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216화 (216/300)

216화. 인생은 배움의 연속임 (3)

치이이이……!

고기 굽는 소리만이 가득한 테이블.

침묵을 유지하는 네 사람의 코앞으로 한우 갈빗살의 고기 내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

조금 전과 달리 세 사람은 그 냄새에 반응하지 않았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어두운 표정의 세 사람.

동혁이 실수로 그들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탓이었다.

‘아… 이 멍청한 놈.’

동혁은 속으로 계속 후회를 반복했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베타조로 올라선 동혁.

그는 재능이 넘치는 이였다.

특히 올해 협회 전투부서에 지원한 신입 5인은 황금 세대라고 불릴 정도로, 하나같이 재능이 넘치는 이들만 들어왔다.

1년도 되지 않아 델타조 신입에서 조장과 부조장 자리를 꿰찬 대한과 민아.

같은 기간 C급 헌터가 되며 감마조로 올라선 한석.

또한 같은 기간 무려 예비조에서 베타조장까지 올라간 유린.

동혁은 그중에서도 조금 특별한(?) 케어를 받은 유린을 제외하면 가장 어마무시한 성장세를 보여준 괴물 신인이었다.

유린이 아니었다면 가장 빠른 기간 내에 베타조로 승급한 신입은 동혁의 차지였을 정도였으니까.

반면 지금의 예비조원들은 셋 다 예비조로 들어온 지 2년이 넘은 이들.

자신들보다 늦게 들어온 신입들이 쭉쭉 치고 올라가는 것을 보며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즉 방금 전 동혁의 발언은,

‘…가진 자의 기만 같은 느낌이었겠지.’

그들의 마음 한편 속 열등감을 굳이 끄집어내 들추다 못해 불을 붙이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치이이이이……!

비싼 소고기를 잔뜩 사주고도 졸지에 죄인이 되어버리게 생긴 동혁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그저 묵묵히 고기를 구웠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새로 나온 고기마저 전부 구워서 더 이상 붉은 고기가 남아 있지 않게 되자,

“…저는.”

다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헌터에 재능이 없는 걸까요.”

다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 다래를 바라보는 지훈과 민지의 두 눈도 마찬가지로 붉어졌다.

동병상련.

지금의 상황은 딱 이 사자성어 하나로 설명할 수 있었다.

시기를 좀 더 정확히 따져보자면 지훈과 민지는 협회에 입사한 지 2년이 조금 넘었고, 다래는 거의 3년이 다 되어갔다.

1년 이상을 강화반에서 수업받았던 지훈과 민지와는 다르게, 다래는 졸업 직전에서야 겨우 강화반에 올라간 케이스였으니까.

아무래도 그 수준 차이가 꽤 있었던 것이다.

예비조에서 거의 1년을 더 보낸 지금이야 세 사람의 수준이 나름 비슷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다래는 세 사람 중에서도 가장 약했다.

헌터 협회 전투부서 중 최약체.

다래는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재능이라…….’

다래의 말을 들은 동혁은 고기 집게를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재능.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빛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무거운 절망을 선사하기도 하는 이중적인 단어.

동혁은 작년의 일을 떠올렸다.

* * *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며 지냈던 사관학교에서의 1년 반.

첫 체력 검사에서 강화반을 배정받고, 반년이 조금 넘는 시간 만에 실전반에 올랐던 동혁은 자신감이 넘쳤었다.

위에 있던 몇 안 되는 선배들이 졸업하고 뒤이어 한석, 대한, 민아가 실전반에 올라왔지만 동혁은 솔직히 그 세 사람과 선배들을 포함해도 자신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꾸벅.

대뜸 건장한 남자 둘이 실전반에 들어왔다.

무려 첫 체력 테스트에서 실전반을 배정받았다나 뭐라나.

스타트 라인에서부터 진 것 같아 동혁은 솔직히 기분이 별로였다.

째릿!

두 사람을 잠시 째려봐주고 마력 호흡을 하러 돌아간 뒤,

뻐억!

동혁은 깨달았다.

세상은 넓고 괴물은 많다는 것을.

이제 막 들어온 녀석 중 하나는 A급 헌터인 철민을 상대로 호각을 이룬 데다가, 다른 한 녀석은 잠깐이지만 철민을 무려 그로기 상태로 만들기까지 했다.

‘이게 뭐야…….’

순간 모든 의욕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동혁의 전신을 휩싸 안았다.

눈앞이 깜깜해지며 그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저렇게나 불합리한 재능이 있어도 되는 것인가?

