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방주가 다시 나타남 (1)
세계급 헌터.
또 다른 말로 EX급 헌터라고도 불리는 헌터들.
그들은 세계 최강자였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10명, 즉 ‘세계 10대 헌터’라고도 불렸던 그들.
하지만 세계 10대 헌터라는 칭호는 유명무실해져버린 지 오래였다.
한국과의 전쟁에서 중국의 왕룽과 첸이 사망하고, 하와이 전투에서 세계 최강의 헌터 제이슨이 사망한 뒤 7명으로 줄어버렸으니까.
비록 그 세 사람의 빈자리가 한국의 코드 제로, 코드 원 그리고 김천용으로 메꿔지면서 세계급 헌터의 숫자는 유지되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세계 10대 헌터에서 세계 7대 헌터로 불리게 되었다.
사실상 압도적으로 전 세계를 통제하기 시작한 한국의 세계급 헌터들은 다른 7명과는 따로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이라는 다른 이명으로 불렸으니까.
국제질서 또한 P7에서 중국이 탈락하고 한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며 P7의 이름은 이어졌지만,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던 양강체제에서 한국이 홀로 주도하는 독주체제나 다름없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온 세상이 한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이나 대다수 국가들은 오히려 이러한 흐름을 환영했다.
제 이권을 위하여 타국을 종종 압박하고 협박하기를 서슴지 않던 미국이나 중국과는 달리, 한국이 주도하는 세계적 질서에서는 인간적인 선을 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제재도 없었으니까.
서로 간의 예의만을 지키면 그 어떤 터치도 없다.
한국 정부와 한국 헌터 협회가 내건 슬로건(Slogan) ‘No touch as long as mutual respect’, 즉 개방적 질서주의에 따른 온건적 국제평화였다.
이런 온건적이고 개방적인 국제질서 아래, 양강의 눈치를 보기 바빴던 수많은 나라들과 그 국민들은 그야말로 숨통이 트인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존의 기득권들은 이러한 상황에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비록 양강이 존재했다고는 하나, 그들과 함께하며 국제질서를 주도해온 이들.
전 양강이었던 미국과 다른 P7 국가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만이 심했던 것은 P7을 P7으로 있을 수 있게 했던 세계 7대 헌터들.
“후우…….”
그중 러시아의 세계급 헌터, 드미트리의 입에서 뿌연 담배 연기가 잔뜩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 *
“스읍…….”
독한 시가를 빠는 드미트리.
드미트리가 시가를 빨자 시가 끝에 붙은 불이 빨갛게 타들어가며 시가의 길이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후어어…….”
거친 육성과 함께 담배 연기를 재차 토해내는 드미트리.
뿌연 입김과 담배 연기가 섞여 어마어마한 양의 연기가 그의 입에서 토해졌다.
그 모습이 마치 괴수 하나가 불을 내뿜기 전 연기를 토해내는 듯했다.
“흐어어…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건지.”
드미트리는 공중으로 솟아오르며 흩어지는 연기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한국 헌터 협회, 정확히 말하자면 코드 제로에 의해 전 세계의 헌터계가 대청소 당하게(?) 되면서, 죄를 지은 헌터들은 그 유명한 한국의 헌터법에 의해 처벌당했다.
노아즈 아크의 일원들을 제외하고도 전 세계적으로 숙청당한 헌터의 수는 셀 수조차 없었다.
최소 수천 명.
그리고 그보다 몇 배는 더 많은 헌터들이 감옥에 갇혔다.
한국 헌터 협회와 공조한 각국의 헌터 협회들은 고위 헌터, 하위 헌터를 가릴 것 없이 상당히 공격적인 수사를 감행했고. 이 수사망에서는 세계급 헌터들조차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반항할 생각?
꿈에도 하지 못했다.
무려 왕룽과 첸을 동시에 잡고, 그 제이슨을 끝장내버린 코드 제로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점은 남은 7명의 세계급 헌터들의 죄질이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기껏해야 경범죄 몇 건 정도?
어디서나 국빈 이상의 대우를 받으며 웬만해서는 뭐든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들이었으니 애초에 범죄를 저지를 필요성조차 거의 없었던 덕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7명 모두 흠이 없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고위 헌터들에 대한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는 와중에 세계급 헌터인 그들의 경범죄 사실이 알려지면 더 이상 전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일.
