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라이벌은 성장에 좋음 (3)
저벅 저벅 ―
척 ―
협회의 S급 헌터, ‘코스모스’와 백호, 현무의 S급 헌터가 서로를 마주했다.
“…….”
“…….”
서로를 마주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다섯 명의 남자.
사아아아아 ―
무거운 분위기 속 침묵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청룡은 어디 있습니까?”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코스모스의 코드 원이었다.
“지금 오고 있습…니다.”
그의 물음에 대답해주는 호백.
그러나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표정이 약간 찡그려져 있었다.
‘코드 원한테는… 존댓말을 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반말을 해야 하는 건가?’
대하기가 애매했다.
코드 제로는 명백히 자신보다 위였으니 그에게는 존댓말이 자연스레 나왔지만 코드 원은 그 위치가 애매했기 때문이다.
같은 S급 헌터.
그러나 자신은 3대 길드 중 하나인 백호의 수장.
반면, 상대는 협회 전투부서 중 최고봉인 ‘코스모스’의 일원이었다.
‘코드 제로랑 엄청 친하다는 소문이 있던데…….’
호백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애매하군, 애매해. 일단 저 코드 투 놈은 반말 확정이긴 한데.’
상대방이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거나 강하지 않은 이상 존댓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 호백.
그야말로 서열을 중요시하는, 한 마리의 맹수 같은 남자였다.
그런 호백의 고민을 눈치챈 듯 코드 원의 옆에 서서 보라색 숫자 2가 그려진 가면을 쓰고 있던 코드 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또 존댓말을 해야 할지, 반말을 해야 할지 재고 있습니까?”
“…뭐?”
호백이 두 눈을 무섭게 번뜩였다.
명백히 서열 하위인 코드 투가 비꼬듯 말했으니까.
같은 호랑이 계열의 능력을 지닌 헌터여서 그랬을까?
평소에도 자주 부딪치던 두 사람이었다.
그럴 때면 매번 태성 쪽에서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지만,
“어째 변한 게 하나도 없으시네. 그런 거 보면 당신도 참 운이 좋아.”
그러나 코드 투, 그러니까 태성은 예전의 태성이 아니었다.
“사람 간의 예의가 아니라 짐승 사이에서나 통용되는 그놈의 서열을 여전히 따지고 있는데도, 일말의 질타도 받고 있지 않으니까 말이야.”
“…이태성. 지금 미친 거냐?”
고오오오오 ―
호백의 전신에서 무거운 살기가 쏟아졌다.
마력을 사용하지는 않았다지만 S급 헌터의 살기였다.
후두둑 ―
그 무거운 기운에 휩쓸린 근처 나무의 낙엽들이 강제로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S급이 되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본데, 이제 막 S급에 올라온 주제에 건방지게 굴면 안 되지.”
“당신처럼 함부로 급을 나눠서 존댓말 쓸지 말지 재는 게 더 건방진 건 아니고?”
“…근데 이 새끼가!”
“…그만.”
두 사람의 갈등이 더 달아오르기 전, 강천이 적절하게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두 사람 다 뭐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대뜸 이게 무슨 짓입니까?”
“…죄송합니다.”
태성이 먼저 한발 물러섰다.
굳이 싸운 이유를 꼽자면 태성이 먼저 호백을 비꼰 것이니까.
하지만 평소 서열을 따져 상대방을 대하는 호백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태성은 방금 전의 행동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강천이한테 반말만 해봐라……!’
비록 자신보다 한참 뒤늦게 들어온 신입이었지만 이젠 어엿한 코스모스의 코드 원이자 자신의 상급자가 된 강천.
자신을 무시하는 건 그렇다 쳐도 자신의 윗사람까지 무시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던 태성이었다.
평소 협회장 동석에게도 건들거리는 호백이 불만스러웠던 태성은 기다렸다는 듯 눈을 부라려댔다.
‘…아니 근데, 저 새끼가?’
그런 태성의 태도에 크게 당황한 호백.
무조건 자신의 아래로만 생각해왔던 그가 이렇게 대놓고 정면으로 달려들 줄은 몰랐던 터라 호백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태성을 이 자리에서 응징하기도 힘들었다.
저 멀리 기자들의 보는 눈도 있었던 데다가,
고오오오오 ― !
