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217화 (217/300)

217화. 인생은 배움의 연속임 (4)

“자, 이철민 교관님과 그 마지막 제자들을 위하여~!”

“위하여!”

트앙! 트드앙!

캔맥주가 부딪치며 얇은 철 소리가 울려 퍼졌다.

쭈욱 ―

캔맥주를 들고 한 모금씩 들이켜는 사람들.

경기도 가평의 한 펜션에 총 8명의 남녀가 모여 있었다.

철민, 현숙, 동혁, 한석, 대한, 민아.

그리고 태운과 강천까지.

상황이 많이 여유로워지자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온 그들이 서로 술잔을 맞부딪치고 있었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진짜 너무해!”

코스모스 두 사람이 가면을 벗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태운까지도 말이다.

탁!

테이블 위에 캔맥주를 소리 나게 내려놓은 민아가 입을 댓 발 내밀며 투덜댔다.

“어떻게 우리한테도 비밀로 할 수 있어? 진짜 태운 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민아가 팔짱을 끼며 태운을 째려보았다.

“아하하하하…….”

태운이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왜 몰랐지……?’

철민과 강천이 아닌 다른 네 사람도 협회에 들어온 이후, 진작에 자신을 알아봤을 거라고 생각했던 태운이었다.

가면만 썼지, 딱히 목소리를 변조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방송이나 영상이 아닌 실제로 마주친 적도 있었기에 태운은 오히려 여태 모르고 있던 민아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이건 태운이 형이 너한테 너무하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우린 다 알아봤는데 너만 못 알아봤으면 그만큼 네가 태운이 형한테 관심이 없었다는 거겠지.”

대한이 킥킥대며 핀잔을 주었다.

민아와 달리 동혁, 한석, 대한은 협회 내에서 가면을 쓴 태운과 마주치자마자 눈치채고야 말았다.

그리고 철민에게 물어 진작에 확인했던 그들.

―국가 기밀 정보니까 어디서도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라. 너희끼리 있을 때도 이야기하지 마. 국가 기밀 정보를 누출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꿀꺽 ―

얼떨결에 국가 기밀급 정보를 알아버린 세 사람은 철민에게 되물었다.

―근데… 이게 왜 국가 기밀이래요? 왜 밝혀지면 안 되는 거지?

―그 이유를 내가 말해줄 수 있으면 그게 국가 기밀이냐?

―…그런가?

결국 그들도 의문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태운에게 아는 척도 한번 못한 채 지내온 날들이었다.

그러다 몇 주 전,

―강천.

―응?

―다 같이 모일 때도 됐지? 다들 눈치도 챈 것 같은데.

―아, 실전반 동기들? 하긴 그렇긴 해. 이미 다 아는 것 같던데… 이대로 모르는 척하고 있기도 좀…….

―해외 수사 마무리되는 대로, 잠깐 1박 2일이라도 놀러 가자. 교관님도 모시고.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

협회에서 마주칠 때마다 왠지 자신을 알아보는 듯한 실전반 동기들의 시선을 눈치챈 태운은 그들과의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교관님.

―응?

―저희랑 1박 2일 놀러 가실래요?

―1박 2일…? 어디로?

―뭐 가까운 데로 가죠 뭐. 가평 같은데 펜션 잡고 놀면 딱 괜찮지 않겠어요?

―음… 좋긴 한데 내가… 그…….

―사모님이 걱정되시는 거죠?

―크흠흠!

―그럼 사모님도 같이 가시죠.

―엉?

철민은 당황했다.

놀러 가는 것이라면 태운과 강천이 가면을 벗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런데 현숙을 데려간다고?

―괘, 괜찮은 거냐? 집사람이 너희 얼굴을 봐도…….

철민은 조금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지만,

―사모님은 괜찮아요. 교관님이랑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계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하고 믿음직한 분인지 잘 알 수 있거든요.

―…뭐 이 새끼야?

옆에 있던 강천의 말에 그의 걱정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계획된 총 8명의 짧은 여행.

현숙을 제외한 모두가 태운과 강천의 정체를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과, 관심 없지 않거든? 오, 오빠 아니야! 진짜 아니야! 내가 오빠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데?!”

정작 민아가 모르고 있을 줄이야.

“…나는 알았냐?”

강천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민아를 바라보았다.

설마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면 크게 실망할 거라는 눈빛.

알려주지 않은 것에 서운함을 토로하려던 민아는 어느새 역전된 상황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너, 너는 알았지! 네 능력은 알고 있었으니까!”