철옹성과도 같던 그들의 이미지는 더 이상 견고함을 자랑하지 못했기에 그 이미지 타격은 실로 뼈아플 터였다.
이에 코드 제로는 그들을 한데 모아놓고 제안했다.
―일곱 분 모두 자잘한 경범죄 건들이 있지만… 어차피 대부분 벌금형 선에서 끝날 것들이니까 공표는 하지 않겠습니다. 벌금 납부 정도는 비밀리에 처리해드리죠. 단, 조건이 있습니다.
―뭡…니까?
―그 힘, 그래도 조금은 이 세상을 위해서 써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배만 채울 게 아니라요.
바로 노아즈 아크를 비롯한 강력 범죄자 헌터들을 잡아들이는 것.
그게 바로 코드 제로가 그들에게 제안한 것이었다.
사실상 말이 제안이지 거의 반강제나 다름없는 일.
7명의 세계급 헌터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강력 범죄자 헌터들을 코드 제로가 정해준 기한까지 찾아서 각국의 헌터 협회에 넘겨야 했다.
―…까지 이 지역 강력 범죄자 헌터 2명 검거해오세요.
―…숨고 도망 다니는 놈들 검거하는 게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일주일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2주는 주셔야……
―6일 드릴게요.
―아니, 그게 무슨……!
―5일.
―…5일 안에 잡아오겠습니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코드 제로.
이에 7인의 세계급 헌터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꾸역꾸역 해냈다.
‘…무서운 놈.’
드미트리는 몸서리가 쳐진다는 듯 전신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며 항의하거나 반항해볼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었다.
그 빡빡한 일정 몇 때문에 몇 달째 레이드를 한 건도 뛰지 못한 그들의 수익은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들이 쌓아놓은 재산은 숨만 쉬어도 이자를 직장인 월급만큼이나 생산해냈지만, 수익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위기였다.
이에 일본의 세계급 헌터, 마쓰무라가 코드 제로에게, 소위 말해 개겨본(?) 적이 있었다.
―이 사람 모레까지 잡아오세요.
―장난해? 지금 이게 몇 주째야! 당신 말 따르느라 지금 몇 달째 레이드 한 번을 못 뛰었어!
―어차피 돈 많잖아요? 급한 것도 없으면서 좀 쉬엄쉬엄하세요.
―뭘 쉬엄쉬엄해? 지금 레이드만 쉬지, 전보다 몇 배는 더 바쁘거든? 나 안 해! 못 해!
―경범죄 사실 알려?
―이 조센징이 진짜! 한판 뜨자! 칙쇼!
그날, 마쓰무라는 원래의 피부색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
무서웠다.
고유 능력이자 주무기라는 번개는 꺼내지도 않고 신체강화로만 세계급을 두들겨 패는 존재라니.
그날 이후 세계급 헌터들은 코드 제로의 말을 더욱더 잘 듣게 되었다.
더 이상 불평하는 일도 없었고 말이다.
“후우우…….”
드미트리는 하얗게 쌓인 눈 위로 시가를 툭툭 털었다.
치직……!
새빨간 담뱃재가 눈 위에 조그마한 구멍들을 송송 만들었다.
“드미트리 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웅성웅성.
저편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드미트리가 부른 채굴꾼들이었다.
흔들흔들.
드미트리는 선두에 있는 채굴꾼 반장을 향해 손을 한번 흔들어주었다.
“힘들지는 않으셨습니까!”
“기껏해야 S급 하위 던전이었습니다. 힘들었을 리가요.”
“역시 드미트리 님! 러시아의 자랑!”
채굴꾼들이 엄지를 들어 보이며 그를 치켜세워줬지만,
씩 ―
드미트리는 씁쓸한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일 뿐이었다.
“몬스터는 이제 없고, 소형 던전이지만 던전 내부에 간헐천들이 많습니다. 조심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다들 들었지? 간헐천이 많다고 하신다! 무장해라!”
““예!””
던전 앞에 도착한 채굴꾼들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저마다 보호장구를 꺼내입기 시작했다.
“…….”
시가를 마저 피우며 그런 그들을 쳐다보던 드미트리.
시가를 눈 속에 버리며 채굴 반장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수고하십쇼.”
“예!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드미트리는 마치 군대와 같은 채굴꾼들의 쩌렁쩌렁한 외침을 뒤로하며 시베리아 숲을 천천히 걸어갔다.
“후우우… 거짓말한 거 걸리진 않겠지……?”