어째서 나는 저런 재능이 없을까?

왜 인생은 이토록 불공평한 것일까?

적어도 모든 사람이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야 공평한 게 아닌가?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르며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었다.

동혁은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한 한석, 대한, 민아의 얼굴이 보였다.

셋 다 애매하게 일그러진 표정이 가관이었다.

그들을 본 순간,

피식.

동혁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하구나.’

불과 저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 셋을 포함한 모든 사관생도들을 상대로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던 동혁이었다.

그런데 자신보다 뛰어난 이들이 들어왔다고 해서 불합리함을 이야기하다니?

‘나도 누군가에겐 불합리함 그 자체겠지.’

세상은 넓고 괴물은 많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는 곧 반대의 말도 성립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세상은 넓고, 부족한 사람은 훨씬 더 많다.’

하늘이 끝이 없는 만큼 지하도 끝이 없는 법.

동혁, 한석, 대한, 민아가 저 둘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그들 네 사람을 부러워할 것이었다.

실전반은 강화반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강화반 사람들은 기초반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기초반 사람들은 마력 감염증으로부터 살아남아 헌터가 될 가능성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테지.

‘그 수많은 일반인들은 또 다른 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테고.’

평범하고 건강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시한부를 선고받은 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이들은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것이고, 그 돌아가신 분들 사이에서도 제대로 장례를 치르냐 마느냐에 따라 또 부러움의 방향성이 생기게 될 것이었다.

‘그래, 비교는 끝이 없는 법이야.’

동혁은 그 순간 깨달았다.

우월과 열등의 굴레에 빠지지 않는 법은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성장했는가?’

사소한 것이라도 좋았다.

몸무게가 100g이라도 줄었다면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가벼워진 것이며, 책을 한 자라도 읽었다면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글을 좀 더 읽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배웠다면,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모르는 걸 알고 있는 것이지.’

동혁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한순간에 맑아지는 기분이었으니까.

누군가는 그저 정신승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신승리면 어때?’

어차피 인간은 모두 행복을 좇는다.

이보다 더 건전한 행복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 건전한 정신승리가 어디 있겠는가?

하루하루 발전해 나가는 나 자신.

그런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나.

진정한 자애의 실현이자 완성인 것이다.

“너희들, 잠깐만.”

동혁은 자신이 깨달은 바를 곧바로 한석, 대한, 민아에게 전해주었다.

홀로 발전하기보다는 같이 발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또한 짧은 순간이나마 세 사람을 보며 우월감을 느꼈던 스스로를 반성하는 의미가 있기도 했다.

다행히 세 사람은 그런 동혁의 깨달음을 잘 받아들였고,

“…고맙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네.”

“형, 고마워. 속이 좀 풀린 것 같아.”

“오빠, 평소에 철학 공부해? 대단한데?”

동혁은 그런 세 사람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모두에게 같은 깨달음을 주기란 어려운 법이었으니까.

그러나 세 사람은 이렇다 할 거부감 없이 동혁의 생각에 공감하고, 같이 고개를 끄덕여준 것이다.

스윽 ―

생각에 잠겨 있다 눈을 뜬 동혁의 시선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예비조 세 사람에게 향했다.

‘그때는 잘 전달되었지만…….’

여전히 침울해 보이는 세 사람의 표정.

동혁은 그저 자신의 위로가 잘 전달되길 바랄 뿐이었다.

* * *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지훈과 민지가 밝은 표정으로 인사했다.

다행히 동혁의 조언 아닌 조언을 잘 받아들인 듯했다.

부우웅 ―

동혁은 헌터 전용 아파트에 사는 지훈과 민지를 내려준 뒤 다음 장소를 찍기 위해 내비를 초기화했다.

“다래 씨는 집이 어디예요?”

“저, 저는…….”

다래는 뭔가 말하기 힘든 듯 우물쭈물 망설였다.

“……?”

왜 그러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혁.

그러나 동혁은 차분히 그녀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려주었다.

“후우…….”

망설이던 다래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아까 그렇게까지 이야기해주셨는데… 또 이러면 안 되는 거겠죠?”

“…네?”

“저… 고시원 살아요.”

“……!”

동혁의 두 눈이 순간적으로 크게 떠졌다 원래대로 돌아왔다.

최대한 놀란 티를 내려 하지 않은 것이다.

“…어디 고시원이죠?”

“…제가 찍어드릴게요.”

틱 틱 티딕 ―

내비에 고시원 위치를 찍는 다래.

내비게이션 화면을 누르는 다래의 얼굴이 살짝 빨개져 있었다.