“근데 왜 형은 못 알아봤는데?”

“아, 아니… 번개 색이 다르니까 그냥 진짜 다른 사람인 줄…….”

“목소리를 코앞에서 그렇게 많이 들어놓고도? 협회 안에서 마주친 게 또 몇 번인데?”

“우씨이……!”

민아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대화하면 할수록 말리는 기분이 들어 더 이상 말을 꺼낼 수가 없었으니까.

그때,

“아이고~ 건장한 청년들이 어린 여자애 하나 몰아가기나 하고! 아주 못돼먹었어~”

펜션 안에서 비빔면을 잔뜩 만들어 가지고 나온 현숙이 민아를 몰아세우고 있던 강천과 대한을 보며 한 소리 했다.

“이모~!”

구세주라도 반기는 듯한 제스처로 현숙에게 달라붙는 민아.

째릿 ―

강천과 대한을 노려보는 민아의 눈빛이 꽤나 표독스러웠다.

“이모, 어린 여자애라뇨. 저희 동갑인데요?”

대한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동갑이면 더하지! 민아가 얼마나 여린데, 그걸 가지고 막 놀리고 그러면 못써!”

현숙의 한 소리에 대한의 어깨가 살짝 주눅 들었다.

그러자 강천이 킥킥대며 말했다.

“이모, 양쪽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달라요. 민아가 먼저 태운이 형 억까했다니까요? 저희는 태운이 형 대신 몇 마디 해준 거예요.”

민아가 태운을 억까했다는 말에,

스윽 ―

민아를 바라보는 현숙의 눈빛이 돌변했다.

“정말 그랬어~?”

“어, 아니, 그게…….”

한순간에 변해버린 듯한 현숙의 시선에 민아의 이마에서 다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럼 민아가 잘못했네.”

아무래도 강천의 말이 맞는 것 같자, 현숙은 비빔면을 내려놓으며 민아에게 선을 그었다.

“이, 이모!”

“태운 씨 억까하는 건 선 넘었다, 민아야~ 태운 씨? 어서 많이 들어요. 시간 좀 지나면 꼬들꼬들한 식감 다 사라져.”

“아… 아하하… 예, 감사합니다.”

대놓고 태운을 편애하는 현숙의 태도에 민아를 비롯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여보… 나는?”

철민이 살짝 서운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요?”

“…나한테는 먹어보라고 안 해?”

“당신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알아서 드세요.”

시무룩 ―

철민의 시무룩한 표정에,

“푸흡!”

“크큭!”

강천과 한석이 입을 틀어막은 채 끅끅댔다.

“이 자식들이……!”

자신을 비웃는 듯한 제자들의 모습에 철민의 이마 위로 핏줄이 솟아오르려는 찰나,

“자! 한 잔 더 짠!”

자리에 앉은 현숙이 철민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그 흐름을 끊어냈다.

“크큭… 이모를 위하여!”

트앙! 트드앙!

한석의 외침과 함께 다시 한번 허공에서 부딪치는 맥주캔들.

“와하하하하!”

오랜만에 모인 이들이 함께 웃고 떠들며 노니 그만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없었다.

태운과 강천도 가면을 벗은 채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그 분위기를 즐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가운데에서,

“하하하하하.”

한 사람만큼은 마음 편히 활짝 웃지 못하고 있었다.

* * *

새벽 3시.

“후우우…….”

동혁은 계속해서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펜션 밖으로 나와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제 인생도 누군가 부러워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지끈.

동혁의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울음기 가득한 다래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후우우…….”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펜션 자갈밭에 주저앉은 동혁은 속 안의 무언가를 끄집어내려는 듯 연신 계속해서 한숨을 쉬어댔다.

그렇게 얼마나 한숨을 쉬어댔을까.

“후우우…….”

동혁이 최소 수백 번은 한숨을 쉬어댔을 법한 그때,

“그러다 땅 꺼지겠다, 땅 꺼지겠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지만 동혁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목소리만으로 누군지 알았으니까.

“…왜 나왔어.”

동혁은 침울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밖에서 자꾸 누가 싱크홀이라도 만들 기세로 한숨을 쉬어대는데, 잠이 와야 말이지.”

자각 ―

태운은 동혁과 두세 뼘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자갈밭에 쪼그려 앉았다.

“우리 큰형님께서 무슨 걱정이 있으시길래 하루 종일 어색하게 웃으셨을까.”

태운의 예리한 눈이 동혁과 시선을 마주쳤다.

태운과 눈이 마주친 순간,

“…….”