무언가 걱정되는지 드미트리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늘 드미트리가 S급 던전 레이드를 뛸 수 있었던 이유.
범죄자 3명을 검거하는 데 4일을 받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잡아 하루가 남았기 때문이다.
본래 같으면 겨우겨우 데드라인을 맞춰 바로 보고하기 바빴겠지만, 웬일인지 일이 잘 풀려서 빨리 잡아 시간이 남게 된 것.
이에 드미트리는 바로 보고하지 않고 남는 하루를 레이드에 쓴 것이었다.
게다가 운 좋게도 때마침 S급 던전이 하나 튀어나와 수지에 맞는 레이드를 뛸 수 있었다.
“운수가 좋아서 좋긴 한데… 어쩐지 불안하단 말이야…….”
휙 ― 휙 ―
그 괴물 같은 코드 제로가 귀신같이 알고 찾아와 보고를 미룬 자신을 응징하지는 않을까, 불안했던 드미트리는 계속해서 아무도 없는 시베리아 숲속을 둘러보았다.
“하아… 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
연신 주위를 살피던 드미트리는 갑자기 찾아온 현타에 두 눈을 감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그냥 헌터 다 때려치우고 잠적하든가 해야지… 응?”
마른세수를 마친 드미트리의 손이 내려가고, 그의 시야가 다시 밝아진 그때,
“……!”
바로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새하얀 눈처럼 새하얀 토끼 탈을 쓴 한 사람.
“세계급 헌터 드미트리, 맞나?”
토끼 탈의 고개가 모로 꺾어졌다.
* * *
두근! 두근! 두근!
말 그대로 화들짝 놀란 드미트리는 두근대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재빨리 진정시켰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토끼 탈을 쓴 자가 코앞에 나타날 때까지 무언가 다가오는 기척 따위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아무리 전투태세가 아닌 평시였더라도 그는 세계급 헌터.
그의 기척을 속였다는 것은,
고오오오 ―
최소 세계급에 준하는 어마어마한 강자라는 것이었다.
“…누구냐.”
드미트리는 긴장한 표정으로 재빨리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러나 토끼 탈을 쓴 낯선 사람은 그저 제 할 말만을 이어 나갔다.
“드미트리가 맞냐고 물었다.”
남성의 목소리였다.
알아듣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러시아어가 아닌 것으로 보아 외국의 헌터 중 하나.
그리고 저 동물 탈은…….
‘노아즈 아크!’
하와이 전투에서 코드 제로를 비롯한 한국 정상 일행을 공격한 이들과 똑같은 탈이었다.
다만,
‘…영상 속에 토끼 탈을 쓴 자는 없었다.’
본 적 없는 탈이었다.
게다가 코드 제로에 따르면 노아즈 아크의 방주들은 십이지라는 열두 가지 동물 탈을 쓰고 있으며, 영상 속에 나오지 않았던 호랑이와 토끼 탈을 쓴 방주들은 자신이 이미 처리했다고 했다.
호랑이 탈의 주인은 왕룽이었으며 토끼 탈의 주인은,
“…쿠마리가 남자였나?”
네팔의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였다고 했다.
드미트리는 미간을 좁히며 토끼 탈을 쓴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목소리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남자인데 말이지. 애초에 코드 제로한테 당했다고 들었……!”
드미트리가 전투태세를 취한 채 갑자기 나타난 토끼 탈의 남자의 정체를 유추하려던 그때,
훅 ―
토끼 탈의 남자의 신형이 사라졌다.
“……!”
그 어떤 낌새도 없이 사라진 상대의 신출귀몰한 움직임에 놀란 드미트리의 두 눈이 커지는 순간,
뻐억!
순식간에 날아든 수도가 드미트리의 목덜미를 후려쳤다.
“끄어어억……!”
이름값에 비해 너무나도 어이없이 당해 기절해버리는 드미트리.
언제 움직였는지, 어느새 드미트리의 뒤에서 손날을 세우고 있는 토끼 탈의 남자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말이 많군.”
후우우우…….
입김이 찼는지 토끼 탈을 잠시 벗는 남자.
탈을 휘휘 흔들어 입김을 제거하는 남자의 얼굴이 시베리아 숲의 나무 사이를 파고든 햇살에 의해 드러났다.
남자의 정체는 바로,
“역시 추운 건 싫다니까.”
노아즈 아크의 마지막 남은 두 명의 방주 중 하나, 푸르바였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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