그래도 헌터인데 고시원에 산다는 것이 조금이지만 창피한 듯했다.

“여기서… 30분 정도군요.”

부우웅 ―

동혁은 최대한 담담하게 내비가 안내하는 길로 운전하기 시작했다.

“…….”

“…….”

적막만이 감도는 차 안.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긴 했지만,

흘긋 ―

동혁은 연신 몰래 다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던 그때,

“…왜 안 물어보세요?”

고개는 조수석 차창 밖을 향한 채 다래가 오히려 역으로 물어왔다.

“뭘 말입니까?”

동혁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녀에게 실례가 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동혁의 태도에,

피식 ―

다래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동혁 선배님은 참 친절하신 분이네요.”

“…남들은 그냥 소심한 거라고 하던데…….”

“쿡쿡.”

다래는 나지막한 웃음을 터뜨렸다.

휘익 ―

그러더니 동혁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말이죠. 아까 선배님이 해주신 말이 참 인상 깊었어요.”

“…그랬습니까?”

동혁의 대답에 다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저는 한 번도 제가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살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3년 동안이나 델타조로 올라가지 못한 무능한 년, 헌터인데도 고시원에 살고 있는 빚쟁이, 멍청하게도 화를 참지 못해 일가족을 모두 죽음의 수렁을 떨어뜨린 불효녀…….”

다래는 쓰디쓴 웃음을 지으며 동혁을 바라보았다.

“이런 저도… 누군가의 부러움을 살 수 있는 거겠죠? 그렇죠? 가족이 다 죽고 빚쟁이지만 마력을 각성했으니까요. 그렇죠? 사지도 멀쩡하구?”

깔깔깔.

다래는 반쯤 넋이 나간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동혁이 착 가라앉은 눈으로 살며시 물었다.

그녀의 상태가 상당히 위태로워 보였으니까.

다래는 잠깐 동안 웃음을 터뜨렸다가 뚝 그치고서 한숨을 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뭐, 별일 아니에요.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데 누가 옆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제 엉덩이를 툭툭 만지길래 뭐라 하려고 했는데 유명한 헌터더라구요? 친구들이 참으라고 했는데 저는 못 참고 뺨을 날렸어요. 그리고 그날 밤, 저희 가족은 단체로 마력 감염증에 걸렸죠. 아이러니하죠? 분명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말이죠.”

다래는 고개를 숙인 채 쿡쿡댔다.

“아버지도 돌아가시면서… 아버지가 빚을 내서 운영하시던 음식점은 하루아침에 망했어요. 그 빚은 겨우 죽다 살아나 사관학교에 입학한 저에게 고스란히 넘어왔죠.”

다래의 눈시울은 물론이고 얼굴 전체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

“빚도 빚이었지만 저는 그놈을 잡고 싶었어요. 그래서 헌터 협회에 지원했어요. 돈이 조금 쪼들리더라도 열심히 해서 차근차근 올라가면… 빚도 갚고 원수도 잡고, 일석이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더 높겠지만 예전 협회 때도 알파조가 되면 월급 실수령액이 월 천이라는 거 아셨어요? 저는 그 알파조를 목표로 했어요.”

다래는 자조적인 웃음을 잇새로 마구 흘려댔다.

“그런데 웬걸? 이 머저리는 3년 동안 알파조는 무슨 델타조도 못 가고 있네? 원수는커녕 빚만 늘어나고 있네? 와, 이런 X신 같은 인생이 또 있을까?”

울컥 ―

다래는 말을 잇다 복받쳐 올랐는지 습기 가득한 눈으로 동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선배님. 제가 왜 아공간 주머니에 뭔가를 이렇게나 많이 가지고 다니는지 아세요? 그건 말이죠. 빚쟁이가 갑자기 찾아와서 갈 곳이 없어져도 어떤 곳에서든 살아남기 위해서예요.”

뚝… 뚜둑…….

다래의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선배님… 선배님은… 이런 제 인생도 누군가 부러워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네? 정말로요?”

“…….”

동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나 절절하고 아팠으니까.

‘…그런 생각도 사치였구나.’

하루하루 발전해 나가는 내 모습?

그것도 누군가에게는 사치였다.

누군가는 하루하루 발전하기 위해 애쓸 때, 누군가는 하루하루 나락에 빠지지 않으려 버둥거리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 있다는 것을,

‘…미안합니다.’

동혁은 그제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부우웅 ―

어두운 밤길을 나아가는 동혁의 차.

차 앞에 달린 전조등만이 조용히 밤길을 밝히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