니에서 나온 한 하얀 비닐봉지.
“…이게 뭐야?”
유린은 울먹임을 멈추고 태운이 꺼내 든 비닐봉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매운 떡볶이! 혹시 배부른 거 아니면 같이 야식이나 할까 하고… 너 이거 좋아하잖아.”
매운 떡볶이를 들고 있는 태운을 보며 유린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가슴을 꽉 메우고 있던 답답함과 괴로움의 정체를.
사르르 ―
가슴속에 맺혀 있던 커다란 응어리 하나가 풀리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흐흣.”
유린은 차오르는 행복을 느끼며 태운의 팔을 잡아끌었다.
“좋아. 너무 좋아! 들어가서 같이 먹자!”
“오, 그래! 좋아할 줄 알았지! 근데 나 정말 들어가도 돼……?”
“당연히 되지! 안 될 게 뭐가 있……!”
행복한 표정으로 말을 잇던 유린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얘지기 시작했다.
“…기다려.”
“어?”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봐! 나, 나 집 정리 좀!”
후다닥 ― !
몇 달간 일에 치이면서 난장판이 된 집안 꼴이 생각난 유린은 그렇게 태운을 대문 앞에 혼자 남겨두고 집 안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그런 유린의 뒷모습을 보며,
“…큰일 났네. 나도 정리 잘 안 하는데.”
태운은 문득 미래를 걱정해보았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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