스윽 ―

동혁은 속 안이 마구 발가벗겨지는 기분에 그의 시선을 살짝 피했다.

“뭔데, 형. 말해봐. 보아하니 아무한테도 말 안 한 것 같은데.”

동혁이 이렇게 근심 어린 상태였다면 한석, 대한, 민아도 그렇게 해맑게 있을 수 없었다.

지금은 비록 조가 달라지며 소속이 나뉘었지만 네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끈끈한 사이였으니까.

즉, 현재 동혁은 고민을 그 누구에게도 나누지 않은 채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

동혁은 태운에게 차마 이 고민을 말할 수 없었다.

그야 동혁에게 큰 고민을 안긴 다래와 태운은 그야말로 극과 극, 대척점에 서 있는 이들이었으니까.

“…적어도 너한텐 말할 수가 없다 야.”

“…왜?”

“그야… 용이 지렁이의 고충을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밤하늘을 바라보는 동혁의 두 눈이 깊어졌다.

‘그래… 용과 지렁이. 딱 맞는 비유네.’

하늘을 지배하는 용과 땅을 기는 지렁이.

용은 온 하늘을 누비며 얼마든지 자유롭게 높이 올라가지만, 지렁이는 기껏해야 지면 위로 기어 나오는 것이 전부다.

지면을 기는 것도 잠시, 비가 그치면 살아남기 위해 땅을 파고 내려가야 했다.

땅 밑으로 숨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테니까.

세상을 주유하며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용, 태운.

그리고 빚쟁이를 피해 고시원을 전전하는 지렁이, 다래.

두 사람은 차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극과 극의 삶을 살고 있었다.

“…….”

태운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혁을 잠시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용은 지렁이를 이해할 수 없다라…….”

태운의 중얼거림에 동혁은 슬쩍 태운을 바라보았다.

태운은 어느새 자갈밭에 드러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히려 용이라서 지렁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동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용이라서 지렁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게 뭔 소리야?’

이는 즉 왕이 노예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니던가?

어떻게 보면 기만으로 비칠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태운의 말을 들은 뒤 동혁은 자신의 고민을 실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형, 지렁이의 다른 이름이 뭔 줄 알아?”

“…뭔데?”

“토룡(土龍).”

“……!”

태운은 동혁을 보지 않고 여전히 밤하늘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형, 용은 말이야. 원래 전부 토룡에서부터 시작해. 땅을 기는 토룡은 곧 작은 뱀이 되고, 그 뱀이 수천 년을 묵으면 거대한 이무기가 되지.”

스윽 ―

태운은 가평의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이무기는 또 수천 년을 인내하고 기다리며 용이 되기 위해 살아가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마침내 이무기는 용이 되어 승천하고 말이야. 형, 용은 그렇게 탄생해.”

슬쩍 ―

태운의 시선이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동혁에게 향했다.

“그렇게 해서 용이 된 그 용의 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건 그 용에게 커다란 실례가 아닐까? 그 용도 용이 되기까지 수많은 고통과 슬픔이 있었을 텐데 말이야.”

“…미안하다.”

동혁은 그에게 사과했다.

태운의 현재 모습만 보고 그의 노력을 무시했던 것 같아서.

아무리 태운이 재능이 있었다고 한들, 그가 흘린 피와 땀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피식 ―

그런 동혁의 말에 태운이 웃음을 흘렸다.

“물론 운이 좋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 모든 사람이 노력하며 사는데 모두가 용이 될 수는 없으니까. 재능도 사실 운이기도 하고.”

태운은 자갈밭에 누운 채 동혁을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누구 고민인데? 그래도 형 정도 되는 사람이 스스로를 지렁이라고 칭할 것 같지는 않고… 이 하늘 아래 모든 걸 관장하는 용신께서 한번 들어줄게.”

“푸핫.”

동혁은 조금이나마 답답했던 마음이 풀린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풀썩 ―

그도 자갈밭에 냅다 드러누워버렸다.

“에휴… 모르겠다. 그래. 제느님한테 한번 상담해보실까.”

“그래, 그래. 이 제느님이 들어준다잖아. 퍼뜩 말해봐.”

“크크큭……!”

한결 마음이 편해진 동혁은 며칠 전 있었던 일들을 태운에게 말해주었다.

던전에서 있었던 일과 고깃집 그리고 차 안에서 있었던 일들까지 전부.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말이다.

그렇게 동혁의 이야기를 다 들은 태운은,

“…형, 등신이야?”

“……?”

대뜸 동혁을 욕하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