코드 원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
‘분명 이자도 코스모스가 된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
코드 원도 코스모스에 합류한 지는 길어야 반년 정도 지났을 터였다.
그런데 벌써 이 정도의 기운이라니?
기세만 놓고 보면 거의 김천용과 맞먹을 정도였다.
‘역시 이자도 괴물이었나…….’
견적 파악을 끝낸 호백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하아…….”
살 떨리는 심정으로 한 발 뒤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구정태가 십년감수했다는 듯 한숨을 쉬었고,
“쯧쯧.”
박대상은 호백의 성질머리를 보며 어째 변한 게 없다는 듯 한심한 표정으로 작게 혀를 찼다.
“후우…….”
강천 또한 작게 한숨을 쉬었다.
‘벌써부터 피곤하군.’
그렇게 다섯 남자의 사이가 한겨울의 호수처럼 차갑게 얼어붙은 그때,
저벅 ― 저벅 ―
또 다른 두 사람이 불국사 입구 쪽에서 걸어 들어왔다.
두 사람의 정체는…….
“하암~ 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고새 싸웠나?”
청룡의 천용과 호성이었다.
* * *
한국 내 7인의 S급 헌터가 던전 안으로 들어섰다.
태운이 작성한 던전 조사 보고서를 각자 손에 든 그들은 던전 내부의 모습과 보고서를 비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확실히 흔하디흔한 숲 지형이군.”
천용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몬스터의 명칭을 ‘두룡미사’라고 붙이다니… 네이밍 센스 한번 제대로인데?”
호성이 보고서를 든 채 킥킥 웃음을 흘렸다.
보고서에 적혀 있는 이 던전의 몬스터의 생김새는 기괴했다.
머리와 몸통은 공룡, 꼬리는 커다란 뱀이라는 것.
아무래도 키메라형 몬스터인 듯했다.
“…원래 용두사미 아닌가?”
구정태가 볼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호성이 넉살 좋은 웃음을 흘리며 정태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아니, 정태 형! 설마 코드 제로 님이 그런 실수를 했겠어? 다 이유가 있겠지~”
호성은 그러면서 슬쩍 코스모스 조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
호성의 멘트를 들었음에도 말없이 보고서를 들여다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꽤 차분한걸?’
던전 앞에서부터 호백과 신경전을 벌이길래 두 사람이 호백과 같은 다혈질이 아닐까 싶었던 호성.
다행히 약간의 도발성 멘트에도 잠잠한 것으로 보아 그런 성격은 아닌 듯했다.
‘그럼 그렇지. 호백이 형이 또 뭔가 먼저 껀덕지 하나 제대로 줬구만.’
속으로 혀를 쯧쯧 차며 호백을 흘겨본 호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호성아. 준비해라.”
천용이 심각한 목소리로 호성을 불렀다.
정면에 있는 나무가 가득한 숲속을 빤히 주시하는 천용.
그의 볼 위로 땀방울 한 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온다… 뭔가 거대한 것이…….”
쿵 ― 쿵 ―
지면이 점차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쿵 ― 푸스스스…….
쿵 ― 푸스스스…….
지면이 흔들릴 때마다 나뭇잎들이 함께 흔들리며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7명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영화에서나 들어봤을 법한 괴수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숲 전체를 나지막하게 잠식해나가기 시작했다.
쿵 ― 푸스스스…….
쿵 ― 푸스스스…….
곧 숲속 나무 사이에서 거대한 실루엣 하나가 나타났고,
“크르르르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한 생명체가 7인의 헌터를 보고 크게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크허어어어어어어엉!”
푸화악 ― !
놈의 울음과 함께 주변으로 뻗어나가는 막대한 음파와 바람.
“크윽!”
가면을 쓰고 있는 코스모스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5명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가늘게 눈을 좁혔다.
얼핏 보기에는 영화나 책에서 자주 접했던 공룡, 티라노사우르스(T―REX)와 상당히 닮아 있는 놈의 외형.
그러나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샤아아아아아!”
놈의 꼬리에는 커다랗고 긴 몸통을 지닌 대왕 킹코브라 한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머리와 몸통은 공룡… 꼬리는 뱀……!’
용두사미.
용의 머리와 뱀의 꼬리를 뜻하는 사자성어.
하지만 이 몬스터의 명칭은 두룡미사.
머리는 용이고 꼬리가 뱀이라는 의미였다.
“크허어어어어어엉!”
“샤아아아아아아아!”
한 개체에 두 종류의 서로 다른 머리.
키메라형 S급 몬스터, 두룡미사의 등장이었다.
* * *
슈슉 ― !
“샤아아아아아아!”
“아오 씨!”
두룡미사의 몸통을 공략하기 위해 접근했던 구정태가 욕설을 지껄이며 뒤로 물러났다.
콰득!
꼬리 쪽의 거대한 킹코브라가 몸통으로 접근하는 정태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기 때문.
후둑 ―
치이이이이이익 ― !
놈의 독니에서 흘러내린 독이 어찌나 강력한지,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키가 작은 풀들과 지면을 녹여버리며 작은 구덩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X나 무섭네 씨X거!”
타닥! 탁!
뒤로 공중제비를 돌며 물러나는 정태.
후욱 ― !
바통 터치를 하듯 거구의 한 남자가 놈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꾸드드득 ― !
무언가 딱딱하게 굳는 소리와 함께 박대상이 거대한 주먹을 들어 두룡미사의 턱주가리를 향해 날렸다.
콰아아앙 ― !
“크허어어어엉!”
두룡미사의 공룡 머리가 돌아가며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피도 안 난다고?”
주먹을 휘둘렀던 박대상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물러나며 혀를 내둘렀다.
그의 고유 능력 ‘다이아몬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으로 변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은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함과 동시에 강력한 파괴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주먹을 턱주가리에 정통으로 맞고도 두룡미사는 신음을 토해낼 뿐 멀쩡해 보였다.
“아니, 정통으로 때렸으면 이빨이라도 하나 뽑아왔어야지!”
쉬익 ― !
박대상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하얀 선을 그린 호백이 두룡미사의 목덜미 위로 순식간에 올라탔다.
“크르르릉! 금방 끝장을 내주마!”
트럭만 한 백호로 완전 변신한 호백이 놈의 목덜미에 이를 박아넣으려던 그때,
쉬익 ― !
콰앙!
그의 등 뒤로 주홍빛 선이 그려지며 무언가 크게 부딪친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크르르르……!”
마찬가지로 트럭만 한 대호로 완전 변신한 태성이 호백의 뒤를 노리고 덮치는 두룡미사의 뱀 머리를 쳐낸 것이었다.
“…쳇!”
태성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혀를 찬 호백은 그대로 얼른 두룡미사의 목덜미에 자신의 이빨을 박아넣었다.
피부가 어찌나 단단한지 그냥은 박히지도 않았기에 이빨에 부분강화까지 해서 있는 힘껏 박아넣었다.
콰득!
“크허어어어어어어엉!”
드드드드드드 ― !
하늘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놈의 울음소리가 일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샤아아아아아아!”
목덜미에 이를 박아넣은 채 달라붙은 호백을 떼어내기 위해 킹코브라의 머리가 달려들었지만,
“어딜!”
콰아앙!
어느새 뱀의 머리 위를 점한 태성의 앞발이 놈의 머리를 지면을 향해 후려쳤다.
“샤아아아아아!”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거대한 뱀의 머리.
파앗 ― !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근처까지 접근해 있던 호성은 그 순간 지면에 손을 대었고,
슈슈슉!
콰직! 콰직! 콰직!
바닥에서 솟아오른 수많은 죽창들이 지면으로 떨어지는 뱀의 머리를 꿰뚫었다.
“크허어어어어어어엉!”
꼬리 뱀의 고통을 공유하는 것인지 또다시 울부짖는 두룡미사.
키이이이이잉 ― !
뭐라도 하려는 듯 몸 안에 무언가를 모으기 시작했다.
“조심해!”
한 발자국 물러나 있던 정태가 소리쳤다.
방금 전 보고서의 내용을 떠올린 것이었다.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궁지에 몰리거나 수가 틀리면 대뜸 자폭한다. 자폭 시 반경 50m 이내는 뱀 머리가 지니고 있던 강력한 부식 독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니, 놈이 자폭할 틈을 주지 말고 단숨에 숨통을 끊는 것을 추천함.]
키이이이이이잉 ― !
“커허어어어어어엉!”
퍼어어어어어엉 ― !
두룡미사의 몸이 폭발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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